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화
피 흘리는 맹수는 무섭다.
자신의 피 맛을 본 악귀는 더 무섭다.
지금 오화서가 그런 눈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다.
비참하고 처참한 몰골로, 맹수와 악귀가 되었다.
그리고 난.
씨익.
웃어 주었다.
순간, 무섭게 나를 노려보던 오화서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그렇게 일그러진 얼굴로 고개를 들어 호로곡 절벽 위를 보았다.
오천여 낭인들.
그들이 호로곡 위에 길게 늘어서 있었다.
심지어 모두 활까지 들고 있다.
중간중간 불이 피어오르고, 오화서의 얼굴이 더더욱 못생기게 구겨졌다.
절벽 아래 자신의 주위를 살핀다.
그제야 본 모양이다.
한가득 쌓인 짚과 마른 장작들.
놈이 나를 본다.
아! 눈빛이 애처롭다.
불쌍해서 못 봐 주겠다.
허공을 향해 손을 펼쳤다.
쉬이이이이이익.
척!
절벽 위에서 단단한 밧줄이 빠르게 날아와 정확히 내 손에 감겼다.
“안녕.”
난 그렇게 오화서에게 인사를 했고.
오화서는 인상을 구기다 구기다 이제는 진짜 악귀의 형상이 되어.
“네에에에에 이노오오오오오옴!”
단전에 있는 모든 내공을 끌어올려 검을 통해 분출했다.
곧바로 절벽 위에서 내가 잡은 밧줄을 끌어당겼고.
내 도약의 힘과 끌어당기는 힘, 거기에 사갑 자의 검강.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그것이 오화서에게 쏟아졌다.
밧줄이 없었다면, 나도 절벽에 부딪혀 땅으로 떨어졌으리라.
하지만 밧줄이 있어서 절벽 위로 오를 수 있었다.
땅에 곤두박질친 오화서.
“우웩!”
내상까지 심각하게 입은 모양이다.
검은 피를 한 사발이나 토한다.
하지만 놈은 이번엔 절대로 날 놓치지 않을 생각인가 보다.
피를 토하자마자, 입 주변을 닦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곧바로 자신의 검을 움켜잡고 몸을 날렸다.
하지만 어디 낭왕이란 이름을 돈 주고 샀겠는가?
이미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다.
낭왕이 손짓을 하자.
쉬이이이익!
쉬이이이익!
쇠사슬로 이어 만든 그물이, 심지어 독까지 묻었다.
그 그물들 수십 개가 오화서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콰콰콰콰콰콰콰쾅!
콰콰콰콰콰콰쾅! 쾅! 쾅!
무지막지했다.
오화서가 진짜 괴물이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낭왕도 만만치 않다.
그물을 뚫고, 찢고, 부수며 계속 내 쪽으로 도약하는 오화서에게 낭왕과 낭인들 중에서도 꽤 고수로 보이는 자들 수십 명이 차륜전을 펼치며 검강과 검기를 쏟았다.
쾅!
결국 쇠 그물과 낭인들의 연이은 공격에 다시 바닥에 떨어지고만 오화서.
다시 낭왕이 손짓했다.
쉬이이이이이이익!
퍼퍼퍼퍼퍼퍼퍽!
화르르르르르르르.
수천 개의 불화살이 호로곡 아래로 날아갔고, 곧바로 호로곡 전체가 불바다가 됐다.
그게 끝이 아니다.
쿠르르르르르릉.
데구르르르르르르.
많이도 준비했다.
커다란 바위에 쇠줄과 짚을 감고, 다시 화약까지 뿌린 모양이다.
불덩이 바위가 연신 호로곡 아래로 굴러떨어졌고, 다시 불기둥이 치솟는 수레까지 쉴 틈 없이 쏟아졌다.
재차 낭왕이 손짓하자, 얼마나 많이 준비했는지 다시 수십 개의 쇠그물이 호로곡 아래로 쫘악 펼쳐져 떨어졌다.
불에 가려 오화서는 이제 보이지도 않는다.
아! 이번엔 진짜 죽나?
진짜 죽은 것 같다.
낭왕도 공격을 멈추었다.
나와 오천여 낭인들은 그렇게 불이 활활 타오르는…… 미친!
저 새끼 뭐야?
무슨 불사신라도 되는 거야?
살아 있다.
새까맣게 탄 인간, 불지옥 중심에서 허리를 펴며 우뚝 섰다.
사람의 형상이 아니다.
온몸은 새까맣게 타고, 눈은 시뻘건 게.
저건 진짜로 악귀다.
낭왕이 인상을 잔뜩 찌푸린다.
그리고 곧.
“저놈의 목을 베는 자에게 낭인촌 세 개의 권리와 금자 일백 냥을 주겠다!”
낭인과 살수의 공통점.
돈이다. 돈 때문에 사람을 죽이고, 돈을 주면 움직인다.
낭왕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와아아아아아아아!”
“와아아아아아아아!”
오천여 낭인들이 자기 목숨 귀한 줄 모르고, 그렇게 도검을 들고 여전히 불이 활활 타오르는 호로곡 아래로 몸을 날렸다.
엄청난 장관이었다.
난, 이쯤에서 빠져야겠다.
쾅!
콰콰콰콰콰콰쾅!
쾅쾅쾅쾅!
콰르르르르쾅쾅쾅!
내가 몸을 뺀 뒤로도, 호로곡 안에서 계속하여 무지막지한 폭발이 일어나고 있었다.
*
서른여섯 가구가 빼곡히 밀집해 살던 산촌이다.
그 역사가 꽤 됐고 사는 게 나름 여유로웠는지, 산촌에서는 보기 힘든 이 층 가옥도 군데군데 있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오늘 내가 도착한 이 산촌에는 사람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가옥들도 꽤 오래전 사람들이 떠났는지, 모두 폐가였다.
그리고 다닥다닥 붙은 가옥들의 중심, 그곳에서 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올 때가 됐는데.
설마 진짜 죽었나?
한참을 기다려도 오화서는 나타나지 않았…… 아!
왔다.
“풉, 큭큭. 아! 미안해요. 그런데 꼴이…… 그거…… 그거 덜렁거리는 거. 새까맣게 탔어도 보기 흉해요. 나뭇잎으로라도 좀 가리지. 큭큭큭.”
그렇다.
저 인간 진짜 무슨 금강불괴신공이라도 익혔나 보다.
아니면 진짜 불사신야 뭐야?
어떻게 저 꼴로 살아남은 거지?
오화서가 왔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았다.
머리카락은 물론, 온몸의 털이란 털은 죄다 다 타 버려 없다.
아니, 그냥 피부까지 새까맣게 다 탔다.
하얀 눈동자도 보이지 않는다.
새까만 숯덩이가 그냥 두 개의 붉은 눈에서 살기라는 광선을 뿜어 대고 있다.
호흡이 역시 거칠다.
화가 나 거친 호흡이 아니다.
아마 연이은 화공으로 인해, 기도마저 화상을 입었나 보다.
상태가 말이 아니다.
저 정도 상처면, 그냥 내가 죽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러다 문득 살왕의 경고가 떠올랐다.
“절대, 절대로 화경의 고수를 얕봐선 안 된다.”
네, 압니다.
저도 저렇게 무시무시한 눈으로 노려보는 악귀랑 싸울 마음 없습니다.
“죽, 인, 다.”
정확히 한 걸음을 뗄 때마다 한 글자씩 말했다.
그렇게 오화서는 진심으로, 이번엔 진짜로 날 죽이려 다가왔다.
하지만.
씨익.
또 웃어 줬다.
그러자 놈의 걸음이 뚝 하고 멈춘다.
이젠 내가 웃는 것만 봐도 뭔가 불안한가 보다.
“풉, 큭큭.”
아이고, 또 웃음이 터져버렸다.
그러자 숯덩이라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오화서의 얼굴이 더 험상궂게 변해 버렸다.
일격필살.
더는 다가오지도 않는다.
내공이 얼마나 남았는지도 모르겠지만, 놈은 이번엔 진짜로 단칼에 날 죽이겠다는 신념으로 내공을 끌어올렸다.
그렇게 그의 모든 내공과 살기를 담은 검이 나를 향해 움직이려 할 때.
쉬이이이익.
바로 옆에 있던, 이제는 아무도 살지 않는 빼곡히 늘어선 집 중, 이 층의 어느 지붕 위에서.
온통 붉은색의 옷을 입은 사내가, 마치 어린아이가 장난이라도 치는 듯 그렇게 오화서를 향해 무언가를 툭 던졌다.
주먹 크기의 거무튀튀한 돌이며 쇳덩이 같은 물체.
오화서는 깔끔히 무시하고 나를 향해 검을 휘두르려 했다.
내 미소가 더욱 짙어졌고.
그제야 오화서도 무언가 아차 싶었나 보다.
곧바로 나를 향해 휘두르던 그 검으로, 검은 구체를 싹둑 잘라 버렸다.
툭.
데구루루루.
잘린 물체를 확인한 오화서.
처음이다.
그가 두려운 표정을 짓는 모습이다.
그는 그렇게 놀라고 두려워하며, 나와 지붕 위에 여전히 쭈그려 앉아 있는 적의 사내를 번갈아 봤다.
“이젠 그만 끝냅시다.”
난 곧바로 사 갑자의 검강을 오화서에게 날렸다.
쾅!
콰르르르르르르르르르.
내 검강과 오화서의 검강이 부딪히며 엄청난 폭발을 일으켰다.
곧바로 난 자리를 떠났고, 지붕 위에 있던 사내 역시 엄청난 신법으로 자리를 벗어났다.
그리고 시작되었다.
폭살문(爆殺門).
황궁에서 엄격하게 금지한 벽력탄을 이용해 사람을 죽이는 살문.
살왕조차 혀를 내두르며 위험하다고 말한 살수들.
그들에게 걸리면, 화경이고 무림오대고수고 뭐고 죽음을 면키 어려울 것이라 했다.
오화서가 이곳에서 죽을 확률이 구 할 구 푼 구 리라 했다.
나와 적의 사내, 폭살문의 문주가 자리를 피하자마자, 오화서를 중심으로 엄청난 폭발이 터져 나왔다.
이건 확실히 인간이 낼 수 있는 그런 폭발이 아니었다.
서른여섯 채의 집이 빼곡히 밀집된 그 산촌이, 오화서를 중심으로 정확하게 계산되어 폭파되고 있는 것이다.
그 폭발이 얼마나 강력하고 대단했는지, 나는 일백 장 뒤로 자리를 피했음에도 다시 오십여 장 뒤로 물러서야 했다.
미친 폭살문 살수들.
벽력탄만 쓴 게 아니라 진천뢰까지 쓴 모양이다.
살왕마저 미친놈이고 가장 위험하다고 인정한 그들이라면, 아마 충분히 그랬을 수도 있다.
아니, 내가 벽력탄이나 그런 거에 지식이 부족하다지만, 저건 확실히 벽력탄 수준을 넘어섰다.
최소한 진천뢰가 열 개 이상 터지고 있다.
아! 이번엔 진짜 끝일 거 같다.
오화서가 진짜로 불사신이 아닌 이상, 저 폭발 속에서 살아남기는 힘들 것이다.
휴우, 살왕이나 만나러 가야겠다.
*
황과촌이라는 마을이다.
농사를 주로 짓는 마을인데, 땅이 비옥해 매년 풍년이라 한다.
농산물을 밭떼기로 사려는 상인들이 얼마나 모였는지, 여느 시골과 다르게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나는 마을 입구에서 살짝 떨어진 표현객잔에 자리를 잡았다.
황과촌으로 들어가려는 상인들, 또 거래를 마치고 황과촌을 떠나는 상인들이 주로 들러 식사를 하는 객잔이다.
그 규모가 상당하다.
이 층으로 된 구조인데, 일 층에만 일백 수십 명이나 되는 손님들이 시끌벅적하게 식사를 하고 있다.
일 층 천장은 뻥 뚫려 있어서, 이 층에서 식사하는 사람들이 일 층을 내려다볼 수 있다.
난 객잔에 들어가 곧바로 이 층으로 향했다.
이 층에도 수십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식사를 하고 있다.
그중 하나의 식탁.
대머리에 체구는 왜소하지만 고급 비단옷을 입은 노인네가 홀로 앉아 있다.
“무슨 생각을 그리하세요?”
“나도 나중에 이렇게 커다란 국숫집을 운영하면 어떨까 생각하고 있었다.”
살왕이다.
“변용은 왜 안 했어요?”
“이 정도면 환골탈태 수준의 변용이다.”
“풉, 그렇긴 하네요.”
“그자는? 죽었나?”
“아마도요.”
“그가 아무리 대단해도 폭살문은 힘들겠지.”
“염라대왕이 와도 그곳에서 살아남긴 힘들 것 같더라고요.”
“위험한 놈들에게 내 이름이 가겠군, 쯧쯧. 그놈들한테만큼은 내 이름을 주고 싶지 않았는데.”
“왜요? 어차피 다 똑같은 일을 하는 거잖아요.”
“아무리 쓰레기 인생들이 모인 밑바닥이라 해도, 상도덕이란 게 있다. 그놈들은 그걸 깡그리 무시하고 있어. 심지어…… 그거. 그게 걸리는 순간…….”
-벽력탄이 유통되고 살수들이 사용하고 있다는 게 걸리는 순간, 황궁에서도 가만있지 않을 거야. 그놈들 때문에 다른 살수들까지 죄다 잡혀가 목이 잘리고 말 거라고.
“아! 그렇긴 하겠네요.”
-그래도 그게 낫지 않아요? 면왕 아저씨도 살수계가 너무 커진 것을 우려해 이런 일도 하는 거잖아요.
“그것도 그것이지만. 모조리 없앨 수는 없어.”
-불쌍한 놈들도 많아. 또 살수는 필수 악이야. 죽을 놈들은 죽어야 하거든.
“하긴, 세상엔 나쁜 놈들이 정말 많지요. 꼭 죽어야 할 나쁜 놈들요.”
“그렇지. 그런데 그놈들 때문에 아예 전체가 싹 다 죽게 생겼으니 걱정이란 것이지.”
-확신하시네요? 오화서가 죽었다고.
-자넨 아닌가?
-뭐, 저도 그렇게 생각하긴 해요. 아! 다른 아저씨들은요?
-혹시 몰라 위장하고 있지. 저기, 저기, 저기.
“풉. 큭큭큭.”
-저렇게 어설퍼요? 진짜 그 전설의 오살 맞아요?
-현역 은퇴한 지 이십 년이나 됐다. 그리고 저 정도면 준수한 거야.
“아, 네. 어련하시겠어요.”
“밥이나 먹자고. 이 집 국수가 맛이 좀 특별해.”
“그래요?”
그렇게 오화서의 죽음을 기정사실화하고, 막 식사를 하려 할 때였다.
“꺄아아아아악!”
“뭐야? 변태 미치광이잖아!”
“이봐! 거지는 나가!”
갑자기 객잔 일 층 입구 쪽에서 소란이 일었다.
뚜벅뚜벅.
뚜벅뚜벅.
숯검정 인간.
피를 철철 흘리며 걷는다.
온몸 곳곳에 살이 통으로 터져 나가 그 새빨간 피부 속이 훤히 드러났다.
아니, 몇 군데에서는 하얀 뼈까지 보인다.
미쳤다.
오화서, 그는 정녕 불사신란 말인가?
그런데 그 순간.
젠장! 나랑 눈 마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