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화
“석삼이란 사람이…… 정말 그랬어요?”
“클클. 맞아. 확실해. 내일모레 대염중소에서 한 번 보면 알 수 있어. 그놈이 얼마나 악질인지. 그냥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사정없이 두들겨 팬다니까. 같은 노예끼리 말이야.”
아! 이건 뭐지?
혼란스럽다.
재차, 약하다고 다 착한 사람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노예를 핍박하는 노예라니.
“어르신.”
“이봐, 나 아직 한창때야. 젊다고, 젊어. 그냥 선배라고 불러.”
“네, 선배님. 그런데 저희가 낮에 이곳 염우촌에 와서, 마을 사정 좀 살피려고 한 바퀴 돌아봤는데, 말씀하신 노예는 석삼이란 자를 제외하곤 한 명도 못 봤습니다.”
“클클. 당연히 없지.”
“네? 어째서요?”
“염동(鹽洞, 소금굴)에서 일하고 있지 않겠나? 내일모레가 소금 거래 날이잖아.”
“그렇죠.”
“최대한 소금을 많이 캐 팔려고, 이맘때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소금을 캐게 한다네. 소금 거래일 전후해서 노예가 매번 댓 명씩 죽어 나가는 이유가 다 그것 때문이야.”
“사람의 죽음을 머금은 소금이네요.”
금예지의 혼잣말이었다.
나이 많은 상인은 혼잣말하는 금예지를 슬쩍 쳐다본 후 다시 나를 향했다.
멋쩍은 얼굴이었다.
“어험, 죽음을 머금으면 어떻고, 생명을 머금으면 또 어떤가? 우리야 이윤을 남기기 위해서는 무슨 짓도 할 수 있는 상인 아니겠는가?”
“네. 그렇죠.”
“내 말이 그거야!”
내가 동조하자 다시 기분이 좋아진 상인이다.
“이 선배의 말을 잘 새겨듣게.”
“네, 선배님.”
“염우촌의 소금은 소량만 생산돼. 하지만 그 품질은 바다에서 나는 소금의 몇 배나 좋지. 병을 낫게 하는 효과까지 있다고. 얼마나 비싼 값에 팔리겠는가?”
“이윤이 많이 남겠군요.”
“그렇네. 봐도 못 본 척. 알아도 모른 척. 그래야 돈을 벌 수 있어. 절대 다른 곳에 가서 이런 이야기 하면 안 되고. 절대로!”
“그래도 노예들이 조금 불쌍하긴 하네요.”
“예끼, 이 사람아! 지금까지 내가 한 말을 뭘로 들었나?”
“…….”
“아직 혈기왕성한 젊은이라 잘 모르나 본데. 여긴 노다지야. 노다지라고. 조금만 참으면, 조금만 눈감고 모른 척하면, 평생 잘 먹고 잘살 수 있는데, 왜 이런 복을 발로 차려는 거야?”
분위기가 묘했다.
우리 식탁의 분위기 말고, 식당 안의 분위기 말이다.
다른 상인들의 시선이 모두 우리에게 쏠려 있었다.
아마도 미리 무언가 이야기가 오간 것 같다.
그리고 지금 우리 식탁에 앉아 우리를 향해 이런 이야기하는 이자가 그 대표를 맡은 것이고.
“돈!”
“네?”
“돈!”
“…….”
“우리 상인은 말이야. 돈을 위해서는 산적이 있는 산을 넘어야 하고, 돈을 위해서 수적이 있는 강을 건너야 하네. 우리라고 어디 목숨에 여분이란 게 있겠는가? 다 다들 자기 가족들 먹여 살리려고 그렇게 목숨을 걸고 상행을 나가는 것일세. 무슨 말인지 알겠나?”
“네.”
“내가 너무 거창하게 말했군. 클클. 하지만 후배들. 잘 알아들으시게. 자네들만 눈 딱 감아 주면, 이곳에 있는 모두가 계속 안정적으로 자신의 가족들을 먹여 살릴 수 있다고. 그건 자네들 역시 마찬가지고.”
상인은 잠시 숨을 멈추어 조금 더 진지한 얼굴로 다시 입을 열었다.
“꼭! 내일모레 무슨 일을 보든, 무슨 일을 겪든. 절대로 나서지도 말고, 봐도 못 본 척하고, 또 마을을 떠나면 모두 머리에서 지워 버리시게. 약속만 해 준다면, 자네들의 첫 거래, 우리가 모두 돕겠네. 안 그런가, 다들?”
그가 식당 안에서 우리를 보고 있는 다른 상인들을 향해 외쳤다.
그러자.
“그렇지!”
“그래, 그렇게 하자고, 젊은이들! 우리가 도와줄게.”
“큰돈 벌고 나면, 기억하고 싶어도 기억나지 않을걸? 하하하!”
“맞아. 자네들도 우리처럼 편하고 안전하게 큰돈 벌 수 있어.”
모두가 한목소리가 되었다.
모두가 한통속이라는 뜻이다.
염우촌 마을 사람들도.
석삼이도.
이곳에 소금을 사러 온 상인들까지도.
모두 왕대에게 죽어야 할 이유가 있다.
*
야심한 밤.
아니, 새벽.
염동으로 갔다.
이 마을에 제대로 된 무공을 익힌 무인은 없다.
상인들도 거의 다 한두 명이 상행을 나선 사람들이다.
표사나 호위 무사를 거느린 상인은 없다.
우리의 잠행을 감지할 사람이 없다는 뜻이다.
염동을 찾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마을과 주변에 어둠이 깔리기 시작할 때부터, 유독 산중의 한 곳만 대낮같이 환했기 때문이다.
밤늦게까지, 새벽이 될 때까지, 그곳의 횃불로 밝힌 불은 꺼질 줄 몰랐다.
그리고 도착한 염동은, 우리가 상상했던 것의 몇 곱절 이상으로 끔찍했다.
퍽퍽!
퍽퍽퍽!
“이 새끼들아! 똑바로 안 해!”
찰싹!
“꺄악!”
“소금! 소금을 캐라고! 누가 꾸벅꾸벅 졸라고 그랬어! 이년이 죽으려고 환장을 했나!”
찰싹!
찰싹!
어린아이부터 노인들까지.
남녀의 구분은 없다.
모두 소금을 캐고, 또 그 소금을 운반하였다.
조금이라도 지친 기색을 보이면 어김없이 몽둥이와 채찍이 날아들었다.
마치, 짐승을 다루는 듯했다.
그리고 그렇게 매를 맞으며 일하는 처참한 몰골의 사람들 중, 광마일기에 묘사된 것과 똑같은 외양의 사내가 있었다.
왕대다.
무표정한 얼굴로 눈물을 흘리며.
그는 묵묵히 소금을 옮기고 있었다.
그런 그를 보고 있자니.
내 눈에서도 눈물이 절로 흘렀다.
*
염우촌 이튿날.
이른 아침부터 우리는 마을 이곳저곳을 살피며 다녔다.
새벽에 보았던 끔찍했던 광경을 일부러 숨기고.
우리는 새로 온 상인이라며 씩씩하게 마을 사람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잘 봐 달라고 인사를 했다.
우리에 관해 기존의 상인들과도 무슨 이야기가 있었는지, 어제까지만 해도 의심 가득한 눈초리와 흉흉한 분위기로 우리를 대했던 마을 사람들까지도 우리를 환대했다.
우리도 한통속이 됐다고 생각해 그리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늦은 오후가 되어 마지막 집에 갔다.
노인 한 명과 어린 소녀가 사는 집이었다.
“안녕하세요. 새로 소금 거래를 트려고 온 상인입니다. 거래를 하기 전 마을분들께 인사라도 해야 할 것 같아 찾아왔습니다.”
노인은 몸이 많이 불편해 보였다.
의자에 앉아 화단에 물을 주고 있는 소녀를 보고 있다가 우리의 인사를 받았다.
의자에서 일어서지도 못하는 모습이었다.
“어서들 오시오. 그런데 나한테까지 인사할 필요는 없어요. 보시다시피 나는 소금을 캐지 못한다오.”
“아, 그래도 인사는 해야 할 것 같아서, 하하. 손녀분인가 봐요.”
“아향아, 이리 와서 인사하거라. 새로 온 상인 분들이란다.”
손녀로 보이는 소녀가 쪼르르 달려와 우리에게 인사했다.
“손녀는 아니고, 허허. 내 몸이 불편해 이것저것 도와주는 아이라오.”
“그렇군요.”
아향이란 아이도 팔려 온 모양이다.
그래도 새벽에 봤던 염동 노예들에 비한다면, 아주 반듯한 모습이었다.
살도 토실토실 올랐고, 옷도 제법 좋은 옷을 입고 있으니 말이다.
표정까지 꽤 즐거워 보였다.
그렇게 마지막 집까지 인사를 하고 우리는 다시 염산객잔으로 돌아갔다.
*
“형님, 아무리 살펴도 형님이 말했던 칠혈자(七血子) 구양봉막이란 사람이 안 보이네요.”
의제의 말에 금예지도 같은 뜻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한해북은 아니었다.
깊은 고심에 빠진 얼굴을 하다가 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마지막으로 봤던 그 노인 말입니다, 마 형.”
“네.”
“그 노인이 저는 아무래도 수상합니다.”
그러자 의제가 한해북을 향해 말했다.
“한 형, 나도 그 노인이 의심스러웠지만, 아니에요. 무공을 익히지 않았어요.”
금예지가 거들었다.
“저도 의심스러워 자세히 살폈는데, 내공은 물론 단전 자체가 아예 없더라고요. 마교의 천마비고를 털고, 곤륜과 공동 그리고 마교의 추격대까지 따돌리고 탈출했을 정도면 어마어마한 고수일 거 아니에요.”
한해북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그런데 그 노인은 우리를 만난 후 줄곧 의자에만 앉아 있었어요. 움직임 자체를 거의 보여 주지 않았어요. 그의 동작으로 무공을 익혔는지 않았는지, 판단할 수 없다는 거죠. 그게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더라고. 그리고 또…….”
한해북이 잠시 생각에 잠긴 듯하다가 말을 이었다.
“어쩌면 삼십 년 전, 마교에서 탈출하고 또 추격대에게 쫓기고 그들과 싸우는 과정에서 크게 다쳤을 가능성도 있잖아요. 예를 들어…….”
이때 내가 나섰다.
“단전이 파괴됐다든가?”
“맞아요, 마 형. 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요.”
의제와 예지가 살짝 놀란 얼굴을 했다.
그것까지는 생각해 보지 못했다는 얼굴이었다.
그런 그들을 향해 내가 씨익 하고 웃어 줬다.
확실히 우리 현화문의 현화승천신공이 대단한 심법이긴 한가 보다.
금예지라면 감지할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그녀마저 감지하지 못했다.
나만 감지했다는 뜻이다.
우리 현화문의 현화승천신공 덕분이다.
“그 노인네, 단전이 없는 게 아니라 깨진 거야. 파괴된 거라고.”
“어머, 오빠. 그걸 감지했어? 그게 가능해?”
“운이 좋았나 봐. 어쨌거나 확실해. 내 기감이 분명 그렇게 느끼고 감지했어. 그 노인이 바로 칠혈자 구양봉막이야.”
시산마검 왕대에게 아수라혈천신공을 전수한 원흉을 찾았다.
*
소금 거래 당일.
염우촌 혈겁 하루 전.
염우촌의 대염중소라는 거래소의 열기가 뜨겁다.
조금이라도 돈을 더 받으려는 마을 사람들과 조금이라도 소금을 싸게 사려는 상인들 사이에 기분 좋은 실랑이가 이어졌다.
그들의 협상은 늦은 오후가 돼서야 끝을 맺었다.
소금의 값이 정해진 후에는 노예들이 움직였다.
이미 밤을 새우고 협상이 이어지는 동안에도 염동에서 마을까지 소금을 운반한 노예들은, 다시 그 엄청난 양의 소금을 상인들의 수레로 옮겼다.
퍽퍽퍽!
“빨리하라고! 빨리!”
퍽퍽!
“대인께서 내일 이른 아침에 출발한다는 말 못 들었어! 빨리 옮겨!”
찰싹! 찰싹!
“이년이 또 꾀병이야! 진짜 죽어 볼래? 안 되겠다. 이년 끌어내!”
퍽퍽퍽!
퍼퍼퍽!
“이 노인네가 미쳤나! 내일 아침까지 이 소금 다 실어야 한다고 몇 번을 말해!”
또 끔찍했다.
정말 너무 끔찍하고 처참해 눈을 뜨고 보기 힘들었다.
하지만 우리는 다른 상인들과 마찬가지로, 그 처참한 광경을 애써 모른 척했다.
고참 상인들과 마을 사람들이 그런 우리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개새끼들.
*
염우촌 혈사 당일.
해가 떴다.
아침이다.
소금은 모두 상인들이 끌고 온 수레에 실렸다.
노예들은 쉴 틈도 없이 다시 염동으로 끌려갔다.
상인들도 마지막으로 수레를 점검하고, 먼 길을 떠나기 전 전병과 육포 물, 술 등을 챙기기 바빴다.
“어? 얼뜨기 녀석들 어디 갔지?”
“누구? 아! 그 첫 상행 나왔다는 젊은이들?”
“응. 아까부터 안 보이네. 소금 실은 수레를 여기 떡하니 두고 어디 간 거야? 이 비싼 거 누가 훔쳐가면 어쩌려고.”
“곱게 자란 것 같더니. 쯧쯧. 저러다 몇 번 도둑질당하고 그래 봐야 정신 차리겠지.”
“그래, 알아서들 하겠지.”
저 멀리, 대염중소의 정문 앞.
이제 막 모든 채비를 마치고 떠나기 전 상인들의 대화가 들렸다.
내 청력을 극대화해서야 간신히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먼 거리였다.
우리는 마을을 벗어났다.
염동으로 올라가는 산의 중턱.
그곳에서 염우촌을 내려다보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곧.
콰콰콰콰콰콰콰콰쾅!
“으아아아아아아악!”
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으아악! 살려 줘!”
염우촌에 피바람이 불어닥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