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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두가 된 이유-151화 (151/245)

151화

“형님! 식사하셨습니까?”

한 녀석이 또 늘었다.

오중체 한 명만으로도 시끄러워 죽겠는데.

이젠 칠룡 중 한 명인 청죽도림의 절죽도 표필공까지 함께 우리 전각에 눌러앉았다.

왜, 첫날부터 칠룡사봉 중 유일하게 도(刀)를 쓴다는 이유로 의제와 한해북이 유독 예뻐했다던 녀석 말이다.

그러고 보니 칠룡사봉 중 검법을 쓰는 녀석이 여섯 명.

칠룡 중에는 둘이 있고, 사봉은 모두 검을 쓴다.

권법을 쓰는 녀석이 소림의 단장과 황보세가의 황보치산 두 명.

오중체가 장법을 쓰니 장법가 한 명.

마지막으로 표필공, 도객도 한 명뿐이다.

확실히 도를 많이 쓰는 군영과 다르게 무림에는 검객이 많은가 보다.

뭐, 나도 검객이고 말이다.

아무튼 이른 아침 후기지수들 사건 이후, 오중체와 표필공은 온종일 의제를 졸졸 따라다니며 ‘형님’ 소리만 수백 번째 하고 있다.

그리고 그때.

점심을 먹고 저 녀석들 쫓아 버릴까 고심 중이던 그때 맹주전에서 사람이 왔다.

하남 신양 독고검문 사건 때 우리에게 맹주의 초대장을 전한 원소 그 사람이다.

“저만요?”

“네. 맹주님께서 마 도사님을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지금요?”

“네. 기다리고 계십니다.”

“혹시…… 아침에 있었던 일 때문에 혼내시려는 거면, 저 말고 의제 녀석을 데리고 가셔야 할 텐데요. 몇 대 때리셔도 괜찮습니다. 저 녀석 튼튼하거든요.”

“풉, 큭. 앗, 죄송합니다.”

“하하, 웃자고 한 소립니다. 그런데 맹주님께서 무슨 일로 부르시는 건가요?”

“아,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아침에 있었던 일 때문은 아닐 겁니다.”

“뭐, 그렇겠죠. 알겠어요. 가시죠.”

“네. 모시겠습니다, 마 도사님.”

창궁검제와의 만남이라.

이 인간이 날 왜 부르지? 그것도 나 혼자만?

뭔가 찝찝해. 벌써 구린내가 풀풀 풍기는 것 같단 말이지.

일단 만나 보자.

그래도 이 동네 대장인인데 말이다.

*

맹주를 만났다.

독대다.

저 먼 나라 포달랍궁이 있는 서장의 귀한 차까지 우려 놓고 날 기다리고 있었다.

간단한 인사와 함께 이런저런 의미 없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무림이 어떻고, 정의가 어떠하며, 진정한 협행에 대해 참 노인네가 말도 많다.

아마도 내가 아닌 다른 후기지수, 내 또래의 다른 이들이 무림맹 맹주에게 이런 소리를 들었다면 피가 끓고 벅차오르는 감정을 주체하기 힘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아마 대부분 그랬을 테다.

슬쩍슬쩍 나를 띄워 주며 무림의 앞날과 진정한 영웅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어디 그딴 유치한 수작이 나에게 통하겠는가?

내가 스무 살 꼬맹이도 아니고.

거기에 처호와 처선의 경고까지 있지 않았겠는가?

이 양반아, 적당히 하고 본론을 꺼내라고.

뜬구름 잡는 소리 그만하고.

이런 소리를 들으면, 내가 감동해 무릎이라도 꿇고 충성 맹세라도 할 줄 알았나?

한심하긴.

보면 볼수록 맹주는 무인이라기보다는 능구렁이 같은 정치가 느낌이다.

어쩌면 이 또한 나의 편견일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확실히 남들과 다른 부분도 있었다.

철저한 사전 조사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수룡검 천무휘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이 없으시네요? 제가 누구를 만나던, 다들 천무휘 천무휘. 그 녀석 이야기뿐이었는데요.”

“천 소협? 그는 이미 화산 사람이 아니겠는가?”

“천무휘는 그렇게 말하지 않던데요?”

“세상은 꼭 자기가 원하는 대로만 살 수는 없는 법이라네. 이 나이가 들면 저절로 깨닫게 되는 진리지.”

“네.”

내가 자기 말에 수긍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기분이 좋아 보인다.

그러다 잠시 무언가 떠올랐는지, 살짝 주저한 후 입을 열었다.

무언가 내 눈치를 살피는 것 같기도 하고.

“자네들 몽고 사막에 갔을 때 말이네.”

“그 이야기도 들으셨군요.”

“자네들 꽤 유명하네, 모르긴 몰라도 자네들이 몽고에서 겼었던 그 일은 들어 보지 못한 사람보다 들어본 사람이 더 많을 걸세.”

“그런가요? 그런데 그때의 일은 왜요?”

맹주가 다시 살짝 주저한 후 입을 열었다.

역시나 또 내 눈치를 살핀다.

난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혹시 말일세.”

“네.”

“자네들이 적사마적단을 상대하던 중 녹주마적단이 들이닥쳤다고 이야기를 들었네.”

“맞아요.”

“그때 특별한 점은 없었나?”

큭큭큭.

미친!

천수신권의 쌍둥이 동생 원곡이 사라진 것을 저렇게 돌려 묻는 것이다.

궁금해 미치겠지.

난 그런 맹주의 모습을 마구 비웃어 주고 싶었지만, 꾹 참고 정색한 얼굴로 또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로 답했다.

“휴우, 그때만 생각하면…… 소문과 많이 달라요. 그때 녹주마적단이 들이닥칠 때, 우리 넷 모두 진짜 똥구멍으로 불까지 뿜으면서 도망쳤어요. 특별한 것이고 뭐고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니까요. 창피하니까 맹주님만 알고 계세요.”

“그, 그런가?”

살짝 당황한 듯하다가 이내 나를 빤히 쳐다본다.

그러더니 또 은은한 미소를 짓는다.

나와 천무휘, 의제, 한해북 넷이서 설마 극마의 고수인 원곡을 어찌했을 수 없다고 확신하는 모양이다.

혼자 고개까지 슬며시 끄덕이며 이내 그의 부드러운 음성이 입 밖으로 나왔다.

“마 도사.”

“네, 맹주님.”

미소가 더 짙어졌다.

나를 바라보는 눈에 간절함이 보인다.

뭔가 첫사랑을 바라보는?

아니다.

내 눈에 보이기는, 제대로 호구 한 명 잡았다는 기쁨이 담긴 그런 눈빛이었다.

“영웅이 돼 보지 않겠나?”

이제야 본론을 꺼내는군.

“영웅이요?”

“그래, 영웅. 계속 말했지만, 천하는 악인들이 너무 많다네. 그 악인들에 의해 오늘도 끔찍한 고통 속에 살아가는 선량한 백성들이 가엽지 않은가? 악인을 물리치고 선량한 백성을 구하는 진정한 영웅. 대협객 말일세.”

이 인간이 나를 진짜 스물세 살의 철없고 주먹만 세고 현실 파악 못 하는 무림초출 정도로 아는 모양이다.

뭐, 나를 처음 만났으니 그리 생각할 만도 하겠지.

그런데 맹주야, 맹주야.

내가 나이로 따져도 네놈 머리 꼭대기에 앉아 있단다.

어디서 되도 않는 수작질이야.

“영웅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데요?”

이 인간, 이제는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거의 다 넘어갔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러다 또 진지한 얼굴을 한다.

“영웅지로(英雄之路, 영웅의 길)라. 무림에 발을 들인 자, 그 누구라도 영웅이 되고 싶어 한다네. 하지만 그 길이 그렇게 쉽지 않은 것 또한 현실이지. 방금 말하지 않았나? 세상은 꼭 자기가 원하는 대로만 살 수 없다고.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무림맹일세.”

맹주가 슬쩍 내 분위기를 살핀 후 다시 점잔을 떨며 말을 이었다.

“가끔은 뜻하지 않았던 불운이 닥치고, 때로는 도저히 이겨 낼 수 없는 역경이 찾아온다네. 그리고 무림에서 그런 불운과 역경은 대부분 죽음으로 이어지지. 저 멀리 마교가 있고, 우리 주변에는 언제나 마두들이 있다네. 그들을 막고 물리치는 것이 우리의 길이며, 그렇게 뜻을 하나로 모아 우리 무림맹이 탄생하게 된 것이라네.”

“저…… 맹주님, 그래서 영웅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건데요?”

“마 도사, 자네는 지금까지 아주 잘해 왔네. 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지금까지와 같이 순탄한 길을 걸을 수 있을 것이라 장담하기 어렵지 않겠나?”

“그럴 수도 있겠죠.”

“실은 말일세…… 어험.”

헛기침까지 하며 뜸을 들인다.

내가 초조해지길 바라서 일부러 하는 행동일 테다.

내가 당신 머리 꼭대기에 앉아 있다니까.

“내 진즉부터 자네의 행보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네.”

“감사합니다.”

“그뿐만이 아닐세.”

“그럼……?”

“소림사의 천수신권께서도 나에게 몇 번이고 자네 이야기를 했다네.”

아마도 다른 후기지수가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면, 화들짝 놀라는 것을 넘어 감개무량에 눈물까지 흘렸을지도 모르겠다.

맹주와 천수신권은 무림에서 그런 존재니 말이다.

그래도 이 양반아, 내가 계속 말하잖아.

내가 당신들 머리 꼭대기에 앉아 있다고.

“허허, 천수신권께서 자네를 매우 마음에 들어 하시더군.”

“아! 감동이네요.”

“허허허, 그렇지? 허허허허.”

좋아 죽는다.

나 말고 맹주가.

“단도직입으로 말하지. 무림맹으로 들어오게. 자네의 원대한 꿈을 내 꼭 이루어 주겠네. 천하의 악적들을 마음껏 물리칠 수 있도록, 내가 아낌없는 지원을 해 주겠네. 진정한 영웅지로를 걸을 수 있게, 내 그 밑받침이 되어 주겠네.”

뭐 빠지게 굴리겠다는 소리다.

내가 강해질수록, 그만큼 강한 적들과 싸우게 하겠다는 소리고.

광천마제 시절 내가 시산마검을 죽이고, 만검존을 죽였으며, 다시 수라섬전도와 극양신장, 유령신검까지 죽였던 이유.

종국에는 마교주까지 내가 죽였다.

천수신권과 이 인간 창궁검제가 멀쩡히 살아 있음에도, 그들 모두를 내가 죽였다.

목숨이 아흔아홉 개라도 살아남기 힘들었던 싸움이라고 광마일기에 기록되어 있다.

왜?

왜 나는 광천마제 시절 왜 그자들과 싸워야 했고, 또 왜 그들을 죽여야 했나?

분명한 내 의지다.

하지만 온전히 내 의지만으로 그들과 싸우고 죽였다고 말할 수도 없다.

지난 회귀를 걸치며 의심했던 것들이, 이제는 확신으로 굳어지고 있다.

광천마제 시절과 그 방법은 다르지만, 창궁검제는 분명 나를 이용하려 하고 싶은 것이다.

차분하자.

침착하자.

화가 끓어오르고 광기가 터질 것 같지만, 냉정해져야 한다.

“무림맹에 입맹하면 어디에 소속이 되는 건가요?”

“그야 당연히 맹주전 직속으로 편입될 걸세. 자네가 원한다면 무림 최고의 고수들을 모아 무력대를 만들어 줄 수도 있다네. 아니, 꼭 그렇게 해 줄 것이라 지금 이 자리에서 맹주의 이름으로 약속하지.”

“맹주전 소속 무력대면, 누구의 명령을 듣게 되나요?”

“그야 당연히 내 명령을 따라야 하지 않겠나?”

“그렇죠?”

“그렇네.”

귀에 걸렸던 입꼬리가 슬며시 내려오는 맹주다.

뭔가 쎄한 느낌을 받은 모양이다.

“그럼 결국 맹주님 수하가 되게 되는 거네요?”

“꼭 그렇게 생각할 것은 아니라네. 무림의 평화와 정의, 악인들에 의해 도탄에 빠진 민초들을 구하는 영웅이 되는 길이라고 말하지 않았나.”

“네. 그러셨죠.”

내가 초조해지길 원했지만, 결국 초조해진 건 맹주였다.

눈동자가 미세하지만 떨리고 있는 게 보였다.

“꼭 맹주전 무력대가 아니라도, 자네가 원한다면 어느 자리라도 줄 수 있다네. 화산장로와 친하지 않은가? 화산장로원 소속으로 들어가도 되고. 아니면 따로 자네만을 위한 조직을 편성해 줄 수도 있다네. 잘 생각하시게, 마 도사. 천하를 위하는 길이고. 그것은 무림에 발을 들인 무인에게 있어서 선택이 아닌 의무라네.”

“사절하겠습니다.”

순간 맹주의 얼굴이 굳었다.

화가 난 건 아니다.

당황한 것 같다.

그런 느낌이었다.

“조금 더 생각해 보지 않겠나?”

“제가 무공을 익히긴 했지만, 이는 도를 닦는 여러 수양법 중 일환에 불과합니다. 사부님께서 절강에 머물고 계신데, 그 잠깐의 틈을 타 세상 구경 나온 것입니다. 이제 사문으로 돌아가야 해요. 아무리 사람들을 돕는 일이라지만, 제가 매일 같이 피 튀기는 싸움을 한다면, 사부님께서 슬퍼하실 거예요.”

“진심……인가?”

“네. 죄송합니다, 맹주님. 부족한 저를 좋게 봐 주셨는데, 맹주님 뜻에 부합하지 못해서요.”

“아니네. 나는 자네가 무림에 원대한 뜻을 품은 줄 알고 한 제안이네. 현화문으로 돌아가 도를 닦는다면, 내 어찌 이를 말릴 수 있겠는가.”

“이해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맹주가 고개를 몇 번이나 끄덕이며 짧지만 고심에 빠진 얼굴이었다.

그러더니 이내.

“마 도사.”

“네, 맹주님.”

“현화문으로 돌아가기 전에, 한 가지 부탁을 해도 되겠나?”

“어떤 부탁요?”

“용봉지회의 마지막에는 항시 후기지수들만 움직여 마두를 잡는 관례가 있다네.”

“저는 후기지수 신분으로 참석한 게 아닌 줄로 알고 있습니다.”

“맞네. 자네는 후기지수 신분으로 참석한 게 아니네. 나 역시 자네를 그 행사에 참석하게 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네. 그런데 보시게.”

맹주가 자신이 집무를 보는 책상 위에 수북이 쌓인 서류들을 나에게 건넸다.

용봉지회에 참석한 후기지수들이 맹주에게 올린 청원들이었다.

“음…… 저와 의제 그리고 한 형이 용봉렵마(龍鳳獵魔, 용봉들의 마두 사냥)에 함께할 수 있게 해 달라는 청원이군요.”

“그렇네. 아이들이 그토록 간절히 원하니, 두부 자르듯 딱 잘라 거절할 수도 없고. 그 아이들에게 있어서는 평생에 딱 한 번 참석할 수 있는 귀한 경함 아니겠는가? 근자에 무림에서 가장 큰 명성을 떨치고 있는 자네들과 함께하고 싶어 하는 아이들의 마음을 나도 충분히 이해한다네. 그래서 이렇게 자네에게 부탁하는 것이고.”

“제가 참석해도 되긴 되는 거예요?”

“물론이네. 용봉렵마라지만, 어디 대부분이 무림초출인 아이들만 마두를 잡으러 보낼 수 있겠나? 당연히 경험 많은 고수를 몇 명 함께 보내 혹시 모를 일에 대비를 한다네.”

“역시 무림맹이라 그런지 철저하네요.”

“그리고 이건 비밀인데, 허허. 꼭 비밀 지켜야 하네.”

“네. 약속드립니다.”

“실은 말일세…… 허허. 이거 아이들이 알면 꽤 실망이 클 텐데, 허허허.”

조금 전까지만 해도 기분이 땅바닥까지 추락했던 양반이, 뭔 소리를 하려고 저렇게 웃지?

“아이들이 잡을 마두 말일세.”

“네.”

“이미 우리 무림맹에서 미리 잡아 두었네. 정확히 말하면 몇 달 전부터 우리 무림맹 무력대 몇 개가 일부러 잡지 않고 집요하게 추적하고 몰아붙여 한곳에 포위해 놓은 상태라네. 지치고 다치고 내공도 거의 고갈된 마두라네.”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요? 용봉지회 참석한 아이들이 어리고 경험이 부족하긴 하지만 그래도 제법 대단해 보이는 아이들도 있던데요.”

“허허허, 어디 그걸 나라고 모르겠나? 하지만 수백 명의 아이들 한 명 한 명이 그 지역의 희망이고 그 세가와 문파에서는 귀하디 귀한 아이들일세. 무림맹 용봉지회에 참석했다가 크게 다치기라도 한다면, 문제가 자네나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커질 수 있는 일이라 그렇게 하는 것이지. 이 또한 무림맹의 오래된 관례라네.”

“음, 그럴 수도 있네.”

“자네는 아이들을 데리고 편한 마음으로 다녀와 주기만 하면 된다네. 자네들이 함께한다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에겐 분명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될 테니 말일세.”

맹주, 이 인간.

지금 가짜 웃음을 짓고 있다.

무언가 숨기고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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