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마두가 된 이유-170화 (170/245)

170화

서둘러 금예지를 살폈다.

아! 나를 보는 눈이 곱지 않다.

아니, 처음이다.

우리 예지가 나를 벌레 보듯 그렇게 쳐다보는 게.

아니야!

아니라고!

이 여자 전혀 몰라!

그리고…… 나 총각이야!

뽀뽀도 못 해 봤다고!

물론, 뭐 이번 생에만 그렇다는 거지만.

아무튼 너무 억울했다.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하지만.

“오빠아아앙, 잘 지냈어? 오빠 찾느라 한참 헤맸잖아. 나 안 보고 싶었어용?”

이런 미친.

광천마제 시절에도 때리지 않던 여자를 때릴 수도 없고.

아! 돌겠다.

차분하자.

“휴우, 실례지만 사람을 잘못 보신 듯합니다. 저는 소저를 본 적도 만난 적도 없습니다.”

“엇? 그래요? 제가 사람을 잘못 봤나 봐요. 죄송해요.”

오잉? 뭐가 이렇게 쉽게 끝나?

뭐, 아무튼 다행이다.

“이럴 줄 알았어? 인간아! 사랑한다고 그렇게 매달릴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모른 척이야?”

“전, 전 진짜 당신을 모릅니다.”

“오! 당신? 그날 밤도 그렇게 내 귀에 속삭였지. 당신을 사랑한다고. 당신을 위해 뭐든 할 수 있다고. 그렇게 내 순결을…… 흑. 흑흑.”

이런 미친!

안 돼!

우리 예지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숨은 가빠졌고, 이젠 날 쳐다보지도 않는다.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다.

그리고 또 심각한 건, 주위 분위기다.

상단이 있으면, 이를 지키려는 표사들이 있다.

식당 내부에 도검을 착용한 표사들이 상당수 있는데, 살기가 슬슬 피어오른다.

그들만이 그런 게 아니다.

평생 싸움이라곤 해본 적도 없을 것 같은 평범한 유람객들과 다른 손님들, 그리고 점소이와 숙방의 숙수들까지 나를 죽일 듯 노려보고 있다.

아! 하늘이시어, 저에게 왜 이런 시련을 주시나이까?

의제! 한해북! 좀 도와줘.

“큭큭.”

“큭큭큭.”

의리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놈들 같으니라고.

내 위급한 상황을 보며 웃고 있다.

나중에 보자, 나쁜 놈들.

“아니, 도대체 저한테 왜 이러세요?”

가짜 눈물을 훔치던 서효라는 여인.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와! 진짜 눈물이 흐르고 있다.

돌겠네.

이건 빼박이다.

난 공공의 적이 되었고, 천하의 개 쓰레기가 되어 버렸다.

“또 오셔야 해요. 제가 기녀라 당신이 저를 부끄럽게 생각한다고 해도. 저는 오직 당신만을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하아! 돌겠네. 저 아니라고요.”

“그리고 이거. 그날 밤 당신이 제 순결을…… 그날 밤 당신이 제게 사랑을 고백하며 써 주었던 시에요. 조금이라도 제가 생각난다면, 그 시를 들고 돌아오세요. 기다리고 있을게요, 흑흑.”

그녀는 그렇게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를 눈물을 주르르 흘리며 나를 한참이나 아련한 눈망울로 바라본 후에야 자리를 떠났다.

그녀가 소림만두집의 입구를 벗어날 때까지, 식당 안의 모든 사람은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렇게 그녀가 완전히 사라진 후.

아! 그때부터 사람들이 노골적으로 나에게 불편한 감정을 내비쳤다.

일부러 내가 앉은 의자와 부딪히기도 하고.

툭.

“아, 거슬리게 왜 거기 앉아서 밥을 먹어. 짜증 나게.”

자신의 팔로 내 어깨와 일부러 부딪히듯 치는 사람도 있었다.

툭.

“요즘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들이 기루를 드나든다고 하더니. 말세야, 말세.”

“싹이 노랗네, 노래. 앞으로 어찌 살지 안 봐도 뻔하다.”

“아니, 저렇게 생긴 얼굴로 기루를 드나들려면 도대체 돈을 얼마나 써야 하는 거야?”

거기서 얼굴 얘기는 왜 나오는데?

아! 돌겠다.

눈물이 쏟아질 것 같다.

빨리 먹고 나가야겠다.

이 사람들에게 해명한다고 뭐가 달라지겠나.

우선 우리 예지 오해부터 풀어야겠다.

*

소림만두집을 나온 후, 한 식경이나 걸었다.

예지는 그때까지 나에게 한마디도 건네지 않았다.

아니, 아예 쳐다보지를 않았다.

그리고 난 이미 그때, 청연루의 서효라는 여인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그녀가 내게 남기고 간 종이.

사랑을 고백하는 시가 적혔다는 그 쪽지 말이다.

마두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다.

젠장!

하오문이 정보료가 비싼 거 빼고 다 좋은데, 가끔 이렇게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정보를 전달할 때가 있다.

거지들과 다르게 철저히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또 정보의 보안을 유지하기 위한 그들의 수단이고 방법이었다.

비슷한 일이 몇 번 있었지만, 이번엔 좀 심했다.

나중에 하오문에 따져야겠다.

그보다 먼저, 우리 예지 오해부터 풀어 줘야 하고.

“예지야, 잠깐만.”

“큭큭큭.”

“큭큭.”

의제와 한해북.

너희 두 녀석, 나중에 두고 보자.

“예지야.”

걸음을 멈추었다.

하지만 뒤돌아보지 않는다.

“휴우, 오해가 있었어. 아까 만두집에서 본 그 서효라는 여자. 하오문의 문도야. 내게 근처에 있는 마두에 관한 정보를 전달하려고 그랬던 거야.”

씨알도 안 먹히는 분위기였다.

그래도 제발.

제발!

제발 부탁이니 조금이라도 내 말을 믿어 줘, 예지야.

그렇게 마음속으로 간절히 기도했다.

그런데!

순간 예지가 몸을 돌렸다.

그녀의 얼굴이 환하게, 더없이 환하고 예쁘고 아름답게 웃고 있었다.

“정말?”

눈물이 났다.

진짜 눈물을 흘리며 울상이 되어 답했다.

그냥, 그냥 말이다.

우리 예지는 내가 하는 말이면 다 믿어 주는 거였어.

아! 눈물이 마구 쏟아진다.

“웅. 진짜야, 예지야. 나…… 훌쩍. 나 그런 사람 아니야.”

“오빠아앙.”

“웅. 예지야.”

우리 예지도 울먹인다.

많이 속상했었나 보다.

“진작 얘기하지. 아잉.”

“사람들 있어서. 아니, 나도 이 쪽지 보고 그제야 깨달았어. 아깐 너무 당황스러워서.”

“미안해, 오빠. 순간 오빠를 오해했어.”

“아니야, 예지야. 이제라도 믿어 줘서 고마워. 엉엉.”

감정이 북받쳤다.

그래서 함께 울고 있는 예지를, 정말 나도 모르게 다가가 끌어안으려 했다.

하지만!

젠장!

빌어먹을 놈들!

의제와 한해북이 은은한 살기까지 흘리며, 그런 나와 예지의 사이를 교묘하게 가로막았다.

진짜 칼부림이라도 하겠다는 의지가 두 녀석 얼굴에서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었다.

“예지야, 이거.”

“이거? 아까 그 여인이 주고 간 거?”

“응. 봐 봐.”

예지가 쪽지를 펼쳤다.

“일화오악(一花五惡)?”

“응. 워낙 신출귀몰하는 마두들이라, 하오문과 개방에서도 그 정체를 자세히 알지 못한데. 갑작스레 이 근방에 나타났다는 정보를 입수한 후, 급하게 나에게 전하는 거라고 쓰여 있어.”

“아! 그러네. 매우 위험하고 악질의 마두들이라고도 쓰여 있어. 이번에 놓치면 또 언제 그 종적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고도 하고. 꼭 잡아야겠는데?”

“응. 꼭 잡아야 해.”

“우리가 가는 방향이야. 아미산으로 가는 길. 오중산에 머물고 있데. 빨리 가자.”

“그래, 가자.”

우리 예지가 돌아왔다.

이제 다시 나를 보기도 하고, 말도 걸어주고, 웃기도 하고.

이게 이렇게 감사한 일인 줄, 한 번 잃어버린 후에야 깨달았다.

앞으로 더 잘해 줄 거다, 우리 예지한테.

*

일화오악.

한 명의 아름다운 여인과 다섯의 무시무시한 사내들로 구성된 마두들이다.

워낙 신출귀몰하고 흔적을 남기지 않아, 개방과 하오문에서도 그들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다.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는 건, 그들을 본 자들을 모두 죽였다는 뜻이다.

위험하고 극악무도한 놈들이 맞다.

이들에 대한 정확한 정보는 없지만, 몇 가지 소문을 하오문에서는 첨부해놨다.

일화(一花)라는 여인이 너무 예뻐서 다섯 명의 사내 마두들이 그녀를 쫓아다니며 악행을 벌인다는 소문도 있고.

반대로 일화라는 여인들이 극악무도한 오악(五惡)에 잡혀 억지로 그들에게 끌려다닌다는 말도 있고.

뭐 중요하지 않다.

나쁜 놈들은 다 때려잡아야지.

원래는 예지와 함께 아미파로 가는 길이라, 조용히 또 즐겁게 가려고 했지만.

이렇게 나쁜 놈들을 그냥 둘 수 없지 않겠는가?

무엇보다 우리 예지가 더 적극적이다.

“오라버니들, 서둘러.”

“응, 그래.”

우리는 그렇게 오중산으로 향했다.

소림만두집으로부터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곳이었다.

오중산은 제법 험준한 산이었다.

많은 사람이 오가는 길이라, 길 자체는 제법 잘 닦여 있었다.

하지만 그 산길이 매우 가팔라 말을 타고 오를 수는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말을 끌고 걸어야 했다.

그런데 산을 오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 형.”

한해북이 나를 불렀다.

아니, 한해북이 부르기 전 우리 모두 이미 기감을 통해 감지하고 있었다.

말들을 주변에 있는 커다란 나무에 묶고 걸음을 빨리했다.

그리고 그곳에 그들이 있었다.

아까 한 시진 전, 식사를 할 때 내가 앉은 의자를 발로 차기도 하고 또 일부러 부딪히기도 했던 자들.

혼잣말을 뱉는 것처럼 나에게 모진 소리를 했던 사람들.

두 개의 상단과 유람객들.

그 수가 무려 팔십여 명이다.

다행히 죽은 자는 한 명도 없다.

하지만 모두 벌거벗은 상태로 무릎을 꿇고 있다.

누군가는 머리가 깨져 피를 철철 흘리고 있고, 누군가는 매질을 당해 온몸에 상처를 입고 쓰러져 있다.

하지만 그 고통과 아픔 속에서도, 두려움에 차마 소리 내어 울지 못한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며 신나게 웃고 있는 자들.

정확히 여섯 명이다.

한 명의 예쁘장한 여인과 다섯의 험상궂은 사내들.

찾았다.

일화오악이다.

“오! 저기 또 오는군. 이번엔 돈이 좀 있으려나? 야! 너희들. 상황 파악했지? 괜히 우리 고생시키지 말고, 어서 와서 홀딱 벗고 무릎 꿇어. 가진 거 다 내놓고. 어서!”

다섯 사내 중 눈이 심하게 찢어진 삐쩍 마른 녀석이 험악하게 인상을 구기며 우리를 향해 소리쳤다.

곧바로 예지가 놈을 향해 몸을 날리…… 안 날린다.

날리려다 멈추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보이면 바로 목을 베어 버릴 것처럼 적극적이었던 우리 예지가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더니 이내 나를 돌아봤다.

“오빠, 이번엔 오빠가 나서야 해.”

“응? 왜? 나쁜 마두들 소탕하고 싶다고 했잖아.”

“아니. 그래도 오빠가 나서서 사람들 보는 앞에서 저 녀석들 모두 혼내 줘. 그래야 해.”

“왜?”

“사람들이 오빠 오해하고 있잖아. 그 오해 풀어야지.”

이런! 우리 예지 말이다.

어쩜 이리도 예쁜가 말이다.

얼굴도 예쁘고, 무공도 고강하고, 마음 씀씀이는 천하제일 아닐까 싶다.

이런 상황에서도 내 생각까지 세심하게 다 해 주고.

눈물이 날 정도로 감격이다.

“형님, 예지 말이 맞아요. 그렇게 해요. 저와 한 형은 퇴로를 차단하겠습니다.”

“그, 그래.”

“나는 오빠 뒤에 있을게. 혹시 저놈들이 사람들 인질로 잡을지 모르니까.”

“응. 그래, 예지야. 그런데…… 그럴 필요 없어.”

곧바로 일화오악을 향해 몸을 날렸다.

바람이 되었다.

그 바람에서 광천검이 솟구쳐 나왔다.

악인들에게 자비 따위는 필요치 않다.

일화오악의 얼굴이 보였다.

난 바람이 되었지만, 그들은 마치 멈추어 버린 그림처럼 그렇게 천천히 천천히 놀란 얼굴을 했다.

난 여전히 바람이 되어 그들을 향해 광천검을 휘둘렀다.

콰콰콰콰콰콰콰쾅!

광천검에서 검강이 뿜어져 나왔고, 일화오악이란 연놈들은 이를 막을 사이도 없이 그 힘에 휘둘러 피떡이 되었다.

폭발의 여운이 사라진 자리.

난 홀로 우뚝 서 쓰러진 일화오악을 내려다보았다.

다시 천천히, 또 천천히, 일부러 조금 멋있게 보이는 자세를 최대한 신경 쓰며.

뒤를 돌았다.

팔십여 명의 상인과 유람객들이, 무릎을 꿇은 상태로 입을 쩍 벌려 경악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우리 예지와 의제, 한해북이 내 곁으로 다가왔다.

한해북이 쓰러진 일화오악을 살핀 후 내게 말했다.

“모두 큰 부상을 입고 혼절했습니다, 현화문의 마악치 도사님.”

곧바로 의제가 말을 이었다.

“저 우각도협 곽우적과 대두장의 구절협 한해북 대협이 산을 내려가 인근 문파에 도움을 요청하겠습니다. 다친 분들을 돕고, 이 극악무도한 일화오악 마두들을 무림맹으로 넘길 수 있게 빨리 다녀오겠습니다, 제 의형이신 현화문의 마악치 형님.”

이런 미친. 너무 작위적이잖아!

그런데 예지는 한술 더 뜬다.

“현화문의 마악치 도사님, 아까 소림만두에서 기녀로 변용한 정보원의 정보가 정확히 일치했습니다. 그 악명 높은 일화오악이 정말 이곳에 있었습니다. 마악치 도사님이 아니었다면, 지금 여기 계신 분 중 한 분도 생명을 보전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마악치 도사님의 정의와 협의로 모두를 구한 것입니다. 존경합니다, 현화문의 마악치 도사님.”

하아! 돌겠다.

오해를 푸는 것도 좋지만, 이건 작위적이어도 너무 작위적었다.

결국, 나는 부끄러움에 한숨을 푹 쉬며 예지에게 말했다.

“휴우, 이게 다 아미파의 봉황검 금예지 여협 덕분입니다. 고맙습니다, 봉황검 금예지 여협.”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