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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두가 된 이유-157화 (157/245)

157화

무표정?

아니다.

비웃음이다.

아주 미세하지만 정말 자세히 관찰하니 보인다.

나를, 또 우리를.

저 새끼가 비웃고 있다.

그런데 그때.

딸깍.

의제가 칠연절명침을 재장전하려 하다, 소리를 들키고 말았다.

-의제, 한 형! 저자는 칠연절명침과 무형비침으로 상대할 수 있는 자가 아니…….

툭.

툭.

내가 전음을 다 마치기도 전.

의제와 한해북이 쓰러졌다.

이마 중앙에 작은 점이 보인다.

아! X팔.

보지 못했다.

느끼긴 했지만, 명확하지 않다.

의제와 한해북이 정확히 어떻게 죽었는지 모르겠다.

저자.

판당협에서 금예지가 죽인 정체불명의 아홉 명.

그들의 스승이라는 자.

내가 상대할 수 있는 자가 아니다.

젠장.

빌어먹을!

또…… 화경의 고수인가?

아니, 빌어먹을 이 시대에는 무슨 놈의 화경급 고수가 이리도 많아?

심지어 저 인간.

광마일기에 이름이 없다.

광천마제 시절의 내가 들어 보지도 못했던 인물이란 뜻이다.

정체불명인 아홉 녀석의 스승이라고 했으면 맹주 편일 텐데.

왜지?

천하가 나를 쫓았을 때, 저놈은 나타나지 않았다.

아니, 저런 존재 자체를 몰랐다.

어디 있다가 이제야 튀어나온 거야?

돌겠네.

됐다.

오늘 난 죽는다.

언제나 그렇듯.

이럴 땐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된다.

난, 오른손을 천천히 허리에 매여 있는 광천검으로 가져갔다.

정말 아주 정말 미세하지만 상대의 입꼬리가 올라가는 게 보였다.

완연한 비웃음 맞다.

나도 안다.

현재라면 저놈이 날 비웃을 자격이 된다는 것.

됐다.

지금 이 순간, 자존심 따위는 중요치 않다.

내가 할 일. 할 수 있는 일.

그것만 하자.

천천히, 더 천천히.

상대를 주시하며, 그렇게 내 오른손이 광천검 손잡이에 닿았다.

놈의 비웃음이 이제는 더 확연해졌다.

해볼 테면 해보라는.

발악이라도 해 보라는.

자신은 그걸 즐기겠다는.

그런 비웃음이다.

사 갑자의 내공?

퉤!

통하지 않는다.

아! 억울하네.

이제 곧 시산마검을 만날 때인데.

그 녀석만 만났어도 초절정 극상으로 오르고, 그랬다면 사 갑자의 내공으로 저놈을 어찌 저찌 해볼 수 있었을 텐데.

안되면 도망이라도 갔을 테고.

그런데 지금은, 그 기회마저 없다.

놈과 나의 격차는 그만큼 크다.

휴우.

한숨이 새어 나옴과 동시에 심장 박동은 더욱 거세어졌다.

그리고 그렇게.

난 광천검을 출검해 번쩍 치켜세웠다.

그리고 곧.

쉬이이이익!

푹!

“으윽!”

정확히 찔렀다.

열라 아프다.

진짜 아파.

아!

조금 덜 찌를 걸 그랬나?

왜 이렇게 아파.

눈물이 찔끔 흘렀다.

인상은 와락 구겨지고.

됐다.

이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내 단전을 내가 찔러 파괴했다.

털썩.

결국 고통을 이겨 내지 못하고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상대를 보았다.

조금 전까지 날 비웃던 놈의 얼굴에 놀라움이 일어 있다.

곧.

“뭐 하는…… 짓이냐?”

상대도 많이 놀라긴 놀란 모양이다.

목소리에까지 그 놀란 마음이 담겨 있다.

아! 답을 해야 하는데, 너무 아프다.

진짜 많이 아프다.

그래도 해야 한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이거니.

난 놈을 향해 힘겹게 입을 열었다.

“날…… 죽이러 온 거…… 으윽. 아니냐?”

“맞, 맞다.”

“부탁이 있다.”

놈은 대꾸하지 않았다.

여전히 날 신기한 듯, 또 미친놈 쳐다보듯 그렇게 놀란 얼굴로 보기만 했다.

내가 말을 이었다.

“죽기 전. 아! 으윽. 아하. 졸라 아프네. 죽기 전에…… 내가 누구한테 죽는지나 좀 알고…… 아악! 너무 아파. 조금만 찌를걸. 아! 아파!”

진짜 너무 아팠다.

손으로 지혈을 하고 있지만, 피가 철철 흘러나오고 있다.

난 잠시 그렇게 고통에 몸부림을 치다가 다시 상대를 향했다.

“누구한테 죽는지나 알고 좀 죽읍시다.”

그렇게 말을 마친 후, 상대가 보건 말건 품에서 광마일기와 각혼필을 꺼내 펼쳤다.

그런 후 상대를 쳐다봤다.

빨리 말하라고, 곧 죽을 것 같다고.

여기에 그거 다 적을 거라고.

그런 자세와 눈빛을 상대에게 보냈다.

그러자 상대는 더더욱 기이한 듯, 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미친……놈이었더냐?”

“으윽. 아! 졸라 아프네. 안 미쳤으니까 말이나 해. 그리고 부탁 하나만 더 하자. 나 죽으면, 끄응. 이거 불에 태워 줘. 그래야 귀신이 돼서 저승 갈 때, 가지고 갈 수 있으니까.”

놈은 대꾸 대신 여전히 미친놈 쳐다보듯 보며 고개만 갸우뚱했다.

“빨리 말해. 너무 아파서 네가 날 죽이기 전에 내가 내 목을 베어 버릴지 몰라. 나 아픈 거 오래 못 참는다고. 그러니 어서. 말……해. 누구냐, 넌?”

놀란 감정을 얼굴에서 지웠다.

상대는 허리를 꼿꼿이 세워 날 잠시 내려다보았다.

더 이상 미친놈 쳐다보듯 쳐다보지도 않는다.

심각하게 고민하는 모습이다.

그러더니 이내.

“비정검사(非情劍士) 오화서. 사람들은 나를 그렇게 불렀다.”

“비정검사? 오화서? 처음 듣는데?”

“네가 태어나기 전에 활동했고, 네가 태어났을 즘이면 난 무림을 떠났으니 모를 만도 할 테다.”

“젊어…… 보이는데?”

“환갑이 넘었다.”

역시 화경의 고수군.

사십대 초중반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아! 맞다.

정체불명의 아홉 명.

그놈들의 스승이라고 했다.

“날 죽이는 이유는 복수 때문인가? 판당협에서 우리가 죽인 그 아홉 놈 때문에? 그들이 제자였던가?”

“스승이다. 정식으로 사제지간을 맺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들 때문에 널 죽이는 건 아니다.”

“제자 비슷한 거네. 그래도 그들 때문이 아니라고?”

“무공을 전수해 주긴 했다. 하지만 난 놈들과 조금도 정을 나누지 않았다. 녀석들의 죽음에 일말의 슬픈 감정도 느끼지 않았고. 내가 오늘 너를 죽이는 것은 그들과 전혀 상관없다.”

“아! 비정검사라고 했지? 하아. 딱 어울리는 별호네. 그럼. 날 왜 죽이는 거지?”

오화서는 바로 대꾸하지 않았다.

우뚝 선 자세로 나를 내려다보며, 팔짱을 꼈다.

그에게서 미세하지만 기의 파동이 넓게 퍼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혹시 주변에 누군가 있는지, 기감으로 확인하려는 것 같다.

그렇게 약간의 시간이 지났다.

그의 표정이 바뀌었다.

“넌…… 도대체 왜 이러는 것이냐?”

“왜? 주위에 아무도 없어?”

오화서가 날 응시한 채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의외라는 얼굴이다.

“그냥, 습관이야. 무슨 일이든 일기에 적어야 해. 내가 겪은 일 모조리 다. 죽는 놈 소원은 들어주는 거라잖아. 그냥 들어줘. 어차피 곧 죽을 텐데, 끄응.”

피가 계속 철철 흐른다.

아픔 역시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계속 아프다.

아니, 진짜 곧 죽을 것 같다.

하늘이 빙긍빙글 돌기 시작했다.

광마일기도 흐릿하게 보이고.

오화서는 그런 나를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어차피 죽을 텐데도?”

“응. 어차피 죽을 텐데도, 그래야 해. 내일 중원이 멸망한다고 해도 사과나무 한 그루 심겠다는 놈도 있더라.”

“별놈들이 다 있군.”

“복수……할 거야.”

“……?”

“죽으면 삼도천인지 뭔지 건넌다잖아. 그때 저승사자들이 그 물을…… 끄응. 열라 아프네. 아무튼 저승사자가 망자에게 그 물을 마시게 하는데, 그러면 이승에서의 기억을 모두 잃는대. 이거…… 꼭 불태워 줘. 숨겨서 가지고 가게. 그래서 다시 환생하면…… 너 죽일 거야. 내 다음 생. 반드시…… 반드시 내 의제와 한 형의 복수…… 할 거야. 너…… 죽이려고 쓰는 거야. 그러니까 꼭 불태워 줘야 해.”

웃는다.

놈이 처음으로 제대로 웃었다.

재밌는 모양이다.

그런데 새꺄.

너 웃으라고 하는 소리 아니야.

다음 생부터 내 업보가 끝나는 그 생까지, 너 계속 죽일 거야.

바로 내가.

“재밌는 놈이구나.”

“한 번 웃겨 줬으니, 내 소원…… 제발 좀 들어주라.”

“큭큭큭큭. 그래, 그래. 죽는 놈 소원…… 처음이지만 한번 들어줘야겠다. 네 말대로 날 웃게 해 줬으니 말이다, 하하하.”

“날 왜 죽이는 것이지?”

“맹주가 부탁하더군.”

“무림맹주?”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인다.

“맹주의…… 수하인가?”

“아니다.”

“그런데 왜 맹주의 명령을 듣지?”

“부탁이라고 말했다.”

“아, 어지러워. 좀 쉽게…… 진짜 곧 죽을 거 같아. 단순하게 말해 줘.”

“큭큭큭. 죽는 모습도 재밌는 녀석이구나. 몇 번이고 죽어 봤던 녀석 같아, 하하하.”

“응. 그러니까, 제발 좀…… 알아듣기 쉽게 설명 좀 해 줘.”

“나중에 꼭 와라. 복수하러.”

“그럴 거야. 그러니까 그건 염려하지 말고. 방금 하던 말. 다시 좀…….”

“삼존하구룡협(三尊下九龍俠)이라고 한다.”

“삼존하구룡협?”

“어느 날 한 사내가 날 찾아왔다. 비무를 하자고 하더군. 그래서 했다. 하아! 무지막지 강하더군. 그것이 내 생애 첫 패배였다.”

“맹주였나?”

“아니다.”

“그럼 천수신권?”

“그도 아니다.”

“극양신장, 유령신검, 수라섬전도?”

“아니다. 그는…… 스스로 원곡이라고 했다.”

“녹주마적단의 두목. 천수신권의 쌍둥이 동생.”

“오! 네가 그걸 어찌 아느냐?”

“아는 사람 많아.”

재밌다는 듯 놀란 얼굴을 하는 오화서다.

대단한 무림의 비밀이지만, 역시나 그 또한 자신과는 상관없다는 듯한 분위기이기도 하다.

맹주와는 무슨 관계이기에 저러는 것이지?

헷갈리네.

일단 좀 더 들어 봐야겠다.

“원곡에게 깨져 처참한 몰골이었던 내게 찾아온 사람이 바로 맹주였다. 나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더군. 천하에 신공이랄 만한 무공 일곱 가지를 주겠다고 했다.”

“도대체 어떤 무공을 준 거지?”

“남궁세가의 창궁대연신공(蒼穹大衍神功), 소림사의 달마역근경(達摩易筋經), 화산파의 자하신검(紫霞神劍), 사천당가의 삼양귀원공(三陽歸元功), 살문의 살왕살수공(殺王殺手功), 과거 사파의 전설이라 불렸던 사도팔림(邪道八林) 풍살신검(風殺神劍), 마지막으로 이백 년 전 천살도존의 성명절기였던 악수도룡도법(惡獸屠龍刀法)이었다. 정말 꿈에서조차 상상할 수 없는 신공이라 할 만한 것들을 내게 주었다. ”

“미친. 말도 안 돼. 그걸…… 정말 다 줬다고?”

“처음엔 나도 믿지 않았다. 무림맹의 맹주씩이나 된다는 사람이 그런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실이었다. 그걸 모두 나에게 주었다. 봐라! 지금의 나를. 난 그것들을 통해 지금의 경지에 이를 수 있게 됐다. 화경의 벽을 깬 것이다.”

“대가는?”

“하하, 그렇지. 세상에 공짜는 없지. 하지만 무슨 엄청난 대가를 치른 것도 아니다. 그 아이들, 삼존하구룡협이라 불리게 될 아이들이었다.”

“판당협에서 우리가 죽인 그 정체불명의 놈들?”

“그렇다. 그 아이들에게 내가 얻어 익히는 무공들을 전수해 주는 게 조건이었다.”

“그게 전부야?”

“전부다.”

“미쳤군.”

“누가? 내가? 아님 맹주가?”

“맹주.”

“맞아, 맞아! 맹주는 미친놈이야. 그 무공 중 하나만 줬어도 분명 나는 그 제안을 거절하지 못했을 거야. 그런데 그 천하의 신공이란 무공들을 나에게 모두 줬으니…… 하하! 미치거나 바보거나 둘 중 하나인 것은 확실해, 하하하하!”

얼마나 웃겼는지, 또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박장대소를 터뜨리는 놈이었다.

“그럼 이번에 날 죽이는 이유는?”

“맹주가 또 다른 제안을 해 왔기 때문이다.”

“날 죽이는 대가로 무언가를 주기로 했군.”

“맞다.”

“그게 무엇이지?”

“무존(武尊)의 자리를 주겠다더군.”

“무존? 설마 삼존하구룡협, 세 명의 지존 아래 아홉 명의 협객. 거기에서 삼존 중 일인이 된다는 것이었어?”

“그렇다. 그래서 그 아이들 아홉 명이 아직은 그런 이름으로 불리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분명 훗날 그렇게 됐어야 할 아이들이었는데. 네가…… 또 아미의 그 금예지란 아이가 내 수고를 모두 물거품으로 만들었구나.”

“조금도 아쉬운 눈치가 아닌데?”

“아쉬울 건 없지.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에 그 녀석들을 대체할 아이들은 분명 있을 테니.”

“무존이란 명성이 탐난 거야?”

“사실 그도 아니다. 그냥, 우리 아이들을 죽인 네 실력이 궁금하기도 했고. 너란 아이를 한 명 죽이는 대가치고는 너무 큰 걸 제시해서, 산책이라도 나오는 기분으로 일을 수뢰한 것이다. 물론, 지금은 약간 후회하고 있는 중이다.”

“……?”

“네가 꽤 재밌어서 죽이기 아깝다는 생각이 들거든. 멍청하게 단전만 파괴하지 않았어도, 내가 맹주한테 말해서 어떻게든 데려가 좀 키워 봤을 수도 있었을 텐데. 쯧쯧. 너무 성급했다, 아이야.”

“사는 곳은? 삼존하구룡협 그놈들과 함께 지내던 곳에 아직도 지내나?”

“그렇다. 무림맹에 돈이 많더군. 많은 지원을 받아 살기 좋은 곳이다. 당분간 떠날 계획은 없는데…… 너 정말로 찾아올 생각이냐? 환생을 진짜로 믿어?”

난 눈에 힘까지 주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하하하. 하하하하! 환생하게 된다면, 꼭 찾아오너라. 네가 죽으면 그 일기인지 뭔지는 제대로 태워 줄 테니 말이다, 하하하하!”

“그래서 어디 사는데?”

“안휘 육안 서우산. 그곳이 내 집이다. 내가 늙어 죽기 전에는 꼭 와야 한다, 하하하하!”

내가 다시 다음 질문을 이으려고 할 때였다.

“마지막 질문을 받겠다.”

“왜? 궁금한 게 많은데.”

“아쉽지만 맹주가 보낸 감시의 눈이 다가오는 듯하구나.”

“그럼 마지막으로…… 당신은 무엇을 위해 살지?”

“난, 나를 위해 산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 대답.

그렇게 난 죽었다.

이것이 나의 스물네 번째 죽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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