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마두가 된 이유-166화 (166/245)

166화

“국수 나왔습니…….”

툭.

툭.

늙은 주인장이 추가로 주문한 국수와 수육 그리고 화주를 쟁반에 담아 내오던 그 순간.

의제와 한해북이 식탁에 머리를 박으며 쓰러졌다.

“쯧쯧, 그래도 유명한 놈들이라 조금은 버틸 줄 알았더니. 벌써 저승 문을 넘었군.”

쾅.

내가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늙은 주인장을 향했다.

“누구냐, 넌?”

초라한 국수 노인네는 표정의 변화가 조금도 없이 답했다.

“이십 년 전까지 사람들은 나를 살왕이라 불렀다.”

“나에게 왜 이러는 것이지?”

“한 달 보름 전, 산서에서 네게 죽임당한 혈철마관 육시경이 내 동생이다.”

“잠깐! 육시경은 우리가 아닌 다른 사람이 죽였다.”

“무림맹에서 알려 주더군. 내 동생의 정보를 일부러 흘린 자가 있다고. 그게 바로 너라고.”

“그, 그걸 도대체…….”

“친구들 따라갈 시간이다.”

“감히 살수 따위가 나를 어쩔 수 있다고 생각하느…….”

퍼퍼퍼퍼펑!

갑자기 국숫집 바닥이 터져나갔다.

내 발아래, 다섯 명이다.

난 곧바로 허공으로 몸을 띄우며 광천검을 휘둘렀다.

엄청난 검강이 바닥을 뚫고 나온 자들에게 쏟아졌다.

콰콰콰콰콰콰콰쾅!

다섯 명 모두 즉사.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다.

폭발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 날카로운 쇠꼬챙이가 이를 뚫고 나를 향했다.

푹.

어깨가 관통당했다.

하지만.

쉬이이이이익.

푹.

콰콰쾅!

내 광천검 역시 놈에게 적중했다.

쿠당탕탕탕.

입과 눈, 귀, 코, 오공에서 피를 흘리며 축 늘어진 살왕.

다시금 다가가 그의 심장을 광천검으로 찔렀다.

확인 사살이다.

그제야 안도할 수 있었다.

“으윽.”

하지만 쇠꼬챙이에 찔린 상처가 만만치 않다.

난 신음성을 흘리며 그렇게 모두가 죽어 버린 국숫집을 힘겹게 걸어 나왔다.

그런데, 젠장!

한 사내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그곳에 있었다.

“누구요?”

“여드레 전 네가 판당협에서 죽인 아홉 아이들의 스승이다.”

비정검사 오화서다.

역시, 그가 나타났다.

광마일기에 적힌 그대로, 그는 여유로웠다.

“살…… 살려 주세요.”

“흐흣, 듣던 것과 달리 찌질한 놈이구나.”

“네. 어찌 말하셔도 좋으니, 살려만…….”

그때였다.

놈이 나를 비웃고 있는 그 얼굴.

그것을 보며 내가 광천검을 출검했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오화서는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검도 뽑지 않았다.

무려 사 갑자에 달하는 내 검강을, 그는 그냥 선 상태로 여전히 입가에 비웃음을 머금고 막아 내었다.

하지만 그게 끝일 리가 있겠나.

투투투투투투투투투투툭!

조금 전 국숫집 바닥이 터지던 것과는 비교도 안 될 엄청난 인영들이 갑자기 땅을 뚫고 솟아 나왔다.

그 수가 무려 서른 명에 달했다.

살수계에서도 유명한 토살문(土殺門)이란 살수들이다.

“죽여라!”

땅을 뚫고 나온 인영들이 일제히 오화서를 향해 살벌한 병장기를 휘두르고 암기를 쏟아부었다.

그들만이 아니다.

국숫집 주변에 있던 수풀과 나무, 바위 사이에서도 무려 삼백 명이 넘는 살수들이 쏟아져 나왔다.

목표는 하나.

오화서를 향해서 도검과 암기를 날렸다.

콰콰콰콰콰콰콰쾅!

쾅쾅쾅쾅!

콰르르르르르쾅쾅쾅!

오화서의 검강, 그리고 살수들의 도검과 암기가 엄청난 폭발을 끝도 없이 일으켰다.

난, 다친 어깨를 부여잡으며 곧바로 현장을 빠져나갔다.

죽어라, 진짜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 달리고 또 달렸다.

길도 없는 수풀을 그렇게 미친 듯이 한 시진이나 달려 오화서에게서 도망쳤다.

*

털썩.

깊은 산중.

상처에서 피가 계속 쏟아져 나왔다.

얼굴은 창백해지고 식은땀이 연신 흘러내렸다.

하지만 이곳이라면 안전할 것이다.

그래서 잠깐의 휴식을 취하려 나무에 기대어 앉았다.

그런데.

“흐흐, 살왕이 제대로 준비한 모양이더군. 멍청한 놈들이 지들 목표가 누군지 몰라 헷갈렸던 덕분에 다 저세상으로 갔지만 말이야.”

입고 있는 옷에 먼지 한 톨 없이 멀쩡한 모습의 오화서가 다시 내 앞에 나타났다.

토살문 살수들에게 큰 기대를 걸지 말라는 살왕의 말이 생각났다.

하늘이 노래지고, 정말 죽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저한테 왜 이러세요?”

울먹울먹.

눈물이 쏟아지려는 것을 억지로 참으며, 그리 물었다.

오화서의 비웃음이 한층 더 짙어졌다.

그가 한 걸음 한 걸음, 그렇게 비웃음을 머금은 채 나에게 다가왔다.

난 죽음의 공포에 질린 얼굴로 그저 덜덜 떨기만 했다.

그런데 그때.

이상한 향기가 바람을 타고 날아왔다.

숲에서는 도저히 맡을 수 없는 그런 향이었다.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서 울먹이던 것을 멈추고 멍하게, 마치 무엇에 홀린 것처럼 웃었다.

비웃음을 머금고 나를 향해 다가오던 오화서의 걸음도 멈추었다.

심지어 나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고개까지 돌려 이상한 향기가 날아오는 방향으로 향했다.

와락 인상을 구기는 오화서.

그도 이번엔 그냥 흘려 버릴 수 없다는 생각을 한 모양이다.

어찌 아니겠는가?

이번 살수는 그냥 살수도 아닌 독살곡(毒殺谷)의 살수들이다.

사천당가와 더불어 독으로 그 악명을 제대로 떨치던 독곡(毒谷).

그 후예들이 독곡을 재건하기 위해 돈을 벌려 살수계에 뛰어든 것이다.

다른 건 몰라도, 그들의 독은 진짜다.

화경의 고수 또한 쓰러뜨릴 수 있는 진짜 독 말이다.

그리고 그때.

내가 다시 한번 광천검을 출검해 휘둘렀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진짜 엄청난 폭발이 연이어 오화서에게 쏟아져 터졌다.

그가 서 있던 자리 뒤로, 무려 서른 장에 달하는 부채꼴 모양의 깊은 밭고랑이 생길 정도였다.

나는 곧바로 다시 도주했다.

내가 도주하자, 폭발이 여운이 끝나기도 전 일이백 명의 흑의 복면인들이 오화서를 향해 몸을 날리는 것이 보였다.

그래, 열심히들 싸워라.

*

한 달하고도 십여 일 전, 면왕식당.

“살수들이 면왕 아저씨의 말을 들을까요?”

“듣지 않지. 내가 말했잖아. 그놈들은 오로지 돈을 위해 사람을 죽이고, 돈을 줘야 움직인다고.”

“그럼 열심히 벌어야겠네요. 국수 열심히 만드세요. 한 삼사십 년 열심히 해서 대박 나면, 살수 삼천 명 정도 고용할 수 있지 않겠어요?”

“지금 그걸 농담이라고 하는 말이냐?”

“아니, 제 말은. 면왕 아저씨 가진 돈 없잖아요. 그런데 그들을 어떻게 움직일 수 있냐고요.”

“내가 직접 돈을 주지는 못해도, 그들이 엄청난 돈을 벌 수 있게 해 줄 수 있거든.”

“네? 그런 방법이 있어요?”

“있다.”

“그게 뭔데요?”

“내 이름.”

“이름?”

“살왕.”

“살왕이란 이름이요?”

“그렇지. 사십 년 넘게 단 한 번의 살행도 실패한 적이 없다. 사십 년 동안 내가 죽인 초절정 고수만 해도 열여덟 명이나 된다. 당연히 의뢰인에 대한 정보가 누설된 적도 없지. 나와 우리 살문의 의뢰비가 얼마나 뛰었겠느냐?”

“아! 그렇죠. 저번에 그렇게 말씀하셨었죠.”

“살왕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면, 그냥 순식간에 부자가 되는 것이다. 그 이름을 걸고 이번 일을 진행할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모든 살문에 전해야지. 살왕이 살왕이란 이름을 걸고 후계자를 지목할 것이라고.”

“오화서를 죽이는 살문에 살왕이란 이름을 넘기겠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렇다.”

“대, 대박. 와! 진짜 개나 소나 다 달려들겠는데요?”

“그래서 말이다, 마 도사.”

“네, 면왕 아저씨.”

“돈 좀 있나?”

“네? 돈이요?”

“그래. 좀 많이 필요하다.”

“갑자기 돈은 왜요?”

“천하에 산재하는 모든 살문에 이 말을 철저히 비밀을 유지한 채 전하려면 돈이 많이 들거든.”

“오늘 국수 판 돈만 해도 은자 구십 냥 넘잖아요.”

“은자 말고. 이런 일에는 누런 게 필요해.”

“가끔 면왕 아저씨도 얼굴에 철면피를 깐 것 같을 때가 있어요.”

“철피공은 익히지 않았다.”

“그래서 얼마요?”

“금자 열 냥?”

“장난해요?”

“아! 계산을 잘못했군. 한 여덟 냥이면 될 것 같다.”

“진짜 이 양반이. 어디 돈 맡겨 놨나?”

“아이쿠, 내 정신 좀 봐. 내가 하오문에 계속 거래하던 녀석이 있는데, 그 녀석 통해서 의뢰하면 금자 다섯 냥으로도 어떻게 될 것 같다.”

“에휴, 알았어요. 다 저를 위해서 애써 주시는 건데. 금자 열 냥. 다 드리겠습니다. 남는 돈으로 나중에 어디를 가건 그럴듯한 식당 여는 데 쓰세요.”

“내가 이래서 자네를 좋아한다니까, 하하하!”

*

펑!

퍼퍼퍼퍼펑!

콰콰콰콰콰콰콰콰쾅!

저 멀리, 깊은 산중에서 계속 폭발이 이어지고 있다.

이번 싸움은 오화서도 만만치 않은 모양이다.

난 다시 열라게 달리기 시작했다.

이번엔 한나절이나 달렸다.

그렇게 그곳에 도착했다.

황하강을 끼고 늘어선 평지.

큰 나무들과 넝쿨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밀림(密林)이다.

피를 뚝뚝 흘리며, 일부러 흘리는 가짜 피다.

나무와 넝쿨을 헤치며 걷는 것이 쉽지 않았다.

쉽지만 어려운 척, 힘든 척 그렇게 걸었다.

그렇게 저 멀리 주인 없는 배가 있는 곳으로 가려던 그때.

얼굴은 숯덩이를 발랐는지 엉망진창이고, 옷은 여기저기가 뜯기고 해진 오화서가 나타났다.

고생을 꽤 했는지 화가 잔뜩 난 얼굴이다.

순간 웃음이 터져 나오려 했지만, 정말 꾸욱 참았다.

오히려 웃음을 참으려 인상을 쓴 게, 지금 내가 너무 아프고 힘들다는 표현으로 보일 수 있었다.

“운이 좋은 놈이구나. 여기까지 도망칠 수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아이야, 이제 끝이다.”

“잠깐만요! 진짜 저한테 왜 이러세요?”

“됐다. 이제 재미없구나. 그냥 가라.”

오화서가 검을 뽑으려 했다.

그런데 말도 안 되는, 보고 있어도 이게 실제인가 싶은 일이 일어났다.

사람 허벅지만큼 굵은, 빽빽하게 늘어선 커다란 나무 사이로 여기저기 뒤엉켜 자라던 넝쿨이 저절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내 그것들이 사방에서 들고 일어나더니, 오화서를 마치 누에가 실을 뽑아 제 몸을 둘러싸듯, 그렇게 오화서의 몸을 통으로 감아 버렸다.

아니, 막 몸을 통으로 옥죄려던 그 순간.

콰콰콰콰콰콰콰콰쾅!

곧바로 엄청난 폭발이 일었고, 넝쿨들은 갈기갈기 찢겨 사방으로 비산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다.

쿠우우우우우우웅.

쾅! 쾅!

콰콰콰콰콰콰콰콰쾅!

하늘을 향해 십 장 높이까지 자란 고목들이 갑자기 오화서를 향해 쓰러지기 시작했다.

한두 그루가 그리 쓰러진다면 오화서에게 그 어떤 영향도 끼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한두 그루가 아니다.

수십 그루, 수백 그루.

그것들이 땅으로 꺼지고 하늘로 치솟으며, 마치 살아 있는 생물이라도 되는 듯 그렇게 오화서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귀찮다는 듯 인상만 찌푸리던 오화서도, 시간이 지날수록 진지하게 그 나무들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다시 넝쿨들까지 살아 움직여 오화서를 가두려 했다.

그리고 내 눈에 그들이 보였다.

목살문(木殺門)의 살수들.

산을 무너뜨리고 나무들을 쓸어버려, 대규모 살상을 일으킨다는 살수들이다.

무지막지했다.

단순히 살수공만을 익힌 살수들이 아니다.

토목과 지질 등 많은 학문을 깊이 익히고 통달한 똑똑한 살수들이다.

“네 이놈!”

장정 다섯 명에서 열 명이 팔을 쭉 벌려야 감쌀 수 있을까 싶은 굵기의 나무 스무 그루를 단칼에 베어 버린 오화서가 호통을 치며 나를 향해 날아왔다.

제대로 열 받은 얼굴이다.

기필코 나를 죽이겠다는 얼굴이기도 했다.

그가 손으로 꽉 쥔 검에서 무려 열 장에 달하는 무지막지한 검강이 뿜어져 나와 나를 향했다.

나도 곧바로 광천검을 출검했다.

내 사 갑자의 검강과 오화서의 검강이 초토화된 밀림 한가운데에서 부딪혔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엄청난 폭발.

열 장 크기의 그 엄청난 나무들이 사방으로 터져 비산하는 순간이었다.

동시에 나도 몸을 날려 냅다 도주를 시작했다.

“이번엔 도망가지 못한다!”

곧바로 오화서가 사자후까지 터뜨리며 내 뒤를 쫓았다.

아니, 쫓으려던 그 순간.

다시 밀림이 그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콰르르르르르릉.

쿵! 쿵! 쿵!

쿠르르르르르릉!

땅이 꺼지고, 고목들이 쓰러지고, 그 사이사이로 수백에 달하는 살수들이 오화서를 공격했다.

당연히 나를 쫓던 오화서는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난 콧노래를 부르며 여유롭게 달렸다.

“으아아아아아아악! 꼭 죽인다, 마악치!”

비명이 아닌 절규.

분통이 터져 악에 받친 오화서의 절규가 저 멀리 밀림 속에서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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