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마두가 된 이유-136화 (136/245)

136화

“백두산에?”

“네.”

“지금?”

“네, 사부님. 급해요.”

“알았다. 업혀라.”

사부가 내게 등을 내주었다.

내가 사부의 등에 업히기 전.

백미호가 요술로 내 상처를 치료해 주었다.

백미호는 어느 정도의 치료 요술까지 가능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놀라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난 백미호, 무적 할매 그리고 초향과 빠르게 인사를 나누었다.

그런 후 사부 등에 업혔다.

“출발한다. 꽉 잡아라, 악치야.”

“네, 사부.”

이윽고 사부가 달리기 시작했다.

순간, 주변의 모든 사물이 길게 늘어져 보이기 시작했다.

아니, 공기의 저항 때문에 눈을 뜨는 것조차 힘들었다.

우리 사부.

무공 같은 건 익히지도 않았었다.

내가 잠깐 삼재검법을 가르쳐 준 게 전부다.

삼재검법 따위에 신법이 딸릴 리 만무하다.

신법이란 거 자체는 배운 적도 본 적도 없을 테다.

뭐, 위화궁에서 지내면서는 어쨌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내가 아는 사부는, 그런 거 익힐 시간에 참선을 한 번 더하고 만다.

그게 우리 사부다.

그런데.

일단 마음이 움직이니, 바람이 되었다.

그것이 삼재검법 때문인지 아니면 오랜 시간 도를 닦아 얻은 결실인지는 나도 모른다.

다만 지금 나의 사부는, 대자연의 모든 기운을 자신의 신체와 일치시켜 힘을 발휘하는 경지임에는 틀림없다.

우리 사부 말이다.

내가 무얼 상상하건, 언제나 그것보다 수십 수백 배의 결과를 보여 주고 만다.

*

“어흐으으으으으응!”

백두산의 산군이 사부를 보고 울어 댔다.

위협을 가하거나 경고의 의미가 아니다.

오랜만에 만난 사부가 좋아서 저러는 것이다.

“금제의 실을 끊어 달라고?”

“네, 백두신령님.”

“음…… 금제의 실이라.”

“부탁드립니다, 백두신령님.”

느닷없이 사부와 함께 찾아와 대뜸 금제의 실을 한 가닥만 끊어 달라고 부탁했다.

전생에서는 내가 부탁하지 않았어도 백두신령은 금제의 실을 끊어 줬다.

또 선물이라며 일 갑자의 백두산 정기까지 불어넣어 줬다.

하지만 오늘은 아니다.

고심한다.

‘내가 왜?’

뭐, 이런 얼굴이다.

여전히 소년의 형상이었고, 왼손에는 활까지 들고 있다.

“백두신령님.”

산군의 기와집 몇 채만 한 머리를 쓰다듬던 사부가 다가왔다.

“그래, 현아. 너 정말 오랜만이다. 이 녀석이 네 제자냐?”

“네, 백두신령님.”

“지금까지 봐왔던 현화문의 도사들과는 달리, 당찬 녀석이구나. 도사가 뻔뻔하기도 하고.”

“죄송합니다. 제가 부족해서 그렇습니다. 그런데 사정이 좀 급해요. 소림사가 멸문했습니다.”

“소림사가?”

“네.”

“마교더냐?”

“아닙니다. 계두교라는 신흥 종교 세력이라고 하더군요.”

“소림사가 멸문이라니…….”

내가 다시 나섰다.

“계요, 그러니까 닭 요괴입니다.”

“요괴? 정녕 요괴가 계두교라는 것을 만들어 소림사를 멸문시킨 게 맞더냐?”

“네. 확실합니다.”

사부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나를 보았으나, 그 어떤 질문도 하지 않았다.

“이곳으로 데리고 와라. 내가 해결해 주마.”

“안 올 거예요. 여우보다 더 여우 같은 닭 요괴거든요.”

“그럼 나는 네게 걸린 금제의 한 가닥만 끊어 주면 되겠느냐?”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소림사는 만만한 곳이 아니니라.”

“저희 현화문도 만만한 곳이 아닙니다.”

소년의 얼굴을 한 백두신령이, 내 말에 사부를 한번 슬쩍 보며 웃는다.

“허허, 뻔뻔한 녀석이긴 하지만, 역시 당찬 구석이 마음에 드는구나.”

사부가 쐐기를 박았다.

“도와주세요, 신령님.”

“알았다. 처음부터 도와줄 생각이었다. 현이 네 제자라는데, 어찌 내가 작은 선물조차 주지 않고 그냥 보낼 생각을 했겠느냐, 하하.”

“감사합니다, 신령님.”

“하지만 알아 두어야 한다. 악치의 몸에 걸린 금제에는 천기(天氣), 하늘의 기운이 담겨 있다. 달리 말하면 이것은 하늘의 뜻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원래라면 함부로 끊어서는 안 된다. 다만, 내가 쌓은 공덕이 이미 하늘에 닿았으니, 그 공덕으로 금제의 한 가닥을 끊는 죄와 상쇄하는 것이다. 더는 무리다.”

이 양반, 은근히 자기 자랑 잘하네.

자기 공덕이 하늘에 닿았다고 아주 자연스럽게 말을 한다.

뭐, 그런 거 생각할 때는 아니다.

“한 가닥이면 충분합니다. 고맙습니다, 백두신령님.”

“그래, 그러면 간다. 따끔할 거다.”

“넵! 준비됐습니다.”

뻔뻔하다고 할 때는 언제고, 백두신령은 내가 꽤 마음에 들었나 보다.

금제 한 가닥을 끊는 것과 더불어, 전생에서 그러했듯 일 갑자의 백두산 정기까지 불어넣어 줬다.

천무휘를 만나지 못해 절정의 경지에 오르지 못했다.

그래서 그 단계를 건너뛰어 초절정에 오를 수 있을까 걱정도 했다.

하지만 머릿속에 ‘툭’ 하는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나는 사 갑자의 완연한 초절정 고수가 될 수 있었다.

“사부님, 이제 감숙 용남으로 가야 해요.”

“알았다.”

*

삼류, 이류, 일류, 그다음은 고수의 경지다.

중간에 초일류라는 경지를 넣는 곳도 있고, 넣지 않는 경우도 있다.

지역과 문파마다 무공의 경지를 구분하는 기준은 다르다.

그 세부 경지의 분류 역시 문파마다 천차만별이다.

고수 다음의 경지는 절정이고, 그다음이 바로 초절정이다.

초절정을 넘어서면 궁극의 경지라 할 수 있는 화경의 반열에 접어들게 된다.

그런데 초절정과 화경 사이에도 또 다른 하나의 경지를 따로 분류하는 경우가 있다.

초절정 극상(極上)의 경지가 바로 그것이다.

회귀를 시작한 후 내가 실제 만났던 초절정 극상의 범위에 드는 인물이 두 명 있다.

그중 한 명은, 내가 깨달음을 줘 화경의 벽을 깨기 전의 상태인 무당파의 송암 도장이 그러한 경우다.

또 화산제일검이자 화산파의 일장로, 제갈세진과 한참 싸울 때 천무휘를 데리고 갔던 극혼검왕(極魂劍王) 범철승.

그 역시 초절정 극상의 고수다.

그리고 이러한 초절정 극상의 경지는 광천마제 시절의 나 역시 경험했었다.

지난 회귀 때, 천무휘는 초절정에서 곧바로 화경의 경지로 들어서기 위해 화산파로 가 폐관 수련을 시작했다.

하지만 광천마제 시절의 나는 꽤 오랜 시간 초절정 극상의 경지에 머물러 있었다.

그리고 내가 초절정 극상의 경지에 오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준 것이 바로 시산마검(屍山魔劍) 왕대란 인물이다.

백두산에서 감숙의 용남까지는 일반인들이 걸어 몇 달은 가야 할 거리다.

하지만 나는 사부 등에 업혀 사흘이 되기 전 도착할 수 있었다.

시산마검에 관한 기록은 광마일기에 한가득이다.

천무휘는 절정.

백두산에서 초절정.

그리고 초절정 극상의 경지로 나를 올라가게 만들어 준 시산마검까지.

이들에 관한 기록은 당연히 다른 그 어떤 인물들보다 자세하게 또 많은 분량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가 사는 마을, 그의 집을 찾아가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그의 집에, 아니 그가 머슴으로 일하는 집에 도착했는데.

“왕대? 퉤! 그 재수 없는 놈은 진즉 죽었소.”

“죽어요? 어떻게 죽었단 말입니까?”

“아침 해가 떴는데도 일을 하러 나오지 않아 가 봤더니, 이 미친 새끼…… 어험. 그러니까 이놈이 쇠꼬챙이로 자기 목을 꿰뚫어 자결을 했지 뭐요?”

“쇠꼬챙이요?”

“그런 눈으로 쳐다보지 마시오. 고아였던 녀석을 지금껏 먹여 주고 재워 주고, 품삯까지 넉넉히 주웠던 게 바로 나니까. 일이 고되긴 했어도, 죽을 정도까지는 아니었단 말이오. 하여간 그 녀석 때문에 나만 이상한 사람이 되고. 에잇! 볼일 끝났으면 가 보쇼. 나도 일하러 가야 하니까.”

사부만 없었다면, 어쩌면 저 인간의 머리통을 터뜨려 죽였을지도 모른다.

지적장애까지 앓고 있던 시산마검이 나와 더불어 대마두의 최정점에 서게 된 이유 중 바로 하나가 저 인간이기 때문이다.

아니다.

지금 그런 걸 생각할 겨를이 없다.

사실, 시산마검을 만났어도 문제다.

지금 시점, 시산마검이 초절정 극상의 경지에 올랐을지는 나도 확신할 수 없다.

아니, 그러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저 인간이 여전히 살아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만약 그가 초절정 극상의 경지에 올랐다면, 살왕에게 그리 쉽게 당했을 리도 없다.

시산마검의 죽음도 역시나 살왕의 짓이군.

살왕 역시 계효보에게 먹힌 건가?

그럴 가능성이 높다.

또, 시산마검이 만에 하나 초절정 극상의 경지에 올랐다고 해도, 그를 통해 어떻게 초절정 극상의 경지를 내가 얻어 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방법.

천무휘 때와 같은 방법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만약 아니라면, 또 엄청난 시간을 지체해야 하는데, 나에겐 그런 여유가 없다.

일단 시산마검은 죽었다.

잊자.

만검존이다.

만에 하나 만검존이 살아 있고, 그가 화경의 반열에 올랐다면.

아주 작은 가능성이지만, 나 역시 화경의 힘을 되찾을 수 있다.

“사부님, 죄송합니다.”

“상황이 상황이지 않겠느냐. 그런 소리 말고 어서 말하거라. 이번엔 어디냐?”

“산동 태안입니다.”

“그래, 가자.”

*

만검존(慢瞼尊) 맹묵치.

수백 년 동안 그 누구도 익히려 하지 않았던 만검(慢劍)을 익히고, 그것으로 화경의 벽을 깬 고수다.

광천마제 시절 그는 내 광천검에 의해 죽었고, 나는 그와의 싸움을 통해 화경의 벽을 깰 수 있게 되었다.

시기상 그 역시 아직 화경의 반열에 오르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죽었다.

깊은 산속의 작은 공터.

그곳에 무너져내린 초가와 땅 전체가 초토화가 되어 있다.

엄청난 싸움이 일어났던 것 같다.

그리고 역시나 만검존의 머리 옆에는 쇠꼬챙이가 꽂혀 있다.

주위를 세심히 살펴봤다.

최소한 수십 명에서 많게는 일백 명 이상이 관여한 싸움이다.

적들도 엄청나게 죽은 모양이다.

만검존 한 명에게서 나왔다고 볼 수 없는 피가 주변 수십 장에 걸쳐 뿌려져 있다.

사람 허리통보다 더 굵은 나무들도 뿌리째 뽑히고 잘려 있었고, 땅과 바위 모두 터지고 부서져 있다.

치열한 싸움이 일었고, 마지막 순간 살왕이 만검존의 숨을 끊은 듯하다.

만검존이 화경의 반열에 오르지 못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으리라.

만에 하나, 그가 만검을 대성했다면.

천하에 그를 죽일 수 있는 인간은 나 외에 없을 것이라고 광마일기에 적혀 있다.

뭐, 어쨌거나 결론은 하나다.

이번 회귀, 나는 지금의 상태 이상의 경지로 올라설 수 없다.

지금의 상태로 계효보와 싸워야 하는 것이다.

상관없다.

나에게는 사부도 있고 작은 사부도 있으며, 무적 할매와 백미호, 호요, 웅요가 있다.

함께 싸울 것이다.

그리고 잡을 것이다.

계효보!

네놈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일을 벌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엔 반드시 잡아 목을 베어 버릴 것이다.

*

“괜찮으냐, 악치야?”

“네, 사부님.”

나와 사부는 말을 두 마리 사서 이동 중이다.

사부가 위화궁으로 떠날 때 탁발해 얻은 돈의 대부분을 써야 했다.

뭐, 지금 돈이 중요한 건 아니고.

아무튼 말을 몰아 움직이며 내가 이런저런 생각에 깊이 잠겨 있자, 사부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내게 그리 물은 것이다.

“괜찮아요, 사부님. 생각할 게 많아서 그래요.”

“큰일이구나. 조금 전 들렀던 객잔에서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 들었느냐?”

“네? 제가 다른 생각을 하느라고 못 들었는데, 또 무슨 일이 일어났데요?”

“중원 곳곳에서 살인과 강도, 약탈과 방화가 들끓는다고 하는구나. 또 정도와 사도를 가리지 않고, 무림 문파라는 곳에서 사람들을 해하고 그 재물을 탐하기도 한다는구나. 허허, 이를 어쩌면 좋단 말인지.”

계효보는 정말 왜 이럴까?

이런 세상을 바란 것일까?

그런데 그때였다.

-악치야!

백미호다.

“사부님.”

내가 갑작스레 다급히 사부를 불렀다.

“왜 그러느냐?”

“제 몸에 내공, 그러니까 진기 아주 조금만, 좁쌀만큼만 불어넣어 주실 수 있…… 앗! 아니에요. 하아! 이제는 제가 할 수 있네요. 잠시만요. 어떻게 된 일인지, 금방 설명해 드릴게요.”

“허허, 그러려무나.”

내가 초절정 고수가 된 걸 깜빡했다.

난, 내 내공을 심장으로 흘려보냈다.

-미호야, 왜?

-무당산에 있는 웅요에게서 연락이 왔어. 계두교가 무당파를 공격하고 있데. 네 작은 사부님이 사흘 전 도착하셔서, 그분과 우 여협, 그러니까 무적 할매하고 나까지 지금 무당파로 이동 중이야.

-계효보도 나타났데?

-아니. 계효보는 나타나지 않았데. 그런데……

-그런데 뭐?

-창궁검제, 무림맹 맹주 있잖아.

-창궁검제가 왜?

-무림맹 무인들과 남궁세가, 황보세가, 제갈세가, 하북팽가, 녹림삼십육채…… 엄청난 이들을 이끌고 왔데.

-무당을…… 도우러?

-아니. 무림맹주이자 남궁세가의 세가주인 창궁검제 남궁비혁이…… 계두교의 부교주가 되어, 첫 제물로 무당파를 계신의 제물로 바치겠다고.

“사부님! 업어 주세요.”

“악치야, 너도 이제 다 컸는데…….”

“무당파가 위급해요.”

“업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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