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화
“그렇게 올 줄 알았지. 형제들!”
“넵!”
콰콰콰콰콰쾅!
콰콰콰콰쾅!
내 검강을 피해 두 무리로 나뉘어 양쪽으로 피하던 마두들의 움직임에 순간 변화가 왔다.
어떤 규칙도 없이 막무가내로 피하던 이들이, 갑자기 그 힘을 한 곳으로 집중하더니 각각 의제와 한해북을 오히려 덮친 것이다.
엄청난 폭발이 일었고, 큰 피해를 입은 건 의제와 한해북이었다.
“쿨럭.”
무려 열 장이나 뒤로 날아가 돌밭을 구른 한해북이 기침과 함께 검은 피를 한 사발 토했다.
내상이 깊다.
의제도 멀쩡하지 않다.
내가 싸워야 한다.
지체하지 않고 검에 내공을 가득 실어 마구 휘둘렀다.
그런데.
콰콰콰콰콰쾅!
쾅쾅쾅쾅쾅쾅쾅!
협곡의 절벽이 무너져내릴 정도의 어마어마한 힘.
무려 사 갑자의 내공이다.
그런데 이 새끼들.
빌어먹을 마두들이 내 움직임을 모두 파악하고 있다.
마치, 오늘 나를 만날 것을 예견하고 철저하게 대비한 움직임이다.
조직적이며 규칙적이다.
뭐지? 어떻게 안 것이지?
씨팔! 빌어먹을 맹주 개새끼.
내가 놈을 너무 얕잡아 봤다.
전생에, 작은 사부의 수십 년 전 비화까지 철저하게 조사했던 놈이다.
나라고 다르지 않았을 테다.
나와 의제 그리고 한해북의 활동과 무공을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야.
계효보가 사라지니 다른 눈이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무림맹이다.
젠장할!
“한눈팔 여유 따위는 없을 텐데?”
노마두의 비아냥.
허세가 아니다.
콰콰콰콰콰콰콰콰쾅!
쾅쾅쾅쾅!
놈들은 차륜전의 묘미까지 실은 진법까지 발휘해 가며 나를 집요하게 공격했다.
빠르고 강하다.
무엇보다, 빌어먹을 마두 새끼들 약빠르고 비겁한 공격을 조금도 개의치 않고 계속 나에게 퍼붓는다.
치고 빠지고, 다른 놈이 튀어나오고, 그러다 또 도망가고.
내 검법에 대해 도대체 얼마나 연구한 거야?
놈들도 지치고 다쳐간다.
하지만 정타는 한 번도 먹이지 못했다.
사 갑자의 내공이, 완연한 초절정의 고수라는 게 비참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슬쩍 의제와 한해북을 보았다.
각각 세 명씩, 늙은 절정의 마두와 중년의 마두들을 상대로 고전 중이다.
심지어 둘은 독에 대해 나처럼 자유롭지 못하다.
의제와 한해북을 상대하는 마두들 역시 조금의 부끄러움도 없다.
치고 빠지고, 그러다 독과 암기를 뿌려 댄다.
미치겠다.
이러다 정말 우리 다 죽을지도 모르겠다.
맹주, 개새끼.
이게 네가 바라는 것이었더냐?
그러고 보니.
아!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지금 내가 이끌고 있는 후기지수들.
무려 삼백 명이 넘는 아이들이다.
그런데 이 중에 단 한 명도, 광마일기에 그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다.
무림에서 가장 뛰어난 후기지수들만을 선별해 초대한 것이 용봉지회다.
그중 중간에 죽고, 재수가 없고, 어쩌고 해도.
최소한 몇 명은 내가 광천마제가 됐을 때 그 이름을 천하에 날려야 했다.
오중체와 장위지는 내가 직접 극양신장의 화양문과 유령신검의 황룡회를 멸문시켰으니 그렇다고 쳐도.
표필공, 기월제, 임하령, 장위지 그리고 반종려까지.
절대 천예휘의 아래가 아니다.
차이가 있다고 해도 백지장 한 장의 차이보다 적다.
무재 또한 엄청난 이들이다.
이들만 그런 게 아니다.
아직 잘 돋보이진 않지만, 삼백여 후기지수들 중 꽤 여럿이 정말 엄청난 무재를 갖고 있음을 난 이미 파악하고 있다.
그런데 단 한 명도.
십오 년 후, 내가 광마일기를 적을 때 그 이름이 한 명도 기록되지 않는다.
어쩌면, 나의 광천마제 생에 이들 모두, 지금 이 순간 죽었을지도 모른다.
맹주에 의해서.
아니, 만약 맹주가 삼십이마적단 마두 스물두 명을 지금처럼 준비시켰다면, 이들 중 그 누구도 그들의 살수를 벗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이것이었던가?
오롯이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만이 무림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제갈가단의 말이?
하아! 오늘 일진이 안 좋을 것 같다.
콰콰콰콰콰쾅!
“으아악!”
의제가 피를 뿌리며 열다섯 장이나 뒤로 날아가 땅을 굴렀다.
의제에게 공격을 퍼부은 늙은 마두도 멀쩡하진 않다.
하지만 의제의 상처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중하다.
도와줘야 하는데.
“한눈팔지 말랬지!”
콰콰콰콰콰쾅!
쾅쾅쾅쾅쾅!
돌겠다.
틈이 보이지 않는다.
어쩌지?
정말 오늘이 나의 스물네 번째 죽음이 되는 것인가?
그런데 그때!
“형님!”
오중체다.
미친놈이 실력도 안 되면서 의욕만 앞섰다.
의제를 부르며, 또 눈물을 뿌리며 달려 나갔다.
그의 양손엔 극양의 화기(火氣)가 불을 뿜어 대고 있었다.
하지만 상대가 너무 강하다.
콰콰콰콰콰쾅!
엇? 오중체보다 더 빨리 늙은 마두를 공격한 검기가 있다.
유령신검의 제자 중 유일한 여제자인 황룡회의 장위지.
그녀가 의제를 향해 다가가던 늙은 마두에게 검기를 연달아 쏟아부었다.
곧이어.
콰콰콰콰콰쾅.
화르르르르르르.
오중체의 양손에서 엄청난 불이 뿜어져 늙은 마두를 덮쳤다.
“형님!”
다른 곳.
한해북이 늙은 마두의 칼과 암기를 위태위태하게 피하고 있을 때.
또 다른 녀석이 눈물을 뿌리며 달려 나갔다.
표필공이다.
녀석 한 명만이 아니다.
삼악파의 허시가 역시나 그와 함께 움직였다.
곧이어.
퍼퍼퍼퍼퍼펑!
쾅쾅쾅!
이들의 도기와 검기, 그것이 한해북을 공격하던 마두에게 마구잡이로 쏟아졌다.
하지만 이들만으로는 부족하다.
상대는 닳고 닳은 노마두들이다.
그런데 다시 그때!
임하령이 결연한 얼굴로 검을 뽑아 들며 외쳤다.
“싸우자!”
“와아아아아아아아!”
임하령이 그렇게 외치며 몸을 날리자, 삼백여 후기지수들이 일제히 도검을 뽑아 들며 삼십이마적단을 향해 몸을 날렸다.
“이쪽은 괜찮다! 우각도협과 구절협을 도와라!”
“넵!”
내 명령에 후기지수들이 두 무리로 나뉘어 의제와 한해북을 도와 마두와 싸움을 벌이기 시작했다.
퍼퍼퍼퍼퍼펑!
콰콰콰콰콰콰쾅!
절대적 수적 우위.
하지만 무림에서 숫자의 개념은 그리 중요한 게 아니다.
콰콰콰콰쾅!
퍼퍼퍼퍼펑!
“으아아아아악!”
순식간에 열댓 명의 아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래도 칠룡사봉을 위시한 아이들은 용맹하게 늙은 마두와 싸웠다.
물러서지 않는다.
영웅의 피가 흐르는 아이들이다.
그런 아이들을 보며, 난 더 힘을 내야 했다.
“형님을 돕겠습니다.”
나를 상대하던 여러 마두 중 한 명이, 후기지수들에게 포위되어 고전을 하고 있는 다른 마두를 도우려 몸을 날렸다.
아니, 날리려 했다.
“한눈은 네놈들이나 팔지 마라.”
흐트러진 전열.
무리를 이탈한 마두.
내게 자비란 없다.
콰콰콰콰콰쾅!
싸움이 시작되고 처음으로 한 놈을 죽일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의 끔찍하면서도 처참한 싸움은 계속 이어졌다.
마두들은 계속 치고 빠지고, 또 독과 암기를 뿌려 대며 나를 공격했다.
그래도 괜찮다.
놈들이 현화문의 무공을 모두 간파할 수는 없다.
내 검법이 조금의 변화를 일으키자, 놈들도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후기지수 녀석들은 나보다 더 잘해주고 있다.
덕분에 한숨을 돌릴 수 있었던 의제와 한해북이 다시 힘을 냈고.
콰콰콰콰쾅!
쾅쾅쾅쾅쾅!
“으아아아악!”
의제가 늙은 마두의 목을 벴고, 후기지수들이 나머지 두 중년 마두의 목을 베었다.
곧바로, 한해북 쪽에서도 변화가 일었다.
콰콰콰쾅!
“으아아악!”
늙은 마두고 중년의 마두들이고, 모두 한해북과 후기지수들의 자비 없는 도검에 난자가 되어 생을 마감했다.
“형님!”
“마 형!”
의제와 한해북이 나를 돕기 위해 몸을 날렸다.
이거 체면이 말이 아니군.
조금 무리를 해야겠다.
난, 의제와 한해북이 나를 돕기 위해 몸을 날린 그 시점.
동시에 나를 차륜전으로 집요하게 공격하던, 그렇지 않아도 혼란스러운 게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났던 마두들이 의제와 한해북에게 시선을 분산했을 때.
“한눈팔지 말라고 네놈들이 그랬잖아!”
내 내공을 모조리 검에 담아 일격을 날렸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한 방의 검.
그것으로 열한 명이 목숨을 잃었고, 나머지 마두들에게도 큰 상처를 입힐 수 있었다.
고수와 고수의 싸움에서, 한순간의 흐트러진 집중은 이토록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놓치지 않은 것이고.
콰쾅!
쾅!
“형님들을 도와라!”
의제와 한해북이 각자 두셋의 다친 마두들을 정리했다.
나머지 몇 명의 마두들도 개떼처럼 달려드는 후기지수들의 칼을 피할 수 없었다.
그렇게 힘겨웠던 싸움이 끝났다.
아니, 질 것이라 생각했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후기지수 녀석들, 그저 철없는 코흘리개 정도로 생각했는데, 절대적인 역할을 해 주었다.
물론, 오십 명 가까이 죽었다.
그만큼 적들도 강했다.
그래도 됐다.
이겼고, 이백오십 명 넘게 살았다.
털썩.
마지막 무리수 때문인지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 땅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와아아아아아!”
“이겼다!”
“다친 동료를 도와라!”
“이겼다! 우리가 이겼다!”
“와아아아아아!”
후기지수들은 그야말로 기쁨의 도가니였다.
옆에 죽은 동료의 시체들이 있었지만, 자신이 살았다는 또 마두를 상대로 싸워 이겼다는 기쁨이 더 컸나 보다.
무림에서 죽음은 언제나 무인과 함께한다.
익숙한 것이고 또 익숙해져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비록 옆에 동료의 시체가 있지만, 저들의 환호와 기쁨을 탓할 수는 없다.
아니 어쩌면, 조금 전 느꼈던 공포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저렇게 악을 쓰며 소리를 지르는지도 모르겠다.
됐다.
어쨌거나 오늘은 살았다.
나의 스물네 번째 죽음은 다음으로 미뤄야겠다.
“형님, 괜찮으십니까?”
의제도 꽤 힘들었던 모양이다.
내 옆에 털썩 주저앉으며 그리 말했고.
곧이어 한해북 역시 같은 신세가 됐다.
우리 셋은 나란히 앉아 환호하고, 또 시체를 수습하고, 다친 동료를 돕는 후기지수들을 그저 멍하게 바라보기만 했다.
“마 형, 원소라는 자가 안 보이는군요.”
그렇다.
맹주의 심복이자 전령.
원소가 없다.
보이지 않는다.
빌어먹을 새끼.
혹시나 해서 농담처럼 물었었는데, 진짜로 우리를 감시하기 위해 맹주가 보낸 자였어.
아! 또 머리가 혼란스러워진다.
어쩌지? 맹주 이 새끼를 어떻게 족쳐야 하지?
그때였다.
쉬이이이이이이익.
뭔가 바람과 함께 후기지수들이 한데 어우러져 있는 중심으로 날아왔다.
엄청난 속도의 사람이었다.
빡빡머리.
나와 의제, 한해북이 뭘 해 보기도 전에, 그 인영은 이미 목표한 지점에 닿아 있었다.
그리고.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무지막지한 위력이다.
단 한 번의 충돌로, 그 주위에 있던 후기지수들 삼십여 명이 즉사했다.
더 큰 문제는, 그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협곡의 한쪽 절벽 위. 여덟 명이 더 있다.
뒷짐까지 지고 오연한 자세로 협곡의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내공이 남아 있지 않다.
삼십이마적단에게 마지막으로 퍼부은 공격이 무리수였다.
약간의 내상까지 입은 상태의 나다.
의제와 한해북의 상태는 더 심각하다.
마두들이 뿌린 독이 온몸에 퍼진 상태다.
“막아라!”
오중체가 외쳤지만.
쾅!
퍼퍽!
콰콰콰콰쾅!
아홉 명 중 한 명.
빡빡머리.
그 혼자만이 후기지수들 사이에 뛰어들어 마구잡이로 살육을 펼치고 있다.
힘들지만, 막아야 한다.
“네 이놈!”
허장성세다.
없는 내공을 쥐어짜 사자후까지 터트리며 놈에게 몸을 날렸다.
주먹을 휘둘러 후기지수들을 마구잡이로 때려죽이던 빡빡이의 동작이 멈추었다.
사자후 때문에 겁이라도 먹었나?
아니다.
놈이 날 보며 웃는다.
그러더니, 훌쩍 뛰어 절벽 위 다른 여덟 명 곁으로 가 버렸다.
순식간에 오십여 명이 후기지수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보다, 놈의 압도적인 무위에 후기지수 모두가 덜덜 떨고 있다.
그냥 두려움이나 공포가 아니다.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끼고 있는 것이다.
고개를 들어 절벽 위를 보았다.
놀랍다.
절정과 초절정을 오가는 아홉 명의 사람들.
고작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 후반 정도의 나이밖에 되지 않았다.
어디서 저런 괴물 같은 놈들이 튀어나온 걸까?
그리고 그중, 이십 대 후반으로 보이는 자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절벽 위에서 나를 내려다보며, 여유롭게 미소까지 짓고 있다.
“역시 소문이 과장된 건가? 한심하기 그지없군.”
젠장!
“누구냐, 넌?”
“염라대왕에게 물어봐라.”
말을 마친 그가 절벽 아래로 몸을 날렸다.
아홉 명 중 가장 강한, 완연한 초절정의 고수가 검을 뽑아 나를 향해 달려드는 것이다.
이건 막을 수 없다.
남은 힘이 없다.
그의 검에서 강기로 형성된 용이 보였다.
초절정에서도 형성강기(形成剛氣)의 경지라니.
성한 몸이었다고 해도 쉬이 승패를 장담할 수 없는 고수다.
젠장.
이렇게 죽는군.
난, 항거를 포기하고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다시 시작해야겠다.
이것이 나의 스물네 번째 죽음이었…….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쿠르르르르르르르르르릉.
쿠르르르르르콰콰콰쾅!
엄청난 폭발?
협곡의 양쪽 절벽이 모두 무너져내리는 무지막지한 폭발이 일었다.
왜지?
난 분명 그냥 죽으려고 했는데?
감았던 두 눈을 슬며시 떴다.
가냘픈 몸매로, 한 손에 칼을 쥐고 더없이 당당하게 서 있는 뒷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그 뒷모습이 꽤 익숙하다.
너무나 보고 싶었고, 그리워했던.
그녀다.
우리들의 첫사랑 등장이시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