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화
“이 국수, 발가락으로 만들었어요?”
제법 쌀쌀해진 날씨 탓에 식당의 문은 굳게 닫혀 있다.
창문 역시 장사를 하겠다는 건지 하지 않겠다는 건지, 몇 개는 제대로 열려 있지도 않다.
손님은 나 외에 없다.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다섯 명의 늙은 점소이.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숨마저 멈춘 상태다.
아니, 그 기운이 사라졌다.
눈으로 보지 않는다면, 식당 안에 저들이 있다는 것을 쉬이 감지하기도 어려우리라.
그들 모두, 살왕과 나를 지켜보며 곧바로 움직일 태세를 갖추고 있다.
모든 것은 살왕의 결정에 달렸다.
그가 선 상태로 나를 노려본다.
일촉즉발의 상황.
그의 인상에 변화는 없다.
호흡마저 고르다.
역시 살왕이란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감정을 완벽히 제어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숨 막히는 정적, 긴장감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짙어져만 갔다.
그리고 그 정적을 살왕이 깼다.
내게 살수를 뻗으면, 다 죽일 거다.
그런데.
“허리에 검을 찬 것을 보니 무림인인 것 같은데. 국수 파는 사람이라고 함부로 말하면 안 된다.”
죽일 생각은 없는 것 같군.
그렇다면.
“쯧쯧. 내 말이 그거요. 내가 무림인이건 아니건 그건 중요치 않소. 무려 은자 한 냥짜리 국수 맛이 걸레를 빤 물로 육수를 만들고 장작에 쓸 나뭇가지로 면을 삶은 것 같은 게 중요한 것이지.”
“뭣이!”
“왜요? 내 혀와 입이 분명 그렇게 느꼈소. 그래서 물어본 것이오. 썩은 발가락으로 국수를 만들었는지.”
“네놈이…… 감히 이게 어떤 국수인지 알고…….”
“더럽게 비싸고 더럽게 맛없는 국수. 쓰레기.”
“너…… 너…….”
살왕이 부들부들 떤다.
뒤에서 이를 지켜보던 다른 살수 다섯 명 역시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했다.
하지만.
살왕은 역시 날 죽일 생각이 없나 보다.
나름 국숫집 숙수로서 최소한의 자격은 갖추었다.
손님이 욕한다고 죽일 생각은 안 하는 걸 보니 말이다.
뭐, 이걸 자격이라고 말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살왕에게는 그렇다고 본다.
아무튼.
내가 그런 살왕에 대해 잠깐 생각에 빠졌을 때, 살왕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안 먹을 거면 나가. 국숫값은 지불하고.”
“내가 왜?”
“넌 주문을 했고, 난 국수를 만들었다. 그러니 은자 한 냥 내고 가.”
“싫은데?”
“혼난다.”
“혼내 보든가.”
“너…….”
“뭐?”
“좋게 말할 때…… 휴우. 재수가 없으려니까. 됐다. 그냥 가라. 돈 안 받겠다.”
“싫은데?”
쾅!
“너!”
살왕이 분노하여 식탁을 두 손으로 쾅 치며 내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하지만 난 여유로웠다.
놈이 날 죽이지 않겠다는 건 이제 확신이다.
분노하고 있지만, 살기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다.
아니, 살수가 사람을 죽일 때는 이렇게 화를 내지 않는다.
삼류 살수가 아닌 이상 말이다.
살왕은 지금 순수하게 화를 내고 있을 뿐이다.
그 모습이 재밌다.
이 노인네, 국수에 진심인가 보다.
지난 석 달 동안 고생한 보람이 있었어.
살왕의 국숫집이 은둔을 위한 위장이었다면, 백달다 숙수 밑에서 그 고된 수업을 받는 게 모두 허사였을 텐데.
다행이다.
그런 생각까지 하니 절로 웃음이 났다.
내가 웃자 살왕의 인상은 더욱 험악해졌고.
“내기 하나 안 하실래요?”
“당장 나가라고 했다.”
“국수.”
“뭔! 끄응. 나가라. 진짜 경을 치는 수가 있다.”
“내가 국수를 만들게요.”
“정신이 나간 놈이냐?”
“아니. 너무 멀쩡해. 그런데 말이에요. 당신만 화가 난 게 아니에요. 웃고 있지만, 나도 지금 무척 화가 나 있다고요.”
“뭔 개소리!”
“당신이 국수를 모독했다고. 내가 지금 천하의 국수를 모두 음미하며 연구하는 중인데, 당신의 국수는 최악을 넘어 국수에 대한 모독 그 자체였다고!”
나도 언성을 조금 높였다.
그러자 살왕의 기세가 꺾였다.
눈동자까지 떨리는 게 정신적 충격까지 조금 먹은 모양이다.
“왜? 내 말이 틀려요?”
“미각은…… 사람마다 다르다. 함부로 평가하지 마라.”
“봐요, 할배요. 나 말고 다른 손님 있어요?”
“그, 그게…….”
“손님이 없는 데에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거예요.”
“나가라. 더 이상 네놈과 대화하고 싶지 않다. 당장 내 식당에서 나가!”
“저 찬단 봐요. 세상천지 어디에 금자 일백 냥짜리 국수를 팔아요?”
“네놈이 천년설삼이 들어간 천년설삼국수를 아느냐?”
“하아! 돌겠네. 금자 한 냥짜리는요?”
“천산백년산삼이 들어간 국수라고 써 있다.”
“지금 내가 먹은 은자 한 냥짜리 국수는요? 아무것도 안 써 있어요.”
“수십 년 된 상황버섯을 달인 육수로…….”
“쯧쯧.”
“네놈이 감히!”
“무슨 소림사 스님들 회식해요? 상황버섯은 지랄!”
“네가…… 네가 정말 죽으려고 환장을 했구나!”
“됐고! 첫 번째 맛. 두 번째 말도 안 되는 국수의 가격과 너무 많은 국수 종류. 그럼 손님 없는 이유 세 번째가 뭔지 알아요?”
살왕의 호흡이 거칠다.
또 내게 호통을 치려 했다.
하지만 순간 그 입이 쏙 들어가고 말았다.
자기도 궁금하긴 한 모양이다.
“저 할배들.”
내가 시선을 뒤에서 극도의 긴장 상태로 우리를 지켜보던 다섯 노인 점소이를 향했다.
노인 점소이 다섯은, 심각하게 이 상황을 지켜보다가 갑자기 내가 자신들을 지목하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또 많이 억울한 표정까지 지어 보였다.
식당에 손님이 없는 것과 자신들은 무관하다는 그런 항변을 억울한 표정으로 지어 보인 것이다.
살왕도 내 시선을 따라 그들을 한 차례 살피다가 다시 시선을 나에게 향했다.
“저 녀석들이 뭐? 어쨌다고? 욕을 했냐? 너를 때리길 했냐?”
“인사. 인사가 기본인 거 몰라요? 그리고 저 면상들 좀 봐요. 어디 무서워서 국수가 목구멍으로 넘어가겠어요?”
살왕이 다시 시선을 다섯 노인 점소이에게로 돌렸다.
순간 다섯 노인 점소이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였다.
하지만 이는 잠시.
살왕이 무서웠던 것일까?
살벌 그 자체였던 얼굴로, 억지 미소를 짓는, 진짜 부자연스럽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자 살왕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나를 향했다.
“뭐, 내 눈엔 귀엽기만 하고만.”
살왕의 한마디에 안도하는 다섯 노인 점소이.
나는 어처구니가 다 없었다.
“됐고. 식당에 손님이 없는 네 번째 이유.”
“뭐? 또 뭔데?”
살왕, 이 인간.
언성은 높은데 얼굴에는 그 궁금함이 가득하다.
“따라와 봐요.”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움직이자, 살왕은 또 조용히 내 뒤를 따른다.
그 뒤로 다시 다섯 노인 점소이들도 궁금증이 가득한 얼굴로 따라붙었다.
먼저 숙방으로 향했다.
“이거, 이거. 언제 씻었어요?”
조금 전 면을 삶았던 솥을 들며 살왕에게 물었다.
“그, 그게…… 좀 됐지? 뜨겁게 끓여서 괜찮아.”
“이건요?”
이번엔 국수를 담는 그릇.
“그것도…… 뭐. 뜨거운 국물이 들어가니 괜찮은 거야.”
“먼지는 어쩔 건데요? 손가락에 묻는 거. 이거 보여요? 이건 뭐 고명대신 올리는 거예요?”
“그, 그게…… 어험. 어험.”
“이거, 이거, 이거. 국자까지. 그리고 저건 행주예요, 걸레예요? 에잇, 따라와요.”
숙방을 벗어나 식당으로 다시 나왔다.
거미줄, 벌레, 쥐똥도 있다.
하아!
돌겠다.
그냥 살수도 아니고 특급 살수다.
눈에 보였을 것이고, 기감으로 감지했을 것이다.
저들이 젓가락도 아니고 이쑤시개 하나만 날려도, 이곳에 벌레나 쥐 따위가 살 수 있겠는가?
불가능하다.
“몰랐던 것도 아니고. 할 수 없는 것도 아니며. 그냥 안 한 거예요. 귀찮으니까. 손님도 없는데 뭘. 그냥 나중에 하지. 귀찮죠? 그럼 장사를 하지 말아야죠.”
“…….”
“피땀 흘려 번 귀한 돈으로 부모님 모시고 국수 먹으러 온 손님한테. 응! 고생하는 부인에게 몇 년 만에 외식 한번 시켜 준다고 몇 달 동안 돈 모아온 손님한테! 제대로 먹이지 못해 미안한 마음에 큰마음 먹고 자식들을 데리고 온 부모한테! 당신들이! 이런 쓰레기를 팔았다고! 알아?”
“어험. 어험.”
“어…… 어험.”
살왕과 다섯 특급 살수들.
나와 시선을 마주치지 못한다.
헛기침만 하며 연신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린다.
“다들 앉아요. 제가 국수 한 그릇씩 말아 드릴 테니, 그거 먹고 판단해요.”
“어험, 무, 무엇을 말이냐?”
“내기.”
“내, 내기?”
“네. 내기해요. 내가 만든 국수 먹고, 딱 숨을 열 번 내뱉을 때까지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는다면, 제가 방금 먹은 국숫값의 열 배인 은자 열 냥을 내고 조용히 떠날게요. 대신!”
“대…… 신?”
“내가 만든 국수 먹고, 그 어떤 반응이라도 보이거나 소리를 내면. 국숫집 문 닫으세요. 절대로, 난 절대로 손님을 기만하고 국수를 모욕하는 꼴은 못 보겠어요.”
“어험, 어험. 우리 식당이 문제가 조금은 있어도 문을 닫을 정도까지는…….”
“자신 없어요?”
“흥! 좋다. 그까지 내기하자! 숨을 열 번 내쉴 때까지 아무 소리만 안 내면 된다는 거지?”
“네.”
“만약 아무 반응도 소리도 내지 않으면, 은자 열 냥은 필요 없다. 나도 국수에 대해서는 진심이다. 네가 내기에서 진다면, 무릎을 꿇고 내게 사과해라.”
“좋아요. 그렇게 하지요.”
“좋다. 내 숙방을 내주마. 그 잘난 국수 맛 한번 보자.”
그렇게 내기가 성립됐다.
난 살왕의 숙방으로 들어갔다.
심란하다. 너무 더러워서.
간단하고 빠르게 청소부터 했다.
그런 후, 올 때 미리 준비해 둔 봇짐을 풀었다.
천으로 잘 싸맨 닭 뼈와 간단한 채소들, 그리고 반죽 덩어리가 나왔다.
그 모습을 고개를 쭈욱 내밀고 지켜보던 살왕의 입이 오물조물 달싹거렸지만, 쉬이 말을 뱉지는 못했다.
“뭐요?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봐요.”
그제야 궁금하지 않은 척하면서 슬쩍 입을 열었다.
“어험, 궁금한 건 아니고. 뭐, 그냥…… 어험. 반죽은 왜 거기에 싸매 가지고 왔는지 해서.”
“숙성. 국수의 기본은 면! 쫄깃쫄깃한 면을 만들기 위해서는 무림인들이 철사장을 연마하듯 수천 번을 치대야 하고, 면의 굵기와 국수의 종류 그리고 날씨에 따라 그 숙성하는 시간이 달라집니다. 시전에서 대용량으로 파는 면에서는 절대 맛볼 수 없는 차지고 쫄깃한 맛이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뭐, 얼마나 대단하다고. 허세는. 국수 면이 다 거기서 거기지, 쯧쯧. 이거 괜히 시간 낭비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 국수의 생명은 육수. 그중에서도 고급 약재로 우린 육수가 최고인 것도 모르는 초짜하고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지, 에휴.”
“다 들립니다. 욕할 거면 제 국수 맛보고서 하세요.”
“어험, 일단 내기를 하기로 했으니, 별로 기대는 안 되지만 기다려보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살왕과 다섯 명의 특급 살수들은 내가 국수를 만드는 내내 엉덩이를 들썩들썩, 목을 길게 빼고는 요리 과정 전체를 상세히 살피고 있었다.
그렇게 일 각이란 시간이 지나.
드디어 여섯 그릇의 국수가 완성되었다.
“자, 다 됐습니다.”
쟁반에 국수를 담아 식당으로 내왔다.
이미 냄새가 식당 가득 퍼진 상태.
닭 뼈 육수를 우릴 때부터 저들의 침 넘기는 소리가 내 귓가에 천둥소리처럼 들려왔었다.
그리고 완성된 국수가 그들 앞에 놓이자.
조금 전과는 다른, 이 늙은 살수들이 갑자기 내 국수를 향해 안면몰수를 하기 시작했다.
아마 전음으로 살왕이 무언가를 지시한 모양이다.
이를테면 ‘맛있다는 티를 내는 놈은 혀를 자르고 입을 꿰매 버리겠다.’라든지 말이다.
침이 입 밖으로 줄줄 흐르는데도, 절대 삼키지 않는다.
눈에서 검광이라도 쏟아질 것처럼 국수를 먹고 싶은 간절함이 가득한데, 그들의 손은 쉬이 젓가락을 잡지 않았다.
“안 드세요? 맛을 봐야 제 국수가 어떤지 알죠.”
“어험, 뭐, 냄새부터 별로 기대는 안 되지만, 약속은 약속이니 살짝 맛만 보지. 다들 너무 그렇게 싫은 티 내지 말라고. 그래도 만든 사람 정성이 있는데, 한두 젓가락 정도는 들라고.”
“네, 숙수님. 억지로라도 한 입 해보겠습니다.”
그렇게 무림과 살수계를 은퇴한 여섯 특급 살수들의 국수 시식회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