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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두가 된 이유-161화 (161/245)

161화

살왕이 첫 시식을 했다.

냄새를 킁킁 맡더니, 이내 숟가락으로 국수의 국물을 떴다.

긴장감이 감돌았다.

좌우에 있는 다섯 노인 살수들 역시 초조함과 극도의 긴장 상태로 그런 살왕을 지켜보고 있었고.

이내, 숟가락에 담긴 국수의 국물이 살왕의 입으로 들어갔다.

이제부터 소리를 내면 안 된다.

살왕이 그 어떤 소리라도 낸다면, 내기는 내가 이기게 된다.

그렇게 살왕이 국물을 떠먹고.

‘흡.’

아!

이게 소리를 낸 건지 아닌지. 애매하다.

심지어 살왕은 숨까지 멈추었다.

호흡 자체를 막아 버린 거다.

그게 끝이 아니다.

입에 닿은 숟가락, 그 상태 그대로 동작마저 멈추었다.

아니, 딱 하나.

그의 눈동자에 지진이 일었다.

그것도 천하를 모두 집어삼킬 무지막지한 지진이 그의 동공에 일어나고 있었다.

살왕은 숨도 쉬지 않고, 움직이지도 않고, 계속 그렇게 멈추어버렸다.

이를 지켜보던 다섯 노인 살수들의 긴장감 또한 극에 달하고 말았다.

무슨 생사 대적이라도 만난 비장한 눈빛으로 자신들의 앞에 놓인 국수 그릇을 보는가 싶더니.

거의 동시에 엄청난 각오라도 한 듯, 그렇게 국수의 국물을 떠 자신의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곧.

이들 다섯 명 모두가 마치 짜기라도 한 것처럼 살왕과 똑같은 모습이 되어 버렸다.

모두가 굳어 버렸고 호흡마저 멈추어 버렸다.

웃겼다.

노인네들이 나란히 앉아 저러고 있는 모습이 너무 웃겼다.

하지만 짐짓 진지한 얼굴로 그들을 향해 말했다.

“면도 맛을 보시죠.”

이내 호흡을 멈춘 살왕이 움찔했다.

다른 다섯은 식은땀마저 흘리고 있다.

“면, 맛보시라고요.”

천하제일인을 죽이라는 의뢰를 받았지만, 어쩔 수 없이 살행을 나가야 할 때 살수들은 저런 표정을 지을까?

이번 살행이 마지막이고, 실패할 것이 뻔하며, 그 끝은 나의 죽음이다.

하지만 의뢰를 받은 이상, 살수는 살행을 나가야 한다.

뭐, 이런 얼굴이었다.

살왕이 그런 비장하면서도 결연한, 어떻게 보면 숭고해 보이기까지 하는 얼굴로 젓가락을 들어 국수의 면을 집었다.

이를 지켜보는 다섯 노인네들은 처참한 얼굴이었다.

자신들의 수장이, 죽을 줄 알면서 전장으로 뛰쳐나가는 뒷모습을 보는 충신들의 얼굴이었다.

그렇게 살왕이 내가 만든 국수의 면을 입으로 집어넣었다.

“씹어요. 씹어야 목으로 넘기죠.”

차마 입으로 넣었지만, 그 면을 씹지 못하던 살왕.

이내 울먹이기까지 한다.

“씹으라고요. 꼭꼭.”

결국, 내 다그침에 면을 씹는 살왕.

그러자.

“읍. 읍. 으으으으으.”

흐느낀다.

면을 씹으며 노인네가 운다.

결국 다 씹은 면을 목으로 넘기고, 울먹이며 말을 뱉었다.

“씨팔. 졸라 맛있어, 흑흑.”

이내 내기고 뭐고 며칠이라도 굶은 사람처럼 허겁지겁 내 국수를 먹기 시작했다.

이를 지켜보던 다섯 노인네.

에라이 모르겠다.

딱 그거였다.

초조함과 긴장감이 가득했던 그들 다섯은, 이내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내가 만든 국수를 입으로 쑤셔 넣기 시작했다.

“후르릅. 캬아!”

“냠냠. 냠냠.”

“후르르릅. 후르릅. 쩝쩝.”

여섯 노인네들은 그렇게 나란히 앉아 걸신이라도 들린 사람처럼 순식간에 내가 만든 국수를 깔끔하게 모두 해치워 버렸다.

그리고 곧.

뻘쭘한, 또 어색한 상황이 돌아오고 말았다.

다들 깨끗하게 비워진 국수 그릇만 앞에 놓고, 눈만 멀뚱멀뚱 뜨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슬쩍 그런 노인네들을 향해 비웃음을 날리며, 내가 한발 다가가 입을 열었다.

“국수가 입에 좀 맞나 봅니다? 깨끗하게 비우셨네.”

“어험. 어험.”

꽤 민망했는지, 살왕이 헛기침을 두 번 하고 또 아무도 없는 식당을 스윽 한 번 두리번거린 후 내게 답했다.

“뭐, 그럭저럭 괜찮군.”

“숨을 열 번 내쉬기 전에 어르신 입에서 묘한 소리가 연신 흘러나왔습니다. 아까 우신 건 아니죠?”

“뭐, 맛은 조금 인정하지. 하지만 운 건 아니야. 내가 원래 뜨거운 거 먹으면 그래.”

“네. 어쨌든 내기는 제가 이긴 겁니다?”

“어험. 어험. 그, 그게…… 쿨럭.”

“왜요? 이제 와서 말 바꾸시게요?”

“졌다. 인정한다.”

“식당 문 닫아요.”

살왕이 날 노려본다.

다섯 노인네들에게서는 은은한 살기마저 감돈다.

“문, 닫으라고요.”

이어지는 침묵.

하지만.

“문, 닫겠다. 됐냐?”

“네.”

살왕은 날 계속 죽일 듯한 눈빛으로 노려보았고, 난 그런 그를 옅은 미소로 비웃어 주었다.

그런 후.

“저 이만 갑니다. 며칠 뒤에 혹은 한두 달 뒤에 와서 확인할 거예요. 이 식당 계속 문 열고 영업하면, 소문냅니다. 약속도 안 지키는 국숫집 사람들이라고요.”

“약속…… 지킨다.”

“네. 꼭 그러세요. 그럼 잘들 사시고. 앞으로 국숫집은 꿈도 꾸지 마세요. 저 진짜 갑니다.”

그렇게 난 봇짐을 챙겨 식당을 떠났다.

아니, 막 문을 열고 식당을 벗어나려던 그때.

“잠깐!”

살왕이 큰 소리로 나를 불러세웠다.

웃음이 터질 것 같았지만, 정말 간신히 참고 뒤를 돌았다.

“누구냐, 넌?”

“아! 제가 제 소개도 하지 않았군요.”

살왕과 다섯 노인네들은 불구대천의 원수 이름을 뼈에 새길 것 같은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그들에게 환히 웃으며 말했다.

“현화문의 마악치라고 합니다. 세인들에게 알려지진 않았지만, 빈가식신 백달다 숙수께 가르침을 짧게 받기도 했지요.”

“아!”

“역시!”

“젠장!”

“빈, 빈가식신의 제자였다니!”

놀람과 감탄 그리고 흥분.

여섯 노인네들은 그렇게 제각각의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더 놀라운 것은, 삼척동자까지는 아니어도 이제 웬만한 사람들은 내 이름 정도는 들어 봤다는 것이다.

분명 이들도 들어 봤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현화문의 마악치란 말에 이들은 조금의 관심도 두지 않았다.

오로지 빈가식신이라는 말에 크게 놀라고 감탄하는 이들이었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다시 문을 나서려는 순간.

“잠깐! 잠깐만 멈추어라.”

살왕이 다시 나를 불렀다.

역시나 큰 목소리였지만, 조금 전과 다르게 다급함과 간절함이 묻어나 있었다.

내가 슬며시 몸을 돌리자.

그는 표정으로도 그 다급함과 간절함을 내게 보내고 있었다.

“도와…… 도와 다오.”

“네?”

“도움이…… 필요하다.”

“무얼요?”

“내 국수…… 형편없음을…… 나도 진작에 깨닫고 있었다.”

“근데요?”

“도와 다오. 부탁이다.”

“내가 왜 도와야 하는데요?”

살왕의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설마 이렇게까지 간절할 줄은 사실 나도 예상하지 못했다.

저 양반, 국수에 진짜로 진심이었던 모양이다.

아니면 다른 사연이라도 있나?

“난…… 난 굉장한 부자였다. 하지만 꿈은 소박했다. 국숫집을 열고, 그렇게 그냥 남들과 같이 평범하게 사는 게 나의 유일한 꿈이었고 희망이었다.”

“그런데 장사가 잘 안 돼서 힘들었어요?”

“아니! 힘든 정도가 아니다. 이 국숫집! 서른네 번째 국숫집이다.”

“네?”

“엄청난 돈이 있었다. 창고에 금은보화가 쌓여 있었다. 그런데! 이십 년 동안…… 서른네 개의 국숫집을 개업하고 망하고 하며, 그 돈을 모두 날렸다. 이제 이 가게마저 문을 닫으면…… 우리 여섯 늙은이는…… 길바닥에 나앉아야 한다. 그러니! 우리를 불쌍히 여겨서라도 도와다오.”

와! 와아아아아아!

이건 생각지도 못했다.

살왕이 거지가 됐다.

아니 가게를 얼마나 크고 화려하게 열었으면 살왕이 거지가 되는 걸까?

하아!

그러고 보니, 저 벽에 붙어 있는 찬단.

천년설삼이란다.

보나 마나 초창기에는 식당도 기루 못지않게 엄청나게 크고 화려하게 지었을 테고, 사람들도 엄청나게 고용했을 테다.

평생 사람만 죽일 줄 알았지, 어디 장사를 해 본 적이 있겠는가.

사기는 안 당했는지 모르겠다.

거기에 더해 천년설삼에 무슨 하오수니 내단이니, 좋은 건 다 가져다 국수 재료로 썼을 테고.

맛은 없고, 값은 비싸고.

쓰이지 못한 귀한 식재료는 모두 망가져 폐기했을 테고.

망하지 않았다면 그게 기적이었으리라.

그래도 살왕인데, 참 어지간히도 크게 국숫집을 말아먹었나 보다.

‘아니, 국숫집에서 국수를 말아먹어야지 가게를 말아 먹으면 어쩌자는 겁니까?’

이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차마 눈물이 그렁그렁한 노인네에게 할 수 있는 말은 아니었다.

“빈가식신 백달다 숙수님께서는 제게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국수 만드는 비법을 전수해 주었습니다. 어르신들께서 그렇게 간절히 배우고 싶다면 저 역시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국수 만드는 비법을 가르쳐드리겠습니다.”

“정, 정말이냐? 정말?”

얼마나 기쁘고 좋았는지, 살왕의 눈에 그렁그렁했던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살왕은 그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듯 기뻐하기에 바빴다.

“단!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 없다며?”

“대가는 없지만, 조건은 있습니다.”

“무엇이든 하겠다. 무엇이든!”

‘비정검사 오화서를 죽여 주세요.’

내가 바보도 아니고, 이런 말을 대놓고 해 다 된 밥에 재 뿌릴 일은 없고.

울먹이며 또 너무나 간절하게 나를 바라보는 노인네들이 불쌍하기도 하고.

일단 국수 만드는 법과 식당 운영하는 비법 등은 제대로 전수해 줘야겠다.

“절대복종.”

“응? 복, 복종?”

“네. 다들 음식 만드는 일을 우습게 여기지만, 칼을 다루는 일입니다. 또 그 음식으로 사람을 살리고 죽일 수 있습니다.”

“맞는…… 말이다.”

“숙방에서의 위계는 무림의 사제지간 못지않게 엄하고 철저해야 합니다.”

“그, 그래. 인정하마.”

“정말 하실 수 있겠습니까? 손주뻘밖에 되지 않는 제 말에 절대복종하고, 시키는 일을 다 해야 합니다.”

“하겠다! 시켜만 다오!”

“다른 분들은요?”

“우리도 따르겠다! 절대복종!”

다섯 노인 특급 살수들까지 큰 목소리로 제창했다.

아나, 웃음이 터지려는 걸 억지로 참았다.

노인네들이 진짜 사람만 죽였지, 너무 순진무구하다.

이래서 칼이 오가는 무림보다, 돈이 오가는 시장 바닥이 더 무섭다는 소리가 들리는가 보다.

저들이 무림에서는 살아남을 수 있었을지는 몰라도, 이 시장 바닥에서 살아남는다는 게 녹록하지 않을 것 같았다.

뭐, 이제 내가 도우면 그 또한 가능해질 것이고.

“단순히 복종한다고 되는 일이 아닙니다. 음식을 배운다는 것, 또 식당을 운영하는 일은 여러분이 생각했던 것처럼 쉬운 일이 절대 아닙니다. 남들처럼 그저 그렇고 평범한 일상을 꿈꾸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현실입니다. 그래도 할 수 있겠습니까?”

“할 수 있다!”

“제가 최고의 비법을 가르친다고 하더라도, 열에 아홉 명은 제가 떠난 후 그 방식을 자신들의 것으로 바꿉니다. 왜인지 아십니까? 편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편함을 추구하는 마음은 곧바로 음식의 맛을 변질시켜 버립니다. 음식을 만든다는 일은, 곧 죽는 그 날까지 자신과의 싸움을 벌여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래도 할 수 있습니까?”

“할 수 있다!”

“우리도 할 수 있다!”

“목소리가 작습니다! 의지가 그것밖에 되지 않습니까?”

“아닙니다! 할 수 있다!”

“큰 목소리로 손님을 맞이할 수 있습니까?”

“그래! 할 수 있다!”

“따라 해 보십시오. 어서 오십시오!”

“어서 오십시오!”

“이번엔 허리를 깊이 숙이며, 상냥하게 웃으며 외칩니다. 어서 오십시오, 손님!”

“어서 오십시오, 손님!”

“자! 방금 한 거, 열 번 반복합니다!”

“넵! 어서 오십시오, 손님! 어서 오십시오, 손님!”

이들에겐 간절함이 있었다.

하지만 그 간절한 마음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방법을 몰랐던 것이다.

그날 이들의 간절함과 열정을 되살리려, 인사하는 방법만 한나절을 가르쳤다.

그리고 곧바로 국숫집의 대대적인 청소에 돌입했다.

대청소는 무려 닷새 동안 이어졌고, 닷새 후 식당 안은 물론 식당 주변의 거리까지 번쩍번쩍할 정도로 변모하였다.

그리고 본격적인 국수 만드는 비법 전수가 시작되었다.

나는 마치 전설의 신공을 제자에게 전수해 주는 사부의 마음으로, 그렇게 국수 만드는 비법을 전수하였다.

“더 팍팍! 손바닥으로 반죽을 팍! 팍! 이렇게! 팍!”

“알았다. 팍! 팍!”

“아니, 입으로 말고. 손으로 팍!”

“아! 난 네가 입으로도 소리를 내기에.”

“어서 하세요. 팍! 팍! 때리고 밀치고 다시 뭉개고. 이렇게 삼천 번 반복. 그래야 면이 더 찰지고 쫄깃합니다.”

“알았다! 팍! 팍!”

살왕 이 양반, 정말 열심히 배운다.

국수를 향한 그의 마음, 진짜로 진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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