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화
“현…… 현화문의 현화도사 마악치 대협이셨습니까? 아이쿠! 아까 식당에서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와아아아! 현화도사 마악치 대협이 우릴 구했다!”
“봉황검 금예지 여협이시다!”
“엉엉. 감사합니다, 마 도사님. 평생 처음으로 나온 가족 유람이었는데. 엉엉엉. 감사합니다. 엉엉.”
좀 작위적이면 어떤가?
효과는 직방이었다.
사람들이 내게 몰려와 눈물을 흘리며 감사 인사를 건넸다.
의제와 한해북이 도움 요청한 문파와 관청에서 사람들이 왔고, 곧 부상자를 수레와 들것에 실어 가고, 일화오악 역시 체포해 갔다.
다 잘됐다.
“엉엉엉. 그런 줄도 모르고 아까 소림만두에서 마 도사님을 욕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엉엉.”
“괜찮습니다. 악당을 물리치는 길이 매번 순탄하지만은 않습니다. 그래도 저 현화도사 마악치는, 묵묵히 무림의 정의와 평화를 위해 끝까지 그 길을 가겠습니다.”
“와아아아아!”
“현화도사 만세!”
“마악치 도사님 만세!”
가끔은 작위적인 게 필요할 때도 있다.
*
아미파에 도착했다.
아미파에서도 금예지에 관한 소문을 제대로 들은 모양이다.
장문인과 장로들까지 아미파 제자들을 대거 이끌고 나와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아니, 봉황검 금예지의 복귀를 환영해 주었다.
화산파의 수룡검 천무휘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의미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나저나 천무휘 녀석은 잘하고 있으려나?
폐관 수련에 들어갔으니 서신을 주고받을 수도 없고.
뭐, 괜한 걱정이다.
천무휘라면 무조건 잘해 낼 것이다.
우리는 장문인과 장로들, 그리고 예지의 사부인 윤화 사니와 따로 자리를 마련했다.
조심스레 예지와 함께 마두를 잡으러 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역시나 대번에 허락해 주었다.
아니, 아예 적극적으로 아미파에서 지원을 약속했다.
예지에 대한 믿음도 있겠지만, 우리에 대한 믿음 없이 함부로 그런 선택을 내릴 수는 없었을 것이다.
예지의 소문 이전부터 우리의 소문이 엄청나게 대단하지 않았겠는가?
물론 천무휘 녀석이 화산으로 간 후부터는 조금 뜸했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그렇게 우리는 아미파에서 허락을 받아 냈다.
바로 떠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진 않았다.
곧 시산마검에게 가야 한다.
시산마검이 있는 곳은 감숙.
이곳 아미산이 있는 사천과 지근이다.
조금 더 이곳에서 머물다가, 시산마검이 있는 감숙으로 갈 생각이다.
한 달 정도만 기다리면 된다.
한 달이 지나 감숙에 도착해 시산마검을 만나면, 나도 곧 초절정 극상의 경지에 오르게 될 것이다.
*
“좋은 소식이 있다네.”
아미에 도착 후 이튿날.
아미삼검과 따로 만남을 가졌다.
내가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기 무섭게, 아미삼검의 셋째 곡희가 내게 말했다.
“좋은 소식요? 무슨 좋은 소식요?”
“처호와 처선 말일세.”
“아, 네.”
“아직 확정된 게 아니라 자네에게는 나중에 따로 보고하겠다고 했는데. 내 입이 근질거려 못 참겠네. 호호.”
“무슨 일인데요?”
“천수신권의 쌍둥이 동생, 원곡의 입을 열 방법을 찾은 것 같네.”
“아! 그렇지 않아도 작은 사부님께 연락받았어요. 석동(石洞)에 갇혀 있는 원곡이 그냥 돌이 되었다고 하던데요? 입을 열게 할 방법이 전혀 없다고 하시던데. 처호와 처선이 무슨 방법을 찾았데요?”
“당금 최고의 고문 전문가 행방을 찾아 그리로 간다고 하더군.”
“최고의 고문 전문가요? 그런 게 있어요?”
“있지. 왜 없겠나? 무림이 겉으로는 낭만적으로 보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얼마나 잔인하고 치열한 세계인지, 아직 모르나?”
“알죠. 너무나 잘 알죠.”
“당연히 별의별 이상한 전문가들도 많다네. 그리고 고문 전문가는 알려지지 않은 무림의 직업 중에서도 매우 귀하게 대접받는 자들이라네. 한 번 고용하는 데 엄청난 돈을 들이기도 하고, 유명한 세가나 문파에서는 세가주나 문주가 직접 삼고초려를 해 모셔 오기도 한다네.”
“오! 그 정도예요?”
“그렇네. 꼭 알아야 할 사실을 그들이 알게 해주니, 천만금이고 억만금이고 필요한 자에게는 돈이 문제가 아니거든.”
“음, 일리가 있네요. 그래서 누구를 데리러 간 거예요?”
“그것까지는 서신에 없었네. 하지만 음…… 자네 공손병이라는 자를 아는가?”
“아, 네. 조금요.”
“그자가 천하에 모르는 게 없다고 처호와 처선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더군. 난 처음 듣는 이름인데 말이야. 아무튼 거의 십 년 동안 암암리 천하제일 고문 전문가라고 알려졌던 자가 있는데, 일 년 전에 갑자기 자취를 감추었다고 하더군. 그자의 행방을 공손병이 알아낸 모양이야. 그래서 세 사람이 지금 그자를 섭외하기 위해 떠났다고 하네.”
“아! 잘되면 좋겠네요. 원곡이 입을 열면, 정말 큰 도움이 될 테니까요.”
“그렇지. 자네 인복이 좋아 모두 잘될 걸세.”
인복이라.
그렇지. 내가 인복 하나는 또 타고난 것 같다.
다 떠나서, 내가 우리 사부님을 만난 것 자체가 최고의 인복 아니겠는가?
거기에 더해 나를 믿고 사랑해 주는 많은 이들이 있고 말이다.
그들을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뛰어야겠다.
내 업보도 빨리 다 씻고.
닭대가리 목도 빨리 비틀고.
무림의 음모도 막고.
그래, 조금만 더 힘내자!
아미파에서의 이튿날은 거의 아미삼검의 거처에서 보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새로이 얻은 정보, 삼존하구룡협과 비정검사에 관한 이야기도 모두 해 주었다.
화산파가 연관되었을 가능성에 대해 조심스럽게 말했고, 아미삼검 역시 큰 충격을 받은 얼굴을 했다.
아! 아미삼검도 이렇게 충격을 받는데, 이 사실을 천무휘 녀석이 알게 되면 얼마나 상심이 클지.
또 한 번 녀석이 걱정되었다.
귀정사와 아미파, 무당파, 그리고 처호, 처선을 잇는 연락망은 이제 제대로 체계가 잡혔다고 한다.
역시나 나에게 무언가를 전할 때는 달호가 가게 될 것이라고도 했다.
그사이 처호와 처선이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아미삼검은 그 부자의 능력과 열정이 대단하다며 연신 그들을 칭찬하였다.
무당파와 아미파에서도 자체적으로 계속 천수신권, 창궁검제 등과 함께 무언가를 꾸미고 있을 간자들에 대한 가능성을 찾고 있다고 했다.
거의 마무리 단계로, 현재까지 구 할 이상 그들과 내통하는 자가 없음을 확신하는 단계라 하였다.
다행이다.
십합단에 관한 이야기도 아미삼검을 통해 다시 들을 수 있었다.
무림맹 아미장로원에서 정기적으로 보고한다고 하였다.
아미장로원과 무당장로원에서 은밀히 그들을 지원하고 있다고.
열심히 수련도 하고 임무도 수행하고 있다고 한다.
잘하고 있다, 십합단 녀석들.
며칠 전에는 백미호에게 만리연통석으로 연락도 왔다.
북해로 가는 중이라 했다.
닭의 흔적을 찾았는데, 그 방향이 북해 쪽이라 했다.
북해라.
계효보도 백미호와 호요, 웅요가 어지간히도 무서운가 보다.
북해까지 도망간 걸 보면.
그나저나 거기 엄청나게 춥다고 하던데.
백미호에게 잡히기도 전에 냉동 닭이 되는 건 아닐까?
큭큭.
닭대가리.
그렇게 꽁지 빠져라 도망 다녀라.
그사이 나는 내 업보를 하나씩 하나씩 씻어 나갈 테니.
아무튼 모든 게 잘 돌아가고 있다.
이제 나만 잘하면 된다.
얼마 뒤, 시산마검을 만나 초절정 극상의 경지를 되찾는 것이 그 연장선이 될 것이다.
*
“예지야, 한 형은?”
“우리 삼대제자들에게 무도(舞蹈, 춤) 가르쳐 주는 사저 있잖아.”
“어. 그 예쁜 무도 선생님?”
“응. 둘이 연못으로 가던데? 하하 호호 웃으면서.”
“아! 그렇구나. 한 형이…… 쩝. 의제는? 의제 녀석은 누가 만나 주지도 않을 텐데 어디 갔어?”
“인기 폭발이야.”
“말도 안 돼!”
“정말이야. 사자매들이랑 삼대제자 사질들이 우르르 와서 곽 오라버니한테 비무해 달라고 막 조르고 그랬어. 그래서 곽 오라버니는 지금 연무장에 있어.”
“음, 그 녀석이…… 분명 이용당하고 있는 거야.”
“풉, 뭘 또 그렇게까지 생각해? 곽 오라버니가 얼굴이…… 음. 뭐. 응. 그렇지만. 그래도 보면 볼수록 매력이 철철 넘쳐. 그렇게 남자다운 거 좋아하는 여자들 엄청 많아.”
“휴우, 우리 예지는 다 좋은데 그게 문제야.”
“뭐가?”
“너무 긍정적이야.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의제 얼굴은, 처음부터 안 되는 얼굴이라고. 큭큭큭.”
“오빠처럼?”
“야!”
“호호호. 우리 오빠 화내니까 귀엽네.”
예지와 단둘이 보내는 시간은 언제나 즐겁다.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를 정도다.
그런데 그때, 훼방꾼이 나타났다.
꼬맹이 훼방꾼이다.
아까부터 스무 장 밖에서 몰래 우리를 훔쳐보고 있다.
뭔가 쭈뼛거리는 게, 우리 쪽으로 오고 싶은데 용기가 안 나는 모양이다.
나와 예지는 그런 아이를 짐짓 모른 척하다가, 결국 아이가 우리에게 다가오는 걸 포기하고 되돌아가려 할 때가 돼서야 불렀다.
“얘!”
저 멀리, 축 처진 어깨로 우리 반대 방향으로 가려는 아이를 예지가 불렀다.
그러자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는 아이였다.
예지가 환히 웃으며 손으로 오라는 손짓을 했다.
그러자 역시나 자신감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아이가, 잔뜩 움츠린 채 우리를 향해 조심스레 다가왔다.
아미파의 제자니 당연히 여아였고, 머리가 조금 크고 몸이 많이 건강해 보이는, 조금 과하게 많이 건강해 보이는 그런 아이였다.
“삼대제자니?”
“네. 안녕하세요, 사고님.”
“예쁘네.”
금예지의 거짓말에 아이가 고개를 더욱 숙이며 부끄러워했다.
“이름은?”
“국인경이요.”
“이름도 예쁘네. 아까부터 저기서 우리 보고 있었지?”
“엇! 아니에요. 그게…… 죄송해요, 사고님.”
“괜찮아. 우리가 남도 아닌데 뭐 어때? 그런데 무슨 할 말이 있어서 온 거 아니야?”
예지가 아주 다정다감하게 물었다.
하지만 아이는 여전히 잔뜩 풀이 죽어 고개를 푹 숙인 상태로 자기 손가락만 만지작거리며 대꾸하지 못했다.
“어디 소속이야?”
예지가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아이는 아차 싶은 얼굴로 서둘러 대답했다.
“앗! 죄송해요. 공양전(供養殿, 아미파의 음식을 만드는 전각) 소속 삼대제자에요. 국인경이요. 아, 이름은 방금 말씀드렸죠. 죄송해요. 그리고…… 그게…….”
“그리고 뭐? 괜찮아. 편하게 말해도 돼.”
“저도…… 속가제자에요.”
“오! 그래? 나도 속가 제자인데.”
“알고…… 있어요.”
“인경이는 몇 살이야?”
“일곱 살요.”
“헙!”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뻔했다.
저 덩치, 아니 저 정도의 건강함이면 분명 최소 열세 살은 됐을 것이다.
허리둘레만 따진다면 성인 못지않다.
그런데 일곱 살이라니!
조그만 게 어디서 거짓말이야!
하지만 차마 그 말을 입으로 뱉을 수는 없었다.
아이가, 너무 주눅이 들어 있었다.
저런 얼굴로 이 상황에 거짓말할 리는 없다.
어쩌면 다른 아이와 조금은 다른…… 아니, 좀 많이 다른 외모 때문에 저렇게 주눅이 든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랬을까?
원래도 다정다감한 예지지만, 국인경이란 아이에게는 더더욱 다정다감하게 또 상냥하게 그렇게 대화를 이어 갔다.
“인경아.”
“예, 사고님.”
“내가 비밀 이야기 해 줄까?”
“네? 정, 정말요?”
“응. 이건 장문인 사고님도 모르고 장로님들도 모르는 비밀인데, 우리 인경이한테만 말해 줄게.”
아이가 아이는 맞나 보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눈조차 마주치지 못하던 아이였는데, 비밀 얘기라는 말에, 살에 가려 잘 보이지도 않던 조그만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그전에…….”
“네, 사고님.”
“나만 비밀 얘기해 주면…… 음, 뭔가 우리가 친하지 않은 느낌이라서. 난 인경이랑 친해지고 싶은데.”
“저, 저하고요? 봉황검…… 아니, 금예지 사고님께서요?”
“응.”
국인경의 얼굴이 곧바로 큰 변화를 일으켰다.
부끄러움과 흥분으로 크게 상기한 얼굴이 된 것이다.
예지는 이때를 놓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인경이가 먼저 말해 줘. 무슨 일 때문에 조금 전에 우리 주변을 맴돌았는지. 고민이 있어서 온 거 맞지? 그거 말해 주면, 나도 엄청난 비밀 얘기해 줄게. 그럼 나랑 인경이랑 비밀 친구 되는 거야. 어때? 말해 줄래?”
“그, 그게…… 그게요…….”
곧바로 아이는 심한 갈등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이내.
“으아아앙. 아아앙. 엉엉엉.”
마구 울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나와 예지 둘 다 순간 크게 당황하고 말았다.
엄청난 덩치의 아이가, 갑자기 우렁찬 목소리로 울어 대니 말이다.
그리고 곧, 아이는 그렇게 서럽게 울며 우리를 만나려 했던 이유를 실토하였다.
“엉엉엉. 으아아앙. 나도 사고님처럼 강한 여협이 되고 싶어요. 앙앙앙.”
어?
좀 이상하다.
내가 보기엔 이미 충분히 강한데?
지금 일곱 살이라고 했으니, 음…… 그러니까.
한 두세 살만 더 먹으면, 소도 때려잡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얘, 왜 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