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화
왕대의 울음이 격해지자 내 마음도 더 아파 왔다.
조금 전까지 음식을 입에 쑤셔 넣기 바빴던 의제와 한해북도 젓가락질을 멈추고는 그런 왕대를 가련한 눈으로 지켜봤다.
둘 다 눈시울이 이미 시뻘게져 있다.
난 어깨를 들썩이며 끄억끄억 울고 있는 왕대의 손에 젓가락을 쥐여 주려 했다.
그런데, 녀석의 손이 너무 더러웠다.
새까만 그의 손이 더더욱 내 가슴을 찢는 듯 아프게 했다.
“점소이.”
“예이.”
손님이 거의 없는 한적한 시간이라, 점소이도 이미 우리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조심스레 대답하며 달려오는 점소이.
그의 손에는 이미 물에 적신 깨끗한 수건이 들려 있었다.
난 그것을 받아 왕대의 손을 씻겨 주었다.
물수건으로 해결될 정도의 더러움이 아니다.
그래도 그냥 닦아 주었다.
그렇게 어느 정도 까만 떼가 씻기고, 그의 손에 젓가락을 쥐여 주었다.
“먹자. 의제와 한 형도 먹어요.”
의제와 한해북은 울음이라도 터질까, 대답도 못 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그런 후, 억지로 젓가락질을 하며 넘어가지도 않는 음식을 입으로 쑤셔 넣었다.
나도 마찬가지였고.
하지만 왕대는, 내가 손에 쥐여 준 젓가락을 힘없이 쥔 상태로, 고개를 푹 숙인 채 닭똥 같은 눈물만 계속 흘려대고 있었다.
의제와 한해북이 왕대의 앞접시에 고기며 채소며 올려주었지만, 왕대는 끝끝내 울기만 할 뿐, 그것들을 먹지 않았다.
결국 의제가 흐르는 눈물을 자신의 소매로 강하게 훔친 후.
“이봐 점소이! 여기 화끈한 술 한 병 가지고 오게.”
“예이.”
“형님! 한 형! 새 친구도 생겼는데, 축배 한 잔 들어야죠? 이봐, 왕대. 우리 친구 맞지? 술…….”
다시 눈물을 훔치고, 의제가 일부러 씩씩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런 날 한잔하자고. 축배. 어서 잔 들어, 왕대야.”
의제가 그리 말하고, 한해북이 왕대의 잔에 술을 따라 주었다.
나와 의제, 한해북 모두 잔을 높이 들었지만, 왕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울음만 더 격해졌을 뿐이다.
그렇게 어찌해야 하나 고심하고 있을 때.
왕대가 자리에서 일어나는가 싶더니, 다시 털썩 무릎을 꿇었다.
정확히 나를 향해 무릎을 꿇은 왕대다.
이내 그의 울음이 거의 오열이라 불릴 정도로 격해지는가 싶더니.
“주, 주인…… 주인님. 엉엉엉. 엉엉. 주인님! 엉엉. 주인님! 엉엉엉.”
이마까지 객잔 바닥에 조아리며 연신 나를 향해 ‘주인님’이라 부르며 오열을 토했다.
내 마음이 더 아파지는 순간이었다.
난 곧바로 일어나 왕대를 부축해 일으켜 세우려…… 어?
이상하다.
몸이. 내 몸이…… 갑자기 이상해졌다.
초절정 극상의 경지가 돌아오는 순간이었다.
*
절정의 경지를 되찾는 방법.
천무휘가 화를 낸다.
그리고 다음 회귀부터는 그저 천무휘를 보는 것만으로도 절정의 경지를 찾게 된다.
초절정의 경지가 되는 방법.
백두신령이 금제의 실을 한 가닥 끊어 준다.
착하게 굴면, 백두산의 정기를 일 갑자의 내공으로 변하여 덤으로 얻을 수 있다.
초절정 극상의 경지가 되는 방법.
왕대에게 ‘주인님’ 소리를 듣는다.
아니, 왕대의 진짜 주인이 된다.
마음으로부터 따르게 하는 진정한 주인.
하지만 이는 초절정 극상의 경지를 되찾는 동시에, 왕대를 평생 책임져야 하는 새로운 업보와 책임을 동시에 가지게 된다.
괜찮다.
이는 내 마음이 원하는 일이기도 하다.
“마 형, 깨어났어요? 축하드립니다.”
“경하드립니다, 형님.”
“주, 주인님.”
왕대를 향해 씨익 웃어 줬다.
그러자 녀석도 웃는다.
내가 무아지경에 빠진 사이, 왕대 녀석과 의제, 한해북이 꽤 친해진 모습이다.
그나저나 시간이 얼마나 지났지?
“내가 얼마나 이러고 있었지?”
“마 형, 정확히 하루가 걸렸습니다. 지금 움직일 수 있다면, 바로 가야겠어요.”
“휴우. 미안합니다. 갑시다, 당장.”
우린 전속력으로 팔적산을 향해 달렸다.
나도, 의제도, 한해북도, 그리고 새로이 우리와 함께하게 된 왕대까지.
모두 기쁜 얼굴로 달렸다.
*
하루를 꼬박 쉬지도 않고 달렸다.
팔적산은 섬서의 북동쪽 끝자락으로 우리가 출발한 감숙 염우촌에서 상당히 먼 거리다.
계속 달릴 수 없어서 잠시 물도 마시고 간단히 요기도 할 겸 쉬는 시간을 가졌다.
이름도 모르는 어느 산의 계곡이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아니, 몇 가지 문제다.
“주인님, 물 드십시오.”
왕대가 계곡물을 떠 나에게 주었다.
“왕대야, 주인님 말고 다른 호칭을 써. 마 형이라고 불러도 좋고, 그게 어색하면 그냥 마 도사라고 불러도 돼.”
“알겠습니다, 주인님.”
말이 잘 통하지 않는다.
그래도 왕대의 밝은 표정을 보니, 내 마음이 다 편해지는 것 같다.
사실 내 문제는 문제랄 것도 없다.
“왕대야, 물고기 굽는 것 좀 도와줘.”
“알았다.”
의제의 말에 단답형으로, 당당하게 반말을 하는 왕대.
뭐, 왕대의 나이가 더 많으니 이를 뭐라고 할 수는 없다.
의제도 그걸 알기에 인상을 구기면서도 따지지 못했다.
그래도 억울하긴 억울했던 모양이다.
“야, 왕대야. 넌 왜 형님한테는 주인님이라고 꼬박꼬박 극존대를 하면서 나한테는 반말이냐? 아니, 반말까진 좋아. 너 저번에 나한테 ‘이놈아’라고 했지? 그건 좀 심한 거 아니냐? 그래도 내가 어디 나가면 우각도협이라고 막 인기도 많고 존경도 받는 그런 사람인데.”
“알았다.”
역시 말이 잘 통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건 한해북이라도 예외일 수 없었다.
“제일 큰 물고기는 주인님 거다. 너는 작은 거 먹어라.”
반말도 아니고, 그냥 무조건 하대다.
명령조의 하대.
한해북은 진즉 포기한 얼굴로 이를 순순히 받아들이고 있고.
“주인님, 다 익었습니다. 저들이 가장 큰 물고기를 탐내었지만, 제가 잘 지켜 주인님께 가지고 왔습니다.”
“어, 어. 그래. 고마워. 너도 먹어.”
“넵, 주인님.”
왕대가 나에게 물고기를 준 후, 자신도 잘 익은 물고기 한 마리를 집어 들었다.
그러더니.
“너희도 이제 먹어라.”
의제와 한해북에게 또 명령조로 말을 하는 왕대였다.
“아이고. 고맙습니다, 왕 선생님. 물고기는 한 형이 잡고, 굽는 건 내가 구웠는데, 아주 감지덕지합니다. 왕대 씨.”
의제가 못마땅해 한마디 비꼬는 말을 던졌다.
하지만 그런 의제에게 굴할 왕대가 아니었다.
“감사는 언제나 주인님께 해라. 이 모든 게 다 주인님 덕분이다.”
결국 인상을 와락 구기며 물고기를 뼈째 와각와각 씹어 대는 의제였다.
*
팔적산 인근에 도착했다.
곧바로 팔적산으로 갈 순 없었다.
상황을 알아야 무얼 하고 말고 하지 않겠나?
무림에서 정보는 언제나 중요하다.
그래서, 미리 약속한 장소.
처선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그곳으로 온 것이다.
그렇게 약속 장소에 도착하자.
나를 발견한 처선.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한걸음에 달려온다.
눈에서는 벌써 폭포수가 터졌다.
누가 보면 수십 년 전에 잃어버린 부모라도 만난 줄 알겠다.
“주우우우우우군!”
그렇게 내 앞까지 온 처선.
털썩.
곧바로 오체투지를 한다.
“신 처선이…… 흑흑. 주군을 다시 뵙습니다. 주우우우군! 천세 천세 천천세!”
아!
보는 눈이 꽤 있다.
스무여 명의 고수와 그들에게 잡혀 있는 사람들까지.
처선의 이러한 행동이 고맙기도 하지만, 일단 창피하다.
“처선, 응. 알았어. 그러니 일단 일어나. 응? 그래, 명령이야. 일어나서 말하자고.”
“존명!”
그렇게 처선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눈물도 좀 닦고, 응.”
“존명.”
나와 처선은 짧지 않은 시간을 할애하며 회포를 풀었다.
그런 후.
“소개해 드릴 사람이 있습니다, 주군.”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처선이 고개를 돌렸고.
그러자 우리를 계속 주시하고 있던 오십 대의 사내가 기다렸다는 듯 다가왔다.
“인사드리겠습니다, 마 도사님. 저는 포쾌문의 여적위라고 합니다.”
이미 처호의 서신을 통해 그에 대해 상세히 알고 있다.
금의포쾌(錦衣捕快) 여적위.
원래 이름은 여송이다.
시골 현청의 말단 포쾌로 시작하여 황궁 금의위의 수장까지 지냈던 전설적인 인물.
황궁 내부의 보이지 않는 정파 싸움의 중상모략에 휘말려, 사십 대의 나이에 황궁을 떠났다.
황궁을 떠나며 이름도 여송에서 여적위로 개명하고, 포쾌문을 개파한다.
이는 처호가 황궁을 떠나고 십 년 후에 일어난 일이다.
처호가 스무 살 젊은 내시였던 시절, 금의위에서도 꽤 높은 직책에 있던 여적위와는 나이와 신분을 떠나 가장 가까운 사이였다고 한다.
무림에 포쾌문이 많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일반 민간에서는 억울한 일을 모두 해결해 주는 곳이라 꽤 유명하다고 하였다.
처호의 서신에 따르면, 지금까지 그가 밝히지 못한 음모와 해결하지 못한 사건이 단 한 건도 없다고 하였다.
“마 도사님, 우선 양해 부탁드립니다.”
“네? 무슨 양해요?”
“처호 그 친구가 마 도사님께서 계획하신 천하지계(天下之計)에 저도 참여하라 몇 번이나 권했으나, 제가 거절하였습니다.”
“아! 그러시군요.”
“마 도사님의 능력을 믿지 못해서가 아닙니다. 황궁을 떠날 때 스스로 맹세한 바가 있습니다. 죽는 그날까지 힘이 없어 힘든 일을 겪고 있는 어려운 민초들의 억울함을 풀어 주며 살겠다고 맹세하였습니다. 마 도사님의 천하지계에 참여하면, 제가 맹세한 바를 다 이루지 못할 것이 걱정되어 거절하였습니다. 마 도사님의 깊은 이해 부탁드립니다.”
“조금도 마음에 담아 두실 필요 없습니다. 오히려 여 문주님께서 품은 뜻을 듣고 나니, 저도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에 힘이 납니다.”
“제가 직접 마 도사님의 천하지계에 참여하지는 못하겠지만, 오늘과 같이 언제든 필요하시면 저를 찾아 주십시오. 만사를 모두 제쳐 두고 마 도사님의 일을 돕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여 문주님.”
우리는 조금 더 인사와 서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좋은 사람이다.
나이도 오십 대 중반에다 엄청난 고수임에도 불구하고 한결같이 내게 극진한 말투와 자세를 취하는 그였다.
그도 초절정 극상인가?
화경의 경지는 아닌 것 같은데.
특수한 황궁의 무공을 익혀서 그런 것인지, 정확한 그의 경지를 바로 파악하기는 힘들었다.
최소한, 내 아래가 아닌 것 같긴 한데.
이 또한 정확하지는 않고.
됐다. 그는 무림인이 아니다.
그렇게 우리는 본론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마 도사님. 정말 궁금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얼마든지 물어보십시오, 여 문주님.”
“이러한 일이 일어날 줄은 어떻게 아신 것입니까? 사실 처음 처호를 통해 일에 대해 들었을 때는 반신반의했습니다. 그러다 정말 유령신검의 수제자 칠흑야검이 나타났을 때도 놀랐지만, 그가 괴한들에게 죽는 그 순간에는 정말로 놀라서 기겁을 하고 말았습니다.”
여적위가 꽤 마음에 들었다.
모두 솔직히 말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이 일은 사실을 말해 줄 수 없다.
말해 줘도 믿지 않을 테니 말이다.
어찌 내가 계속 회귀하고 있음을 말하겠느냔 말이다.
“믿기 힘든 일을 또 말씀드려야겠군요.”
“그것이…… 무엇입니까?”
“제가 현화문의 도사입니다.”
“이미 알고 있습니다. 천하에 모르는 이보다 아는 이가 더 많을 것입니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하나 있는데. 저희 현화문 도사에게는 신통력이란 게 있습니다. 그 신통력을 통해 이번 사건을 예견할 수 있었습니다.”
“아…….”
그는 입을 쩍 하니 벌리고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짧은 시간 많은 생각을 한 모양이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길게 가지 않았다.
“사실 저는 점괘니 신통력이니 초자연적인 힘이니 하는 것들은 이 나이까지 살며 단 한 번도 믿었던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허허허. 마 도사님을 뵙고 나니, 지금껏 제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후회가 드는군요.”
“아닙니다. 저도 그런 거 잘 안 믿습니다, 하하하.”
“허허허.”
대충 그렇게 넘길 수 있었다.
“조사 결과는 어떻습니까?”
다시, 진짜 본론이다.
“미리 사건을 예견해 주신 덕분에, 충분한 증거와 증인들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흉수도 모두 잡았습니다.”
“흉수…… 누굽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