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마두가 된 이유-181화 (181/245)

181화

아직 여유가 있다.

왕대가 다음 마을로 움직이려면 열흘이나 남았다.

좀 더 왕대를 관찰할 생각이다.

뭐라도,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나온다면 싸움에서 더 유리할 테다.

아니, 가장 좋은 건 싸우지 않고 그를 통해 초절정 극상의 경지를 되찾는 것이다.

문제는 그 방법을 모른다는 것.

아! 어떻게 하면 왕대를 통해 초절정 극상의 경지를 되찾을 수 있을까?

난 왕대를 계속 관찰하며 동시에 그런 생각을 놓지 않았다.

그렇게 다시 하루가 지났을 때였다.

숙손승이 왕대를 관찰하고 있는 나를 찾아왔다.

이번엔 혼자 온 것을 보니 손님은 아닌데. 뭐지?

이젠 저 인간만 보면 괜히 불안해진다.

또 기대가 되기도 하고.

이번엔 무얼까?

희소식? 아니면 나쁜 소식?

“철수해야 합니다.”

“네? 왜요?”

“죄송합니다, 마 도사님. 끝까지 마 도사님과 우각도협 그리고 구절협의 협행을 돕고 싶었습니다. 이건 진심입니다.”

“그러니까 갑자기 왜요?”

“무림맹에서 급하게 지원 요청이 왔습니다. 저희 용남 무문연합회는 무림맹 소속으로 그 도움 요청을 거절할 수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마 도사님.”

그렇게 모두 철수했다.

이제 이 폐허가 된 염우촌에 남은 건 왕대와 나 그리고 의제, 한해북 네 사람뿐이다.

아니, 아직도 염동에 갇혀 있는 구양봉막까지 다섯 명.

딱 쥐도 새도 모르게 사람 죽이기 좋은 환경이다.

빌어먹을 무림맹주 개새끼.

제대로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

이 정도면 내가 바보 똥멍청이라도 맹주의 속셈을 모를 수 없다.

그건 맹주 역시 예상했으리라.

대놓고 날 죽이겠다는, 왕대와 나를 동귀어진 시키겠다는 계획을 대놓고 드러낸 것이다.

아! 무휘도 없고 예지도 없고.

나 혼자 왕대를 상대해야 한다.

괜찮다. 두렵지 않다.

광천마제 시절에도 이겼다.

지금은 더 강하다.

내가 이긴다.

조금도 두렵거나 무섭지 않다.

“형님.”

“어? 왜?”

“추워요? 왜 덜덜 떨고 그래요?”

“내가? 내가 떨었어?”

“봐요. 지금 손이랑 다리랑 덜덜 떨고 있잖아요.”

X팔. 무섭다.

염우촌 혈겁 당시의 왕대 모습이, 아니 시산마검의 폭주가 계속 눈앞에 아른거린다.

머리로는 내가 계속 이긴다고,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내 몸이 시산마검의 공포를 이겨 내지 못하고 있다.

내 본능이 강하게 무언가 잘못됐음을 경고하고 있다.

사실 이번 왕대와의 싸움은 단순하지 않다.

광천마제 시절에야 그냥 서로 죽이기 위해 싸웠지만, 이번엔 절대 그리할 수 없다.

첫째, 왕대를 죽이면 안 된다.

이건 나의 다짐이기도 하고, 내 업보를 씻는 일이다.

더 나아가, 내가 만약 왕대를 죽이게 된다면, 그건 바로 맹주의 뜻대로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 후의 일은 안 봐도 뻔하다.

맹주는 내 능력을 과하게 평가할 것이고, 다음으로 만검존, 그다음으로 수라섬전도, 더 나아가 극양신장과 유령신검, 종국에는 마교주까지 내가 어떻게든 상대하게 만들 것이다.

그래서! 절대로 왕대를 죽일 수 없다.

그것이 이번 왕대와의 싸움이 단순하지 않은 첫 번째 이유다.

그리고 두 번째.

왕대와의 싸움이 어떻게 끝나든, 분명 맹주의 눈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릴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눈은, 나나 왕대 둘 중 하나가 죽고 또 크게 다쳤을 때 살검(殺劍)으로 변해 우리를 죽이려 들 것이다.

그들까지 막아야 한다.

이 두 가지 이유가, 이번 왕대와의 싸움이 단순한 싸움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 준다.

아! 그러고 보니 내 별호가 대마왕에서 현화도사로만 바뀌었지, 맹주의 꾐에 빠진 상태는 똑같군.

하지만 광천마제 시절과 지금은 다르다.

그땐 몰랐고, 지금은 안다.

됐다. 괜찮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 하지 않은가?

이번 싸움은 왕대와의 싸움이 아니다.

이건 맹주와의 싸움이다.

그리고 난 맹주의 속셈을 모두 알고 있다.

이 싸움, 내가 유리하다.

정신 바싹 차리고, 준비할 것이다.

“한 형! 의제!”

“네!”

“이제부터 내가 하는 이야기 잘 들으세요.”

*

왕대 관찰 이십오 일째.

왕대의 울음이 잦아들었다.

눈에서는 눈물이 계속 흘러내리고 있지만, 꺼억꺼억 울던 그의 울음소리가 멈추었다.

어제부터는 아주 찰나지만, 짙은 마기가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기도 했다.

때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뜻이다.

대화를 시도해 봐야겠다.

무서워서 그러는 게 아니다.

아니, 무서워서 그런다.

일단 말로 좋게 풀고, 혹시 모르지 않나? 싸움이 아닌, 대화를 통해 내가 초절정 극상의 경지를 되찾을지 말이다.

그래서 내 모습을 드러내고, 왕대에게 다가갔다.

물론, 나 혼자가 아니다.

음, 무서워 혼자는 못 가겠다.

그래서 구양봉막을 염동에서 꺼내 데리고 왔다.

구양봉막을 앞에 세우고, 조심스레 그렇게 왕대에게 다가갔다.

“어험, 어험. 왕대야. 왕대야.”

산자락 아래 잔뜩 웅크린 채 땅만 보며 하염없이 눈물만 흘려대던 왕대가 고개를 들어 구양봉막을 봤다.

“왕대야, 아직도 이러고 있었느냐?”

“주, 주인님.”

“그래, 나다. 나. 네 주인. 네게 아수라혈천신공을 준 너의 진짜 주인.”

“주인님.”

“그래. 하하. 이제 정신이 좀 들어온 모양이구나. 잘됐다. 네게 소개해 줄 분이 있다.”

여전히 눈물을 흘리며 의아한 눈빛으로 나를 보는 왕대.

내가 살짝 어색하게 구양봉막 옆자리에 섰다.

왕대는 반응이 없다.

“걱정 마시오. 당신을 해치지 않습니다. 저는 좋은 사람입니다. 현화문이란 도문의 도사지요, 하하하.”

내 어색한 대사에 구양봉막이 옆에서 비웃는다.

상관없다.

왕대만 내게 적의를 드러내지 않으면 된다.

심지어 왕대는 내게 호기심을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하하, 배가 고프지 않으시오? 내가 국수 하나는 기가 막히게 마는데.”

꼬르륵.

절묘했다.

내가 국수라는 말을 꺼내자마자 왕대의 배에서 소리가 났다.

이십오 일 동안 굶었으니, 아무리 초절정 극상의 고수라도 얼마나 배가 고팠겠는가.

됐다.

친해질 방법을 찾았다.

“국수…… 한 그릇 하시겠소?”

내가 만면에 친절한 미소까지 지으며 말을 건네자.

왕대가 아주 조심스레, 또 매우 천천히 고개르 끄덕이…… 젠장!

“저기다! 저기에 악적이 있다! 저놈을 죽여라!”

“와아아아아아! 죽여라!”

광천마제 시절과 똑같다.

왕대가 누구인 줄도 모르는 삼백여 낭인 무리.

맹주가 광천마제 시절과 똑같은 수법을 쓰고 있다.

그들은 왕대를 발견하자마자 고함을 지르고 병장기를 휘두르며 왕대를 향해 달려왔다.

다 된 밥에 재를 뿌려도 제대로 뿌리는 놈들이다.

저놈들은 곧 왕대의 손에 반항 한번 하지 못하고 몰살당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자신을 향해 살기를 뿜어 대며 달려드는 적들을 발견한 왕대의 몸에서 무지막지한 마기가 폭발하려 했다.

하지만 아니다.

난 이미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었고, 당연히 준비도 해 놨다.

“네 이놈들!”

왕대가 마기를 막 폭발하려는 그 순간.

아니, 그보다 조금 먼저.

낭인 무리의 양옆에 숨어 있던 의제와 한해북이 호통과 함께 칼을 번쩍이며 몸을 날렸다.

삼백여 명이란 많은 숫자지만, 삼류 낭인에 불과하다.

의제와 한해북의 일초지적도 되지 못한다.

퍼퍼퍼퍼펑!

콰콰콰콰쾅!

순식간 피투성이가 되어 삼백여 명 모두가 쓰러졌다.

“으으으으윽.”

“아아아!”

“살려 주세요!”

죽은 이는 한 명도 없다.

의제와 한해북에겐 저들과 그러한 엄청난 격차의 실력이 있다.

“모두 조용! 살고 싶으면 이쪽으로 모두 기어 와서 무릎 꿇어! 아프다고 엄살을 떨면 그 즉시 목을 베겠다.”

의제의 엄포에 삼류 낭인들이 꾸역꾸역 바닥을 기어 한쪽으로 가 무릎을 꿇었다.

“손도 들어! 양손 다! 번쩍!”

손까지 드는 낭인들이다.

그렇게 순식간에 낭인들을 모두 제압한 후.

의제가 우리 쪽을 향해 멋진 표정을 지으며 힘차게 말했다.

아! 저건 한해북한테 하라고 했는데, 의제 녀석이 하네.

못생긴 얼굴 때문에 역효과 나면 안 되는데.

“왕대 형! 이쪽은 걱정 마시오! 우리가 모두 해결했소. 안전하니 마음 편히 있어도 됩니다, 하하하하!”

역효과가 걱정되어 빠르게 왕대의 상태를 살폈다.

다행이다.

왕대는 사람을 외모로 평가하는 그런 부류가 아닌가 보다.

못생긴 의제의 얼굴을 보면서도 화를 내지 않는다.

터지려던 마기도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구양봉막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확실히 왕대가 안정을 찾은 것 같다.

다행이다.

역시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는 말이 맞다.

이번 싸움, 내가 맹주한테 이미 절반은 이겼다.

“왕대 형, 국수 먹으러…….”

내가 왕대를 부르고, 왕대가 다시 고개를 내게 돌리던 그때였다.

“꺄아아악! 살려 주세요. 엉엉엉. 살려 주세요. 엉엉엉.”

어린아이의 목소리였다.

열 살 내외의 여자아이다.

그 아이가, 한 괴인의 손에 잡혀 나타났다.

괴인은 왼손으로 여자아이의 몸을 꽉 감싸고, 오른손으로는 날이 번쩍이는 칼을 아이의 목에 바싹 가져다 댔다.

젠장!

큰일이다.

왕대의 죽은 여동생과 비슷한 나이대의 여자아이다.

그리고 곧.

“꺄아아아악! 살려 주세요. 엉엉엉. 잘못했어요. 엉엉엉. 제발 살려 주세요. 엉엉…….”

여자아이의 울음소리가 그쳤다.

괴인이 왕대를 직시한 상태로 아이의 목을 그어 버린 것이다.

축 늘어진 아이.

괴인이 감싸고 있던 손을 놓자.

툭.

힘없이 땅으로 쓰러져 버렸다.

“네 이놈!”

곧바로 의제와 한해북이 달려들었다.

퍼퍼퍼펑!

콰콰콰콰쾅!

괴인도 제법 한 수 하는 놈이었다.

의제와 한해북의 협공을 열 합이나 막았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곧바로 그는 온몸이 칼에 잘리고 베여 죽어 버렸다.

문제는.

“끄으으으으윽. 끄으으으으으으윽.”

왕대에게서 이상한, 도저히 사람의 음성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괴성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난, 이만 자리를 피하겠네. 알아서 잘하시게. 아니, 살아남길 빌겠네.”

구양봉막이 아픈 다리를 절뚝이면서도 쏜살같이 자리를 피했다.

다시 시선을 왕대에게로 돌렸을 땐.

왕대는 이십오 일 동안 웅크리고 있던 그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그의 몸에서는 엄청난, 정말 무지막지한 마기가 폭발하고 있었다.

“다…… 죽인다. 끄으으으으윽. 다…… 죽일 거다. 끄으으으으윽.”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울고 있었다.

슬픔이고 아픔이었다.

결국, 이 길밖에 없는 모양이다.

왕대를 제압하는 일.

됐다. 피할 수 없다면, 용감히 부딪히면 된다.

똥꼬에 힘을 꽉 주었다.

동시에 사 갑자가 넘는 내공이 뿜어져 나와 내 몸을 휘감았다.

그런 나의 변화에 왕대는 울면서 고개를 갸우뚱했다.

신기한 무언가를 발견한, 슬픔 속에서도 내가 자신의 상대임을 본능적으로 알아본 모양이다.

“죽인다. 끄으으으윽. 죽인다. 끄으으으으으윽.”

그가 한 발 한 발 나를 향해 다가왔다.

정말 무지막지한 마기다.

현화승천신공이 아니었다면, 벌써 그의 마기에 내 의지마저 꺾여 버렸을지도 모르겠다.

됐다. 이제 진짜 싸움이다.

그리고 난 나의 초절정 극상을 되찾을 것이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콰콰콰콰콰콰쾅!

쾅! 쾅! 쾅!

처음부터 무지막지한 괴력을 뿜어 대는 왕대였다.

일 수에 나를 끝장내겠다는, 아니 그냥 나를 죽이겠다는 의지밖에 보이지 않았다.

난 최대한 침착하게 그를 상대……하기는 개뿔!

아! X팔!

도망가고 싶다!

내가 이런 괴물과 싸워서 이겼다니!

콰콰콰콰콰콰쾅!

쾅쾅쾅!

쿠르르르르쾅!

왕대는 진짜 괴물이다.

이건 내가 상대할 수 있는 차원이 아니다.

애초에 나와는 격이 다르다.

겨우 오십 합이 지났지만, 벌써 마흔아홉 번 죽을 뻔했다.

이건 진짜 아니다.

“의제! 한 형! 도망가!”

둘에게 말을 했을 때, 내 몸은 이미 삼십육계 줄행랑을 시전하고 있었다.

그런데.

쾅!

내가 도주하던 그 길목.

바로 내 앞.

왕대가 거짓말처럼 하늘에서 뚝 떨어져 내 앞길을 막았다.

젠장!

광마일기에 쓰여 있는 것과 똑같다.

도망가고 싶어도 도망갈 수 없다.

콰콰콰콰콰콰쾅!

쾅쾅쾅!

내 광천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사 갑자가 넘는 검강이, 왕대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는다.

진짜 그냥 괴물이다.

이걸 도대체 내가 어떻게 이겼다는 거야?

광천마제 시절의 내 멱살을 잡고 울며 따져 묻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렇지! 맞다!

난, 광천마제 시절 왕대와의 싸움을 통해 초절정 극상의 깨달음을 얻었다.

그 동시에 초절정 극상의 경지로 오르며 왕대를 죽일 수 있었다.

그거다.

정신 바싹 차리고 보자.

왕대의 움직임, 기의 흐름, 그의 힘, 그의 정신까지 모두 본다.

그러자 보였다.

초절정 극상의 경지가 내 눈에 들어왔다.

곧이어 깨달음이…… 젠장!

빌어먹을!

안 된다.

보이는데, 느껴지는데, 가슴에까지 그것이 모두 전달되었는데.

내 몸에 전혀 변화가 생기지 않는다.

광천마제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르다.

그때는 깨달음으로 초절정 극상의 경지에 오를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게 아니다.

지금은 어떠한 계기를 통해 초절정 극상의 경지를 되찾아야 한다.

아! 내가 왜 이 생각은 못 했지?

맹주를 상대할 생각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이 부분을 생각지 못했다.

패착이다.

콰콰콰콰콰쾅!

끝이다.

더는 버틸 수 없다.

“형님!”

“마 형!”

의제와 한해북이 나를 돕기 위해 몸을 날렸다.

그렇게 신신당부했건만.

내가 위험해지면 일단 도망가라고 그렇게 수십 번이나 말했건만.

콰콰콰콰쾅!

“으악!”

“컥!”

의제와 한해북이 결국 죽었다.

그리고 곧.

푹.

왕대의 손이 내 심장을 꿰뚫었다.

털썩.

나는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아! 역시 이건 계속하면 할수록 늘긴 는다.

각혼필을 꺼내 내 몸에 문신을…… 어?

쉬이이이이익.

마흔 명? 쉰 명?

아니, 그보다 많다.

칠팔십 명에 달하는 살수들이다.

그중 한 명.

눈에 익다.

살왕의 이름을 물려받은 신살왕(新殺王)이다.

왕대와 신살왕 간의 싸움이 어떻게 끝났는지는 모른다.

그 싸움이 끝나기 전에 내가 죽었기 때문이다.

대신, 내 몸에 다섯 글자를 새길 수 있었다.

이것이 나의 스물다섯 번째 죽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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