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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두가 된 이유-146화 (146/245)

146화

난 누구?

여긴 또 어디?

이상한 동굴에서 깨어났다.

동굴 한가운데 석탁이 있고, 그 위에 한 권의 책자와 한 필의 붓이 있다.

저 책자를 읽으면 내가 누군지 알 수 있을까?

일단 읽어 보자.

*

(상략)

스물두 번째 회귀 당시 내 몸에 새겨진 두 글자의 문신.

‘살왕’의 의미에 대해 알았다.

당시 날 죽였던 게 살왕이 맞다.

어이없게도 양아치 사건 당시, 의제와 한해북이 잡아 왔던 마두들 중 가장 강하고 제일 늙었던 마두.

철혈마관 육시경.

그 늙은 마두가 살왕의 친동생이라는 정보를 오늘 입수했다.

그랬기에 동생의 복수를 위해, 무림을 떠난 지 이십 년이나 된 살왕이 다시 무림으로 돌아와 날 죽였으리라.

다음 생에 산서 신창양가로 가면, 육시경은 건들지 말아야겠다.

나쁜 놈이니,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이던가.

그도 아니면 무림맹이나 다른 정도 문파에 슬쩍 정보를 흘리든가.

뭐, 다음 생에 차근차근 생각하면 될…… 뭐지?

지금 뒤에서 누가 나를 불렀다.

맹주란 호칭이 아닌 광마란 호칭이다.

젠장!

좆 된 것 같다.

이 시대에 날 광마라 부를 수 있는 놈은 한 놈뿐이다.

뒤를 돌아보니, 맞다.

계효보다.

왼쪽 팔이 어깨 부근부터 깨끗이 잘려 있다.

작은 사부는?

하루 열두 시진 꼬박 내 옆에 붙어 있는 작은 사부인데.

없다.

계효보 닭대가리 새끼.

이미 오래전부터 내 주변에 와 있었나 보다.

사부는 예지의 치료에 힘쓰느라 아미산에 가 있고.

무적 할매는 절강에 가 있고.

백미호와 호요, 웅요는 저놈을 잡으러 다른 곳에 가 있고.

닭은 작은 사부가 내 곁에서 잠시라도 떠나기만을 계속 기다렸던 모양이다.

됐다.

어차피 이번 생은 끝이다.

놈을 이번 생에 죽이지 못한 게 한스러울 뿐이다.

다음 생에 죽이지 뭐.

아프지 않게, 깔끔하게 죽여 달라고 말이나 한번 해 봐야겠다.

-광마일기 이십이 회귀 마지막 글귀

*

광천동 앞 큰 바위 위에 앉았다.

곧 웅요가 다가와 내게 옷을 건넸고, 옷을 입으니 백미호가 호요와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호요와 웅요는 그렇다 쳐도, 내가 백미호를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던 건.

심장이 철렁 내려앉을 정도로 무지막지하게 예쁘기 때문이다.

“너도 참…….”

“뭐?”

“진짜 허무하게도 죽는다고.”

“나라고 죽고 싶어서 죽는 게 아니잖아. 이미 지나간 일이니 그만 언급하고, 앞으로 어떻게 할지나 고민해 보자. 이번에도 닭이 계두교를 일으킬까?”

“알잖아. 그러지 않을 거.”

“그래도 문제야. 언제 갑자기 놈이 계두교를 일으켜 자신의 힘으로 삼을지 몰라.”

“대비해야지. 네 전생에 그에 관해서도 많이 논의했잖아. 그때 광마일기에 다 적었는데, 못 읽었어?”

“아니, 읽긴 읽었는데. 그래도 걱정이 돼서.”

“네가 천무휘를 만날 때까진 우리가 주시할게. 반계맹에서 조사했던 곳. 계두교의 시발점을 중심으로 감시와 경계를 늦추지 않을 테니 염려하지 않아도 돼.”

“그래. 나도 힘을 어느 정도 되찾으면, 무당과 아미에 부탁해 계두교가 봉기할 조짐이 있는지 감시해 볼게.”

“됐고. 넌 네 업보를 씻고, 네 힘을 되찾는 것에나 집중해. 어차피 그 힘을 계효보가 흡수하겠지만, 그래도…….”

“……?”

“지금 내가 의지할 수 있는 건 너밖에 없으니까.”

백미호 얘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지?

의지할 수 있는 건 나뿐이라고?

나랑 눈도 안 마주치고, 그런 닭살 돋는 말을.

아! 갑자기 내 심장은 또 왜 이렇게 두근거리는데?

돌겠네.

“갈게.”

“벌써?”

“할 일이 많잖아.”

“그, 그래.”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해.”

“알았어.”

그녀가 떠났다.

떠나는 그녀의 뒷모습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뭔가 미안하고 고맙고 또 아쉬운 그런 진한 감정이 한동안 내 가슴을 떠나지 않았다.

*

사부를 만나 삼재검법을…… 절강 항주로 가 무적 할매와 초향을 만났다.

귀정사로 가 진공 스님을 작은 사부로 모시고…… 의제와 천무휘 그리고 한해북을 만났다.

살아 있는 녀석들을 보니, 눈물이 찔끔 났다.

첫사랑을 만났다.

펑펑 울었다.

광천검을 얻었고, 몽고에서 작은 사부와 송암 도장 그리고 아미삼검의 도움을 받아 천수신권의 쌍둥이 동생 원곡과 제갈가단을 생포했다.

처선과 처호를 수하로 받아들였다.

중원의 닭값은 안정세를 유지하는 중이고, 계두교에 관한 이야기는 그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었다.

백미호와 틈틈이 연락을 주고받고 있지만, 계효보가 추가로 그녀에게 서신을 보낸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종적을 완전히 감추었다고 한다.

어쩌면 앞선 회귀에서, 계두교의 난이 무리수였음을 깨닫고 더 크고 완벽한 음모를 꾸미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불안하지만, 놈이 작정하고 몸을 숨긴 이상, 현재로서는 어쩔 방법이 없다.

백두신령의 도움으로 사 갑자의 초절정 고수가 되었다.

황홀하다.

복건에서 왜국의 해적들을 물리친 후 야귀금강 소증승을 잡아 고문 후, 놈이 숨긴 보물의 위치를 알아냈다.

이번엔 무형비침(無形飛針)과 투명의(透明衣)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젠장.

역시나 세상에 사람을 투명 인간으로 만들어 주는 기물 따위가 있을 리 있겠는가.

투명의는 가짜였다.

결국 이번엔 무형비침을 얻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곧바로 요괴경이 묻혀 있는 곳으로 가 그것까지 얻을 수 있었다.

칠연절명침은 이미 소증승에게서 빼앗아 내가 가지고 있고.

“의제, 한 형, 이것 받아요.”

“형님, 이건 소증승 그놈에게서 얻은 암기 아닙니까?”

“그래. 둘이 하나씩 갖고 있다가 혹시라도 위급한 순간이 생기면 사용해.”

“곽 형, 제가 곽 형에 비해 많이 부족한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것들은 위급한 순간에 곽 형의 목숨을 살릴 수 있을 물건들입니다. 생명 하나와 맞바꿀 수 있는 귀한 것이라고요. 저는 받지 못하겠습니다.”

어쩌고저쩌고, 긴 설득 끝에 칠연절명침은 의제에게 그리고 무형비침은 한해북에게 줄 수 있었다.

절강 항주에 들러 오랜만에 사부와 무적 할매 그리고 초향을 만났다.

예지는 이번에도 폐관 수련 중이라 만날 수 없었다.

초향과 예지에게 주라며, 백두산에서 얻어 말린 만년산삼 사분의 일 뿌리를 준 후 항주를 떠나 산서로 향했다.

산서에서 천무휘의 이름과 배경 덕분에 양아치와 신창양가를 때려 부순 후, 이번에도 십합단은 무림맹으로 보냈다.

그리고 천무휘가 화경의 벽을 깨기 위해 화산파로 떠나게 됐다.

이제 남은 건 나와 의제, 한해북 세 사람.

살왕의 친동생 혈철마관 육시경은 죽었다.

우리가 죽인 게 아니다.

신창양가에 슬쩍 소문을 흘렸더니, 신창양가 가주가 신나서 육시경을 때려죽였다.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우리 앞에 살왕이 나타날 일은 없으리라.

*

천무휘가 화산으로 떠나고 한 달.

우리는 하하마란 마두를 포함하여 마두 셋에 마적떼 한 무리와 인신매매 일당 한 무리를 소탕하는 데 성공했다.

역시나 천무휘가 우리 사이에 없다는 걸 안 마두들은, 기를 쓰고 저항했다.

하지만 이미 한 번 겪었던 일.

지지난 회귀 때보다 훨씬 손쉽게 놈들을 제압하고 소탕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하남에 숨어 있다는 마두의 소식을 접하고 이동하던 외딴길.

구지개를 다시 만났다.

개방을 떠나 독고검문의 소문주 사마준이 된 구지개.

그의 사연을 모두 들었다.

독고검문은 알 수 없는 고수들이 철통같은 경계를 서고 있고, 문주인 아버지는 정륭방의 깊은 지하 뇌옥에 갇혀 있다.

독고검문의 재산과 비급을 노려 벌어진 일이다.

또 이 일이 정륭방 단독 범행인지, 하남 신양의 다른 문파와 세가가 연관되어 있는지, 또 누굴 믿을 수 있고 믿을 수 없는지.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하남 신양으로 가기 전, 먼저 개방 분타를 찾아갔다.

개방 호남 악양분타의 분타주 오완개.

한자리에 앉으면 밥을 다섯 그릇이나 먹는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연신 눈알을 굴리며 내 의도를 파악하려 애쓰는 뚱땡이 거지에게 말했다.

“깊이 생각할 것 없소, 오완개 분타주님. 말 그대로 정보를 드리러 온 것이오.”

“음, 네. 알겠습니다. 그러면 주고자 하시는 정보가……?”

“정확히 열흘 뒤. 나와 의제 그리고 한 형이 하남 신양 정륭방의 방주를 죽일 것이오.”

“그…… 그게…… 그게 지금 무슨 말씀을…….”

“말 그대로요.”

“휴우, 마 도사님의 뜻 알겠습니다. 주신 정보는 잘 처리하겠습니다. 다만…… 이 거지 놈들 입이 가벼워, 여기저기 흘릴 수 있음은 감안해 주셔야 합니다.”

“하하하! 처음 봤을 때부터 오완개 분타주가 마음에 들었소. 그렇게 잘 흘려 주시오!”

“넵! 마 도사님.”

*

말을 타고 독고검문과 정륭방이 있는 하남 신양으로 이동 중이다.

중간 지점.

허허벌판의 마른 땅이 나왔다.

하지만 국숫집 같은 건 없었다.

혹시 몰라 의제와 한해북에게 칠연절명침과 무형비침의 점검까지 말해 놨는데, 괜찮다.

확실히 살왕이 나타날 일은 없는 듯하다.

그렇게 긴장을 살짝 풀고 다시 하남 신양을 향해 우리는 움직였다.

*

“형님, 이제 곧 신양입니다. 그만 말해 주시죠.”

나, 의제, 한해북, 그리고 이제는 사마준이란 이름을 얻은 구지개까지.

모두 비싼 고급 옷을 입고, 멋진 말까지 타 여유롭게 이동 중이다.

복건에서 해수장위사 노덕대 대장군에게서 이번에도 금자 일천 냥을 뜯었다.

지지난 회귀 때는 마두들의 정보를 얻기 위해 개방과 하오문에 각기 일백 냥과 오백 냥씩을 썼다.

하지만 이번엔 그럴 필요가 없다.

왜?

그때 받은 정보는 이미 광마일기에 모두 기록해 놨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엔 개방에 금자 열 냥, 하오문에 오십 냥을 썼다.

혹시 몰라 계두교에 관한 정보가 있다면 즉시 알려 달라는 조건이었다.

몇 달이 지났지만, 개방과 하오문에서는 계두교의 ‘계’ 자도 들어 보지 못했다는 답변만 주기적으로 들려오고 있다.

아무튼 지금 나는 돈만큼은 무지막지하게 많다.

그나저나 해수장위사 노덕대 이 양반, 이번에도 해수총독부의 총수대장군이 됐다.

뭐, 그것도 그렇고.

“뭘 말해 줘?”

“기습을 하면 기습을 하고 그래야지. 뭐 하러 개방 호남 악양 분타의 그 뚱땡이 거지한테 우리가 정륭방을 치러 간다고 미리 말해 줬냐고요. 도대체 형님이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이해가 안 갑니다.”

의제의 질문에 한해북과 구지개까지 귀를 쫑긋 세웠다.

“정륭방이 얼마나 대단한 고수를 품고 있을지는 몰라도, 나 혼자서 충분히 상대할 수 있어.”

“그야 그렇겠죠.”

난 사 갑자가 넘는 내공을 보유한 완연한 초절정 고수다.

일개 도읍의 패자라 불리는 문파라지만, 내 상대가 될 수는 없다.

무림에서 진정한 고수의 의미란 그러한 것이다.

“다만 사마준이 그랬지? 신양에 있는 문파와 세가 중 누구를 믿고 또 누가 정륭방과 작당했는지 모른다고.”

“그랬죠.”

“그래서 그런 거야.”

“뭔 소린지 더 모르겠는데요, 형님?”

“우리가 자기들 죽이러 간다는 소문이 파다한데, 같은 편은 다 부를 거 아니겠어?”

“아! 그렇죠! 맞다!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아마 작당하지 않은 문파라도 오해가 있다거나 해서 도우러 왔을 수도 있어. 그때 잘 말해서, 정륭방과 이번 일을 작당한 게 아닌 문파들은 돌려보내야지.”

“형님, 그런데 말입니다. 사마준 이 녀석 아버님은 안전할까요?”

“그래서 그런 거야.”

“네?”

“사마준이 도주했다는 사실을 알면, 놈들도 일이 발각될까 봐 노심초사하겠지. 어쩌면 증거인멸을 위해 사마준의 아버지를 죽이려 했을 수도 있어.”

“그렇죠.”

“그런데 우리가 자기들 죽이러 간다고 생각해 봐. 무섭겠지?”

“잠도 한숨 자지 못하고 덜덜 떨고 있겠죠. 천하의 마악치와 우각도협 곽우적, 그리고 구절협 한해북이 지들 목을 치러 간다는데요, 하하하!”

“그거야. 그들도 최후의 수를 준비해 둬야 한다는 뜻이지.”

나와 의제의 대화를 유심히 듣고 있던 한해북이 슬며시 끼어들었다.

“인질을 말씀하시는 거군요.”

“맞아요, 한 형. 최악의 상황이 닥치면, 놈들은 사마준의 아버지를 인질로 삼아 우리의 칼을 피하려 들 거예요.”

“그럼 어떻게 해요, 형님?”

“우리에겐 무슨 일이든 척척 해내는 구절협이 있는데 뭐가 걱정인가? 안 그렇소, 한 형? 하하하!”

“그렇지요, 마 형. 하하하!”

나와 한해북이 호탕하게 웃었다.

하지만 의제는 여전히 이해가 안 간다는, 또 의심이 가득한 얼굴로 고개까지 갸우뚱하며 한해북을 돌아봤다.

“한 형, 잠입술이나 은형술에도 남다른 비기를 가지고 있었던 거예요?”

의제의 물음에 한해북이 더더욱 자신 가득한 얼굴로 웃으며 답했다.

“하하하! 제가 누굽니까? 구절협 한해북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숨기고 있었던 가장 확실하고 뛰어난 장기가 바로 잠입과 은형입니다. 하하하! 그곳이 천마신교라 하더라도, 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마준의 아버지를 구해 낼 것이니, 아무 걱정들 마십시오, 하하하하!”

한해북의 자신감 넘치는 말에, 지금까지 근심과 걱정이 가득했던 사무준 얼굴에도 미소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한해북에게서 나와 의제를 향한 동시 전음이 전달됐다.

매우 다급하고 초조한 음성의 전음이었다.

-마 형, 저 곱게 자랐다니까요. 몰래 잠입하고 침투하는 그런 거 할 줄 몰라요. 제 스승님 중 신투는 없었다고요.

-엥? 뭐예요, 한 형! 방금 했던 말은 뭐고요?

의제가 얼굴은 여전히 웃고 있지만, 더없이 황당한 음성으로 전음으로 그리 물었다.

그러자 여전히 초조한 음성의 한해북이 답했다.

-아니, 애가 보고 있잖아요. 그렇지 않아도 잠도 잘 못 자고, 밥도 거의 먹지 않는 애 앞에서 그럼 어떻게 해요, 곽 형. 애 안심시키려고 그렇게 말한 거예요.

-아!

내가 나섰다.

-한 형, 뭐만 했다 하면 소리부터 지르고 우당탕탕 하는 의제를 보낼 순 없잖아요.

-그, 그렇죠?

-갑자기 저는 왜요?

의제가 억울한 듯 그리 전음으로 말했으나, 나는 깔끔히 무시하고 다시 한해북을 향해 전음으로 말했다.

-저는 한 형이 잘해 주리라 믿습니다. 평생 고아 거지로 살던 애, 다시 고아 거지 만들지 마세요, 하하.

-아! 알겠어요, 마 형. 어떻게든…… 제가 최선을 다해서 구해 볼게요.

-네, 믿습니다. 하하!

사마준은 우상을 보는 듯, 별이 마구 쏟아지는 것과 같은 눈빛으로 한해북을 계속 쳐다보고 있었고.

한해북은 식은땀을 한 방울 흘리며, 사마준을 향해 어색한 웃음을 연신 지어 줘야 했다.

이제 곧 도착이다.

정륭방, 우리가 깨부수고 사마준의 아버지도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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