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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두가 된 이유-174화 (174/245)

174화

염우촌 혈겁 사흘 전.

염우촌에 도착했다.

우리는 한 대의 수레까지 끌고, 도검을 수레에 숨긴 채 변용까지 했다.

세상 물정은 아직 잘 모르지만, 의욕만큼은 철철 넘치는 그런 얼뜨기 젊은 상인으로 위장한 것이다.

염우촌에 소금을 사러 온 상인 말이다.

마을 사람들의 경계심을 조금이나마 누그러뜨리고, 마을의 이곳저곳을 염탐하기 위함이다.

광마일기에 글로는 적혀 있지만, 실제 왕대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또 왕대에게 아수라혈천신공을 전수해 준 것으로 의심되는 칠혈자(七血子) 구양봉막도 찾아야 한다.

염산객잔.

마을 입구에서 조금 더 들어가니 객잔이 하나 나왔다.

정보를 귀동냥하기 가장 좋은 곳은 언제나 사람이 북적이는 객잔이다.

이곳이 마치 그랬다.

하지만 우리는 객잔으로 바로 들어가지 않고, 마을을 한 바퀴 돌았다.

고작 육십여 가구가 사는 작은 산촌이었다.

하지만 이곳 염우촌으로 오면서 보았던 다른 산촌과는 많이 달랐다.

부(富)의 차이다.

대도읍만큼 으리으리한 기와나 비단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은 없었다.

이건 상대적 부의 차이다.

감숙이라는 변방, 그중에서도 다른 산골 마을들과의 차이.

염우촌은 단연 감숙 산촌 중에서, 아니 중원의 여느 산촌과 비교해도 월등히 풍족한 삶을 누리고 있는 듯했다.

소금의 힘이다.

문제는.

“형님, 형님의 신통력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상한데요? 노예라고 생각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요. 죄다 얼굴에서 개기름이 좔좔 흐르고, 비단옷은 아니어도 나름 좋은 상품의 옷들을 입고 다니잖아요.”

“음…… 그러게. 이상하네.”

실제 그랬다.

마을을 오가는 사람들 대부분 말끔한 모습이었다.

고된 노동에 시달렸다고 생각할 만한 사람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보다 소금을 사러 온 상인들의 몰골이 더 좋지 않아 보일 정도다.

시산마검, 아니 왕대네 집에 가 봐야겠다.

난 걸음을 서둘렀다.

이미 지지난 회귀, 그러니까 계효보 미친 닭대가리가 계두교의 난을 일으켰을 때 사부와 한 번 와 봤다.

광마일기에 왕대의 집 위치가 정확히 기록되어 있다.

그렇게 도착한 왕대의 집.

쾅쾅쾅.

“계십니까?”

쾅쾅쾅.

“안에 아무도 안 계세요?”

문을 두 번 두드리고 나니, 중년의 사내 한 명이 낮잠을 자다가 나왔는지, 눈을 비비며 짜증 섞인 얼굴로 빼꼼 내밀었다.

왕대의 주인이다.

“무슨 일이오?”

슬쩍 안을 살폈다.

기감으로도 이미 확인한 상태다.

하지만 왕대는 이미 초절정 극상의 경지에 올랐을 터.

내 기감에 잡히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직접 눈으로 안을 슬쩍 들여다봤더니.

“뭐 하는 거요?”

“아! 네. 그게…… 이곳이 소금 파는 집 아닌가요?”

뭔 미친놈이야?

이런 눈이었다.

그러더니.

“첫 상행인가?”

“아, 네. 그게…… 네. 처음이라.”

“휴우. 한참 꿀잠을 자고 있었는데.”

“죄송합니다.”

“저쪽 저 길로 쭈욱 내려가면 대염중소라는 현판이 걸린 큰 집이 있을 거요. 염우촌의 소금 거래는 모두 그곳에서 하니 그곳으로 가보시오. 아! 오늘은 소금 거래하는 날이 아니지. 이틀이 지나야 할 거요.”

“네.”

“함부로 문 두드리지 마시오. 다들 편히 쉬고 있을 테니.”

“아, 네.”

왕대의 주인은 문을 쾅 하고 닫고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갔다.

왕대는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다.

왜 노예들이 아무도 보이지 않지?

그렇게 생각에 잠겨 걸음을 걷고 있을 때였다.

“마 형, 저기.”

한해북이 나를 불렀고, 곧 그가 가리키는 곳을 향했다.

뜨거운 태양 아래, 홀로 밭고랑을 열심히 갈고 있는 중년의 사내가 보였다.

그런데 지금까지 봐 왔던 사람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허름한 옷.

아니, 누더기에 가까운 옷이다.

앙상하게 마른 몸에 걸을 때마다 절뚝이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그는 쉬지 않고 묵묵히 밭고랑을 계속 갈았다.

마치 누군가에게 감시라도 당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확실히 다른데, 오빠?”

“그러게.”

“형님, 제가 가서 말이라도 한번 걸어 볼까요?”

“아니야. 오늘은 첫날이니 그냥 동태만 간단히 살피자. 괜히 마을 사람들에게 의심 사는 행동하지 말고.”

“네. 그럼 마을도 다 둘러봤으니, 아까 그 객잔이나 가죠. 거기서 무슨 말이라도 들을 수 있을지 모르니까요.”

“그러자.”

그렇게 우리는 염산객잔으로 향했다.

*

염산객잔 안은 마을 사람들과 이틀 뒤 소금 거래를 하기 위해 미리 염우촌에 도착해 머물고 있는 상인들로 왁자지껄했다.

다행히 우리 넷이 앉을 자리는 있었다.

대낮부터 여기저기서 술판이었다.

상인들은 이틀 뒤에야 소금을 살 수 있으니, 그때까지 할 일이 없다고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그냥 대낮부터 이렇게 객잔까지 와 술을 퍼마시고 있는 것이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음식과 술을 시키고, 별 시답잖은 이야기를 하는 척하며 사람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한참의 시간이 그렇게 흘렀지만, 별 가치가 있는 내용은 들을 수 없었다.

그렇게 한 시진 정도 흘렀을 때였다.

-마 형.

한해북의 전음.

이미 나를 비롯해 우리의 시선은 객잔 입구로 향해 있었다.

아까 마을을 돌다가 본 사내.

뙤약볕 아래 홀로 밭고랑을 갈고 있던 누더기 사내가 객잔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뭐지?

저자도 일을 마치고 술을 한잔하러 온 것일까?

누더기 사내는 객잔 내부를 쭈욱 훑더니, 이내 찾는 사람을 발견한 듯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다가갔다.

마침 누더기 사내가 발견한 사람은 바로 우리 옆 식탁에서 술을 마시고 있던 자였다.

“주인님.”

“어? 네놈이 여긴 웬일이냐?”

“밭고랑 다 갈았습니다.”

한참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있던 사내는, 누더기 사내의 말에 인상을 찌푸렸다.

“그런데?”

“다음 일을 시켜 주셔야…….”

“야.”

“네, 주인님.”

“한심한 새끼. 밭고랑을 다 갈았으면 종자를 심어야지. 그걸 왜 물어! 바보야? 등신이야? 머리에 뇌가 없어? 쯧쯧.”

“아! 그렇죠. 하하. 헤헤. 죄송합니다, 주인님.”

“뭐해? 어서 가서 일해.”

“네, 네. 가겠습니다. 종자, 종자 심어야죠. 헤헤.”

누더기 사내는 그렇게 굽실굽실 주인 사내에게 인사를 하고 객잔을 빠져나가려고 했다.

그때 한해북이 나와 눈을 마주친 후 속삭이듯, 하지만 분명하게 주위 사람들이 들릴 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마 형, 이곳 염우촌에서 노예를 부린다고 하더니 진짜로 있네요.”

“그러게요.”

곧바로 우리 주위에 있던 몇 개의 식탁 분위기가 싸하게 변했다.

그리고 곧, 조금 전 자신의 노예와 대화를 나누었던 사내가 술기운이 오른 얼굴로 우리를 향했다.

“노예? 무슨 노예? 우리 마을에 그런 게 어딨다고?”

일부러 흉흉한 분위기를 만들며, 여차하면 주먹이라도 날리겠다는 듯 그렇게 말했다.

내가 곧바로 나섰다.

살짝 주눅이 든, 조금은 어설픈 그런 얼뜨기 초짜 상인의 얼굴로 답했다.

“그게…… 조금 전 저분이 아저씨한테 주인님이라고…….”

내가 겁먹은 얼굴을 하자, 주인 사내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험악했던 얼굴도 슬쩍 풀렸다.

자신의 협박 같은 게 통해 기분이 좋아진 모양이다.

무식한 사람일수록, 이런 사소한 것들에 크게 감정이 휘두르는 법이다.

“자네들, 우리 염우촌은 처음인가?”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반말이다.

배운 게 없으니 그럴 것이다.

“네.”

“소금 사러 왔나?”

당연한 걸 묻는군.

물론, 우리의 목적은 소금이 아니지만.

“네.”

“근데 어디서 헛소문을 듣고 왔더군. 이봐! 석삼이! 석삼아!”

조금 전 주인 사내와 대화를 나누고, 막 객잔 문을 나서려던 누더기 사내를 주인 사내가 불렀다.

곧장 조르르 달려오는 누더기 사내, 석삼이였다.

“네, 주인님.”

“에휴. 야! 내가 형님이라고 부르라고 몇 번이나 말했어! 이러니까 외지 사람들이 자꾸 우리 마을을 오해하는 거 아냐?”

“네? 그게…….”

놀란 석삼.

곧 눈치를 마구 살핀다.

그러더니.

“아! 네, 형님. 헤헤.”

최소한 말이다.

내가 보기엔 저 주인이란 사내보다 석삼이의 머리가 더 좋은 게 분명하다.

주인 사내가 다시 나를 향했다.

“거지로 떠돌다 죽을 뻔한 거. 내가 데려와 먹여 줘, 재워 줘, 돈까지 줘. 가족같이 살뜰히 보살펴 줘. 이게 어찌 노예라 하는 건가? 세상천지에 이런 노예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 어디서 같잖은 헛소문이나 듣고 와서 우리 마을을 비방해! 소금 사기 싫어?”

“아, 아닙니다. 제가 잠깐 오해를 한 듯합니다.”

또 한 번 자신의 협박이 통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주인 사내는 이제 거드름을 피우기까지 한다.

곧 주인 사내가 석삼이에게 눈짓을 줬고, 눈치 빠른 석삼이 다시 한번 나섰다.

“전 품삯을 받고 일을 합니다.”

“아, 그렇군요.”

“그게 무얼 의미하는지 아십니까?”

“글쎄요.”

“노예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노예에게는 품삯을 주지 않습니다.”

“아, 네. 제가 오해를…….”

“장가도 갔습니다. 평생 거지로 떠돌며, 굶어 죽기 직전이었는데, 우리 주인님…… 형님께서 절 긍휼히 여겨 이곳 염우촌으로 데려와 주고, 말씀하신 대로 집도 주고 먹을 것도 주고, 일자리까지 주었습니다. 그리고 감히 꿈도 꿔 본 적 없는 혼인도 할 수 있었습니다. 하하.”

“그, 그렇군요.”

“작년엔 떡두꺼비 같은 아들도 낳았고. 아들을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일하고 싶어 좀 무리를 하다 보니, 지금 제 몰골이 조금 그렇긴 합니다. 충분히 오해할 만합니다.”

“아, 그렇군요. 그런 줄도 모르고 제가 오해를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많이들 그런 오해를 하곤 합니다. 아무래도 우리 염우촌이 다른 마을보다 잘살다 보니, 시기하는 눈이 많습니다. 노예니 뭐니 하는 말들은, 그런 다른 마을에서 지어낸 소문일 뿐입니다.”

“네.”

“전 종자를 심으러 가야 해서…… 좋은 거래 하고 가시길 빌겠습니다. 그럼 이만.”

“네.”

석삼이 갔다.

주인 사내와 우리 식탁 주변에 앉은 마을 사람들은 잠시 우리를 곱지 않은 눈으로 보았다.

이내 내가 고개를 살짝 숙여 오해했음을 시인하고 미안한 기색을 보이자, 그제야 거드름을 피우며 다시 자신들의 술상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뭔가 이상하다.

광마일기가 잘못됐나?

개방의 정보는?

아니다.

둘 다 잘못된 게 아니다.

이건 내 느낌마저 강하게 확신하고 있다.

나만의 느낌이 아니다.

의제와 한해북 그리고 예지까지, 저들이 수상함을 강하게 의심하고 있다.

*

수확이라 할 만한 정보를 얻지 못한 첫날이었다.

우린 살짝 분위기가 가라앉은 상태로 저녁 식사를 위해 다시 식당으로 나왔다.

염산객잔에 딸린 별채를 통으로 빌렸다.

북적거리는 식당과 달리, 잠자는 것에 큰돈을 쓰고 싶지 않아 하는 상인들 덕분에 빈 별채를 통으로 빌릴 수 있었다.

객잔 식당에는 낮에 비해 사람이 별로 없었다.

그 많던 마을 사내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전부 상인들뿐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저녁 식사를 막 하려 할 때.

초저녁부터 제대로 취한 나이 많은 상인 한 명이, 술병 하나와 잔 하나를 들고 우리 식탁으로 다가왔다.

낮에 보았던 상인이이기도 하다.

그는 우리의 허락도 없이 곧바로 의자 하나를 가지고 와 의제와 한해북 사이에 멋대로 앉았다.

곧 자기가 들고 온 술을 잔에 따라 마시더니.

“자네들도 소금 사러 왔는가?”

당연한 소리를 한다.

“네.”

“염우촌은 처음이고?”

“네.”

“아까…… 큭큭큭. 아까 낮에 보았네.”

“무엇을 말입니까?”

“클클클. 이래서 말이야. 클클.”

술에 취해서 그런가?

이상한 웃음소리를 내는 상인이다.

그는 다시 자기 술을 따라 마신 후 말을 이었다.

“선배가 필요한 거야, 선배. 클클.”

“무슨 말씀이신지……?”

“자네들, 우리 상인들이 이곳 염우촌을 달리 뭐라 부르는지 아는가?”

“뭐라 부르는데요?”

“염노촌(鹽奴村), 소금 노예 마을이라고 부른다네.”

“노예가…… 실제로 있군요.”

“있지. 있다마다.”

“그런데 한 명도 보이지 않네요.”

“낮에 보았던 석삼이도 노예야.”

“하지만 분명 아니라고…….”

“클클클. 그놈이 제일 악질이야. 염노촌 주인들의 앞잡이. 자기만 편하게 밭일을 하려고, 다른 노예들을 때리고 핍박하는 최고의 악질 앞잡이 노예. 그게 석삼이의 진짜 모습이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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