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화
내가 이곳에 오고 보름이 지났다.
국숫집을 재개장한 지 사흘이 되는 날이기도 했다.
보름 동안 이들은 정말 열심히 해 주었고, 그 결과는 괄목상대할 만했다.
그리고 이는 지금 내가 세고 있는 은자와 철전이 증명해 준다.
“오늘 매출이…….”
여섯 할배들이 눈이 빠져라 내가 세고 있는 돈을 보고 있다.
숨소리마저 죽여 가며 극도로 초조한 상태였다.
웃겼지만 꾹 참고, 짐짓 엄숙한 표정까지 지으며 말했다.
“도합 서른두 냥에 철전 사십 닢입니다.”
“와아아아아!”
“야호!”
“와아!”
노인네들이 마치 어린아이처럼 그렇게 펄쩍 뛰며 기뻐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면삼 아저씨.”
“어? 나?”
“네.”
첫날 이들의 이름을 물었을 때.
살왕은 스스로 면왕이라 소개했다.
다른 다섯 노인 점소이들은 일호, 이호, 삼호, 사호, 오호라 했다.
도는 줄 알았다.
살왕은 그냥 계속 면왕이라 하고.
일호부터 오호는 면일, 면이, 면삼, 면사, 면오로 그 호칭을 바꾸어 주었다.
다들 떨떠름하면서도 은근히 좋아했다.
“면삼 아저씨 제가 국수 나르지 않을 때 뭐 하라고 했어요?”
“손님들께서 부족한 게 없나, 찻잔이 비지는 않았나, 또 맛있게 드시나 관찰하라고 했지. 나 정말 열심히 관찰했다고.”
“근데! 관찰할 때 제가 어떻게 관찰하라고 했어요?”
“그, 그게…… 어험. 그게 말이야…….”
“눈에 힘 빼라고 했어요? 안 했어요? 무슨 맹수가 사냥감을 포착한 것처럼 죽일 듯 쳐다보면 국수가 목구멍으로 넘어가요? 하아! 정말.”
“미, 미안. 내가…… 내가…… 앞으로 잘할게.”
“눈에 힘 빼요!”
“그래. 알았다.”
“큭큭큭.”
면삼 아저씨가 내게 혼나는 모습에 살왕과 다른 살수들이 웃었다.
“면왕 아저씨.”
“어? 나? 나는 왜? 나는 네가 시키는 그대로 다 했어. 진짜야.”
“반죽할 때 한숨 쉬었어요, 안 쉬었어요?”
“내가? 내가 한숨을…… 진짜 너무 힘들어서 딱 한 번 쉬었다. 진짜로 딱 한 번.”
“그 한 번이! 제가 뭐라고 했어요? 반죽할 때! 요리할 때! 마음이 들어간다고 했어요? 안 했어요?”
“했다.”
“한숨 쉬는 마음이 반죽에 들어가고, 힘들다는 마음이 반죽에 들어간다고요! 반죽할 때 세 가지 뭐다?”
“기쁘다! 행복하다! 웃는다!”
“잘하세요.”
“그, 그래. 뭐, 아니. 정말 잘할게.”
“그리고!”
내가 목소리를 더 높였다.
그러자 여섯 노인네들이 나란히 서 차렷 자세를 했다.
그 모습이 너무 웃겼다.
이번엔 그냥 웃었다.
“하하, 다들 너무 잘해 주셨어요. 보세요, 이 돈을. 손님들은 쾌적한 분위기에서 맛난 국수를 먹어 행복하고, 우리는 부자가 되어 행복하고. 정말 다들 잘해 주고 계십니다, 하하하!”
난 다들 좋아할 줄 알았다.
그런데 너무 좋았나 보다.
크게 웃는 대신, 여섯 노인네들의 눈시울이 붉게 변했다.
훌쩍훌쩍 눈물을 흘리고 훔치기도 하고.
참, 그동안 이 노인네들이 마음고생이 심했나 보다.
어디 내 분야가 아닌 다른 분야에서 밥 벌어먹는 게 쉬운 일이겠는가?
그건 아무리 천하의 살왕과 특급살수들이라 해도 마찬가지일 테다.
그동안 고생 많았다.
정말 잘해 주었고.
오늘은 다그침보다 상을 주어야 할 시간인 것 같다.
“자, 다들 감동 그만하시고. 오늘은 축배를 들어 보자고요. 앞으로 더 잘하자는 의미의 축배요.”
“좋지!”
“그래. 술 한잔이 간절했다, 하하.”
그렇게 우리의 술자리가 열렸다.
*
“그래서 말이다. 딸꾹. 다섯 번째 국숫집을 열었을 때는, 그냥 통으로 사기를 당하고 말았단다. 아오! 그때 생각만 하면, 그놈을 그냥…… 콱!”
다들 술이 거하게 취했다.
많은 말들이 오갔다.
그리고 내가 말했다.
“죽였어요?”
조금 전까지 목소리를 높이며 다섯 번째 국숫집이 망한 이유를 설명하던 면삼 아저씨의 얼굴이 순간 경직되었다.
“누, 누굴?”
“사기 친 놈이요. 시전에서 장사하는 사람이 가장 두려워해야 할 사람은 왈패도 아니고 도적도 아닌 사기꾼이에요. 제가 항상 강조했잖아요.”
“그렇지. 맞아. 사기꾼들은 정말 순식간에 모든 것을 빼앗아 가더구나.”
면삼 아저씨가 아닌, 살왕이 답했다.
씁쓸한 얼굴이었다.
그때 남은 재산의 오 할을 사기당했다고 한다.
커다란 장원 몇 채를 지어도 남을 돈이라 했다.
“그래서 어떻게 했는데요? 죽이지 그랬어요.”
조금 전까지 시끌벅적했던 분위기가, 죽음이라는 내 반복된 말에 차갑게 가라앉았다.
다시 살왕이 답했다.
“우리가 무슨 살인마도 아니고, 그냥 국수나 만들어 파는 노인네들인데, 죽이긴 뭘 죽이나, 어험.”
굉장히 어색했다.
살왕만 그런 게 아니라 분위기 자체가 그랬다.
그리고 나는 선을 넘었다.
“살수 출신이면 어렵지도 않았을 텐데요.”
순간이었다.
어색했던 분위기는 곧바로 싸늘하게 변했다.
살얼음판 위를 걷는 것과 같은 긴장감이 팽배해졌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살왕도, 면일부터 면오까지 모두 숨죽여 서로의 눈치만 살폈다.
눈빛으로 의견을 나누는 중이다.
나를 죽일지 말지.
저들은 나를 죽이지 못한다.
내가 저들보다 고수라 그리 확신하는 게 아니다.
과거야 최고의 살수들이었지만, 지금은 국수에 진심인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면왕 아저씨 칼질하는 거 보고 확신했어요. 제가 항상 그랬죠? 고기를 썰고 채소를 썰 때 죽이는 칼이 아닌 살리는 칼로 썰라고.”
“그, 그게…… 그런 의미였었냐?”
“네.”
“언제부터…… 알고 있었냐?”
“글쎄요.”
“네가 그 사실을 알았다는 이유만으로 지금 죽을 수 있다는 사실도 아느냐?”
살왕의 이 말 한마디가 식당 안의 긴장감을 다시 극도로 끌어올려 버렸다.
내 대답에 따라, 저들은 나에게 칼을 쓸지 말지 최후의 판단을 내릴 것이다.
아니, 난 그 최후의 판단이 어떻게 내려질지 이미 알고 있다.
다시 말하지만 저들은 날 죽이지 않는다.
“국수 만들고 싶지 않아요? 진짜 국수. 사람들이 먹고 행복해하는 그런 국수요. 필요 없으면 원하시는 대로 하세요.”
내가 살왕을 빤히 쳐다보며 그리 말했다.
살왕의 눈동자에 지진이 일었다.
면일부터 면오까지는 식은땀까지 흘리며 이 감당하기 힘든 분위기를 이겨 내려 애쓰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살왕의 입에서 긴 한숨이 새어 나왔다.
“휴우우, 현화문의 제자 마악치라는 이름은 나도 들어봤다. 근자에 꽤 그 유명하더구나.”
“제가 좀 많이 유명하죠. 뭐, 친구 천무휘 덕이 절대적이겠지만요.”
“그렇지. 수룡검 천무휘. 그자도 함께 왔느냐?”
“아니요. 지금쯤이면 호남에서 한참 마두들 때려잡고 있을 거예요.”
“왜 같이 오지 않았지?”
“왜 같이 와야 하죠?”
“…….”
살왕은 차마 그 답을 내뱉지 못했다.
천무휘와 함께 왔으면, 자신들을 손쉽게 죽일 수도 있었다고.
지금 이런 위협 따위는 받지 않아도 됐다고.
뭐, 이런 말들이 살왕의 입가에 맴돌지 않았을까 싶다.
살왕은 내 경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으니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전 국수를 맛보러 유람 중이에요. 굳이 국수에 국 자도 모르는 천무휘와 함께 식도락 유람을 다닐 필요는 없죠.”
“일부러 우리에게 접근한 게 아니었느냐?”
“왜요? 면왕 아저씨 목에 엄청난 현상금이라도 걸렸대요?”
“그, 그건 아니지만…….”
“그럼 제가 일부러 아저씨들에게 접근할 이유가 없잖아요. 아님, 우리 현화문하고 무슨 원수라도 진 적 있어요?”
“없다. 단연코 없다.”
“그럼 됐네. 아저씨들이 살수였건 아니건, 나랑 상관없는 일이네요. 현상금이라도 어마어마하게 걸렸다면 또 모를까, 하하.”
내가 일부러 웃기까지 했지만, 살수들은 여전히 심각했다.
다시 살왕이 잠시 고민하는가 싶다가 입을 열었다.
“우리에 대해…….”
“걱정 마세요. 다 늙어서 국숫집 하나 제대로 꾸려 보겠다는 노인네들을 제가 뭘 어쩌겠다고 그렇게 심각해요? 그리고…….”
“…….”
“할배가 국수에 진심인 거 이젠 저도 알아요.”
순간 살왕이 자신의 입술을 꾹 깨물었다.
눈물마저 다시 그렁그렁하다.
살왕만 그런 게 아니다.
면일부터 면오까지, 이 노인네들 진짜 살수가 맞나 싶었다.
뭔 놈의 살수들이 눈물이 이렇게 많고 감수성이 충만한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내 원대한 계획은 다 틀어진 것 같다.
다 이 노인네들의 순수한 눈물 때문이다.
눈물을 끝까지 참으려 입술을 꾹 깨물고 눈까지 부릅뜬 살왕이 순간 무언가 큰 결심이라도 한 듯, 주먹을 꽉 쥐며 입을 열었다.
“놀라지 마라.”
“……?”
“내가 바로…….”
“형님!”
살왕이 무언가 작심한 듯 말을 하려고 하자, 그 바로 옆에 있던 면오가 다급히 말렸다.
하지만 이미 각오를 다진 살왕을 말릴 수 없었다.
자신의 손목을 잡은 면오의 손을 살짝 밀어내며 다시 부릅뜬 눈으로 나를 보고는 말을 이었다.
“내가 바로…… 살왕이다.”
곧바로 맨 좌측에 있던 면일이 역시나 크나큰 결단을 내린 듯 살왕의 말을 이었다.
“그렇다. 큰형님 살왕이시고, 우리가 바로 오살(五殺)이다.”
순간 분위기가 매우 엄중해졌다.
심지어 경건하기까지 한 분위기였다.
살왕과 오살은 그렇게 비장한 눈으로 나를 보며 자신들의 정체를 밝혔다.
그리고 나도!
“그게 뭔데요?”
내 한마디에 비장했던 이들의 눈동자가 풀리고 말았다.
면이와 면삼은 맥이 풀리는 걸 넘어 분통까지 터뜨렸다.
“이봐, 마 숙수. 우리 큰형님 몰라? 살왕! 살왕이라고! 살수계의 살아 있는 전설.”
“어험, 어험. 그만해라, 이살. 마 숙수 놀라겠다, 허허.”
면이의 말에 살왕이 짐짓 어깨에 힘까지 주며 아니라는 듯 이살을 말리는 시늉을 했다.
곧바로 면삼, 그러니까 삼살이 말을 이었다.
“오살현신 필사불면(五殺現身 必死不免), 오살이 나타나면 죽음을 면할 수 없다. 마 숙수, 이 말 몰라?”
“모르는데요? 처음 들어 봤어요.”
내가 눈을 말똥말똥 뜨며 그리 답했다.
그러자 살왕은 물론 오살 모두 답답함에 자신의 가슴까지 쾅쾅 쳐댔다.
이번엔 면사, 그러니까 사살이 나섰다.
억울함이 가득 담긴 그런 얼굴이었다.
“그러니까, 우리 여섯 명이 살수계에서 그냥 전설 그 자체로 유명했다고. 우리 이름만 들어도 우는 애가 울음을 멈추고 그랬다니까.”
“그래요? 아, 그렇구나. 죄송해요, 몰라봐서.”
나는 술까지 얄밉게 홀짝 마시며, 영혼 없는 답을 그리해 주었다.
그러자 이 양반들이 아주 복장이 터질 듯한 얼굴을 하고 너도나도 나서 나에게 자신들의 화려했던 과거를 실토하기 시작했다.
“아니 아무리 우리가 활동하던 시기가, 마 숙수가 태어나기 전이라 해도…….”
“우리로 말할 것 같으면 말이야…….”
다시 술판이 화끈하게 시작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
과열된 분위기에 술을 과하게 마셔서 그랬을까?
아니면 보름 동안의 피로가 몰려와서 그랬을까?
오살이 모두 술에 만취해 뻗어 버렸다.
살왕과 나만이 남았다.
나와 살왕도 만취 상태이긴 마찬가지였다.
“정말…… 딸꾹. 내 국수 맛이 좋아졌나? 헤헤.”
“네. 좋아졌어요. 제가 칭찬에 좀 궁색해서 그렇지. 오늘 국수 맛은 정말 일품이었다고요.”
“헤헤헤. 헤헤헤. 하하하. 이게 다 마 숙수 덕분일세. 고맙네. 하하하!”
“제 칭찬이 아니라, 나중에 손님들이 칭찬하는 말을 들으면 훨씬 더 기쁠 거예요. 그러니 계속해서 노력해야 해요. 아셨죠?”
“그럼세. 그럼. 그래야지. 흑흑.”
이 양반, 또 운다.
무슨 놈의 살왕이 이렇게 눈물이 많은지.
그런데 다 늙은 노인네가 저렇게 우니, 내 눈에서도 눈물이 따라 흘렀다.
“면왕 아저씨. 훌쩍.”
“그래, 그래 마 숙수.”
“한 가지 드릴 말씀이 있어요.”
“무엇이든 말하시게. 내, 마 숙수가 시키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하겠네. 훌쩍.”
다 틀렸다.
이번 생을 시작하며 내가 세웠던 원대한 계획들 말이다.
모두 틀어져 버렸다.
비정검사 오화서와 삼존하구룡협.
살왕과 살문의 살수들.
이들을 싸우게 하는 것이었는데.
양패구상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고.
양패구상이 아니라도, 한쪽이 살아남아도 멀쩡하긴 힘들 터.
그때 내가 나서서 쉽게 제거할 계책이었다.
그런데.
저렇게 순수한 눈물을 흘리고 있는 노인네에게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차마, 지금 나에게 연신 고맙다며 울고 있는 저 노인네를 사지로 몰아넣을 자신이 없었다.
비정검사 오화서는 다른 방법을 생각해 봐야겠다.
살왕과 오살 노인네들에게는, 국수만 가르치자.
그전에.
“무엇인가? 나에게 할 말이라는 게? 훌쩍.”
“혈철마관 육시경을…….”
“내 동생인데?”
순간, 살왕의 눈물이 뚝 그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