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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두가 된 이유-178화 (178/245)

178화

“남궁……비혁? 무림맹주가 아수라혈천신공을 가지고 갔다고?”

“그래.”

“왜?”

“그야…… 내가 줬으니까.”

“그러니까 왜 줬냐고?”

“죽으라고.”

“……?”

잘나가다가 또 뭔 소린지.

그나저나 맹주가 깊게 연관되어 있긴 한 것 같군.

좀 더 알아봐야겠다.

“언제? 왜 줬는데? 그리고 맹주하고는 무슨 관계지?”

“왕대는 작년 이맘때쯤 이미 초절정 극상의 경지에 올랐다.”

“일 년이나 됐군.”

“그렇지. 난 맹주에게 왕대에 관한 일을 주기적으로 보고하고 있어.”

“왜?”

“그야 그가 내 목숨을 살려줬으니까.”

“곤륜, 공동, 마교의 추적을 따돌리게 하고 이곳에 숨어 살 수 있게 해 준 게 맹주였어?”

“이제야 뭘 좀 아는군. 머리가 그렇게 많이 나쁜 건 아니야, 큭큭큭.”

“칭찬, 아니 욕도 사절이다. 그래서? 그건 어떻게 된 일인데?”

“뭘 어떻게 돼? 뻔한 얘기지. 내가 천마신교에 있을 때 들었던 중원의 더러운 위선자들과 똑같은 모습이었어. 곤륜, 공동 그리고 천마신교의 추격대에 쫓기다 간신히 한숨 돌리게 됐지. 그때 무림맹에서 사람이 왔어. 죽었구나 싶었는데, 나에게 제안을 하더군.”

“제안?”

“응. 자기들 말만 잘 따라 준다면 중원에서 조용히 살 수 있게 해 준다고 하더군.”

“조건이 뭐였는데?”

“첫째, 아수라혈천신공을 이용해 비밀 고수를 키울 것. 둘째, 비밀 병기는 무림맹의 명령에 따를 수 있게 키울 것. 셋째, 무림맹과 맺은 이 계약은 절대 비밀로 할 것.”

“비밀…….”

“큭큭, 말했잖아. 죽을 때가 됐는데 무슨 비밀이 있겠어? 너도 잘 알아 둬.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어.”

맞는 말이다.

난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였다.

“그런데 말이야.”

“또 뭐가 있나?”

“난 애초에 그 약속을 지킬 생각 자체가 없었어. 아니, 처음부터 지킬 수 없는 약속이었어.”

“비밀에 관해서?”

“아니. 첫 번째와 두 번째 조건 말이야.”

“아수라혈천신공의 부작용 때문이군.”

“오! 머리가 많이 나쁜 게 아니라 중간은 가는 머리군, 큭큭큭.”

“그만 놀리고, 하던 얘기 계속해.”

“그래, 그래야지.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비밀은 다 불고 가야지. 그러니까 말이야. 음…… 내가 어디까지 얘기했지?”

“부작용 때문에 첫 번째와 두 번째 조건은 처음부터 지킬 수 없었다고.”

“맞아, 맞아. 하하. 아이고, 내가 늙긴 늙었네. 아무튼 처음부터 놈들이 제시한 조건을 다 지킬 생각 자체가 없었어. 불가능한 일이기도 했고. 놈들은 아수라혈천신공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었지.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무슨 생각으로 무림맹의 제안을 받아들이겠다고 한 거지?”

“이것도 뻔한 거 아닌가? 난 내가 훔친 아수라혈천신공의 위력을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어. 이제 그 소원은 이루었고. 물론 더 보고 싶어, 계속. 그리고 또 다른 이유가 있는데…….”

구양봉막이 묘하게 음침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나도 왕대만큼은 아니어도 지랄맞은 삶을 살았거든. 고아로 자랐고, 지독한 괴롭힘에 멸시와 천대도 당했고. 그 고난을 다 이겨 내어 신교의 고수가 됐는데, 젠장! 천마비고 수비대에 가서까지 지독한 괴롭힘을 받았어.”

“음…… 그때부터 아수라혈천신공을 훔칠 생각을 하게 된 거군.”

“그렇지. 아무튼 내 두 번째 꿈은 아수라혈천신공을 통해 세상에 복수하는 거였어. 그런데 추격대에 쫓기며 단전이 파괴되고 완전히 절망감에 빠졌을 때 무림맹주가 사람을 내게 보내 그런 제안을 했던 것이지.”

“아수라혈천신공의 위력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또 그것을 이용해 세상에 복수하겠다. 단전이 파괴된 상황에서 무림맹주의 제안은 그야말로 꿀이었겠군.”

“그렇지. 거절할 이유가 전혀 없었어, 큭큭큭.”

구양봉막은 정말 기분이 좋아 웃고 있었다.

하지만 그 웃음은 길게 가지 못했다.

그가 웃음기를 지우고 제법 진지한 얼굴로 돌아와 입을 열었다.

“그런데 아마 맹주도 그런 내 마음을 다 알고 있었을 거야.”

“무슨 말이지?”

“알면서 나와 계약한 거라고. 어쩌면 왕대도 처음부터 제대로 된 비밀 고수가 아니라, 며칠 전 염우촌에서의 일처럼 무림이 발칵 뒤집힐 큰 사고를 칠 미치광이 살인마가 필요해서 키우라고 한 것일지 몰라. 어차피 무림맹에서 나에게 투자한 건 다달이 은전 몇 냥 주는 것이 전부였거든.”

“음, 그럴 수도 있겠군. 그런데 이해가 안 가는 게, 아수라혈천신공은 왜 가지고 간 거지?”

“작년에 가지고 갔어. 왕대가 초절정 극상의 고수가 됐다고 하니 무림맹주가 직접 이곳을 찾아왔더군. 처음 봤어. 중원 무림의 무림맹 맹주라는 자를. 맹주는 물론 함께 온 자들 모두 내 보고를 믿지 못하겠다는 눈치였지.”

“그래서?”

“그래서긴 뭐가 그래서야? 맹주한테 직접 시험해 보라고 했지.”

“어땠어?”

“당연히 왕대가 졌지. 왕대도 며칠 전 염우촌을 몰살시킬 때와 같은 괴물 같은 힘을 보이지 않았고, 맹주도 자신의 힘을 다 쏟지 않았어.”

“맹주 정도라면 그 정도로도 왕대의 역량을 간파했겠지.”

“맞아. 이십칠 년 동안 단 한 번도 관심을 두지 않다가 직접 찾아왔고, 그렇게 왕대의 힘을 실험한 후 갑자기 요구하더군.”

“아수라혈천신공의 비급을?”

“응. 욕심이 났겠지.”

“그걸 순순히 줬어?”

“미쳤어? 그걸 순순히 주게?”

“그럼?”

“애가 탈 때까지 버티다가 못 이기는 척 줬지. 큭큭큭큭. 크하하하하!”

이 노인네가 미쳤나?

갑자기 왜 웃지?

목숨 걸고 훔친 비급을 빼앗겼는데 웃음이 나와?

“이봐, 광마.”

“응. 왜?”

“큭큭큭.”

“……?”

“내가 말이야, 큭큭.”

“그만 웃고, 뭐?”

“어쩌면 당대의 천마신교 교주도 하지 못한 일을 한 인물로 기록될지도 몰라.”

“무슨 일? 설마……!”

“큭큭, 큭큭큭. 머리가 조금은 좋은 것 같군.”

“아까 말한 죽으라는 게…… 맹주를 죽일 심산이었군?”

“맞아, 큭큭. 아수라혈천신공을 익히면 아무리 천하의 맹주라 하더라도 곱게 미치진 못할걸? 알아서 죽거나, 아니면 무림맹 고수들의 칼에 맞아 죽거나. 둘 중 하나겠지. 큭큭큭.”

아니다.

그렇지 않다.

광천마제 시절 창궁검제 남궁비혁은 마공을 익히지 않았다.

“뭐, 솔직히 말하면 그건 내 바람이고. 맹주가 아수라혈천신공을 익힐 가능성은 적어. 아주 작은 기대를 하고 있을 뿐이지.”

“아까 그래서 그런 말을 했던 거군? 맹주도 당신 속마음을 다 알고 있으면서 그런 제안을 했고, 계약까지 하게 됐다는 말.”

“응, 맞아. 진짜 제법 똑똑하네?”

“결국 맹주는 큰 사고를 칠 미치광이 고수가 필요했고, 그러다 그 위력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대단했기에 아수라혈천신공의 비급을 가져갔다? 하지만 결국 그 위험성도 어느 정도 알기에 자신이 익히지는 않을 거다?”

“응. 그렇지. 다만…… 그걸 다른 사람에게 줘서 익히게 할 가능성은 있어. 제이의 왕대.”

없다.

광천마제 시절 제이의 왕대는 없었다.

그런데 이번엔 다르다.

그때는 맹주에게 삼존하구룡협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없다.

비밀 병기를 빠른 시일 내에 키우려면 마공 만큼 좋은 게 없다.

어쩌면, 이번 회귀 그리고 앞으로의 회귀에서는 제이의 왕대가 나올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니, 그럴 가능성이 높다.

“다른 사람이 익혀도 왕대만큼 강해질 수 있을까?”

“왕대가 초절정 극상에 경지에 오르는 데 이십육 년이 걸렸어. 엄청난 속도지. 아니, 사실 왕대의 모자란 머리를 생각한다면, 정파의 무공으로는 아예 불가능한 경지에 오른 것이야. 하지만 아수라혈천신공은 이를 가능하게 했지. 그런데 만약 머리도 총명하고 무재까지 뛰어난 인재가 이를 익히면 어떻게 될까?”

“무지막지하겠군.”

“큭큭, 맞아. 네 말대로 무지막지한 괴물이 탄생할 거야. 단!”

“단?”

“그때까지 살아 있어야 가능하겠지.”

“부작용이 아까 말했던 것보다 훨씬 더 심한가 보지?”

“왕대도 나 아니었으면 진즉 수십 번, 수백 번은 더 죽었을 거야.”

“음…….”

“반응이 뭐 그래? 진짜라고! 내가 지금은 이래 보여도, 천마신교에 있을 때 날아다녔어. 스무 살에 천마비고 수비대에 들어가는 게 가능한 일인 줄 알아? 그런 내가 내 반평생을 모조리 투자해 가르친 게 왕대야. 그래서 놈이 죽지 않고 아수라혈천신공을 저만큼 익힐 수 있었던 거였다고.”

“응, 그래.”

“반응이…… 너무하잖아!”

“뭐? 손뼉이라도 쳐 줘?”

“에휴, 됐다.”

실망한 티를 팍팍 내는 구양봉막이었다.

난 전혀 개의치 않고 다음 질문을 던졌다.

“맹주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고수에다가 돈도 많고 사람도 많고.”

“가능하겠지. 하지만 쉽지는 않을걸? 정파의 무공과 마공은 아예 기본 틀 자체가 다르니까.”

“가능할 수도 있겠군. 무림맹이라면 수백 년 동안 마교의 마공에 대해 연구해 왔을 거고, 그에 대한 인재들도 많을 테니까.”

“뭐, 그럴 수도 있겠지. 물론, 나는 맹주가 직접 아수라혈천신공을 익히고 연구하다가 주화입마에 걸려 무림맹과 함께 동귀어진하는 결말을 바라지만, 큭큭큭.”

“그런 일은 없을 거야.”

“왜 그렇게 확신하지?”

“그 전에 내가 없애 버릴 테니까.”

“누구를? 제이의 왕대를?”

“아니. 무림맹주, 창궁검제 남궁비혁.”

내 말에 구양봉막이 처음으로 놀란 얼굴을 했다.

진짜 꽤 많이 놀랐나 보다.

화등잔만 해진 눈으로 나를 보며 좀처럼 입을 다물 줄 모른다.

그렇게 약간의 시간이 지나서야 그는 간신히 내게 말을 건넸다.

“너 정파 아니었어?”

“말했잖아, 광마라고.”

놈의 눈이 다시 화등잔만 해졌다.

하지만 이번의 놀란 반응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내.

“쯧쯧, 첫인상이 맞았어.”

“뭐가?”

“미친놈이었어. 에휴, 내가 미친놈을 잡고 지금까지 뭔 소리를 지껄인 건지.”

“마음대로 생각해라.”

내가 마음대로 생각하라고 했더니, 구양봉막은 진짜로 깊은 고심에 잠겼다.

갑자기 혼자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더니 이내.

“부탁이 있다.”

“거절. 너에겐 부탁할 권리도 없다. 나쁜 사람들이었다지만, 수백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모두 죽었어. 네 부탁은 들어줄 수 없다. 그리고 다시 말하지만, 지금 이 시간은 내가 질문, 넌 답만 한다.”

“부탁이다.”

“거절한다고.”

“무슨 부탁인지 아직 말도 안 했어.”

“무슨 부탁이라도 다 거절한다고.”

“씨팔.”

“부탁하는 사람이 욕을 해? 더 거절.”

“제발, 부탁이다.”

“거절한다니까.”

“그럼 그냥 죽여라.”

“그럴까? 듣고 싶은 건 다 들었는데. 그럼 이만 죽자.”

“잠깐!”

“뭐?”

“부탁 하나만 들어주라.”

구양봉막 이 노인네, 뭔가 정말 절실하다.

궁금했다.

다 죽어간다고 스스로 말했던 노인네에게 무슨 여한이 남아 저리도 간절한지.

그렇게 내가 뜸을 들이자, 그가 다시 간절한 얼굴과 목소리로 나를 향해 말했다.

“딱 한 번만, 정말 딱 한 번만 왕대의 활약을 지켜볼 수 있게 해 줘라. 응?”

“활약? 학살을 말하는 건가?”

“뭐라도 좋아. 왕대의 손에서 펼쳐지는 아수라혈천신공을 보고 싶을 뿐이야. 내가 왕대를 통해 완성한 아수라혈천신공. 그게 보고 싶다고. 제발…….”

“늙은이, 진짜 죽을 때가 된 것 같군. 고작 아수라혈천신공이 보고 싶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죽어 가는 것을 아랑곳하지 않다니.”

“아니, 그게 아니야. 나도 사람들이 죽는 건 싫어. 그래도…… 하지만 정말 아수라혈천신공이 보고 싶다고.”

“그게 그거잖아.”

“어차피 아무도 못 막아. 왕대가 다시 폭주하면, 무림오대고수가 나서지 않는 이상, 학살은 기정사실이야. 나는 그냥 그걸 보고 싶을 뿐이라고.”

“아니, 왕대는 더 이상 그 누구도 죽이지 못해.”

“왜? 벌써 무림오대고수 중 한 명이 온 거야? 맹주는 절대 아닐 텐데? 누가 왔어 극양신장? 천수신권? 수라섬전도? 누구?”

“나. 내가 있잖아.”

내 말에 구양봉막이 순간 와락 인상을 구겼다.

하지만 곧바로 얼굴을 펴며 다시 간절히 말했다.

“응. 그래, 광마야. 아니, 광천마제님. 대단하십니다. 그러니 저는 구경만 하게 해 달라고요. 광천마제님과 우리 왕대의 싸움을요.”

“안 믿는군.”

“믿어요. 그러니까 제발요.”

“나 초절정 고수야.”

구양봉막이 고개를 숙였다.

뭔가 끓어오르는 화를 정말 억지로 억누르는 모양이었다.

다시 고개를 들어 가짜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아! 그러셨군요. 대단하십니다, 광천마제님. 그러니 저는 구경만…….”

“내공만 사 갑자가 넘어.”

“…….”

이번엔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나를 빤히 보며 고개를 갸우뚱한다.

초절정에 사 갑자 내공은, 마교 출신 고수에게도 상식 밖의 일인가 보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더 있어. 나 말고도. 혹시 우각도협 곽우적이라고 들어 봤어?”

아주 살짝 고개를 끄덕이는 구양봉막.

“거기에 구절협 한해북도 이곳에 와 있다.”

점점 심각한 얼굴을 하는 구양봉막이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약간의 여유가 있었다.

물론, 내가 다음 말을 꺼내기 전까지 만의 여유였다.

“거기에 한 명 더. 혹시 봉황검이라고 들어 봤어? 초절정 극상의 고수.”

“아미파…… 아미파의 봉황검 금예지?”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목소리만 떨린 게 아니다.

눈동자마저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그러더니 이내.

“너…… 너 설마…… 네가 바로 소문으로 듣던 그 마……악…….”

“맞아. 내가 바로 마악치다. 현화도사란 탈을 쓰고 있지만, 진짜 내 신분은…… 큭큭큭. 무림 정복이란 원대한 꿈을 꾸고 있는 광천마제 마악치 님이시다, 푸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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