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마교가…… 중원을 침공했습니다.”
“마교요? 제가 아는 그 마교 맞아요?”
“네. 신강 십만대산의 그 마교가 맞습니다.”
대답을 하는 취팔개는 노강호 중에서도 손에 꼽을 노강호다.
그런 그마저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손끝을 덜덜 떨고 있었다.
처호, 처선, 공손병도 마찬가지고, 나에게 이 사실을 알리러 온 고수들 모두가 하나같이 두려움과 놀라움에 제정신이 아닌 듯했다.
이 시점에서 마교가?
아니다.
계효보가 모든 걸 바꾸어 놨다.
어제고 오늘이고 내일이고, 마교가 언제 쳐들어와도 그건 내가 알던 시간의 흐름을 적용할 수 없다.
그런데 설마?
“혹시 계효보가 이 일에 관여했나요? 마교가, 설마 마교마저 계두교에 입교한 거예요?”
“그건 아닌 듯합니다. 아직 정확한 것은 파악하지 못했지만, 마교는 계효보를 죽이겠다는 명분으로 중원을 침공했다 합니다.”
이건 또 뭔 소리야?
아! 머리가 다시 혼란스러워졌다.
취팔개가 말을 이었다.
“계효보가 단신으로 마교를 친 모양입니다.”
“단신으로요?”
“네. 갑작스레 일천 마리가 넘는 전서구가 사천에서 날아왔는데, 이게 본 방의 정식 제자가 보낸 정보도 있고, 아닌 것도 있고. 아직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급하게 정보를 취합해 우선 마교의 침공 사실을 맹주님께 알려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래서요?”
“정보를 취합해 본 결과, 계신이 은밀히 마교에 침투해 기습을 했던 모양입니다. 마교주의 애첩을 포함, 마교 주요 인사들 몇과 그 가족들 수십 명을 죽였다고 합니다. 또 소마룡이라는 마교의 어린이들에게 무공을 가르치는 곳까지 침입해 다시 일백 명 이상의 아이들을 죽이고 도주했다고 합니다.”
“계효보가 빌미를 만들어 준 거네요. 마교가 중원을 침공할 수 있는 빌미와 명분을요.”
“저희도 그렇게 판단하고 있습니다.”
잠깐!
“취, 취팔개 방주님.”
“네. 맹주님.”
“지금 마교가…… 어디까지 침공한 상태입니까?”
“곤륜파와 공동파가 무너졌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소리를 버럭 질렀다.
“그러니까 어디에 와 있냐고요!”
취팔개가 놀란 얼굴로 서둘러 답했다.
“곧 아미파에 도착할 것으로 판단됩니다.”
사부가 위험하다.
*
작은 사부의 등에 업혀, 무적 할매와 백미호 그리고 호요와 웅요까지.
그렇게 미친 듯 달려 그곳에 도착했다.
하남을 떠나 사천 아미산까지, 한나절이 지나기도 전 도착할 수 있었다.
진짜 무지막지한 속도였다.
그리고 유독 산이 많은 사천 땅이라지만, 아미산을 중심으로 길게 늘어선 산맥의 앞쪽.
드넓은 평야에 마교와 아미파를 위시한 중원 무림의 진영이 대치하고 있었다.
다행이다.
아직 싸움이 시작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방심할 수는 없다.
광마일기에도 기록되어 있지만, 마교는 강하다.
진심으로 강한 고수들이 우글대는 곳이 바로 마교다.
난 작은 사부 등에 내려 곧바로 아미파 장문인과 청성, 곤륜, 공동파 장문인들이 모여 있는 자리로 향했다.
“상황은요?”
“맹주님!”
모두가 나를 향해 급히 예의를 갖추었다.
하지만 그럴 시간이 없다.
“상황부터 보고해 주세요.”
“지금…… 저기…… 맹주님의 사부님께서 마교주와 담판을 지으시겠다고…….”
안돼!
사부가, 우리 사부가 왜?
순간 눈물이 쏟아질 뻔했다.
머릿속은 새하얗게 변해 버리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렇지 않아도 양측 진영 모두 수천수만 명이 모인 상황에서도 살얼음판 위를 걷는 것처럼 고요하기만 했다.
긴장감이 고조에 이른 상황인 것이다.
난 아미파 장문인의 말이 끝나기도 전 고개를 돌려 양측 진영의 중심부, 드넓은 평야 한가운데로 시선을 옮겼다.
두 사람이 탁자 하나를 두고 마주 앉아 있다.
광마일기에 묘사된 딱 그 모습 그대로의 마교주.
그리고 맞은편의 뒷모습.
젠장.
우리 사부 맞다.
다 늙은 할배가 왜 이런 시점에 나서고 그래요!
위험하게!
그냥 젊은 사람들한테 맡기시지.
다시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지만 억지로 참았다.
이미 내 곁에 작은 사부, 무적 할매, 백미호와 호요, 웅요까지 모두 와 있다.
뭔가 수가 틀어지면, 곧바로 함께 움직인다.
이번엔 나도 몸 안 사린다.
사부한테 칼을 뽑는 그 순간, 마교주고 지랄이고 다 죽일 거다.
그렇게 내가 걱정과 흥분되어 두 사람을 주시하고 있…… 어?
뭐지?
“허허허허.”
“하하하하!”
사부의 뒷모습.
어깨가 들썩인다.
마교주도 웃고 있다.
두 사람 모두 뭔가를 하며 그렇게 계속 웃는다.
그때, 조금 전 상황을 내게 보고하던 아미파 장문인이 한 걸음 더 다가왔다.
“맹주님?”
“엇! 아, 네. 심전 사태님. 지금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이죠?”
“아, 네. 저희가 말렸지만, 맹주님의 사부님이신 유현 도장님께서 꼭 나서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게 두 시진 전이었습니다.”
“두 시진째 저러고 있는 거예요? 상대가 마교주 맞죠?”
“네. 맞습니다.”
“그런데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예요?”
“차를 마시고 있습니다.”
“차요?”
“네. 사천에만 생산되는 용문차를 마시며 저렇게 두 시진째 대화를 나누고 계십니다.”
하아! 우리 사부.
지금 뭐 하는 거지?
천하의 마교주를 상대로 차를 마시며 웃음꽃이 피는 대화라니.
“허허허허.”
“하하하하!”
아까는 내가 너무 흥분했나 보다.
웃음소리가 더 정확히 들린다.
우리 사부가 진짜 웃길 때 웃는 그런 웃음소리다.
그러고 보니.
주위를 둘러봤다.
아미, 청성, 곤륜, 공동 거기에 사천 무림의 중소방파까지.
고요하긴 고요한데, 아까 내가 느꼈던 살얼음판 위를 걷는 것 같은 긴장감은 어디에도 없다.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느끼고 싶은 것만 느꼈나 보다.
몇몇 무인들은 선 상태로 꾸벅꾸벅 졸고 있는 모습까지 내 눈에 들어왔다.
안력을 높였다.
중원 무림에는 육두팔비의 괴수들이라 알려진 마교의 교도들까지, 우리 진영과 딱히 다를 게 없는 모습들이었다.
“인사드리겠습니다, 맹주님. 곤륜의 태청이라고 합니다.”
“맹주님, 공동파의 구소라 합니다.”
“아! 인사가 늦었습니다. 마악치입니다. 태청 진인님, 구소 진인님.”
늙은 두 명의 도사.
각기 곤륜파와 공동파의 장문인들이다.
그들의 눈에서도 긴장감 따위는 찾을 수 없었다.
아니, 제자가 절반 가까이 죽었다고 하지 않았나?
취팔개가 분명 그렇게 말했는데.
“두 분…… 괜찮으십니까?”
“네? 아, 뭐. 일이백 년에 한 번씩 일어나는 일인지라.”
뭐야?
일이백 년에 한 번씩 제자를 절반 가까이 잃으면, 저렇게 태평할 수도 있어?
뭔가 이상하네.
“걱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저희 곤륜과 공동파의 어린 제자 절반 가까이가 마교에 생포되어 있으니까요.”
“네? 개방에서 듣기로, 곤륜과 공동의 제자 절반 가까이가 희생됐다고…….”
“음, 취팔개 방주가 맹주님께 어떻게 보고를 했는지는 모르지만, 급박한 상황이라 온전히 제대로 된 정보를 보고하긴 힘들었을 겁니다.”
“태청 이 친구의 말이 맞습니다. 저희는 이미 수백 년 전부터 마교의 침공을 대비해 왔고, 기습전에 대해 철저한 대비를 하고 있습니다. 다만.”
“다만……?”
“네, 다만 마교가 고수들을 전력으로 이끌고 올 것을 대비해 언제나 빠르게 후퇴할 수 있는 준비도 철저하게 해 왔습니다. 이번 마교의 침공은 단순한 소규모 기습이나 도발이 아니라, 전력을 이끌고 온 침공이라 판단. 곧바로 제자들을 이끌고 사천으로 후퇴를 했습니다. 중원 무림 전체가 힘을 합쳐도 막을 수 있을까 말까 한 마교를, 저희 두 문파에서 막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이 늙은 도사 두 명.
똑똑하다. 합리적이고.
깊은 산속에 박혀 사는 도사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현실적이기도 하다.
맞다. 저렇게 판단하고 행동하는 게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어떻게 하다가 제자들이 마교에 생포되게 된 것입니까?”
“그게…… 마교는 저희 곤륜과 공동을 칠 생각이 없었나 봅니다. 마교의 침공 사실을 보고 받고, 서둘러 제자들을 두 무리로 나누어 사천으로 급하게 퇴각하던 중, 다른 무리의 제자들이 앞서가던 마교도들과 우연히 만났던 모양입니다. 하필 어린 제자들을 먼저 보냈는데, 마교주가 직접 이끄는 마교의 본대와 맞닥뜨린 거죠.”
“피해는요?”
“마교주도 너무 어린 제자들이라 그랬는지, 그냥 다 생포하기만 했다고 합니다.”
“아, 네. 다행입니다.”
뭔가 상황이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
약간 허탈하기도 하고.
그보다, 사부는 진짜 괜찮은 건가?
다시 고개를 돌려 저 평원 중간 지점에 있는 사부와 마교주를 봤다.
여전히 차를 홀짝이며 허허 하하 웃고 대화를 나눈다.
“제가 사부님께 가 봐야겠습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혹, 마교주를 도발하게 될지도 모르는데.”
청성파 장문인 산결 도장이 근심스레 물었다.
“조심해서 다녀와 보겠습니다.”
답을 한 후, 나는 성큼성큼 걸어 진영의 선두로 나섰다.
그런 후 목소리에 내공을 실어 외쳤다.
“반계맹의 맹주 마악치라 하오! 제 사부님과 잠시 대화를 나누고 싶소.”
내 소리에 사부와 마교주가 동시에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그런 후 잠시 짧게 대화를 나누는가 싶더니.
사부가 허허 웃는 얼굴로 손까지 들어 나에게 오라는 표시를 했다.
살짝 긴장되었다.
마교주, 광마일기에 그에 대한 기록은 한가득이다.
그가 진정 얼마나 강하고 대단한 자인지, 오로지 광천마제 시절의 나만이 알고 있다.
그래서 더없이 좋은 분위기임에도, 내가 이토록 긴장하는 것이다.
난 사부의 허락을 받고, 그렇게 평야의 중심으로 성큼성큼 걸어 두 사람이 있는 곳으로 갔다.
“허허허, 악치 왔구나.”
“사, 사부님.”
마교주의 분위기를 슬쩍 살피며 사부 곁으로 다가갔다.
“긴장할 필요 없다. 서로 사소한 오해가 있어서 그랬던 것이다. 무성이와는 이미 오해를 다 풀었다, 허허허.”
미친! 우리 사부, 치매야?
천하의 마교주 구천마검(九天魔劍) 철무성을 ‘무성’이라고 부른다.
마치 갑돌산 아랫마을에 바지도 입지 않고 마을을 쏘다니는 세 살 꼬마 녀석의 이름을 부를 때처럼 말이다.
마교주가 화를 내면 어쩌나, 덜컥 겁부터 났…… 하아!
웃는다.
마교주가 기쁘게 웃는다.
나를 보며 환히 웃는다.
“하하! 유 선생님, 선생님을 뵈며 선생님의 제자는 어떤 분일지 매우 궁금했고 또 기대도 컸는데. 하하하! 겁이 조금은 많은 친구군요, 하하.”
“아직 어리지 않은가? 이해하게나. 뭐, 우리 악치가 어렸을 적 혼자 측간 가는 거 무서워해서, 내가 항시 측간 앞에서 노래 불러 줬다는 것까지는 말하지 않겠네.”
“정말입니까? 하하하! 하하하하하!”
뭐지, 이 분위기?
마교주랑 담판을 짓고 있는 거 맞아?
그런데 그때.
갑자기 마교주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난,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때.
척!
내게 다가와 어깨에 손을 척 하고 올리더니.
“우리 신교도 반계맹에 입맹하고 싶네. 본 교의 부교주를 비롯한 고수들을 반계맹에 보내, 그 닭대가리란 요괴 놈을 잡는 데 힘이 되고 싶네. 허락하겠나, 반계맹 맹주님?”
“아, 뭐. 도와주신다면야 저희로서는 감사할 나름이죠. 물론 다른 분들과 약간, 그냥 형식적인 겁니다만, 조금만 상의를 하고…….”
“하하하, 그러시게. 아무래도 본 교에 대해 나쁜 감정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서 반대도 심할 걸세. 하지만 알아 두시게. 우리가 이번에 중원에 온 것은, 본교의 미래를 짊어질 소마룡 일백삼십이 명의 목숨. 고작 다섯 살에서 열다섯 살 사이의 어린아이들이네. 그 아이들의 복수를 하기 위함일세. 본좌의 명예를 걸고 다른 뜻이 없음을 천명하겠네.”
“아, 네. 충분히 알아들었습니다.”
툭툭.
“어깨에 힘 빼고, 하하하.”
“네, 넵.”
툭툭툭.
“거, 붙임성은 있는 친구군, 하하하.”
“감사합니다.”
“사석이니 말 놓는 걸세. 유 선생님께 들으니 나보다 정확히 스무 살 아래더군. 내 아들 녀석과 동갑이고. 공적인 자리에선 존대해 주겠네.”
“아, 네. 넵. 편하신 대로.”
아이씨.
나 왜 자꾸 작아지는 느낌이지?
광천마제 시절에는 내가 이 인간 목까지 벴는데.
아!
눈물 난다.
그래도 다행이다.
사부도 무사하고, 끔찍한 전쟁도 일어나지 않았다.
마교와 전면전을 벌인다면, 중원 무림은 아마 계두교로 입은 피해의 열 배 스무 배 이상의 끔찍한 결과를 맞이해야 했을 것이다.
마교주 구천마검 철무성은 그만큼 강한 자이다.
*
마교가 반계맹에 입맹, 공식적으로는 내 밑으로 들어왔다.
마교주 말대로 반대도 극렬했지만, 내가 강하게 밀어붙여 그 안건을 통과시켰다.
부교주를 포함하여 극마의 고수만 셋이 더해졌다.
무지막지한 전력이다.
백미호, 호요, 웅요에 개방과 하오문을 비롯한 중원 무림의 정보 조직과 추격대, 거기에 마교의 추적 전문가와 어마어마한 고수들까지.
거기에 더해 계두교에 큰 피해를 입은 백성들까지 적극적으로 돕고 있다.
계효보, 닭 한 마리를 잡기 위해 천하가 모두 한마음이 되었다.
그렇게 석 달이 지난 어느 날.
나는 개방에서 받은 몇 장의 보고서를 들고 홀로 후원을 거니는 중이다.
살왕에 대한 보고다.
전생을 포함하여 살왕에 대해 의문점이 많았기에 개방의 방주 취팔개에게 부탁을 했다.
살문(殺門)에 대한 정보를 얻는 일은 아무리 천하의 개방이라고 해도 쉽지 않을 터였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
지금 최고가를 치고 있는 영웅 중의 영웅 아니겠는가?
마교까지 내 발아래 둔 진정한 무림의 최정점.
하하하하!
개방은 경쟁 세력이라 할 수 있는 하오문은 물론 기타 정보 세력에게까지 도움을 요청하여, 살왕에 관한 정보를 정말 샅샅이 끌어모았다.
그렇게 많은 정보가 내 손에 들어왔고, 그중 한 사람의 이름을 발견하고는 이렇게 낮부터 야심한 지금까지 홀로 후원을 거니는 중이다.
혈철마관(血鐵魔觀) 육시경.
민간인 삼백 명을 죽이고 무림맹 추격대 무인 마흔 명까지 죽였다.
내 나이 스물세 살 때, 그는 육십팔 세의 노마두였다.
내가 그를 기억하는 건, 바로 전생.
그러니까 스물두 번째 회귀 당시 산서 신창양가 양아치 사건 때 그를 만났다고 광마일기에 기록됐기 때문이다.
양아치에게 건넨 미끼.
의제와 한해북이 합심하여 힘겹게 잡아다가 풀어 줬던 마두의 미끼 중 한 명이 그였다.
그리고 오늘 낮 개방의 보고에 의하면, 그가 바로 살왕의 친동생이라 하였다.
젠장.
그랬던 것이었어.
지난 회귀 때 내가 듣도 보도 못했던 살왕이란 놈에게 죽었던 이유가.
난 이 사실을 깨닫고 빠르게 광마일기에 그 내용을 기록해 나갔다.
그런데 그때.
“어이, 광마! 잘 지냈어? 출세하더니 신수가 훤해 보이네?”
씨팔.
이 시대에 나를 광마라 부를 수 있는 놈은 딱 한 명뿐인데.
좆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