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마두가 된 이유-184화 (184/245)

184화

“때려라.”

“저보다 강하다니까요.”

“마음으로 이미 굴복한 상대는 이미 네게 종속되어 있다. 그런 상태의 상대는 네가 아무리 미약한 존재라 하여도, 너를 월등히 강한 존재로 인식한다. 아니, 그걸 넘어 절대자라 생각하게 되느니라. 그가 아무리 고강한 무공을 익혔다 하여도, 그 상태에서 네가 때린다면 그는 반항하지 못한다.”

“절대로요?”

“절대로.”

“혹시라도 만에 하나 반항하면요?”

“그럴 리 없다.”

“만에 하나요. 그러면 저 죽을지도 몰라요, 작은 사부님.”

“그, 그럼……. 아니다. 그럴 리 없다.”

“정말 믿고 그럼 그렇게 합니다?”

“어험, 어험. 악치야?”

“네? 왜요?”

“혹시 모르니, 그런 일 있으면 이 사부를 먼저 부르거라.”

“왜요? 자신 없어요?”

“그게 아니라. 세상일 어찌 그리 쉽게 다 확신하고 단언할 수 있겠느냐?”

“큭큭큭. 겁나는군요? 하나밖에 없는 제자 어떻게 될까 봐.”

“쩝. 그래.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네가 어디 미친놈에게 맞았다는 소리를 들으면, 수십 년 동안 봉인해 뒀던 광기가 폭발할 거 같아 그렇다. 그러니 언제든 위험한 일이 있으면 이 사부에게 말해야 하느니라. 알겠느냐?”

“네. 알았어요. 저 겁 많아요. 무서우면 바로바로 사부님께 연락할게요.”

“그래, 그래. 그래야 착한 제자지, 허허허.”

우리 작은 사부 말이다.

광마일기에서 읽은 그대로다.

그냥 나만 보면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진다.

나도 우리 작은 사부가 너무 좋다.

그나저나 과정과 방법은 약간씩 다르지만, 결국 사부와 무적 할매 그리고 작은 사부의 결론은 똑같다.

결론은 왕대의 아픔, 그 원인을 찾고 그 원인에 맞는 해결법을 찾는 것이다.

*

스물네 살, 현재.

나는 염동에서 구양봉막과 왕대의 소유권을 어떻게 나에게로 이전할 수 있는지에 대해 아주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부와 무적 할매 그리고 작은 사부의 가르침이 큰 도움이 됐다.

어쩌면, 왕대에게 그 방법이 통할지 모르겠다.

“마 도사님.”

신살왕이다.

염동에서 나오자 그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염우촌에 도착하기 한 달 전부터 이미 이곳에 와 있던 그다.

“상황은 좀 어떻습니까?”

“확실히 이 마을을 감시하고 있는 자는 도합 일곱 명이 맞습니다. 화경의 고수가 작정하고 숨었다면 모를까, 저희 눈을 한 달 넘게 피할 수 있는 자들은 없습니다.”

“음, 그렇군요.”

이곳 염우촌은 왕대의 혈겁이 있은 후 종우검 숙손승을 위시한 감숙 용남 무문연합회의 무인 삼백여 명이 철통같은 경계를 서고 있다.

이건 지난 회귀와 이번 회귀, 모두 동일한 내용이다.

하지만 그들은 발견하지 못했다.

지금 신살왕이 내게 보고하고 있는 감시자 일곱 명에 대해서 말이다.

“사람은요?”

“일곱 명 모두에게 특급 살수 한 명과 일급 살수 세 명씩을 붙여 놨습니다. 마 도사님께서 말씀하신 일이 시작되면, 그 즉시 제거하겠습니다.”

“그들에게 발각될 일은 없겠죠?”

“염탐꾼, 감시자, 정보원, 살수. 모두 비슷한 일을 합니다. 하지만 그들 사이에서도 등급이란 게 있습니다. 그 등급을 나누는 건 무공의 고하가 아닙니다.”

“무공의 고하로 등급을 나누는 게 아니라고요?”

“네.”

“그럼 뭔데요?”

“인내력입니다. 참을성이요.”

“참을성?”

“누가 더 오래 한자리에서 숨소리마저 죽이고 미동도 하지 않은 상태로 기척을 죽일 수 있는가로 판별합니다.”

“음, 확실히 일리가 있는 말이네요. 그럼 신살왕님의 수하들이 그 인내력 면에선 최고라는 말씀이시군요?”

“그렇습니다. 절대, 그들에게 발각될 리 없으니, 마 도사님께서는 하시려는 일에만 집중하셔도 됩니다.”

“고맙습니다, 신살왕님. 믿겠습니다.”

“네, 마 도사님.”

이렇게 든든할 수가 있나.

당당하게 무림맹주가 보낸 감시의 눈보다 자신들이 한 수 위라고 단정 짓는다.

그냥 허풍이 아니다.

다른 이도 아닌 신살왕이 그리 말했으니 말이다.

그의 말처럼, 나는 내가 하던 일에 계속 집중해야겠다.

*

염우촌 도착 이십오 일째.

역시나 이번에도 무림맹의 부름으로 숙손승과 감숙 용남 무문연합회는 염우촌을 떠났다.

난 왕대에게 다가갔다.

당연히 염동에서 꺼낸 구양봉막을 앞세웠다.

“왕대야, 왕대야. 아직도 이러고 있느냐?”

“주, 주인님.”

웅크린 자세로 하염없이 울기만 하던 왕대가 고개를 들었다.

“그래, 나다. 나. 네 주인. 네게 아수라혈천신공을 준 너의 진짜 주인.”

“주인님.”

“그래, 하하. 이제 정신이 좀 들어온 모양이구나. 잘됐다. 네게 소개해 줄 분이 있다.”

여전히 눈물을 흘리며 의아한 눈빛으로 나를 보는 왕대.

내가 살짝 어색하게 구양봉막 옆자리에 섰다.

여기까진 지난 회귀와 똑같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다르다.

“왕대야, 이제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라.”

“주인님.”

“아니다. 이제 네 주인은 내가 아니다.”

왕대의 눈에서는 여전히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지만, 표정은 이해하기 힘든 상황임을 표출하고 있다.

구양봉막이 한 발 더 다가가 최대한 자상하게 또 또박또박 말을 이어갔다.

“지금부터 네 주인은 여기 계신 이분이시란다. 현화문의 마악치 도사님이시란다. 보기에는 평범해 보이지만, 이분이 바로 당대의 천하제일인이시란다. 하늘을 부수고 바다를 쪼개는 힘을 갖고 계신 훌륭하신 이분이 이제 너의 새 주인님이시다.”

왕대의 눈물이 그쳤다.

나를 보며 고래를 갸웃한다.

하지만 악의나 적의는 보이지 않는다.

다행이다.

일단 여기까지는 적당히 성공한 듯하다.

이제 내가 나설 차례다.

최대한 사부님을 떠올리며, 사부님과 비슷한 표정을 지으며.

아! 사부님의 잘생긴 얼굴은 스물다섯 번을 죽고 다시 살아나도 따라갈 수 없다.

뭐, 아무튼 최대한 자상하고 인자하고 현묘한 분위까지 뽐내며.

“왕대 씨, 현화문의 마악치라고 하오.”

왕대는 대꾸하지 않았다.

다시 이해하기 힘들다는 표정으로 고개만 갸웃거릴 뿐이다.

“하하, 천천히 서로 알아 가면 될 테고. 앞으로 잘 지내 봅시…….”

“저기다! 저기에 악적이 있다! 저놈을 죽여라!”

“와아아아아아! 죽여라!”

똑같다. 지난 생과.

왕대가 어떠한 인물인지도 모르는 삼류 낭인 삼백여 명이 몰려왔고.

퍼퍼퍼퍽!

퍼퍼펑!

순식간에 의제와 한해북이 나서 그들을 모두 제압했다.

“왕대 형! 이쪽은 걱정 마시오! 우리가 모두 해결했소. 안전하니 마음 편히 있어도 됩니다, 하하하하!”

의제의 어색한 대사까지.

왕대도 다시 안정을 찾고.

“왕 형, 제가 국수를 잘 마는데, 우리 국수라도 한 그릇…….”

“꺄아아악! 살려 주세요. 엉엉엉. 살려 주세요. 엉엉엉.”

열 살 내외의 여아를 인질로 잡은 괴인이 나타났다.

그는 왕대를 향해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여아의 목을 칼로 그어 버렸…… 아니다.

이번엔 괴인의 계획은 성공할 수 없다.

타타타타타타탓!

그의 발아래서 세 명.

다시 양쪽 나무 뒤에서 다섯 명씩.

총 열세 명의 신살왕을 포함한 특급 살수와 일급 살수들이 놈을 향해 몸을 날렸다.

맹주가 보낸 감시자들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이다.

의제와 한해북까지 가세했다.

괴인의 칼은 여아의 목에 닿기도 전에 스무 장 밖으로 날아가 버렸다.

퍽!

퍼퍼퍼퍼퍽!

퍽퍽퍽!

“으아아악!”

퍽퍽퍽!

퍼퍼퍼퍼퍽!

“으아아악!”

살수들과 의제, 한해북은 괴인을 죽이지 않았다.

퍽!

“으악!”

혹시 몰라 신살왕이 놈의 턱을 발로 강하게 찼는데, 입안에 독단이 들어 있었다.

곧이어 의제와 한해북 그리고 살수들의 발길질이 괴인의 턱에 집중됐다.

한해북이 마혈까지 제압한 상태였다.

이제 괴인은 자결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

그 상태에서도 마구잡이식 폭행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내가 다가서자 살수들이 물러났다.

이미 인질로 잡혔던 여아는 다른 살수가 먼 곳으로 안전하게 데리고 간 후였다.

땅바닥에 쓰러진 상태로 피범벅이 되어 의제와 한해북에게 마구 두들겨 맞고 있던 괴인.

내가 바로 그 앞에 도착하자 의제와 한해북마저 발길질을 멈추었다.

“끄어…… 주어…… 사아고시프…… 주어저…….”

괴인이 피를 연신 쏟으며 뭐라 말을 하는데,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괴인을 통해 들을 말 따위는 없다.

누가 왜 시켰는지 다 알기 때문이다.

난 그렇게 괴롭게, 아마도 자기를 그냥 고통 없이 죽여달라고 말하고 싶어 하는 것 같은 괴인을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왕대와 구양봉막 둘 다 넋이라도 나간 것처럼 놀라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특히 왕대.

삼류 낭인들이 왔을 때도 살짝, 마기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게 내 기감에 감지됐다.

곧바로 안정을 찾았지만, 지금 쓰러져 있는 괴인이 여아를 인질로 잡아 나타났을 때는, 정말 어마어마한 마기가 폭발하기 직전이었다.

그런데 지금.

왕대의 마기는 전혀 감지되지 않는다.

분노도, 또 증오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로지 놀란 얼굴만 하고 있을 뿐이다.

성공이다.

무적 할매와 작은 사부의 방법이 통했다.

정신을 다른 곳으로 팔게 하는 방법 말이다.

난 그런 왕대를 보며 씨익 웃어줬다.

그런 후 다시 쓰러져 있는 피투성이 괴인을 향했다.

한쪽 발을 들었다.

오른발이다.

“이 개새끼야. 어디서 감히 어린아이를 인질로 잡아!”

퍽!

오른발로 때렸다.

그냥 놈의 대갈통을 냅다 발로 차버렸다.

“이런 때려죽여도 시원찮을 놈! 죽어! 죽어!”

퍽퍽퍽!

오른발로 계속 때렸다.

차고 발로 지지고.

퍽퍽퍽!

퍼퍼퍼퍼퍽!

타격음마저 너무 경쾌했다.

“나쁜 새끼! 세상에서 가장 나쁜 새끼가, 어린아이 괴롭히는 놈이야! 죽어! 죽어!”

퍼퍼퍼퍽!

퍽퍽퍽!

나와 의제, 한해북은 괴인을 품(品) 자 모양으로 둘러싼 채, 그냥 그렇게 계속 때리고 또 때리고 다시 때렸다.

사실 요란한 폭행이었다.

괴인이 혹시라도 죽으면 안 되기에, 그거 있지 않은가.

의제의 경동팔무도법(驚動八武刀法)에서도 보기에만 화려하고 실제 위력은 거의 없는 대오응결식.

그거 비슷하게, 그냥 소리와 보기에만 요란하게 때린 것이다.

뭐, 물론 그건 우리 때리는 사람 입장이고.

맞는 괴인 입장은 모르겠다.

아무튼 쉬지도 않고 무려 한 식경이나 우리 셋이서 괴인을 마구잡이로 두들겨 팼다.

맛깔나는 욕지거리와 함께 말이다.

그렇게 한참을 때리고 나니, 숨도 가빠지고 땀까지 났다.

물론 일부러 낸 효과다.

“헉헉, 좀 쉬자. 이놈 때려죽이기 전에 내가 지쳐 죽겠다.”

“네, 형님.”

나와 우리 녀석들이 쓰러져 신음하는 괴인을 내버려 두고 한 발씩 뒤로 물러섰다.

난 일부러 흘린 땀을 소매로 훔치며 고개를 돌렸다.

여전히 눈알이 튀어나올 것처럼 놀란 얼굴을 하고 있는 왕대였다.

그런 그에게 무심하게 한마디를 뱉었다.

“뭐해, 왕대? 그냥 계속 그렇게 보고만 있을 거야?”

내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던 것일까?

다시금 고개만 갸우뚱하는 왕대.

내가 말을 이었다.

“이리 와. 와서 너도 한 대 때려. 내가 다른 건 다 참아도, 어린아이 괴롭히는 놈들은 못 참거든. 이 새끼 정말 나쁜 놈이야. 아까 봤잖아. 어린아이 괴롭히는 거. 어서 와. 너도 와서 이놈 혼 좀 내 줘.”

그때였다.

잔뜩 웅크리고 있던 왕대가 갑작스레 몸을 벌떡 일으켜 세웠다.

그러더니 시선을 괴인에게 고정한 채,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 모습이 꽤 으스스했다.

이내 쓰러져 신음하는 괴인 앞에 선 왕대.

슬금슬금, 아니 그의 마기가 빠른 속도로 솟구치는 게 느껴졌다.

그러더니 내가 했던 것 그대로, 오른발을 뒤로 빼 괴인을 강타하려 했다.

“잠깐!”

내가 다급히 외쳤고, 왕대가 멈칫하며 나를 보았다.

“한 방에 죽이려고? 그러면 안 되지. 우리가 왜 이 고생을 했는데? 이놈은 최대한 고통스럽게 죽여야 해. 안 그래? 어린아이를 괴롭히는 놈을 한 방에 그냥 곱게 보내 주자고? 난 절대 그렇게 못 해. 너도 때리려면 최대한 아프지만 죽지 않게, 그렇게 때려. 할 수 있겠어?”

잠시 고민하는 왕대.

그러더니 고개를 크게 끄덕인다.

내 말뜻을 정확히 이해한 듯하다.

다시 자세를 잡고, 왕대가 괴인을 오른발로 강타하려 했다.

“잠깐!”

다시 멈칫한 왕대가 나를 돌아보았다.

“이놈은 어린아이를 괴롭히는 나쁜 놈이야. 알지?”

끄덕끄덕.

“나쁜 놈만 때리는 거야. 착한 사람은 절대 때리면 안 돼. 알았어?”

끄덕끄덕.

힘까지 주어 고개를 끄덕이는 왕대다.

“약속할 수 있어?”

끄덕.

“자, 손가락 걸고 약속해.”

내가 새끼손가락을 내밀자, 잠시 그걸 보는가 싶더니.

이내 덥석 자신의 새끼손가락을 내 손가락에 걸었다.

됐다.

통한다.

정말로 통했어.

내 얼굴에서 절로 미소가 그려졌다.

“좋아. 이제 때려. 어린아이 괴롭힌 나쁜 놈이니까, 알지? 아까 말한 대로, 최대한 고통스럽게, 그러면서도 절대 죽지 못하게. 때려, 왕대야. 시이이작!”

끄덕.

쉬이이이익.

퍽!

퍼퍼퍼퍽!

퍽퍽퍽!

“으아아아아악!”

퍽퍽퍽!

“으아아악!”

퍼퍼퍼퍼퍽!

비명은 괴인에게서 터져 나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눈물을 흘리는 것은 왕대 쪽이었다.

괴인에 대한 발길질이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왕대는 더 서럽게 울고 또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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