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마두가 된 이유-139화 (139/245)

139화

“청성의 산결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아미의 심전입니다.”

우리가 임시로 지어진 막사 안에서 한참 추후의 계책을 논의하고 있을 때 목소리가 들려왔다.

청성파와 아미파의 장문인들이다.

스스로를 한껏 낮춘 표현이었다.

“어서 들어오십시오, 장문인들.”

작은 사부의 허락이 떨어진 후 이들이 막사 안으로 들어왔다.

역시나 과하게 공손한 자세였다.

그런데 둘만이 아니었다.

그들 뒤로, 늙은 거지 한 명이 더 있었다.

산결 도장과 심전 사태에게 이미 설명을 모두 들은 듯, 두 사람보다 더 자세를 낮춘 모양새였다.

“개방 사천 분타의 총분타주 올시개라고 합니다.”

허리에 묶인 오결의 매듭만 보더라도 그 신분이 만만치 않은 자다.

뭐, 거지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올시개는 한껏 낮은 자세로, 또 눈알을 마구 굴리며 자리에 있는 우리의 면면을 머리에 새기려는 게 고스란히 보였다.

“일단 자리에 앉으시지요.”

작은 사부의 권유로 이들이 자리에 앉았고, 이들의 방문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올시개 분타주가 현 중원 무림의 상황을 저희에게 알리고자 찾아 주었습니다. 아무래도 대협들과 함께 들어야 할 것 같아 이곳으로 오게 됐습니다.”

“아! 그렇군요. 현재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습니까?”

작은 사부가 묻자, 마구 굴리던 눈알을 딱 멈추고 올시개가 입을 열었다.

“외적의 침입이 없는 상황에서, 천하가 이렇게 급격히 혼란에 빠진 건 수백 년 만에 처음 있는 일입니다. 무림과 관, 백성들까지 크게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다만, 민가에서 벌어지는 계두교 관련의 일들은, 그 역시 민간의 교도들이 분란을 일으키고 있으며, 무공을 익힌 제대로 된 고수는 끼어 있지 않습니다.”

“관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요?”

“황궁에서도 잔뜩 긴장한 모양입니다. 황군의 경계를 대폭 강화하였습니다. 다만, 계두교가 관은 일절 건드리지 않고, 말씀드렸듯 민간에서 일어나는 분란에 무림인이 끼어 있지 않기에 관망만 하고 있습니다.”

“결국 무림이 이 일의 핵심이군요.”

“그렇습니다. 황궁에서도 그리 판단하여 움직이지 않는 것입니다. 소림에 이어 무당파까지 멸문을 해버렸고, 아미파의 피해 소식도 이미 중원 전역으로 퍼지고 있습니다. 다만, 아미파가 수라섬전도와 사천당가의 독왕의 목 베고 전투에 승리하였다는 소식은 수많은 무림인에게 고무적인 소식으로 전해질 것입니다.”

올시개가 슬쩍 눈치를 살핀 후 다시 말을 이었다.

“물론 이 소식, 당연히 이곳에 자리하고 계신 영웅분들의 무용담을 포함하여 곧…… 그러니까 제가 아미산을 내려간 후 빠르게 퍼져 나갈 것입니다. 절망에 빠진 많은 무림인에게 큰 희망을 안겨 주는 소식이 되겠지요.”

올시개의 말은 결국, 자신이 아미파의 승리와 그 속에서 엄청난 활약을 한 우리 이야기를 퍼뜨리겠다는 소리였다.

개방의 정보력을 이용하여 말이다.

“현재 무림 상황이 많이 안 좋습니까?”

내가 물었다.

“이건…… 휴우. 제가 정보를 수집하면서도 머리가 깨질 것 같았습니다. 무림사를 통틀어 이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정사마를 구분하지 않고, 닭을 두고 죽고 죽이는 혼란이 중원 곳곳에서 벌어지는…….”

다시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는지, 올시개는 머리까지 크게 흔들어 댄 후 말을 이었다.

“대략적인 소식은 들으셨겠지만, 무림맹도 반 토막이 났습니다.”

“무림맹이 통으로 계두교에 넘어간 게 아니었습니까?”

“아닙니다. 무림맹은 그렇게 쉬이 한 세력에 넘어가는 조직이 아닙니다. 맹주였던 창궁검제와 그를 따르는 무림맹 고수들이 남궁세가로 떠났고, 딱 무림맹 전력의 오 할 정도가 떠났다고 보시면 될 겁니다. 나머지 절반의 무림맹 고수들은 무림맹을 지키며 반격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다만…….”

“다만?”

“천하 각지에서 모인 고수들인 만큼, 쉬이 그들을 이끌 수장을 뽑지 못하고 눈치 싸움만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쯧쯧. 이런 시국에도 밥그릇 싸움이라니. 무림의 평화가 너무 긴 시간 지속되어 그 폐단이 또 반복되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어차피 누워서 침 뱉기였다.

올시개는 무림맹의 반복된 폐단에 대해서 자세한 설명을 하진 않았다.

하지만 자리에 있는 그 누구도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

다시 눈알을 마구 굴리며 눈치를 사정없이 살피던 올시개가 매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자리에 계신 영웅분들 중 한 분이 나서 주시면, 혼란에 빠진 무림맹은 물론 사분오열된 무림을 통으로 이끌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이미 아미와 청성파 장문인을 통해, 작은 사부와 무적 할매, 백미호, 웅요의 신위에 대해 제대로 듣긴 한 모양이었다.

올시개의 눈에는 간절함마저 담겨 있었다.

그리고 다시 작은 사부가 나섰다.

“우리는 우리를 이끌 수장을 이미 뽑았습니다.”

“그, 그게 정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아미와 청성에서도 함께 해주시면 좋겠다는 의견을 조금 전 나누고 있었는데, 때마침 세 분께서 오신 겁니다.”

올시개는 물론, 청성의 장문인 산결 도장과 아미파의 장문인 심전 사태까지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큰 기대에 대한 반응이었다.

“제 제자 녀석이 수장이 되어 우리를 이끌 것입니다.”

작은 사부가 말을 하였고,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올시개와 산결 도장, 심전 사태를 향해 인사를 했다.

“현화문의 마악치라고 합니다.”

“아…….”

순간 올시개의 입에서 뜻 모를 탄성이 새어 나왔다.

젊은 나에 대한 기대인지 실망인지.

그 의미를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나무아미타불. 저희 아미에서는 저를 포함하여 움직일 수 있는 제자를 총동원해 마 도사님의 뒤를 따르겠습니다.”

“무량수불. 본 청성 역시 아미와 그 뜻을 함께하겠습니다. 현화문의 마 도사님께 청성과 무림의 명운을 걸겠습니다.”

올시개의 알 수 없는 반응과 다르게, 아미와 청성은 확실했다.

내가 마음에 들었다기보다는, 작은 사부와 무적 할매 등의 무지막지한 신위를 직접 겪은 후의 절대적 신뢰와 승복의 의미일 것이었다.

그러자.

“저희 개방도…… 어험. 제가 판단할 사안은 아니지만, 우선 아미파에서 생긴 모든 일을 중원 전역의 문파와 세가에 빠르게 전달하겠습니다. 또한 천하의 정보를 숨김없이 또 가장 빠르게 마 도사님…… 어험. 마 도사님께 보고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산결 도장님, 심전 사태님, 올시개 총분타주님.”

올시개가 다시 입을 열었다.

“혹…… 회(會)의 이름은 정하셨습니까?”

“이름요?”

이건 생각지 못했다.

올시개가 무언가 생각에 잠겨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인 후 다시 말했다.

“힘은 언제나 뭉쳐야 강해지는 법입니다. 그리고 그 힘을 모으기 위해서는 기치(旗幟)가 있어야, 그 깃발 아래로 사람들이 모이겠죠.”

“올시개 분타주께서 좋은 이름이 있다면 추천해 주시지요.”

내 말에 올시개가 잠깐 생각을 하는가 싶더니,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

“반계맹(反鷄盟) 어떻습니까? 어차피 작금의 천하는 닭을 두고 계두교와 반 계두교로 분리되어 싸우고 있으니 말입니다.”

“오! 그거 괜찮군요.”

작은 사부가 맞장구를 쳤다.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괜찮다는 반응이었다.

아! 젠장.

그래도 내가 대장인데, 그 조직 이름이 반계맹이 뭐야?

좀 그렇다.

사패천처럼 좀 그럴듯한 이름이 좋은데.

뭐, 어쩌겠는가?

다들 찬성한다는데.

깊은 덕을 지닌 수장으로서 내가 받아들여 줘야지.

“구호도 있습니다!”

“구, 구호요?”

제발!

제발!

이건 유치한 거 말고, 좀 멋진 걸로 해 주라.

부탁이다, 거지님.

“일인일계(一人日鷄) 식멸계육(食滅鷄肉), 일인일닭! 닭고기를 먹어 없애자! 어떻습니까?”

다분히 거지 입장에서나 외칠 만한 구호다.

아마도 이 구호를 외치면 군침이 돌아 사기가 충천하겠지.

거지라면 말이다.

“오! 그것도 괜찮군요, 하하하.”

작은 사부!

저게 뭐가 괜찮냐고!

무슨 닭요리 전문 객잔의 홍보 문구 같잖아요!

하지만 다들 좋아하는 분위기다.

어쩔 수 없다.

눈물을 머금고, 이 또한 받아들여야 했다.

“맹주님.”

청성파 장문인 산결 도장이 그리 나를 불렀다.

“네? 저, 저요?”

당황스럽고 좀 얼떨떨했다.

“이제 반계맹의 수장이 되셨으니, 그 호칭 또한 맹주님이라고 하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혹 불편하시다면…….”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사패천의 천주.

반계맹의 맹주.

참, 나도 여러 자리한다.

반계맹이라는 이름은 마음에 안 들어도, 막상 맹주 소리를 들으니까 또 기분이 괜찮은 것 같다.

“혹 향후 어떻게 움직이실지 구상을 해 놓으신 게 있으십니까?”

산결 도장의 질문.

이미 작은 사부, 무적 할매, 백미호 등과 큰 틀의 계책은 세워 놓았다.

“일단 사천 무림부터 평정해야겠지요. 이곳에 분란의 씨앗을 남겨 둔 상태로 움직였다가는, 언제 등에 칼이 꽂힐지 모르지 않겠습니까.”

“아! 맞습니다. 독왕이 죽었다지만, 사천당가의 저력은 무시할 수 없고. 무림의 축소판이라는 사천무림의 상당한 무문이 계두교의 신도임을 공표한 상태입니다. 이곳부터 평정하자는 맹주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저희 청성이 선봉에 서겠습니다.”

“저희 아미도 가동할 수 있는 제자들을 즉각 대기시키겠습니다.”

“저는 빠르게 내려가, 곤륜과 공동 그리고 점창파에 지원을 요청하겠습니다. 그곳까지는 계두교의 힘이 크게 미치지 못한 듯합니다. 다만, 곤륜과 공동은 마교를 대비해야 하기에 큰 전력을 보내지는 못할 것입니다. 운남에 있는 점창파에 많은 도움을 요청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와 줄지는 확신할 수 없으나, 귀주도 이미 난리가 났다는 소식을 듣긴 했지만, 극양신장의 화양문에도 도움을 요청해 보겠습니다.”

“그럼 다들 그렇게 준비해 주십시오. 내일 아침, 사천당가로 향할 것입니다.”

“네, 맹주님. 그리하겠습니다. 무량수불.”

“네, 맹주님. 나무아미타불.”

“맹주님, 그럼 전 먼저 산으로 내려가겠습니다. 거지들 몇을 남겨둘 테니, 연락하실 일 있으시면 놈들을 시키시면 될 것입니다.”

그렇게 나의, 우리 반계맹의 일차 출정이 빠르게 준비 태세에 돌입하였다.

*

곰은 꿀을 좋아한다.

그래서 벌집을 찾아간다.

뚜벅뚜벅.

그냥 걸어간다.

곰의 출현에 벌들은 즉각 반응한다.

수천 마리의 벌들이 일제히 벌침을 쏘아 댄다.

뚜벅뚜벅.

그래도 곰은 그냥 걸어간다.

미친 듯, 또 목숨을 버려 가면서 벌들이 독침으로 공격한다.

뚜벅뚜벅.

곰은 귀찮다는 시늉조차 하지 않고, 벌통을 들쑤신다.

더 많은, 더 독이 오른 벌들이 다시금 목숨을 버려 가며 그러한 곰을 공격한다.

하지만 곰은, 앞발로 벌집을 굴리고 뜯으며 맛있게 꿀을 핥아 먹을 뿐이다.

수천 마리의 벌들이 독을 쏘건 말건, 곰은 그렇게 꿀을 모두 먹어 버리고 벌집을 송두리째 박살해 버린 후 유유히 자리를 떠난다.

애초에 벌꿀의 독침 따위는 곰에게 그 어떠한 위해도 가할 수 없는 것이었다.

사천당가.

가장 강하지는 않지만 가장 두려운 곳.

사천의 중심인 성도에 일천 년 동안 굳건히 자리를 지킨 세가.

그 저력은 이루 말로 다 설명하기 힘들다.

그리고 오늘.

당가의 가주인 독왕이 죽었다지만, 그 저력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사천당가뿐만 아니라, 이를 지키고 섬기는 가신세가와 또 사천의 수많은 무문에서 계두교의 깃발을 펄럭이며 모였다.

그 숫자만 수만 명에 달했다.

가장 두려운 것은, 수만 명에 달하는 무인 중 누가 암기를 숨기고 있고 또 언제 독을 뿌릴지 모른다는 것이다.

보는 것만으로도 절로 움츠러드는 살벌한 기세가 아닐 수 없었다.

반면 우리 측은 다 합쳐야 이천 명이 되지 않았다.

청성파 일천의 도사와 수백의 아미파 제자가 고작이었다.

청성파와 아미파에서 급조한 반계맹의 깃발이 여럿 있었지만, 사천당가와 계두교의 깃발에 비하면 초라하기 이를 데 없었다.

청성과 아미파 제자들의 얼굴에 두려움이 이는 것을 나무랄 수 없었다.

반 계두교에 속한 다른 사천 무문의 사람들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두려움일 것이고,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저 멀리, 곳곳에 숨어 우리를 지켜보는 눈이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었다.

이 한판.

이번 사천당가와의 전쟁을 어떻게 이끄느냐에 따라, 추후 반계맹의 행보가 결정될 것이다.

그리고 그때.

커다란 덩치의 한 사내가 내 옆으로 다가왔다.

웅요다.

“제가 선봉에 서겠습니다, 맹주님.”

“혼자요?”

“허락해 주십시오.”

“그럼, 부탁드립니다.”

내 허락이 떨어지자 웅요가 나에게 허리를 살짝 숙여 맹주에 대한 예의를 갖춘 후.

터벅터벅.

그냥 걸어갔다.

혼자서.

아!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아군도, 또 적군도.

다들 이해할 수 없다는 눈으로 그런 웅요를 쳐다봤다.

‘쟤 뭐야?’

이런 얼굴들이었다.

하지만 웅요는.

터벅터벅.

그냥 걸었다.

터벅터벅.

계속 걸었다.

그러자 수만 명에 달하는 사천당가 진영이 슬슬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래도 웅요는 터벅터벅.

무표정한 얼굴로 그냥 걸었다.

적들을 향해.

홀로.

마치 벌집을 발견한 곰이 그러하듯 말이다.

터벅터벅.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