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화
“그놈이 왜?”
“진짜 동생이었군요.”
“맞아, 내 동생. 그래서 그놈이 어쨌는데? 혹시 마 숙수 자네 친구들에게 해코지라도 했나? 아닌데. 그놈이 듣기로 지랄맞은 놈이긴 해도, 감히 수룡검에게 덤빌 간덩이는 없는 놈인데. 약한 사람들만 해코지하지.”
“정말로요?”
“모르나? 혈철마관이라면 꽤 유명한 마두 아닌가. 마두들 중에서도 상쓰레기 개마두.”
이 양반, 술이 다 깬 모양이다.
흥분하여 또렷한 발음으로 나에게 말한다.
“개마두요? 대마두는 들어 봤어도 개마두는 처음 들어 보는데요?”
“뭐, 별 뜻 있겠나? 개쓰레기 같은 마두니 그냥 개마두라 부르는 것이네.”
“동생이라면서요?”
“배다른 동생. 어렸을 적 한두 번 본 적은 있지만, 그 후로는 일 갑자 동안 마주친 적도 대화를 나누어 본 적도 없다네.”
뭐야?
복수를 꼭 해 줘야 할 만큼 가까운 동생 아니었어?
“그런데 그놈은 진짜로 왜 그러는가, 마 숙수?”
“그게…… 제 친구들이 마두 잡는다고 했잖아요.”
“그랬지. 오늘도 손님 중에 수룡검 이야기하는 손님들이 꽤 많았지.”
“제 친구들이 혈철마관 육시경 대협을 잡았다고 합니다.”
“대협은 무슨 얼어 죽을 육시랄 대협인가?”
“그래도…….”
“그래서? 죽였나?”
뭐지?
아! 이건 내가 예상했던 반응이 아닌데.
“아니요.”
“왜? 그놈은 죽어 마땅한 쓰레기 개마두라니까. 나 때문에 살려 둔 건가?”
“육시경 대협…… 그러니까 그자를 잡다가 친구들이 우연히 알게 됐나 봐요.”
“내 동생이란 것을?”
“네.”
“어허, 그거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텐데.”
“저희가 개방, 하오문에 돈을 좀 많이 쏟아부었거든요. 마두들 정보 얻으려고요. 아마 그때 그 정보도 함께 넘어왔나 봐요.”
“음, 그럴 수도 있겠군.”
조금 전까지 혀는 꼬부라지고 눈은 반쯤 풀렸던 양반이 멀쩡한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살왕은 그렇게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마 도사, 자네.”
“네, 면왕 아저씨.”
“술 좀 센가?”
“현화문을 떠나고 술을 많이 마셔보진 못했지만, 아직까지 저기 쓰러져 자는 오살 아저씨들처럼 된 적은 없습니다.”
“큭큭큭, 마음에 드는군.”
“저도 아저씨가 마음에 들어요.”
“고맙네. 진심일세. 모든 게 다 고마워.”
“저도 고마워요. 까마득한 후배인 제 말에 마음의 상처도 받을 수 있었고, 자존심이 상할 법도 한데, 잘 따라와 주셨어요.”
“흐흐, 그래. 큭큭. 마 도사.”
“네, 면왕 아저씨.”
“그놈 이야기를 하려면, 어쩔 수 없이 내 이야기도 해야 하네.”
“긴가 보죠?”
“최대한 짧게 하겠네.”
“술 많습니다. 시작하시죠.”
“그래, 그래. 그런 시절이 있었지. 나도 남부럽지 않은 비단옷 입고, 남들이 해 주는 음식 먹으며, 세상 부러울 것 없이 살던 그 시절 말일세.”
살왕은 잠시 회상에 잠긴 눈으로 옛일을 생각하다가 본격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천운장이라는 장원의 외아들이었다네. 부자였고 힘도 제법 갖춘 그런 가문이었지. 부러울 것이 없었다네, 하하.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한 여인과 갓난아이를 데리고 오더군. 어머니는 바닥에 주저앉아 울고불고, 뭐 자네가 지금 머리로 상상하는 그 장면일 것일세.”
“갓난아이가 육시경이었군요.”
“그렇지. 석 달 동안 우리 집에 있다가, 어머니가 아버지를 얼마나 달달 볶으며 못살게 굴었던지, 결국 그 여인과 육시경은 천운장을 떠나야 했네. 그렇다고 막 그냥 내보내고 그런 건 아니었어. 천운장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커다란 장원도 내주고 일꾼이며 시비며 호위무사며, 돈까지 다 넉넉하게 지원해 주었지. 그게 끝이네. 그 이후로 그 녀석을 본 적이 없어.”
“그냥 남이네요?”
“후후, 그렇지. 남이지. 삼 년 동안 아예 잊고 살았어. 아버지는 이틀에 한 번꼴로 그 집을 드나들었지만, 나와 어머니는 아예 잊고 살았어. 그러던 어느 날 밤, 흑의 복면인 수십 명이 우리 천운장의 담벼락을 넘었네. 살수들이었어. 그것도 꽤 유명한 살문의 살수들.”
“살수요? 갑자기 살수가 왜?”
“당시에는 나도 몰랐네. 아버지는 어떻게든 나만은 살리려고 하셨고, 그렇게 장원의 모든 사람이 죽는 가운데 가까스로 난 살아남았지. 그때 아버지가 나를 보내며 그런 유언을 하셨네. 시경이를 보살펴 달라고.”
아! 그래서 그런 건가?
생판 남이라 할 수 있는 육시경의 복수를 했던 게.
“그때 내 나이 열 살이었지. 가문은 망하고, 가족은 다 죽고. 육시경네 집으로 도망갔네. 거긴 멀쩡하더군. 그리고 육시경의 어머니가 나를 내쫓더군. 아주 매몰차게 말이야. 그리고 그때 보지 말아야 할 사람을 보았어.”
“누구요?”
“아버지의 가장 가까운 친구. 우리 천운장만큼 커다란 가문의 주인. 그자가 그곳에 있었던 거야.”
“설마…… 그 사람과 그 여자가 그런 거예요?”
“나중에 내가 힘이란 걸 갖게 된 후 알아보니 대충 그랬던 것 같더군. 뭐, 확실하지 않아. 그 두 사람 다 그때는 육시경의 손에 의해 갈기갈기 찢겨 죽은 지 몇 년이 지난 시점이었으니까.”
“아…… 이건 뭐, 제가 뭐라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네요.”
“됐네. 나도 잊고 있던 일이니. 위로도 필요 없고, 공감할 필요도 없고. 그냥 늙은이의 옛날이야기라 생각하며 들어 주게나.”
“네.”
“아버지의 친구였던 그자는, 그 여자가 날 내쫓아내자 곧바로 다시 나를 불러 장원 안으로 데리고 갔지. 그런 후 복수하게 해 주겠다며, 힘을 키워야 한다며, 나를 어디로 보냈다네.”
“설마, 살문이었어요?”
“그렇네. 당시 살수계는 그리 크지 않았어. 제대로 된 살문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 규모의 살문은 두 군데뿐이었지. 우리 천운장을 멸문시킨 살문 말고, 그와 경쟁 관계에 있는 살문으로 나를 팔아버린 거야. 허허허.”
“그렇게 아저씨의 살수 생활이 시작된 거군요.”
“맞아. 그런데 팔려 왔건 뭐건. 복수를 생각할 겨를도 없었어. 나 말고도 팔려 왔거나 잡혀 온 아이들이 수백 명은 됐고, 매일 몇 명에서 많게는 열 몇 명씩 맞아 죽거나 굶어 죽는 혹독한 수련이 시작되었거든.”
“그렇게 해요? 살수 수업은?”
“내가 살왕이 된 입장에서 생각해도 미친 수련 법이야. 너무 비합리적으로 무식하게 수련했어. 쯧쯧. 이래서 살수들도 배워야 한다니까.”
아버지의 죽음.
그 안에 숨겨진 배신과 음모.
그리고 지옥과 같던 살수 수업.
살왕은 이 모든 것을 줄곧 담담한 얼굴로 말하고 있었다.
마치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밥 한 덩이를 먹기 위해, 옆에 있는 아이들을 돌로 때려죽여야 했네. 미친 짓이지. 이해하기 힘들 거야. 공감은 더더욱 안 되고. 그런데 정말 그러지 않으면 죽었어. 굶어 죽고, 맞아 죽고. 무서웠다네.”
살왕은 옅은 한숨을 내쉰 후 말을 이었다.
“휴우. 죽음도 무서웠지만, 그 살수들의 매질은 정말 혹독하게 무서웠네. 변명 같지만, 정말 그때는 아무 생각도 없었어. 밥을 먹기 위해, 맞지 않기 위해, 또 죽지 않기 위해. 다른 아이들을 죽여야 했네.”
“…….”
“열일곱 살이 됐을 때. 내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아이들이 모두 내게 허리를 숙이고 무릎을 꿇고, 나를 두려워해 덜덜 떨고 있더군. 내가 진짜 살수가 된 순간이었어.”
“음…… 그런 일이 있었군요.”
“첫 살행을 내보내더군. 나 혼자서 말이야.”
“네.”
“자네 그때 내가 왜 도망가지 않았는지 아는가? 혼자였는데 말이야.”
“모르겠어요.”
“칠 년 동안 이어진 지옥 같던 수련이 나를 이미 쇠창살 없는 감옥에 가두어 두었던 것이야. 아마 이해하기 힘들 거야. 그렇지만 사실이네. 난 감히, 도망갈 생각조차 하지 못했어. 오로지 살기 위해, 그 첫 살행을 성공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하지 못했다네.”
“그래서, 성공했어요?”
“성공했네. 그것도 완벽하게. 그렇게 살문으로 돌아오니, 돈을 주더군. 첫 살행 성공에 대한 보수로 은자 두 냥을 받았어.”
“…….”
“살 수 있다는 생각. 살아남았다는 기쁨. 계속 살아남아야 한다는 결심. 돈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어. 그냥 난 그렇게 내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점점 살왕이 되어 가고 있었던 거야.”
“아…….”
살왕의 지난 과거가 그의 말처럼 다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은 아니었다.
결론적으로는 다른 사람을 죽이며 자신이 살아왔다는 뜻이니 말이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그와 그의 인생이 꽤 불쌍하다는 것이다.
그런 내 마음과 다르게, 살왕은 갑자기 미소까지 지으며 나에게 물었다.
“자네, 살수들이 왜 살행을 나가는지 아는가?”
“면왕 아저씨처럼 그런 기구한 사연이 있어서요?”
“아닐세. 돈 때문이야. 살수계는 철저하게 돈으로 움직여. 다른 이유는 전혀 없어. 오로지 돈. 나도 어느새 쌓이는 돈을 보며 농부가 농사를 지으러 나가는 마음으로 그렇게 살행을 나갔네. 돈 벌러 사람을 죽였다는 뜻이야.”
그의 미소가 씁쓸하게 변했다.
아니, 너무도 슬퍼 보였다.
“난 우리 살문의 일인자가 됐어. 돈도 엄청나게 모았지. 곧바로 그때까지 모은 돈을 우리 살문의 살수들에게 모조리 풀고 설득했네. 우리 천운장을 멸문시킨 그 살문. 그곳을 없애면 우리가 지금 얻는 수입의 두 배를 벌 수 있다고 했네. 모두 동조하더군. 그렇게 놈들을 모조리 죽였네. 아버지와 천운장에 대한 복수였고. 그때부터 천하에 살왕이란 이름이 거론되기 시작한 것이지.”
“아! 살왕이 그렇게 탄생하게 된 것이군요.”
“살왕만 탄생한 게 아니야. 그때까지 또 그 이후로 나의 살행은 단 한 번의 실패도 없었어. 당연히 나에게 들어오는 의뢰비는 천정부지로 뛰었네. 엄청난 의뢰가 계속 들어오고, 그럴수록 우리 살문의 돈도 보관할 곳이 없을 만큼 쌓였네.”
“세상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일들이네요.”
“그렇지. 그런데 더 웃긴 건 뭔지 아나?”
“뭔데요?”
“내가 유명해지면 유명해질수록, 또 내가 돈을 많이 벌면 많이 벌수록. 내 추종자가 생겼고, 또 나를 따라 하려는 자들이 늘어났다네. 내가 살왕이란 이름을 얻고 정확히 오 년이 지났을 무렵. 살수계는 이전의 열 배 이상으로 커졌고, 다시 오 년이 더 지났을 무렵에는 스무 배 가까이 커져 버렸다네. 그냥 어중이떠중이를 다 제외하고도, 제대로 된 살수라 할 만한 자들의 숫자가 무려 삼천여 명이나 되었지.”
“아니 어떻게 그렇게 갑작스레 시장이 커질 수 있어요? 아무리 살왕이란 이름이 대단해도 이해하기 힘든데요?”
“나는 그저 부싯돌이며 도화선에 불과했어. 누군가를 죽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마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고, 또 들키면 어떻게 되나 불안했고. 그래도 그 사람을 꼭 죽이고 싶다는 마음. 미움과 증오 그리고 살심. 그것에 내가 불을 붙인 것이지. 완벽하게, 아무도 모르게, 돈만 주면 다 죽여 주니까.”
“아!”
“남편을 죽여 달라. 부인을 죽여 달라. 동생을 죽여 달라. 형을 죽여 달라. 아버지와 어머니를 죽여 달라. 친구를 죽여 달라. 세상엔 정말 죽이고 싶은 사람이 많더군. 정말 많았어. 정말로.”
“음…… 왠지 슬프네요.”
“지금 이 순간에도, 어떤 이는 잠을 자다가 죽고, 또 누군가는 길을 가다 넘어져 죽고, 실종되고, 물에 빠져 죽고, 밥을 먹다 죽고, 그냥 죽고. 그들 중 누가 진짜 명이 다해서 죽은 것인지, 아니면 살수들에 의해 죽은 것인지. 아무도 모른다네.”
“결국 사람들의 마음이 살수계를 키운 것이네요.”
“그렇지. 사람을 죽이는 것도 사람이고, 사람을 죽여 달라고 하는 것도 사람이고. 사람이 제일 무섭다네. 하지만 분명…….”
“……?”
“그 일의 계기가 나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일세. 난…… 지옥에 갈 걸세.”
살왕.
그가 과거에 내가 했던 것과 똑같은 말을 했다.
나도 지옥에 갈 것이다.
그러다 갑자기 궁금한 게 떠올랐다.
“면왕 아저씨, 어디서 들었는데, 예전에 살행에 나서면 꼭 죽은 자 머리 옆에 쇠꼬챙이를 꽂아 두어 그 표식을 남겼다고 하던데, 그건 왜 그런 거예요?”
“그건…… 무서워서 그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