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화
주인 없는 나룻배.
그걸 타고 황하를 건넜다.
노를 저으며 콧노래도 계속 불렀다.
저 멀리 조금 전까지 내가 있었던 그 밀림에서는 계속해서 폭발이 이어지고 있다.
검강이 터지며 연신 번쩍였다.
또 땅이 꺼지고 고목들이 쓰러지면 엄청난 소리를 내었다.
얼른 끝내고 와야 할 텐데.
이러다 황하강 다 건너겠다.
그렇게 내가 황하강의 중간 지점을 훌쩍 지났을 때.
밀림 한가운데에서 연이어 터지던 폭발이 거짓말처럼 뚝 멈추고 말았다.
그리고 곧.
하나의 점이 무지막지한, 실로 살이 떨릴 정도로 엄청난 속도로 내가 타고 있는 배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오화서다.
진짜로 단단히 화가 났나 보다.
대화고 뭐고, 그냥 일격필살로 날 죽일 심산이다.
황하의 물에 발이 닿지도 않았다.
그냥 물 위로, 자신이 낼 수 있는 극한의 신법을 펼치며 그냥 일직선으로 날아오는 것이다.
와! 그가 가까이 올수록 그 얼굴이 보이는데, 진짜 죽이겠다는 일념 하나밖에 보이지 않았다.
“휴우.”
심호흡을 하고 자리에서 일었다.
작은 나룻배에 서서, 광천검을 뽑았다.
사 갑자의 내공이 실린 검강.
그것이 물 위에서 일직선을 그리며 오화서를 향해 날아갔다.
오화서도 전력이다.
곧, 내 검강과 오화서의 검강이 부딪혔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그 폭발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거칠게 흐르던 황하강이 통으로 터져나갔다.
순식간에 주위에 엄청난 양의 소나기가 쏟아졌다.
그게 다가 아니다.
폭발의 위력이 실로 대단했던 게, 짧은 순간이었지만 강의 바닥이 보였다는 것이다.
문제는, 황하강 아래 잠영으로 매복하고 있던 수살채(水殺寨) 살수들이 오화서에게 발각됐다는 점.
내 검강과 부딪힌 오화서가 인상을 찌푸렸다.
너무나 아쉽다는 듯 그렇게 나를 보며 인상을 찌푸린 후, 자신의 검을 다시 움켜잡고 물 아래로 몸을 날렸다.
저들을 다 죽이지 않는 이상, 나를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이제는 제대로 깨달은 모양이다.
물에 빠져 죽는 사람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많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냥 물에 빠져 죽었다고 생각한다.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다.
그래서 수살채 살수들은 쉽게, 또 완벽하게 사람을 죽일 수 있다.
돈을 많이 번다는 뜻이고, 그만큼 수공의 고수들을 많이 끌어들일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오화서는 분명, 물 밑에 있는 살수들을 빠르게 제거하고 나를 쫓을 생각이겠지.
하지만 쉽지 않을 테다.
동정십팔채에야 못 미치겠지만, 천하에 내로라하는 수공의 고수들이 일천 명 가까지 잠영을 하며 놈을 기다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펑!
퍼퍼퍼펑!
퍼퍼퍼퍼퍼퍼퍼퍼퍼펑!
그렇지 않아도 거친 물살의 황하강이다.
그런데 이젠 황하강 여기저기서 물기둥이 솟구친다.
피로 물들어 빨갛게 변해 버린 황하강.
혈하강(血河江)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 것 같다.
동시에 그 물기둥이 하늘에서 퍼져, 피의 비를 사방에 뿌리기 시작했다.
혈우(血雨)를 맞는 건 별로 좋지 않다.
꺼림칙하지 않겠나.
난 타고 있던 나룻배를 버리고 등평도수로 반대편 강가로 신나게 달렸다.
퍼퍼퍼퍼퍼펑!
펑펑펑!
퍼퍼퍼펑!
여전히 황하에서는 물기둥이 계속 터져 나왔고.
나는 이번에도 콧노래를 부르며 흥겹게 발걸음을 옮겼다.
시간이 꽤 걸릴 것이다.
아니, 어쩌면 오화서가 여기에서 죽을지도 모르겠다.
육지에서라면야 상대조차 안 되겠지만, 물속에서만큼은 수공의 고수들이 열 배 스무 배의 힘을 낼 수 있으니 말이다.
*
“빌릴리 메뚝메뚝 빌릴릴리. 빌릴리 메뚝메뚝 빌릴릴리. 황금빛 논밭에 풍년이 온다.”
어깨를 들썩이며 노래를 불렀다.
허리춤까지 자란 잘 익은 황금빛 벼가 끝도 없이 이어졌다.
황하의 반대편은 밀림 평야.
이곳은 추수를 바로 앞둔 벼들이 끝도 없이 펼쳐진 황금빛 들녘이다.
잘 익은 벼들 사이로 걸음을 걸으니, 기분이 너무 좋았다.
그러다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뒤를 돌아보았다.
물에 젖은 생쥐 꼴의 사내가 서 있었다.
한 손에는 검을 꽉 움켜잡고, 얼굴은 새하얗다 못해 새파랗게 질린 사내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나를 노려보고 있다.
이번엔 고생을 좀 많이 했나 보다.
상태가 심각해 보인다.
그럼에도 눈빛만큼은 필살의 의지가 담겨 있다.
눈빛으로 날 죽이려는 생각일까?
실제 그의 눈빛에는 그만큼 대단한 살기가 담겨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냥 그렇게, 무서운 눈으로 한 손에는 검을 꽉 움켜잡고 나를 향해 터벅터벅 다가오…… 못 오지.
내가 그를 향해 방긋 웃어 보였다.
그런 후, 오른팔을 쫙 펼치듯 들었다.
화르르르르르.
내 오른쪽 들녘에서 갑작스레 엄청나 불길이 치솟았다.
이번엔 왼팔.
화르르르르르.
내 왼쪽 들녘에 수십 장 높이의 불길이 치솟았다.
이를 본 오화서.
인상을 와락 구긴다.
난 더 짙은 비웃음을 그에게 날리며 말했다.
“감기들 것 같아서요. 옷 좀 말려요.”
동시에 광천검을 뽑아 휘둘렀다.
사 갑자의 검강.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다시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고, 난 곧바로 몸을 뺐다.
내가 빠져나간 그 자리는, 사방에서 일어난 불기둥이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불은 사람을 죽이기 위한 아주 좋은 수단이다.
다 타 버린다.
역시나 살수들이 살행을 했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다.
그냥 재수가 없어서 불이 났고, 그래서 죽었다고 생각한다.
살수들이 가장 많이 쓰는 수법 중의 하나가 화공(火功)이다.
화살문(火殺門)의 살수들도 수살채의 살수들만큼 잘해 주리라 믿는다.
아니, 어쩌면 이번엔 진짜로 오화서가 죽을지도 모르겠다.
불기둥이 얼마나 대단한지, 그게 하늘에 닿을 정도로 어마어마하다.
이미 수십 장 밖으로 피했는데, 그 열기가 이곳까지 고스란히 전해진다.
오화서도 사람인 이상, 쉬이 살아남지는 못할 것이다.
나는 조금 전 부르던 노래나 계속 부르며 다음 장소로 가야겠다.
“메뚜기 소년, 빰바밤. 메뚜기 소년 빰바밤. 네가 날면 황금빛 들녘에 풍년 온단다. 빌릴리 메뚝메뚝 빌릴릴리…….”
*
동굴이다.
깊은 산중에 있는 천연 동굴로 왔다.
이쯤이면 난 도망가는 게 아님을 오화서도 안다.
유인하는 거다.
하지만 평생 자신의 무공에 절대적 자신감을 갖고 있는 오화서는 따라오지 않을 수 없다.
철저하게 조사한 놈의 성격과 예상 행동이 그러하다.
뭐, 따라오지 않아도 다른 방법이 있다.
화경의 고수를 상대로 제이, 제삼의 대비도 하지 않았을 리 없지 않겠는가.
그래도 따라올 것이다.
그렇게 난 엄청난 크기를 자랑하는 천연 동굴 입구에 섰다.
기다렸다.
오화서가 오기를.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큭큭큭큭.”
아! 웃음을 참으려 했는데, 오화서의 꼴을 보니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옷이며 머리며 홀라당 다 탔다.
진짜 중요 부위만 아슬아슬하게 타는 걸 막았나 보다.
그런 꼴의 숯검정이 걸어오는데, 어찌 웃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난 진짜 염라대왕이라도 죽일 수 있을 것 같은 살기를 뿜어 대며 나를 향해 걸어오는 오화서를 비웃어 준 후, 손짓을 했다.
따라 들어오라고.
놈이 움찔했다.
이젠 놈도 조금 무서운가 보다.
그래서 다시 놈을 향해 눈을 부릅뜨고, 엄지손가락으로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다시 살기가 폭발하는 오화서.
난 곧바로 동굴 안으로 몸을 날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오화서가 내 뒤를 따라 동굴 안으로 들어온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팔살문(八殺門)이란 살수들이다.
휴(休)ㆍ생(生)ㆍ상(傷)ㆍ두(杜)ㆍ경(景)ㆍ사(死)ㆍ경(警)ㆍ개(開)는 팔문(八門)이다.
산에서 길을 잃어 죽은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는가?
숲속에서 길을 잃어 죽은 사람도 있다.
길을 잃지 않았어도, 그냥 인적이 드문 곳에서 아무 이유도 없이 죽어 나타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있다.
미로(迷路)다.
진(陣)이며.
팔살문의 살수들이 가장 많이 쓰는 살해 방법이다.
이는 고수고 뭐고 없다.
제갈세가의 사람들에게 쓰기는 조금 곤란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팔살진에 갇힌 사람이 제갈세가의 사람이 아니라면, 또 평소 진법에 관해 깊은 지식을 깊게 쌓은 사람이 아니라면, 그가 아무리 대단한 고수라 하여도 빠져나오지 못한다.
말라 죽는 것이다.
오화서는 그렇게 끝을 맺을 것이다.
살왕도 이번만큼은 그 가능성을 구 할이나 점쳤다.
난 동굴에 들어가자마자 나왔다.
생로(生路)를 알고 있기에 쉬이 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오화서는 나올 수 없다.
왜?
내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그는 진법 같은 건 익히지도 않았다.
아니, 진법 책 한 권 본 적도 없다.
진법의 진 자도 모르는 문외한이란 뜻이다.
암석으로 수천 년, 어쩌면 수만 년 동안 자연 생성된 이 석굴은 그 깊이가 몇 리에 달한다고 했다.
팔살문에서도 무림맹주와 같은 거물에 대한 살해 의뢰가 들어왔을 때나 쓰려고 아끼고 아꼈던 최후의 수단이 이 동굴이라 했다.
어쩌면 오화서는 진짜 여기서 끝을 맺을지 모른다.
아무리 생각해도 놈이 이 동굴을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으아아아아아아악!”
“죽인다아아아아아!”
동굴 안에서 놈의 악에 받친 괴성이 메아리로 계속 들여오고 있다.
난 두 손을 모아 동굴을 향해 합장까지 한 후에 자리를 떠났다.
그래도 일 할의 생존 가능성이 있으니, 다음 장소로 이동해야겠…… 어?
쿠르르르르르르르르.
갑자기 땅이 울렸다.
지진인가?
하필 왜 이때.
쿠르르르르르르르릉.
땅의 진동이 더 심해졌다.
쿠르르릉.
쿵.
콰르르르르르르릉.
지진 때문에 산사태가 났다.
여기저기서 산의 부분이 깨지고 터져 바위며 나무며 흙이며 아래로 굴러오기 시작했다.
지진이…… 아!
미친!
아니다.
지진이 아니다.
동굴 안에서, 감히 인간의 것이라고 생각하기 힘든 엄청난 기운이 감지되었다.
폭발이다.
콰아아아아아아앙!
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콰르르르르르르쾅쾅쾅쾅쾅!
이 미친놈!
산을 통으로 터뜨리려 한다.
이미 동굴로 이어진 진의 팔문(八門)에서 엄청난 폭발이 터져 나왔다.
산과 땅이 통으로 흔들리며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X 됐다.
이번엔 내가 위험하다.
난 정말 최고의 속도로 신법을 펼쳐 다음 장소로 이동해야 했다.
내가 산을 벗어나자마자, 산 자체가 무너져 내렸고.
“죽! 인! 다! 마! 악! 치!”
괴수의 음성이 내가 향하려는 방향 저 멀리까지 울려 퍼졌다.
온몸의 털이 쭈뼛 설 정도로, 모골이 송연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더 빨리 달렸다.
죽어라 달렸다.
*
그 먼 옛날.
위, 촉, 오.
유비, 관우, 장비, 조자룡, 제갈량이 살았던 그 시대 말이다.
제갈량은 위나라의 사마의를 유인해 상방곡에 가두었다.
상방곡은 그 생긴 모양이 호리병을 닮았다 하여 호로곡이라 불리기도 했다.
들어가긴 쉽지만, 입구를 막아 버리면 빠져나올 수 없는 천혜의 함정이 바로 호로곡이다.
호로곡에 갇힌 사마의는 마른 장작이 쌓여 있는 것을 보고 불길함을 감지했고, 곧바로 골짜기 위에서 불화살이 쏟아졌다.
절망한 사마의는 함께 출전한 두 아들을 끌어안고 “우리 삼부자가 한꺼번에 이 자리에서 죽게 되었구나!”라며 통곡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회오리바람이 불고 먹구름이 덮이면서 천둥이 치더니 장대 같은 소나기가 쏟아져 내렸다.
그렇게 사마의는 군사를 이끌고 호로곡을 빠져나와 살게 되었다.
사마의가 살아서 호로곡을 빠져나갔다는 보고를 받은 제갈량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고 전해진다.
모사재인 성사재천(謀事在人 成事在天)이다.
“일을 꾸미는 것은 사람에게 달려 있고 일을 이루는 것은 하늘에게 달려 있다더니, 이는 강제로 할 수 없는 것이로구나!”
그리고 오늘.
내가 그 삼국시대의 호로곡에 왔다.
아니, 놈도 함께 왔다.
피투성이가 된.
옷은 이제 넝마도 아닌 걸레 조각 하나를 거기에 덜렁덜렁 붙인 듯 달고 있는 오화서.
악귀가 되어 있었다.
그냥 사람이 뿜어낼 수 있는 살기 따위가 아니다.
나를 보는 눈이.
피를 철철 흘리며 다가오는 그 기운이.
맹수며 악귀였다.
하지만 놈은 오늘 이곳에서 죽는다.
제갈량이 성공하지 못 한 일, 내가 오늘 해낼 것이다.
왜?
이곳 호로곡에 그들이 와 있다.
낭인 역사상 처음으로 남방 낭인회와 북방 낭인회가 결탁했다.
그 낭인의 숫자만 오천 명에 달한다.
어중이떠중이 삼류 낭인들이 아니다.
고르고 고른, 노련하고 강인한 낭인 오천여 명이 이미 이곳 호로곡을 철통같이 포위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중심에 그가 있었다.
낭인들의 전설이자 왕인 낭왕(浪王).
낭왕이 살왕의 이름마저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지금 오화서를 죽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