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화
당금 무림의 칠룡사봉(七龍四鳳).
칠룡.
수룡검(秀龍劍) 천무휘.
소림사 금강소룡(金剛少龍) 단장.
남궁세가 소가주 소황검협(小皇劍俠) 남궁무기.
황보세가 소가주 소철권(小鐵拳) 황보치산.
화양문 태양철장(太陽鐵掌) 오중체, 무림오대고수 중 일인인 극양신장 오대극의 셋째 아들.
청죽도림 절죽도(切竹刀) 표필공.
칠성검문 칠검홍(七劍虹) 기월제.
사봉.
아미파 소포검화(少抱劍花) 임하령.
황룡회 생령유검(生靈幽劍) 장위지, 무림오대고수 중 일인인 유령신검의 여러 제자 중 유일한 여제자.
검각 흑검맹려(黑劍猛麗) 반종려.
삼악파 오채화(五彩花) 허시.
지이이이이이잉!
“현화문의 현화도사 마악치 대협 입장이요!”
지이이이이이잉!
“우각당의 우각도협 곽우적 대협 입장이요!”
지이이이이이잉!
“복건 대두장의 구절협 한해북 대협 입장이요!”
엄청난 근육을 자랑하는 사내가 자기 덩치만큼이나 커다란 징을 쳤다.
다시 학사풍의 중년 사내가 내공을 실은 음성으로 우리를 소개했다.
용봉지회의 연회장에는 거의 오백 명이 넘는 이들이 이미 자리를 하고 있었다.
경계 무사와 연회를 관리하는 노고수 몇을 제외하고는 거의 다 우리 또래의 젊은이들이었다.
시끌벅적했던 그곳에, 우리의 입장을 알리는 소리가 울려 퍼지자, 순간 모두의 시선이 우리에게 쏠리며 거짓말처럼 정적이 찾아왔다.
하지만 이는 잠깐.
애써 우리를 외면하려는 몇몇이 보였고, 또 몇몇은 크게 환호했으며, 다시 몇몇은 술렁였고, 일부는 크게 기뻐하며 우리를 향해 다가왔다.
급히 다가온 후기지수들과 우리는 인사를 나누었다.
약간의 시간이 지나 여유가 생겼고, 금세 연회장의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었다.
누가 꼬맹이들 아니랄까 봐, 끼리끼리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역시나 크고 작은 세력을 만든 칠룡사봉이 있었다.
가장 많은 세를 이루고 있는 건 역시나 소림의 단장과 남궁세가의 남궁무기였다.
황보세가의 황보치산, 화양문의 오중체 그리고 아미파의 임하령과 황룡회의 장위지 주위에도 꽤 많은 이들이 몰려 있었다.
그다음으로는 그저 댓 명에서 열댓 명 정도가 몰려 있는 검각의 반종려, 청죽도림의 표필공, 칠성검문의 기월제, 마지막으로 삼악파의 허시가 있었다.
“아미의 임하령이 마 도사님과 곽 대협, 한 대협께 인사드립니다.”
“아! 오랜만입니다, 임 소저.”
“기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 도사님.”
칠룡사봉 중 가장 먼저 우리에게 인사를 하러 온 것은 아미파의 임하령이었다.
아미산에 머물 때 정식으로 인사를 나누지도 않았다.
당연히 대화도 해 본 적 없다.
우리 예지를 괴롭혔다는 말에 그녀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도 있고.
아미산에서 나는 주로 장문인이나 장로들과 함께 어울렸기 때문에 이대 제자인 그녀와 함께할 기회 자체가 거의 없었다.
뭐, 그래도 타지에서 만나니 반갑긴 했다.
아예 모르는 얼굴도 아니고.
그녀도 아미파 어른들의 신신당부가 있었는지, 우리에게 극진한 예를 갖추었다.
덕분에 그녀 주변에 몰려 있던 다른 후기지수들까지 우리에게 과한 예를 갖춰야 했다.
“청죽도림의 표필공이라 합니다. 세 분을 꼭 뵙고 싶었습니다.”
“영광입니다. 칠성검문의 기월제라 합니다.”
“삼악파의 허시라고 해요.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검각에서 왔습니다. 반종려라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황룡회의 장위지라고 합니다. 위명이 자자한 세 분 대협께 인사드립니다.”
유령신검의 제자 중 유일하게 여제자인 생령유검 장위지.
딱 거기까지였다.
소림 단장, 남궁 남궁무기, 황보 황보치산, 화양문 오중체는 저 멀찍이 다른 후기지수들에게 둘러싸여 우리를 본체만체하고 있었다.
됐다.
어린 것들이 자존심 좀 세우겠다는데, 그러려니 해야지.
그런데 문제가 좀 생겼다.
우리 곁으로 계속해서 애들이 몰려들며 인사도 건네고 이것저것 질문을 쏟아 내었다.
마두와 싸울 때보다 더 피곤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역시 이런 건 나와 어울리지 않는 생활인 것 같다.
조용했던 갑돌산 우리 집이 갑자기 그리워졌다.
소림의 단장이나 남궁세가의 남궁무기 주변에 몰린 애들 다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애들이 우리 곁에 몰려 있으니 얼마나 시끄럽겠는가.
뭐, 내가 일일이 다 숫자를 세어서 저 두 놈보다 우리 인기가 더 많다는 것을 내세우려는 것은 아니다.
하하하! 절대 아니다.
내가 애들도 아니고, 그런 유치한 자존심 싸움할 위치는 또 아니지 않겠나?
정확히 단장이랑 남궁무기 주변에 몰린 애들보다 우리 쪽에 몰린 애들이 다섯 명 더 많다.
하하하!
하여간 이놈의 인기는, 하하하!
뭐, 그랬다.
아무튼 연회는 지루했고 피곤했다.
그나마 황룡회의 장위지와 삼악파의 허시가 예쁜 얼굴로 웃어 주어 그 피곤함을 견뎌 낼 수 있었다.
그나저나 아까부터 계속 보고 있는데, 그 계집이 안 보인다.
나에게 칼빵을 무려 아흔아홉 방 매겨 버린 사악한 계집 말이다.
훗날 화산검후라 불릴 천예휘.
아! 우리 천무휘 생각하면 계속 계집이라 부를 수도 없는데.
그래도 광마일기를 읽다 보면, 지금은 있지도 않은 칼빵 아흔아홉 군데의 상처가 욱신거리는 것 같단 말이고.
엇! 그러고 보니 용봉지회 연회에 참석한 후 내가 가장 주시하고 있던 그녀도 안 보인다.
조금 전까지는 우리 곁에 있었는데.
바닷가의 뜨거운 태양 아래 수련해서 그런지, 유독 구릿빛 피부가 관능적이면서도 강인한 건강미가 돋보였던 그녀.
검각의 흑검맹려 반종려가 갑자기 안 보인다.
그런데 그때였다.
“싸움이다!”
“결투다!”
갑자기 소란이 일며 후기지수들이 한곳으로 우르르 몰려가기 시작했다.
나와 내 주변에 몰려 있던 이들도 서둘러 그곳으로 향했다.
내가 다가가자 다른 후기지수들이 알아서 자리를 비켜 주었다.
이건 좋군.
그나저나 무슨 일인가 봤더니.
아! 상황이 좀 그렇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보이지 않던 천예휘와 조금 전까지 내 곁에 있었던 관능적으로 아름다운 반종려.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살기를 마구 뿌리며 대치하고 있었다.
왜, 또 무엇 때문에 싸우는지 알 수 없었다.
둘은 이미 검의 손잡이에 손을 가져다 댄 채, 서로를 노려보며 일촉즉발의 상황을 연출하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싸고 이를 지켜보는 이들까지 숨까지 죽여 가며 집중하였다.
그런데 그때.
천예휘가 갑자기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검각의 반종려는 의아한 얼굴을 했다.
숨까지 죽여 가며 집중하여 싸움을 관전하려던 후기지수들 사이로 허탈한 한숨이 곳곳에서 새어 나왔다.
저럴 계집이 아닌데, 갑자기 왜 저러지?
그런데 천예휘가 몸을 천천히 비틀더니, 이내 살벌했던 얼굴에 미소까지 드리웠다.
그녀가 향한 곳, 그러니까 천예휘가 바라보며 미소를 지어 보인 주인공은.
“곽 오라버니, 한 오라버니. 잘 지내셨어요? 마 오라버니, 호호호. 인사가 늦어서 죄송해요.”
미친!
아나!
미쳤다!
미쳤어!
쟤가 진짜로 미친 게 맞아.
왜?
살랑살랑 눈웃음까지 치며 우리에게 더없이 친근하게 그리 인사했다.
거짓말 하나 안 치고, 그 순간 온몸에 닭살이 돋아나는 건 물론 머리카락이 모두 삐쭉 서 버렸다.
“오라버니들, 헤헤. 제가 지금 할 일이 있어서. 회포는 조금 있다가 풀어요.”
씽긋.
두 눈을 씽긋 감으며 웃기까지.
쟤가 말이다.
무형지독을 사발로 처먹은 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 어떻게 저럴 수 있겠는가?
나는 물론 옆에 있는 의제와 한해북도 나랑 똑같은 얼굴을 하고 말았다.
너무 황당하고 놀라고 역겨워 말도 하지 못할 정도였다.
와! 밥 좀 적당히 먹을걸.
다 쏟아 낼 것 같다.
그리고 이내.
천예휘가 다시 검각의 반종려를 향했다.
“미안. 우리 오라버니들을 너무 오랜만에 만나서. 다시 시작할까?”
“와라, 천예휘.”
그냥 오라버니도 아니고 우리 오라버니란다.
진짜 돌겠다.
둘은 내 기분 따위는 상관없이 본격적으로 대결을 펼칠 자세를 취했다.
그런데 그때.
“휘이이이이익!”
호각이 불리며 두 사람 사이로 하나의 인영이 끼어들었다.
용봉지회 연회를 관리하는 고수 중 한 명인 중년의 도사였다.
“비무요?”
“네.”
노고수의 물음에 천예휘와 반종려 둘이 동시에 답했다.
“규칙은 알고 있겠지?”
“물론입니다.”
“네.”
“종남파의 운면이라 합니다. 이미 다들 용봉지회 규정에 대해 잘 알고 있겠지만, 혹시 모르는 이가 있을까 하여 다시 한번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비무는 용봉지회가 개최되는 내일까지만 허락합니다. 또한 독과 암기는 금기되고…….”
종남파의 운면이라는 중년 도사의 설명은 무려 일 각이나 이어졌다.
“모두 다 인지하였소?”
“네!”
“좋소. 화산 천예휘, 검각 반종려. 두 분의 비무는 내가 심판하겠소. 준비됐소?”
“네.”
“준비됐소?”
“네.”
“개시!”
운면 도장의 시작을 알리는 외침과 동시에 천예휘와 반종려가 동시에 출검을 하며 서로를 향해 몸을 날렸다.
천예휘는 올해 스무 살이 됐다.
그녀가 검을 뽑자 무려 세 척에 달하는 검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냥 뿜어져 나온 것도 아니다.
누가 화산파의 검법 아니랄까 봐, 검기는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빠르게 변과 환의 묘미를 담아 움직이며 반종려를 압박해 갔다.
반종려도 만만치 않았다.
검각의 검법은 실전 검법으로 유명하다.
두 척에도 미치지 못하는 검기를 뿜어내고 있지만, 그녀의 나이를 고려했을 때, 실제 이것도 어마어마한 것이다.
아마 천예휘 계집은 화산에서 영약을 마구 처먹어서 저런 것이고.
아무튼 반종려의 검법은 실전 검법.
군더더기가 없다.
힘을 한곳에 집중하고,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천예휘의 약점만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둘 다 만만치 않았다.
이를 지켜보고 있는 후기지수들도, 각자 자기 지역에서는 천재 소리 좀 들었던 녀석들일 텐데, 두 여인의 싸움에 입을 쩍하니 벌리고 다물 줄을 몰랐다.
심판을 보고 있는 운명 도장마저 이마에서 한 줄기 땀이 흘러내릴 정도로, 두 여인은 살벌하면서도 놀라운 경지의 대결을 펼치고 있는 중이었다.
“두 소저 다 예쁘지요?”
그때 누군가 슬쩍 내 곁으로 다가와 말을 건넸다.
각진 얼굴과 돌처럼 단단하고 다부진 근육.
그것들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나에게 말을 건넨 것이다.
“화양문의 오중체라고 합니다, 마 도사님, 하하.”
극양신장의 셋째 아들, 화양문의 오중체다.
“마악치요.”
“누가 이길 것 같습니까?”
근데 이 새끼가 언제 봤다고 친한 척이야?
“에이, 너무 그렇게 보지 마십시오. 저도 다른 친구들처럼 세 분을 간절히 뵙고 싶었습니다. 아까도 한걸음에 달려와 인사도 하고 그러고 싶었는데, 하하. 워낙 보는 눈들이 많아서…… 아시지 않습니까? 이 바닥이 내가 하고 싶은 대로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걸요.”
“난 모르오, 그런 거.”
“쩝, 실은…… 아버지가 용봉지회에 가면 절대로 다른 사람들한테 먼저 고개 숙이고 들어가지 말라고, 안 그러면 다리를 부러뜨린다고 했습니다. 우리 아버지가 절대 허언 같은 거 하는 사람 아니에요. 진짜로 제 다리 부러뜨린다니까요. 그래서 그런 것이니, 너무 저를 미워하지 마십시오, 마 도사님, 헤헤.”
별난 부자도 다 있다 싶었다.
뭐, 그래도 이 녀석이 솔직한 건 마음에 들었다.
“마 도사님, 저랑 내기 한 판 하지 않으시겠어요?”
“내기요?”
“네. 저 두 소저의 비무, 누가 이길지 하는 내기요.”
“오 소협은 어느 분께 걸겠소?”
“마 도사님이 거는 상대편 소저에게 걸겠습니다.”
“내가 누구에게 걸 줄 알고요?”
“그야 모르죠, 하하하.”
“내기의 조건은요?”
“제가 지면 형님으로 모시겠습니다.”
“아버지가 다리 부러뜨린다면서요?”
“금창약 한 사발 탁 바르면 금방 낫습니다, 하하하.”
미친놈인가?
“제가 지면요?”
“형님이 지고 제가 이기면…….”
이 녀석, 조금 전에는 내기에서 지면 형님으로 모시겠다더니, 쉽게도 형 소리가 나오네.
미친 게 아니라 머리가 조금 모자란 놈인가?
“저랑 비무 한 판만 해 주십시오, 형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