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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두가 된 이유-188화 (188/245)

188화

아미파와 황룡회.

두 진영 중간 지점에 커다란 천막이 쳐지고, 세 사람이 앉기에는 과하게 커다란 원형 탁자 하나와 의자 세 개가 놓여 있다.

우리가 진영을 떠나 그곳으로 갈 즈음, 이미 두 개의 의자에는 주인이 있었다.

황룡회의 일장로 수림야귀 견노량과 무림맹 현뇌전의 부전주 사의팔통 방백이다.

그 뒤로 황룡회와 무림맹의 고수들이 각각 스무여 명 정도 즐비해 있다.

우리는 여유롭게 걸어 그곳에 도착했다.

그리고 아미파의 장문인 심전 사태가 아닌, 내가 우리 무리의 선두에 나서서 그들을 마주했다.

일단 자리에서 일어나는 견노량과 방백.

시선을 내가 아닌 내 뒤에 있는 심전 사태에게로 향한다.

“무슨 일입니까?”

칠십 세를 훌쩍 넘긴 견노량이 불쾌한 기운을 대놓고 드러내며 심전 사태를 향해 물었다.

심전 사태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현화문의 현화도사 마악치 대협입니다. 이제부터 담판은 마 도사가 우리를 대표해 나설 것입니다.”

“지금 노부를 무시하는 것이오?”

“어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견 대협을 존중해 빈승보다 더 귀한 이를 내세운 것입니다.”

“으흠, 아무래도 우리 황룡회에서 너무 자비를 베푼 듯하군.”

찬바람을 펄펄 풍기고 시선까지 외면하며 비뚠 자세로 자리에 앉아 버리는 견노량.

기분이 상해 담판을 제대로 이을 마음이 없다는 뜻으로 보였다.

그보다 그 옆에 있는 방백.

나와 심전 사태가 아닌 다른 인물에 시선이 꽂혀 있다.

아니, 나를 몇 번 보는가 싶더니 이내 내 뒤에 있는 왕대에게 시선이 꽂혀 좀처럼 떨어질 줄 몰랐다.

“제가 새로 사귄 친군데, 아는 인물입니까?”

내가 묻자 방백이 놀란 얼굴을 순식간에 지우며 가짜 미소를 지었다.

“아, 아닙니다. 마 도사님의 명성을 익히 듣고 있었는데, 무림맹에 오셨을 때도 제대로 만나 뵙지 못하다가 뜻밖에도 이곳에서 만나게 되어 조금 놀라 그렇습니다.”

“아니, 저 말고요. 방금 저 뒤에 있는 제 친구를 보고 계셨던 것 같아서요.”

“아, 네. 우각도협과 구절협 대협도 역시나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는 게 처음이라. 그런데 다른 한 분은……?”

“왕대라고 합니다. 염우촌이란 곳에서 왔지요.”

분명 기겁할 정도로 놀란 게 맞다.

그래도 명색이 무림맹 현뇌전의 부전주라 그 놀란 마음을 가까스로 숨기는 중이다.

난 그런 방백을 향해 피식 웃어 준 후, 자리에 앉았다.

여전히 내게는 시선조차 주지 않는 견노량이다.

방백은 이번 담판 따위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듯, 홀로 골똘히 뭔가의 깊은 생각에 빠져 있고.

참, 웃기다.

세상 사는 게 어찌 이리도 웃기고 재밌을 수 있단 말인가.

세 사람이 원형의 탁자를 가운데 두고 앉아,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소개해 드릴 분이 있습니…….”

“잠깐!”

내가 말을 꺼내려 하자 견노량이 손을 들어 제지했다.

“듣고 싶지 않다. 그리고 아미파와의 담판은 오늘부로 더 이상 없을 것이다. 우리 황룡회는 오늘부로 우리 뜻대로 움직일 것이다. 만약…….”

견노량의 말.

그의 입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됐다.

엄청난 긴장감과 불안감이 장내를 강하게 짓누르는 듯한 분위기였다.

“만약…… 본 회의 행사를 방해한다면, 그것이 염라대왕이라 할지라도 죽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척!

말을 마친 견노량이 탁자를 오른손으로 척 집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말에 이어 눈으로 다시 좌중을 압도하려는 듯, 그는 그렇게 무서운 눈으로 모두를 노려본 후 자리를 떠났다.

선전포고다.

그렇게 견노량은 함께 온 고수들과 함께 담판장을 떠났다.

아니, 막 몇 걸음 떠나고 있을 때.

내가 혼잣말을 했다.

견노량 정도의 고수라면, 천둥 번개 치는 소리와 같이 정확하게 들었을 내 작은 혼잣말이었다.

“앞뒤가 꽉꽉 막힌 늙은이 같으니라고.”

어찌 견노량만 들었겠는가?

자리가 자리니만큼, 어디 가도 죄다 초특급 고수 대접받을 인사들만 모였는데 말이다.

내 혼잣말에 성큼성큼 자기 진영으로 돌아가려던 견노량과 그 무리들의 걸음이 뚝 하고 멈추었다.

혼자만의 생각에 잠겨 있던 방백은 얼굴이 새하얗게 질릴 정도로 놀란 모습이었다.

방백만이 아니라, 분노를 넘어 살기를 마구 뿜어 대는 황룡회 고수들을 제외한 모두가 나를 기겁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견노량의 심기를 건드렸고, 곧바로 견노량의 검에 내 목이 날아갈 것을 염려한 그런 얼굴들이었다.

곧, 걸음을 멈추었던 견노량이 천천히 뒤를 돌았다.

“방금…… 뭐라고 했느냐?”

화가 나도 많이 난 모양이다.

하지만 난 여유로웠다.

슬쩍 미소까지 지으며 불량한 자세로 의자에 앉은 채 답했다.

“들었어요? 혼잣말한 건데.”

“들어 버렸구나.”

“거, 못 들은 척해 주시고 가시던 길 그냥 가세요. 늙으면 귀가 잘 안 들린다고 하던데, 신기하네.”

견노량이 웃는다.

황당해서, 너무 어이가 없어서 나는 웃음이었다.

그리고 그 웃음 속에는 짙은 살기가 슬금슬금 새어 나오고 있었다.

“이미 들어 버려서 못 들은 척해 주기 어렵구나.”

“에이, 괜히 젊은 사람들 앞에서 망신당하지 말고, 그냥 못 들은 척하고 가시라니까. 험한 꼴 봐요.”

견노량의 웃음이 더욱 짙어졌다.

환하게 웃는다.

악귀의 미소였다.

“죽고 싶어 환장을 한 녀석은 실제로 처음 보는구나.”

“쯧쯧. 귀는 밝을지 모르나, 눈은 까막눈이었군. 태산을 보고도 태산인 줄 모르니.”

“네 이놈!”

쾅!

결국, 그가 폭발했다.

단지 기운을 분출한 것뿐인데, 그의 주변에 기의 파동이 폭발처럼 일어났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어마어마한 기운이 소용돌이가 되어 그의 몸을 휘감고 있었다.

황룡회와 아미파, 무림맹 고수들도 몇 장씩 뒤로 물러서 사태를 준비하며 즉시 출수할 준비를 했다.

아미파, 황룡회, 무림맹의 그 누구도 두려운 기색은 없었지만, 하나 같이 긴장과 절망 그리고 분노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잘 이어 오던 평화 회담이, 나로 인해 깨져 버렸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리고 그건 누군가 피를 뿌리며 죽어야 한다는 뜻일 테고 말이다.

나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극도로 흥분하여 당장에라도 내 목을 쳐 버릴 것 같은 견노량과 마주했다.

그리고, 다시 웃었다.

“앞뒤가 꽉꽉 막힌 줄만 알았더니, 성질까지 더러운 노인네였군.”

“네가…… 큭큭큭. 네가 정녕 죽는 게 소원이라면…… 클클클. 노부가 그 소원을 이루어 주겠다.”

“아니, 죽는 건 내가 아니라 당신이야. 그리고 당신의 그 성급함 때문에, 황룡회는 크나큰 곤혹에 빠지게 될 거야.”

“정말 두려움이 없는 녀석이구나. 그래, 잘 가라. 죽을 때도 그렇게 당당하게 가길 바라겠다.”

그게 끝이었다.

견노량은 더 이상의 대화는 불필요하다는 듯, 흐트러진 기운을 모으기 시작했고.

나를 노려보던 그 자세 그대로, 몸을 날렸…… 쾅!

갑자기 내 앞에 무언가 떨어졌다.

아니, 나타났다.

그리고 그것이, 아니 왕대가 나타나자마자 사람들은 기겁을 하고 말았다.

엄청난, 정말 무지막지한 마기가 그에게서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정마대전이 발발하지 않는 이상, 중원 무림에서 이런 엄청난 마기를 실제 경험해 본 사람은 거의 없을 터.

심지어 왕대는 마공으로 초절정 극상의 경지에 오른 고수다.

그리고 마공을 처음 접한 이들이라지만, 왕대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마공의 기운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모를 정도의 허접한 고수는 자리에 없었다.

모두가 놀람을 넘어 경악과 심지어 두려운 기색까지 내비쳤다.

견노량이 화를 폭발했을 때도 놀라지 않던 고수들이 그렇게 마른침조차 넘기지 못하고 왕대를 경계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왕대는 저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조금도 관심이 없었다.

오직.

“주인님, 저 늙은이는 앞뒤가 꽉꽉 막히고 성질이 더러운 노인네입니까?”

“그, 그렇긴 한데.”

“죽일까요?”

“아니! 아니야. 그러면 안 돼.”

“그럼, 때려만 줄까요? 오른발로요?”

“휴우, 왕대야. 어른들 얘기할 때는 이렇게 마구 끼어들면 안 돼.”

“죄송합니다, 주인님.”

“그래, 어서 뒤로 물러나 있어.”

“네, 주인님.”

하지만 왕대는 곧바로 물러서지 않았다.

역시나 경악한 얼굴로, 심지어 이마에 한 줄기 땀까지 흘리며 잔뜩 긴장한 얼굴로 자신을 보고 있는 견노량을 향했다.

“주인님께서 네게 말했다. 귀는 밝을지 모르나 까막눈이라 태산을 보고도 태산인 줄 모른다고. 까막눈 늙은이에게 말한다. 우리 주인님께서는 천하제일인이시다. 경거망동하지 마라. 그러다 죽는다.”

너무나도 진지하게, 또 너무나도 당당하게 그 말만을 내뱉고 뒤로 물러서는 왕대였다.

그리고 그가 내뱉은 천하제일인이라는 이 어이없는 말은, 일전에 구양봉막이 그냥 나를 왕대의 주인으로 만들기 위해 했던 거짓말이다.

그런데 이 한마디가 모두를 다시금 크게 놀라게 했다.

혼란한 얼굴들이다.

설마 진짜로 그러하겠냐는 얼굴을 하면서도, 왕대가 너무나 진지하고 당당하게 말을 해 또 완전히 무시하지도 못하는 그런 혼란한 얼굴 말이다.

처음 나를 한 수에 죽일 것처럼 여유로웠던 견노량의 얼굴이 심각함을 넘어 크게 구겨진 것만 보더라도, 이 황당무계한 왕대의 말이 얼마나 이들에게 큰 충격이 됐는지 알 법했다.

심지어 당장에라도 날 죽일 기세였던 견노량은 좀처럼 움직일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견노량은 뒤로하고.

방백.

이 인간, 조금 전 다리에 힘이 풀려 땅바닥에 주저앉으려던 것을 청룡검무대 대주가 간신히 잡아 넘어지는 꼴을 면했다.

얼굴은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왕대의 엄청난 마공과 그의 말이, 무림맹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힌다는 그의 총명한 뇌를 모두 정지시킨 듯했다.

“너는…… 너는 정체가 무엇이냐?”

분노는 사라졌다.

견노량의 음성에는 놀라움과 극도의 경계심만이 담겨 있었다.

그도 아까 말은 그렇게 호기롭게 내뱉었지만, 속마음까지 그렇게 여유로울 수는 없었을 것이다.

자리에 초절정 고수만 몇 명인가 말이다.

거기에 분명 그 역시 내 뒤에 있는 금예지의 경지가 초절정 극상임을 모를 리 없다.

거기에 왕대가 꼈고, 다시 왕대가 나를 주인님이라 호칭하며 천하제일인을 운운하니.

놀란 그의 마음도 이해가 됐다.

“현화문의 마악치라고 말씀드렸지요.”

“그, 그게…….”

이제 대화가 조금 통할 분위기다.

“견 대협, 만약 견 대협께서 정녕 피바람을 원한다면 피하지 않겠습니다. 단, 유령신검의 수제자 칠흑야검의 복수는 영원히 못 하게 될 것입니다.”

“그게 또 무슨 말이냐?”

“말 그대로입니다. 칠흑야검을 죽인 흉수를 우리가 이미 잡았으니까요. 그런데 다짜고짜 저를 죽이시려 하니, 어찌 제가 황룡회에 흉수들을 넘길 수 있겠습니까?”

“왜……? 어찌하여 진즉 말하지 않았느냐?”

“쯧쯧. 말하려고 했는데, 제 말을 가로막으며 듣고 싶지 않다고 한 건 견 대협이셨습니다.”

“내, 내가…… 휴우.”

상황 파악이 됐다.

견노량이 자책하는 의미로 고개를 숙이며 인상을 구겼다.

이내 다시 고개를 들어 나를 보는 견노량.

“흉수를 넘겨라.”

당당하다.

더없이 당당하게 흉수를 내놓으라는 견노량이다.

“그전에 할 일이 있지 않습니까?”

“무엇이 말이냐?”

난 시선을 그에게 고정한 채 고개를 천천히 가로저었다.

계속 그렇게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젓기만 했다.

그럴수록 견노량의 얼굴이 구겨져 갔다.

결국.

“미, 미안하다. 내가…… 어험. 성급했다. 이제 됐느냐? 어서 흉수를 넘겨라.”

“아니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다시 인상을 와락 구기는 견노량.

심지어 찰나지만 나를 노려보기까지 한다.

하지만 이미 칼자루는 내가 쥐고 있다.

지금 이 자리는, 나와 우리 더 나아가 아미파의 힘을 과시하고 우리의 연대를 과시하는 자리다.

그리고 그것은 황룡회를 향한 것이 아닌 무림맹에게 보여 주기 위함이다.

정확히는 무림맹주에게 내 힘을 과시하려 이렇게 아슬아슬한 담판을 이은 것이다.

왜? 이제 나도 주먹질 좀 할 줄 아니까, 섣불리 덤비지 말라는 경고다.

그리고 그 경고는 제대로 먹힌 듯하다.

방백의 혼이 나간 얼굴이 그걸 제대로 보여 주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화룡정점은 역시나, 유령신검을 보유하고 있는 황룡회가 아미파에 고개를 숙이는 일이다.

터벅터벅.

견노량이 걸음을 떼었다.

내 옆을 지나, 내 뒤에 있는 심전 사태에게로 향했다.

그러더니 곧.

허리를 깊이 숙였다.

“노부가…… 사과하겠소. 미안합니다, 심전 사태.”

“나무아미타불. 고개를 드십시오. 서로 오해가 풀렸으니 천만다행입니다. 이제 우리 제자들이 팔적산에 올라도 되겠습니까?”

허리를 편 견노량이 심전 사태를 향해 고개를 힘주어 끄덕인 후 자신의 뒤에 있는 수하들을 향해 큰 목소리로 말했다.

“아미파의 스님들이 팔적산에 오를 수 있게, 길을 열어 드려라!”

“넵!”

커다란 물길이 열리듯, 그렇게 팔적산을 철통같이 포위하고 있던 황룡회의 무인들이 양 갈래로 갈라지는 순간이었다.

곧바로 아미파의 일장로와 사장로가 제자 수십 명을 이끌고 팔적산으로 올랐다.

담판은 매우 훌륭한 결말을 내며 끝났다.

내 입장에서만큼은 더없이 훌륭한 결말이었다.

견노량은 흉수들을 확인하고, 다시 여적위의 설명으로 그들이 쓴 독과 무기, 암기, 함정에 대한 설명까지 들었다.

거기에 칠흑야검의 시체에 나타난 특징까지 재차 확인한 후, 흉수들이 진짜 칠흑야검을 죽인 자들이라 확신하였다.

나에게는 제대로 감사의 인사를 하지 않았지만, 흉수를 데리고 떠날 때까지 몇 번이고 심전 사태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보름 넘게 팔적산에 포위되었던 봉화 사니에게까지 깊이 허리 숙여 사과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을 방백은 아무 말 없이 지켜본 후에 무림맹으로 돌아갔다.

방뱅의 보고를 들은 무림맹주가 어떤 표정을 지을지 너무 궁금했지만, 뭐 보지 않아도 대충 어떤 느낌일지 알 것 같았다.

우리도 팔적산을 떠났다.

팔적산을 떠나는 내 발걸음이 더없이 경쾌한 이유였…… 어?

우리 앞에 뭐가 나타났다.

어디서 날아온 것도 아니고, 그냥 생겼다.

마치 허공을 뚫고 그렇게 나타난 것처럼 말이다.

나와 예지, 그리고 왕대까지도 그가 바로 우리 앞에 나타날 때까지 전혀 감지하지 못했다.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은, 아니 나타난 사람은…… 휴우, 돌겠네.

또 화경의 고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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