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화
“현화도선(玄化道仙)이십니다.”
“아! 그렇죠, 하하. 저는 현화도선이란 별호를 얻게 됐죠. 하하하!”
새어 나오는 웃음을 감출 수 없었다.
나의 태사조처럼 무슨 현화검존이라거나 원래의 내 별호인 광천마제처럼 강렬한 그런 느낌은 없다.
그런데 난 이게 더 마음에 들고 좋다.
현화도선.
캬아!
나도 무식한 칼이 아닌, 응!
그러니까 뭔가 마음으로 세상을 다스리는 그런 거 있지 않은가.
하하하하하!
진짜 도사, 진짜 신선이 된 느낌이다.
아이고, 취팔개 방주가 보고 있는데 계속 웃음이 나네.
맹주의 체면도 차리고 그래야 하는데, 하하.
“맹주님?”
“앗! 죄송해요, 하하하. 자꾸 웃음이 나네요. 하하.”
“네. 좋아하셔도 됩니다.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는 대승을 이끄셨습니다. 중원 전역에서 이번 계두교 남궁세가 전의 승리를 통해, 많은 이들이 힘을 얻어 계두교와 싸우고 있습니다. 이 기세라면 곧 계두교 미치광이들을 평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행이네요. 우리가 힘이 되었다니.”
“네. 큰 힘이 되었습니다.”
“좋습니다. 가시죠. 다들 기다리고 있죠?”
“네. 모두 맹주님이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점령한 남궁세가.
그곳의 중심인 창궁전으로 향했다.
내가 창궁전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일백이 넘는 무림의 기라성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맞이하였다.
*
나와 작은 사부, 무적 할매 그리고 반계맹 본진은 보름 가까인 무지막지한 속도로 중원 곳곳을 이동하며 계두교를 섬멸해 나갔다.
백미호와 호요, 웅요는 따로 움직였다.
꼭꼭 숨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계효보를 찾아 추살하기 위함이다.
창궁검제와 수라섬전도가 죽은 이상, 두려워할 것은 없었다.
설사 내 앞에 계효보가 직접 나타난다고 해도, 나에게는 사부가 있고 작은 사부와 무적 할매가 있다.
그렇다고 위협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었다.
광마일기에도 적혀 있지 않던, 알려지지도 않은 문파들에서 거친 저항을 했다.
가끔은 아군에서 적지 않은 피해를 입기도 했다.
나와 작은 사부 그리고 무적 할매 셋이 천하를 다 돌볼 수는 없었다.
그래도 우리의 승리는 거침없이 이어졌다.
거기에 더해 극양신장의 화양문과 유령신검의 황룡회도 거듭되는 승전보를 알려 왔다.
그들뿐만이 아니다.
무림 곳곳에서 하루에도 수십 번이 넘는 승전보가 나에게 보고되고 있었다.
더불어, 우리의 명성 그리고 나에 대한 찬사는 끝없이 이어졌다.
현화문, 일백 년 전 천하제일인이었던 현화검존의 태사손, 현화문과 현화도선 마악치가 현화검존에 이어 다시금 천하를 구한다는 찬사였다.
하지만 나는 그런 칭찬에만 빠져있을 수 없었다.
솔직히 웃음이 계속 나고, 좋긴 무지하게 좋았다.
광천마제 시절의 나는 평생 욕만 먹고 손가락질만 당하지 않았겠는가.
그런데 완전 그 반대가 됐다.
갑자기 계효보에게 고맙다는 생각이 다 들 정도다.
뭐, 그래도 만나면 죽는다.
물론 내가 죽이는 건 아니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또, 이 닭대가리가 왜 이런 무모한 짓을 벌였는지 다시금 궁금해졌다.
왜일까?
놈도 분명 이런 결말이 도래할 걸 알았을 테다.
계두교로 군림천하 할 수 없음을 놈은 너무나 잘 안다.
호요에 의해 팔까지 하나 잘리지 않았는가.
이제는 그 모습도 드러내지 않고, 어딘가에 꼭꼭 숨어 있고 말이다.
그런데 도대체 왜지?
왜 이런 짓을 벌인 것이지?
여전히 그 의도를 알 방법은 없었다.
*
처호, 처선, 공손병까지 우리 반계맹에 합류했다.
이름도 없는 이들을 부를 때, 많은 이들이 의아해했다.
하지만 나는 꽤 이름이 있는 구파일방의 인사까지 직접 보내서 그들을 정중히 초빙했다.
천하가 계두교로 인해 도탄에 빠졌다는 소식에, 그들도 한걸음에 달려와 주었다.
난 곧바로 그들에게 중책을 맡겼고, 그들은 역시나 내가 생각했던 이상의 힘이 되어 주었다.
처호, 처선, 공손병까지 합류하자 그야말로 반계맹은 파죽지세로 계두교를 소탕해 나갔다.
다시 한 달이 더 지난 시점에선, 전투라 불릴 만한 싸움조차 없었다.
작은 사부와 무적 할매가 전투에 참여하지 않은 지는 이미 스무날이 훨씬 더 지났고 말이다.
이젠 약간의 소규모 전투를 제외한다면, 계두교 광신도들의 암약하는 것을 찾아 계도하는 일이 중점이 되고 있었다.
그렇게 어느새 무림도 차차 평화를 되찾아가고 있었다.
*
계두교의 난 석 달.
천하의 계두교 광신도들을 거의 평정한 상태가 되었다.
저항 세력도 거의 사라졌고, 아주 간혹 소규모 전투가 뜸하게 있다는 보고다.
계효보는 여전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한 가지 확실한 점을 유추할 수 있었다.
이번 회귀, 내가 절대적으로 안전하다는 사실이다.
왜?
계두교의 난이 어느 정도 정리되고 혼자 생각할 시간이 많아졌다.
뭐, 계책이나 이런 거는 처오, 처선, 공손병에게 맡기는 게 더 효과적이니 그렇게 했다.
어쨌거나 혼자 가만히 생각하며, 이번 회귀에 대해 정리해 보았다.
그러다 내가 그 어느 회귀 때보다 안전하다는 확신을 갖게 된 거다.
여전히 계효보의 의도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이번 생에서 그의 목표는 내가 아니라는 것이다.
확실하다.
이런 짓거리를 한 후 나를 죽여 놈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단 한 가지도 없기 때문이다.
최소한, 놈이 나를 통해 무언가를 얻기 위해선 천무휘와 시산마검, 그리고 만검존은 살려 놔야 했다.
하지만 모두 죽였다.
내 무공에 진전이 있건 없건 상관없다는 뜻이다.
놈의 목적은 확실히 다른 것에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나는 계효보의 목표물이 아니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안전하다는 확신을 갖게 된 것이다.
“작은 사부님. 네?”
“어허, 다 큰 녀석이 측간 가는 데 같이 가 달라고 하면 어쩌냐?”
“아니, 생각해 보세요. 제가 측간에서 응가 싸고 있는데, 갑자기 살수라도 들이닥치면 누가 막아요?”
“너도 고수잖냐.”
“살왕이 덮치면 어떻게 죽는지도 모르고 죽는다고요.”
“구파일방과 무림맹 그리고 중원 각지에서 보낸 어마어마한 고수들이, 바로 문밖에 수십 명이나 철통같은 경계를 서고 있다.”
“아잉, 그 사람들한테 저 똥 싸는 거 지켜 달라고 하면 쪽팔리잖아요. 그래도 제가 맹준데.”
“나는?”
“작은 사부님이야 아버지시고 스승님이니까.”
“풉. 이 녀석, 허허. 유현 그 친구가 금 소저 데려다주러 아미파 간 지 며칠이나 됐다고, 나한테 아버지 소리를 다 하는구나.”
“저 원래 그렇게 생각했는데요?”
“됐다, 인석아. 가자. 내가 측간 바로 앞에 붙어서 지켜 주마.”
“노래도 불러 주셔야 해요, 하하하.”
계효보는 두렵지 않으나, 그래도 혹시 모르지 않나.
난 확실한 게 좋고, 편안한 마음의 상태로 똥 싸는 게 좋다.
물론, 심심한 사부도 말은 안 했지만 즐거운 얼굴이다.
요즘은 거의 매일 이렇게 작은 사부와 둘이서 유치한 농담이나 주고받으면서 지내는 게 내 일이다.
실무는 다 다른 사람들이 처리하고 있다.
극양신장의 화양문과 유령신검의 황룡회도 정식으로 우리 반계맹에 입맹했다.
현재 반계맹의 덩치는 원래 무림맹의 열 배 이상 커진 상태다.
뭐, 현재는 처호, 처선, 공손병 등이 건의하고, 내가 허락해 구 할 구 푼에 달하는 무사들을 중원 각지에 파견해 놓은 상태다.
그래도 이곳은 안전하다.
작은 사부가 있고, 작은 사부 말대로 구파일방 등에서 문파의 자랑이라 할 만한 최고수들을 남겨 나를 지키게 했으니 말이다.
아! 무적 할매도 현재 이곳에 없다.
절강에서 계두교의 잔당들이 갑자기 난리를 쳐, 위화궁에서 도움 요청이 왔다.
초향이 걱정되어 급하게 무적 할매를 절강으로 보낸 상태다.
아무튼 오늘도 작은 사부가 지켜 주니 똥을 편하게 쌀 수 있을 것…… 엇?
누군가 빠르게 오고 있다.
곧 그들이 내가 있는 맹주전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처호, 처선, 공손병과 나를 지켜 주는 고수들 여럿이다.
뭔가 크게 안 좋은 얼굴로 안절부절못하는 모습들이었다.
“무슨 일입니까?”
“그게…… 맹주님을 노리고 엄습을 시도한 무리를 포위했습니다.”
“저를요?”
뭐야?
내 추론이 틀린 건가?
계효보가 날 노리고 있었어?
확신하기엔 이르다.
조금 더 들어 보자.
“누구요? 나를 노리고 본 맹에 침입한 자들이.”
“그게…… 신녀림의 림주와 그 제자들입니다. 아직 제대로 된 대화를 시도하지는 못하고 포위만 한 상태입니다.”
“체포면 체포고 사살이면 사살이지 포위는 또 뭡니까?”
“그게…….”
노고수가 난감한 얼굴로 대답을 꺼리자, 처호가 조심스레 나섰다.
“칠십여 명의 여인들인데, 대부분 아직 어리고 젊은 처자들이라 손을 쓰기가 곤란해서 그렇습니다.”
“음, 일단 가 봅시다.”
“넵!”
*
현장에 도착했다.
현재 나는 원래의 무림맹을 반계맹의 근거지로 삼고 있다.
그리고 내가 도착한 현장은, 무림맹의 내원도 아니고 외원에서도 가장 바깥쪽이었다.
선녀림의 림도들 수준은 그 나이에 비하면 제법 대단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나이에 비해 괜찮은 거지, 나를 지키기 위해 구파일방 등에서 남겨둔 고수들에 비하면 새 발의 피도 될까 말까 한 수준들이다.
하지만 포위된 상태에서도 두 눈을 부릅뜨고 결사 항전을 각오한 모습은 사뭇 비장해 보이기까지 했다.
한숨이 다 나오는 순간이었다.
“거기.”
내가 부르자 신녀림 림도들의 시선이 일제히 내게로 쏠렸다.
“내 목 따러 왔다며? 내가 반계맹의 맹주 어험. 현화도선 마악치 님이시다.”
“저 못생긴 놈이 맹주 마악치다! 신녀림의 림도들은 계신의 명에 따라 마악치를 죽인다!”
“존명!”
진짜 눈빛만으로는 용이라도 때려잡을 기세였다.
하지만 그녀들은 한 발자국도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이미 그녀들보다 몇 곱절은 강한 고수들이 겹겹으로 그녀들을 포위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여기서 못생긴 건 왜 말하는 거야!
순간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지만, 맹주 체면도 있고 해서 참았다.
이곳으로 오면서 공손병이 신녀림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 주었다.
위화궁과 비슷하게, 여인들로만 구성된 신비 문파로 천하에 그녀들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게 없다고 했다.
그나저나 확실히 공손병이 대단하긴 하다.
모르는 게 진짜 없다.
아무튼 신녀림은 젊고 예쁜 여인들로만 조직되고, 특히 림주의 미모는 전설처럼 그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로 아름답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 직접 보니, 공손병의 이야기가 거짓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왜 반계맹 고수들이, 맹주인 나를 죽이러 온 자객들임에도 손을 쓰지 못하고 주저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몇몇 젊은 고수들은, 얼굴까지 발그레해 그녀들을 보고 있으니 말이다.
림주가 확실히 예쁘긴 하지만, 내게 큰 감흥을 일으킬 정도는 아니다.
백미호를 이미 겪었고, 설민민은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그 아름다움에 대해 광마일기에 한가득 기록되어 있지 않겠는가.
림주의 아름다움은 대단한 것이나, 그녀들과 비교했을 때는 지극히 평범하다 할 수 있겠다.
“어이, 거기. 네가 림주 맞냐? 신녀림의 림주.”
“그렇다. 악적!”
“참 나, 됐고. 진짜 궁금해서 묻는데, 아니 도대체 계효보 그 닭대가리 새끼가 뭐라고 그랬기에 너희가 죽을 걸 알면서 여기까지 온 거냐?”
창궁검제나 수라섬전도 같은 고수들에게는 자신의 힘을 나누어주었다.
우매한 백성들에게는 얄팍한 요술로 신비감을 주어 현혹했다.
그리고 그들이 그런 계두교를 천하 곳곳으로 설파해 나갔다.
그것이 현 계두교가 만들어진 과정임을 이미 우리 반계맹에서 조사하여 밝혔다.
그런데 얘네는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것 같아 내가 물은 것이다.
“말을 삼가라. 당장에 혀를 뽑아 죽일 수 있다.”
“휴우, 가능해? 여기 고수들이 우글거리는데?”
“죽여라! 계신의 뜻을 따르다 죽는다면 더없이 기쁠 것이다.”
“그러니까, 계효보 그 새끼…… 아니, 됐다. 그놈. 아니. 그래, 좋다. 그 녀석! 에잇! 계효보 그자가 도대체 뭐라고 했기에 너희가 여기까지 와서 나를 죽이려 한단 말이냐? 그 답이나 좀 듣자.”
“아니다!”
“뭐가 아니야?”
“그자가 아니라 그녀다.”
미, 미친!
설마?
“너…… 그러니까 계신이…… 지금 여자라고?”
“당연한 말! 신녀께서 어찌 남자일 수 있겠냐!”
돌겠다.
계효보 미친놈.
신녀문을 끌어들이려고 신녀, 그러니까 여자로 변신했나 보다.
와! 닭대가리 새끼, 뭘 꾸미는지 몰라도 진짜 단단히 각오한 모양이네.
“야!”
“왜?”
“계효보 남자야.”
“신녀께서는 여자다!”
“요괴야. 둔갑술 들어 봤지? 여자로 변신한 거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 지껄이지 마라!”
“아오! 답답해 죽겠네. 이걸 내가 보여 줄 수도 없고.”
진짜 미치고 팔짝 뛸 것 같았다.
이미 수백 번 겪어 봐서, 말로 저들을 설득할 수 없음은 잘 안다.
그래도 겪을 때마다 이렇게 답답하다.
광신도들이 이래서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것 같다.
백미호라도 불러 둔갑술이 뭔지 눈으로 보여 주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게 들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악치야.
-미호? 마침 잘됐다. 너 어디야?
-녕하.
-아! 좀 멀구나? 네가 갑자기 무지막지하게 보고 싶었는데.
-…….
-그냥 해 본 소리야. 오해하지 말고.
-지금 가려고. 너 지금 무림맹에 있는 거 맞지?
-응. 그런데 왜? 혹시 계효보…… 잡았어?
-아니.
-무슨 일인데?
-가서 말해 줄게.
-그래.
백미호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런데 무언가 심각한 목소리였다.
백미호가 무림맹에 도착한 것은 바로 다음 날이었다.
그녀는 내게 한 장의 서신을 건넸다.
그리고 그곳엔, 씨팔!
이 미친 닭대가리 새끼!
하아! 돌겠다.
이거 완전 미친 요괴 아니야?
진짜 환장하겠다.
서신은, 계효보가 백미호에게 보낸 서신이었다.
그리고 그것에, 내가 지금까지 그토록 궁금해했던, 지금까지 수만 명이 죽어 나갔을 정도로 끔찍했던 계두교의 난.
미친 닭대가리가 왜 이런 짓을 벌였는지 그 이유가 고스란히 적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