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화
이번 회귀, 왕대를 만나기 육 년 전 갑돌산 우리 집.
내 나이 열여덟.
“오오오오!”
우리 사부 입에서 연신 감탄성이 쏟아져 나왔다.
사부는 내가 만들어 준 국수 한 그릇을 순식간에 깨끗이 비웠다.
국수를 다 먹고 나서도 놀란 표정을 쉬이 지우지 못했다.
“정말 맛있구나. 평생 이렇게 맛있는 국수는 처음이다, 악치야. 허허허.”
우리 사부, 버섯으로 낸 육수로 만든 국수를 저렇게 맛있게 표현한다.
닭뼈로 육수를 낸 국수를 먹으면 우화등선하시겠다.
우리 사부는 우화등선 못 하게 계속 버섯 육수로 만든 국수만 만들어 줘야겠다.
그나저나 빈가식신 백달다 숙수한테 받은 요리 수업을 꼼꼼히 기록해 두길 잘했다.
완전한 성공이다.
백달다 숙수를 다시 찾아가지 않아도 될 듯하다.
아! 그건 그거고.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지.
난 여전히 빈 국수 그릇을 보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사부에게 말했다.
“사부님, 궁금한 게 있어요.”
“그것이 무엇이더냐?”
“주화입마는 어떻게 치료하나요?”
“주화입마? 마음에 심마가 든 것을 말하는 것이냐?”
음, 우리 사부.
한 달 전에 삼재검법을 가르쳐 줬다.
가르쳐 주자마자 무형지기(無形之氣)를 손으로 뿜어 댔다.
그런 양반이 주화입마가 뭔지 모른다는 얼굴을 하고 있다.
뭐, 됐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니.
쉽게 가자.
“네. 마음에 심마가 들어 제정신이 아닌 사람은 어찌 치료해 줘야 합니까?”
“허허허, 우리 악치가 정말 마음이 착하구나. 심마가 든 사람의 아픈 마음까지 헤아리려고 하니. 허허. 내가 역시 제자 하나는 잘 키웠단 말이지, 허허허.”
그래, 쉽게 가자.
내가 착한 놈은 아니지만, 사부가 좋아하니 그냥 오늘만 착한 놈인 척하자.
“네. 그래서 어떻게 치료해 줘야 할까요?”
“그야 당연히 아픈 마음을 보듬어 주고 치유해 줘야 하지 않겠느냐.”
“어떻게 보듬고 어떻게 치유해 줘요?”
“말한 그대로다. 아픈 마음을 잘 보듬어 주고 잘 치유해 주면 된단다.”
가끔. 아주 가끔.
우리 사부님도 나를 화나게 할 때가 있긴 있다.
물론 저 인자하고 자상한 얼굴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그 화난 마음이 풀리지만 말이다.
“그러니까요, 사부. 아픈 마음을 보듬어 주고 치유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냐고요? 그 구체적인 방법을 알고 싶어요.”
“잘해야 하느니라. 아주 잘.”
이 양반이, 국수를 먹고 체했나?
오늘따라 정말 왜 이래?
“허허허, 악치야.”
“왜요? 잘하면 된다면서요? 잘. 그래요, 잘.”
“허허. 내가 알기로 마음에 심마가 든 것에는 획일적인 이유 같은 건 없다.”
“그 원인이 모두 다르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렇다. 흔히들 미친놈이라 부르며 그 심마가 든 사람을 손가락질하고 욕하지만, 이는 매우 슬픈 현실이란다. 간혹 선천적인 이유도 있지만, 대부분 마음에 심마가 든 사람은 삶을 살며 인간이 이겨 낼 수 없는 극한의 슬픔에 빠졌을 때 심마가 든단다.”
“아…….”
사부가 말을 하다 말고 갑자기 빈 국수 그릇을 들어 이리저리 살핀다.
“그런데 악치야.”
“네, 사부님.”
“국수 만드는 법은 언제 또 이렇게 잘 배운 것이더냐?”
“국수 매일 말아 드릴 테니까, 하던 이야기 계속해 주세요.”
“알았다. 저녁에도 부탁하마.”
“네. 어서요.”
“그래. 심마를 치료하려고 마음먹었다면, 일단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부터 살펴야 하느니라. 그리고 그 아픔의 원인을 찾고, 그 원인을 치유해 줘야 한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란다.”
왕대는 노예의 삶을 살아왔다.
하지만 그것이 왕대를 주화입마에 빠지게 한 결정적 원인이라고 할 수는 없다.
왕대의 아픔은 왕대가 열두 살 때, 정확히 이십칠 년 전 여동생이 동네 남정네들에게 몹쓸 짓을 당하고 죽은 것이다.
아수라혈천신공은 기름을 부은 역할이었을 테고.
“예를 들어 보자. 지독하게 가난하여 밥을 못 먹어 마음에까지 심마가 든 사람은 어찌 치유해 줘야겠느냐?”
“따스한 밥 한 끼를 차려 주면 되겠군요.”
“정성이 가득 들어간 밥을 계속 차려 줘야 할 테다.”
“네.”
“실연의 아픔을 이기지 못하고 심마가 든 여인에게는 어찌하는 게 좋겠느냐?”
“저같이 준수하고 재치도 뛰어난 새 남자 친구를 소개해 주면 바로 치유되겠네요. 하하하!”
“그렇지. 대신 만남의 장소에 나갈 때는 꼭 복면을 써 얼굴을 가리고 나가거라.”
“사부!”
“허허허. 농이다, 농. 허허허.”
우리 사부가 가끔 이렇게 농담도 잘한다.
“부모를 잃어 고아가 된 아이에게는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보호자가 필요할 테고, 질병으로 고통받는 이에게는 훌륭한 의원을 소개해 주면 고쳐질 것이다. 이제 이해가 조금 되느냐?”
“이제 조금 이해가 될 것 같아요. 마음의 아픔. 그 원인을 찾아 치유해 줘야 한다는 말씀이시죠?”
“그렇다. 역시 악치가 똑똑하구나. 허허허.”
“조금만 더 설명해 주세요.”
*
이번 회귀, 내 나이 스물한 살 때.
절강 항주.
“어때? 맛있어?”
“응. 맛있어. 이렇게 맛있는 국수는 처음 먹어 봐. 헤헤.”
우리 여덟 살 초향이 내가 만든 국수를 아주 맛있게 먹는다.
먹는 것만 봐도 배가 부르다는 말이 이제는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향이가 먹는 것만 봐도 더없이 행복하니 말이다.
“많이 먹어, 향아. 많이 먹어야 키도 쑥쑥 크고 예쁜 아가씨가 된단다.”
“예쁜 아가씨 되면 오빠한테 시집가?”
“우리 향이는 나보다 훨씬 멋지고 훌륭한 남자하고 혼인해야지.”
“그래? 난 오빠도 좋은데.”
“큭큭큭. 그래, 그래. 하하. 눈물 나게 고맙다. 야채도 같이 먹어야지.”
“응.”
그렇게 맛있게 국수를 먹는 향이를 잠시 혼자 내버려 두고, 옆에서 우릴 지켜보고 있는 무적 할매에게 다가갔다.
“우 여협, 궁금한 게 있습니다.”
“오늘따라 이상하군. 갑자기 국수를 말아 준다고 하질 않나, 또 생전 묻지도 않던 질문이란 걸 한다고 하고. 그래, 뭔가? 궁금한 게?”
“마공을 익히다가 부작용으로 주화입마에 걸렸을 때는 어떻게 치료합니까?”
난 매우 정중하면서도 진지하게 질문했다.
그런데.
빡!
갑자기 무적 할매가 가운데 손가락을 튕겨 내 이마를 때렸다.
“아야! 왜 때려요?”
“아프냐?”
“아프죠!”
너무 아파 소리까지 버럭 질렀다.
그러자.
쉬이이익.
퍽!
“으아아악!”
이번엔 주먹으로 냅다 내 뒤통수를 때리는 게 아니겠는가.
“으악! 아아악! 아이고, 사부님! 우 여협이 사람 죽여요!”
진짜 너무 아파서 비명을 지르고 사부에게 도움까지 요청했다.
하지만 무적 할매는 꿈쩍도 하지 않고 또 물었다.
“아프냐?”
“아니,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요? 진짜 죽을 거 같다고요! 무지막지 아파요!”
무적 할매가 씨익 웃는다.
이 할매가 미쳤나.
그러더니.
“이마는? 방금 손가락을 튕겨 때린 이마는? 거기도 아직 아프냐?”
“어? 이상하네. 이마는…… 안 아파요. 뒤통수만…….”
무적 할매의 얄미운 미소가 더 짙어졌다.
“그거다.”
“네?”
“더 강한 자극으로 약한 자극을 잊게 만드는 것이지.”
“아! 뭔가 알 것 같으면서도 딱 꼬집어 뭐라고 이해하기 어렵네요.”
“머리가 나쁘구나.”
“원래 머리 좋았는데, 방금 무적 할매…… 아니, 우 여협이 제 머리를 때려서 나빠진 거예요.”
“호호, 싱겁기는.”
“그냥 쉽게 설명해 주세요.”
“마공의 부작용으로 주화입마에 걸렸을 때를 말했지?”
“네.”
“그가 익혀 주화입마에 걸린 마공보다 더 강력한 무공으로 이를 치료하지. 이를테면 우리 위화궁의 수불위화심법(水佛衛花心法)이나 범무천승요결(凡武天昇要訣) 같은 절대 무적의 신공으로 말이야.”
“가능해요?”
“왜? 한 대 더 때려 주랴?”
“아, 아닙니다. 그런데 만약 주화입마에 빠진 근본적인 원인이 마공이 아니라, 어렸을 적 입었던 마음의 상처 때문이라면 어떻게 해요?”
“원래가 그렇다. 마공은 이미 나약해진 정신을 파먹고 들어가는 마귀니라. 원인은 언제나 그 사람 스스로에 있지. 가장 중요한 핵심은 역시나 그 근본인 마음의 치유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오! 우리 사부님하고 똑같은 말씀을 하시네요?”
순간 무적 할매의 얼굴이 새색시처럼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호호호, 내가…… 호호. 유현 도사님하고 마음이 통하는 모양이구나. 호호호, 호호.”
무적 할매, 좋아 죽는다.
“어험. 어험.”
헛기침까지 하며 자신의 실태를 바로잡은 후.
“일단 주화입마에 빠지면 자기 애미 애비도 못 알아보는 법이다. 그러니 우선 아주 강력한 자극을 주어, 그 정신을 주화입마 상태에서 임시로라도 벗어나게 해야 한다. 그런 다음 그 마음의 상처가 됐던 원인을 치료해야 하느니라.”
“아! 그렇군요. 조금만 더 설명을…….”
*
내 나이 스물한 살, 귀정사.
“때려라.”
“네?”
“말이 좋아 주화입마지, 그냥 미친 거 아니겠느냐?”
우리 작은 사부.
아주 화끈하다.
주화입마의 치료법을 물었더니, 다짜고짜 때리란다.
“그렇긴 하죠. 미친 상태가 맞죠. 그런데 진짜 그냥 때리면 돼요?”
“악치야, 너 혹시 동네에 미친 놈들이 자기보다 덩치가 크고 무서운 사람한테 해코지하는 걸 본 적 있느냐?”
“없어요.”
“그거다. 이놈들이 아무리 미쳐도, 자기보다 강한 사람은 제대로 알아보거든. 꼭 자기보다 작고 약한 사람한테만 미친 짓거리를 한다. 절대로 자기보다 강한 사람 앞에서는 미친 본색을 드러내지 않는단다.”
“오! 일리가 있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작은 사부님. 만약 미친놈이 저보다 훨씬 강한 미친놈이면 어떻게 해요?”
“네가 더 강해지면 된다.”
“그러니까, 제가 더 강해지기 전에 그 미친놈을 만나면 어떻게 하냐고요?”
“튀어라.”
“도망치다 잡히면요?”
“음…….”
막힘이 없을 것같이 단호하기만 했던 우리 작은 사부의 입이 결국 막히고 말았다.
“작은 사부님?”
“어제 우리 귀정사에 온 향배객 중 순화라는 소저 기억하느냐?”
“아! 그 예쁘고 귀여운…… 어험. 네, 그 소저. 기억합니다.”
“오늘 그 집에서 사람을 보내왔다.”
“사람요? 무슨 사람요?”
“매파.”
“네? 설마…….”
“그렇다. 순화 소저가 너를 첫눈에 보고 반했다고 하더구나.”
큭큭큭. 드디어 내게도 꽃길이 열리는 건가?
“너는 어찌 생각하느냐?”
“하아! 제가 인기가 좀 많아야지요. 하하하.”
“싫다는 말이냐? 그럼 없던 일로 하고 매파를 그냥 돌려보내겠다.”
“아이고, 작은 사부님. 사람이 어떻게 그리 매정하십니까? 순화 소저도 나름 꽤 용기를 내어 부모님에게 저를 좋아한다고 말했을 텐데요. 사람 성의도 생각해서 한번 만나 보는 정도야…… 하하하.”
“이거다.”
“네?”
“이거라고.”
“뭐가요? 순화 소저가 왔어요? 저 아직 세수도 안 했는데요?”
“너를 좋아하는 여인 따위는 애초에 없다.”
이 양반이 지금 장난하나.
“작은 사부님, 무슨 농담을 그리 살벌하게도 하십니까?”
“방금 주화입마에 관한 일. 예쁜 순화 소저 이야기하자마자 잊지 않았느냐?”
“어? 그, 그렇네요.”
“일단 도망갈 수도 없고, 싸우면 죽을 것 같고. 그런 상황이 닥치면 어떻게 해서든 상대 미치광이의 정신을 다른 곳으로 팔게 해라.”
“그게 가능해요?”
“가능하다. 멀쩡한 너도 예쁜 여자 이야기에 조금 전까지 하던 이야기를 완전히 잊어버리지 않았느냐? 상대는 미친놈이다. 미친놈일수록 이성보다는 본능에 충실한 법. 상대가 가장 집착할 만한 것을 빠르게 파악하고, 정신을 그쪽으로 팔리게 하면 된다. 만약 그러한 일이 반복되고 네 수단이 좋아진다면, 너는 무력이 아닌 정신으로 그를 굴복시킬 수 있을 것이다.”
“아…….”
“정신으로 굴복시킨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아느냐?”
“알 것 같기도 하고,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 딱 떨어져 정리하기도 어렵고 하네요.”
“상대가 너를 절대자로 인식한다는 뜻이다. 만약 네가 삼류 무사라 하더라도, 상대는 너를 천하제일인처럼 받든다는 뜻이고. 네가 아무 쓸모 없는 인간일지라 하여도, 상대는 너를 신처럼 숭배하게 된다는 뜻이다.”
“그게 가능해요?”
“정상이라면 불가능하겠지. 하지만 상대는 미친놈 아니겠느냐? 그래서 가능한 것이다. 그렇게 상대를 마음으로 완전히 굴복시킨 후, 제대로 된 마음의 치유를 하게 된다면 그자는 주화입마에서 자연스럽게 벗어날 수 있게 될 것이다.”
“마음의 치유는 어떻게 하는데요?”
“그자가 어떤 아픔을 겪었는지 파악하고, 그에 맞는 치유법을 찾아야 한다.”
“만약 그게 어려우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