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화
괴물 같았다.
아니, 그냥 괴물이다.
저렇게 무지막지한 괴물이, 광천마제 시절 나에게 무릎을 꿇고 덜덜 떨었다고 한다.
광마일기에 그리 적혀 있다.
실감이 나지 않는다.
내가 광마일기에 뻥을 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물론, 지금의 창궁검제는 광천마제 시절의 창궁검제보다 더 강하다.
계효보의 힘을 전수받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기본이란 게 있다.
지금 내 눈으로 보고 있는 창궁검제는 말 그대로 한 마리 용이었고 괴물이었다.
작은 사부가 위험하…… 어?
작은 사부.
미동도 하지 않는다.
심지어 눈까지 감는다.
이내, 작은 사부의 몸에서 금빛 광채가 나기 시작했다.
신비롭고 아름다운 광채다.
그걸 보고 있자니, 위급한 순간임에도 내 마음이 다 편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곧, 어느새 오십 장에 달하는 거대한 용이 되어 버린 창궁검제의 검강이, 작은 사부의 광채를 집어삼켰다.
아니다.
작은 사부가 눈을 떠 금빛의 결정체라도 되는 것 같은 주먹을 용에게 뻗었다.
곧.
용과 금빛 광채의 충돌, 폭발했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엄청나고 엄청나고 또 엄청난 폭발이다.
이미 싸움을 대비해 수십 장 밖으로 피한 사람들까지 그 폭발의 여파에 휩싸이고 말았다.
작은 사부와 창궁검제 사이에 있던 땅은 통으로 터져 수백 장 밖까지 비산하였다.
두 사람 사이에서 일어난 무지막지한 폭발은 계속 이어졌다.
콰콰콰콰콰콰쾅!
쾅쾅쾅쾅쾅!
쿠르르르르릉.
콰콰콰쾅!
마치 신들의 싸움을 보는 듯했다.
하늘로 치솟은 작은 사부와 창궁검제는, 하늘 위에서 천둥과 벼락을 뿌리고 또 금빛 광채와 폭우를 쏟아내며 싸웠다.
이를 보는 것만으로, 내 온몸에 소름이 돋고 머리가 쭈뼛 서 버리기까지 했다.
입이 쩍 벌어지고, 저절로 경외하지 않을 수 없는 진정 괴물들의 싸움이 이들 사이에서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내가 이런데 다른 이들은 오죽하겠는가?
모두 고개를 하늘로 들어, 입을 쩍하고 벌리고 경악한 모습들이었다.
사천에서 있었던 웅요와 수라섬전도의 싸움.
수라섬전도가 아미삼검을 상대로 꽤 지치고 다친 상태였다지만, 웅요는 그런 수라섬전도를 오십 합 만에 제압했다.
하지만 지금 작은 사부와 창궁검제의 싸움은 순식간에 오백 합을 넘기고 있다.
웅요가 더 강하고 작은 사부가 약하기 때문이 아니다.
창궁검제가 수라섬전도보다 더 강하다.
확실히 같은 화경의 고수라지만, 한 수도 아닌 두 수 이상 위의 경지에 발을 담그고 있는 창궁검제다.
하지만 작은 사부는 더 강했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
찰나의 시간, 하늘 위에서 수백 번의 벼락이 몰아쳤다.
그리고 곧, 한 사람의 인영이 힘을 잃고 추락하기 시작하였다.
창궁검제다.
작은 사부는 여전히 하늘 위에서 금광을 뿌리고 있었고, 창궁검제의 용은 사라졌다.
쉬이이이이이이익.
쾅!
그 시체가 땅과 부딪히며 굉음을 냈다.
추락과 동시에 피떡이 되어 버린 창궁검제.
승패가 갈렸다.
하지만 그 누구도 숨 쉬는 소리조차 낼 수 없었다.
적군과 아군을 넘어, 이 싸움은 모두를 경외하게 만들 그런 엄청난 싸움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현실이다.
또한 목숨이 걸린 현실이기도 하다.
계두교 진영에서 이 사실을 재빠르게 깨달은 이들이 있었다.
“죽어라!”
황보세가주 벽력권패, 녹림삼십육채의 녹림왕, 동정십팔채의 수룡왕 등등.
계두교 진영의 최고수라 할 이들 열여덟 명이, 하늘에서 서서히 내려오고 있는 작은 사부를 향해 일시에 몸을 날린 것이다.
“우 여협!”
“알겠네.”
무적 할매는 이미 몸을 날린 상태로 내 말에 답을 하였다.
곧바로 허공에서 적들과 작은 사부 사이의 위치를 점한 무적 할매.
검을 뽑았다.
그리고 휘둘렀다.
번쩍!
광마일기에 기록된, 절강 앞바다에서 나를 사흘 동안 두들겨 팰 때 썼던 검법이 저 검법 같다.
자식들, 불쌍하기 그지없군.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제갈세가주와 제갈세진을 비롯하여 아홉 명이 허공에서 몸통이 두 동강 나 즉사했다.
나머지 아홉 명은 무려 일백 장 넘어까지 튕겨 나갔다.
하지만 끝이 아니다.
광신도들은 광신도들이다.
물불을 안 가린다.
튕겨 나갔던 아홉 명이 곧바로 땅을 밟고 무적 할매를 향해 도약했다.
그런데 아홉이 아니다.
적들의 수는 많고, 고수도 그만큼 많았다.
이번엔 삼십여 명이 무적 할매를 향해 도검을 휘둘렀다.
누가 고수 아니랄까 봐, 죄다 무지막지한 강기를 뿜어 대고 있었다.
하지만.
자식들!
무적 할매의 검은, 광천마제였던 나도 눈물 콧물 흘리고 손바닥이 발바닥이 될 때까지 빌며 살려 달라고 했던 무시무시한 검법이다.
뭐, 무적 할매의 경지가 아직 그때의 그 정도는 아닐지 몰라도, 확실한 건 저따위 녀석들이 받아 낼 수 있는 검이 아니라는 것이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삼십여 명 중 스무 명이 허공에서 목이 잘리고 몸통이 두 동강 나 죽었다.
그런데 미친 광신도들.
제 목숨 귀한 줄 모른다.
곧바로 육십여 명이 몸을 날렸다.
역시나 보는 것만으로도 살벌한 강기를 머금은 병기를 휘두르고 있었고.
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사십 명이 즉사했다.
그리고, 젠장!
검강과 도강, 그리고 검기와 도기를 머금은, 이제는 초절정 근처에도 미치지 못하고, 간신히 절정에 턱걸이나 하는 녀석들까지 무적 할매를 향해 몸을 날린다.
이백 명이 넘는다.
칼이 무적 할매 몸에 닿지도 않을 텐데.
아무튼.
“미호야, 할매 지치겠다.”
“우 여협이 할머니는 아니잖아.”
“알잖아. 내가 왜 그렇게 부르는지. 어쨌거나 좀…….”
대답도 하지 않고 몸을 날리는 백미호.
곧바로 호요와 웅요가 그 뒤를 따랐다.
백미호는 무적 할매를 도우러.
또 호요와 웅요는 적진 중심으로 떨어졌다.
곧바로.
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무적 할매를 향해 몸을 날렸던 자들 중 절반이, 무적 할매의 검과 백미호의 손에 의해 허공에서 피를 뿌리며 즉사했다.
하지만 끝이 아니다.
콰콰콰콰쾅!
쾅쾅쾅쾅쾅쾅쾅쾅쾅!
“으아아아아악!”
“저놈들을 죽여라!”
“으아아악! 살려 줘!”
“괴물들이다!”
“아아악!”
추가로 무적 할매를 향해 달려드는 놈들은 없었다.
웅요와 호요가 이미 적진 중심으로 뛰어들어 그런 놈들의 싹을 미리 제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무적 할매와 백미호는 멈추지 않았다.
이미 땅으로 추락해 버린 놈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콰콰콰콰콰콰쾅!
쾅쾅쾅!
황보세가주 벽력권패의 두 주먹이 두부처럼 으깨어 터져 버렸다.
콰콰콰콰콰콰쾅!
쾅쾅!
녹림왕의 도끼가 산산조각이 나고, 수룡왕의 쌍월도가 터져 버렸다.
그리고 나머지.
내가 이름도 모르는 놈들은, 그냥 푸줏간의 다진 고기가 되었다.
호요와 웅요도 그렇지만, 작정하고 나선 무적 할매와 또 이를 돕기 위해 나선 백미호는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그냥 이건 뭐.
싸움을 지켜보는 모든 이들을 경악의 도가니에 빠뜨리고 말았다.
아무도, 그 누구도 이를 보며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만큼 이들의 신위는 충격 그 자체였다.
“계신의 가호가 있을 것이다! 마귀들을 무찔러라! 계신이 보고 계신다! 계신이 함께하신다!”
와! 광신도들, 진짜 무섭다.
두 눈으로 보고 있고, 또 그 눈 속에 두려움이 가득한 것까지 보이는데.
계신이란 말에, 무적 할매와 백미호 그리고 호요와 웅요를 향해 끝도 없이 밀려들고 있다.
안 되겠다.
이들의 활약은 충분하다.
우리 예쁜 미호 얼굴에 상처 날라.
“반계맹의 영웅들은 적들을 섬멸하라! 총공격!”
“와아아아아아아!”
“와아아아아아아!”
이미 작은 사부, 무적 할매, 백미호 등의 무지막지한 신위를 보며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피가 끓어오른 우리 반계맹 무인들이다.
내 명령이 떨어지기만을 간절히 기다렸다.
그리고 내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한 사람 한 사람 스스로 무림 영웅전의 주인공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렇게 용맹스럽게 적진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챙챙챙!
채채채채챙!
퍼퍼퍼펑!
펑펑!
콰콰콰콰콰쾅!
적의 수가 열다섯 배가 많다고 하더라도, 이미 승기는 우리의 것이었다.
그 누구도 반계맹의 기세를 꺾을 수 없었다.
반대로 적들은 절대적 신뢰를 보냈던 창궁검제에 이어 벽력권패와 수룡왕, 녹림왕까지 육편이 되어 죽어 버리자, 사기가 꺾일 대로 꺾인 상황이었다.
그 와중에도 무적 할매와 백미호, 호요, 웅요는 대량 살육을 펼치는 중이었다.
그런데 그때!
갑작스레 이상한 분위기가 감지됐다.
피를 튀기며, 서로 죽이고 죽이던 사람들의 싸움이 한 곳에서 멈추는가 싶더니.
이내 전염이라도 된 듯, 모든 이들이 휘두르던 칼을 정지시켰다.
이내 치열하게 적 중 고수만을 골라 숨통을 끊어 놓던 백미호의 동작마저 멈추었다.
계효보가 나타났나?
아니다.
백미호다.
모든 이들이 휘두로던 칼까지 멈춰 세운 채, 백미호를 쳐다보고 있었다.
영문을 알 수 없는 백미호.
그녀가 그나마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웅요를 향해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왜? 뭐?”
“공, 공주님…….”
조금 전까지 곰 발바닥 한 방에 수십 명씩 몸통을 터뜨려 죽여 나가던 웅요가, 식은땀을 마구 흘리고 쩔쩔매며 백미호에게 답했다.
“복면…… 벗겨졌습니다.”
“젠장.”
백미호가 급하게 복면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
그런 후, 짜증 가득한 목소리로 외쳤다.
“뭐 해? 안 싸워? 그럼 그냥 죽어!”
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으아아아아아악!”
“살려 줘!”
“으아아악!”
참, 백미호가 대단하긴 하다.
달리 말하면, 내가 예쁜 여자만 보면 헤벌레 하는 바보 멍청이가 아니란 뜻이기도 하다.
뭐, 사실 조금 그렇다는 건 나도 인정하지만 말이다.
아무튼 진실로 그녀의 아름다움이 얼마나 경악할 만한 것인지 재차 실감할 수 있었다.
사방이 피의 바다가 되고 시체가 산처럼 쌓이는 끔찍한 전쟁마저 멈추게 만들 정도 아니겠는가.
그리고 그녀의 아름다움 때문이었을까?
반계맹의 사기는 더더욱 그 기세를 끌어올렸고, 싸움은 곧 끝을 맺을 수 있게 되었다.
적군 피해.
사망 일만 팔천 명.
중상 사만여 명.
경상 칠만여 명.
아군 피해.
사망 이백팔십칠 명.
중상 쉰여덟 명.
경상 팔백여 명.
완승이다.
그리고 이날의 승리는, 중원 전역에서 계두교를 상대로 싸우는 이들의 사기를 북돋기 위해 개방에서 빠르게 퍼뜨려 나갔다.
*
다시 한번 고민해 봤다.
계효보는 도대체 왜 이 시점에서 이런 일을 벌인 것일까?
역시나 답을 알 수 없는 질문이었다.
이건 계효보 스스로 밝히기 이전까지는 알 수 없을 것 같다.
됐다.
지금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그렇게 화산파와 종남파 거기에 백리세가까지 가세해 섬서는 서로 죽고 죽이는 싸움을 펼치고 있습니다.”
무려 개방의 방주다.
방주 취팔개가 직접 나에게 계두교의 난에 대한 보고를 올리고 있었다.
“앗! 죄송합니다, 취팔개 방주님. 제가 잠시 다른 생각을…… 화산과 종남, 백리세가가 어떻게 나뉘어 싸우고 있다고 하셨나요?”
“서로 싸우고 있습니다. 화산과 종남 그리고 백리세가 내부에서 계두교와 반 계두교로 나뉘어 자신의 사부를 죽이고, 자신의 제자와 사형제들을 죽이는 싸움을 이어 가고 있습니다. 다만 화산파는 화산제일검이자 일장로인 극혼검왕 범철승이 빠르게 사태를 진압해 가고 있어서, 곧 평정이 될 듯합니다.”
“아까 극양신장의 화양문과 유령신검의 황룡회도, 각기 중원 북부와 중원 남부의 계두교를 빠르게 소탕하고 있다고 하셨죠?”
“맞습니다. 맹주님이 이끄시는 반계맹 본대에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그들의 공적 또한 결코 적다 할 수 없습니다. 추후 계두교 광신도들을 모두 평정하시면, 맹주님께서 각별히 신경을 써 그들의 공적에 대해 상을 내리셔야 할 것입니다.”
“물론이죠. 그래야죠. 어험.”
하하하! 내가, 극양신장하고 유령신검한테 상을 줘야 한단다.
이거 기분이 묘하네.
원래 상이란 건, 윗사람이 아랫사람한테 주는 거 아니겠는가?
뭐, 아닌 경우도 있지만 말이다.
아무튼 계두교 남궁세가 전쟁 후 확실히 반계맹이 중원 전역에서 승기를 잡아가고 있다.
덩달아 내 기분도 좋고 말이다.
“취팔개 방주님.”
“네, 맹주님.”
“아까 해 주셨던 그 이야기 한 번만 더 해 주실 수 있을까요?”
“또, 또요? 이미 아홉 번이나…….”
“부탁드려요. 들을수록…… 하하하. 좋잖아요.”
“네. 뭐, 저도 좋습니다. 그러니까 맹주님을 비롯하여 이번 계두교의 난을 통해 배출된 영웅들의 별호가 말입니다.”
작은 사부, 금광신승(金光神僧).
무적 할매, 무적검후(無敵劍后).
백미호, 천하제일미(天下第一美) 그리고 천상미려검존(天上美麗劍尊).
호요, 맹호좌존(猛虎左尊).
웅요, 거웅우존(巨熊右尊).
그리고 나는 무려…… 큭큭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