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화
계효보다.
계효보가 분명하다.
그런데 왜?
이해할 수가 없다.
이 시점에서 계효보가 이러한 짓을 벌일 이유가 전혀 없다.
이미 고심에 고심을 해 봤고 또 생각을 해 보았지만, 전혀 모르겠다.
왜?
도대체 닭은 무엇을 위해 이런 일을 벌이고 있는 것일까?
“누…… 누가! 감히 어느 누가 소림사를……?”
고문실 안은 경악 그 자체로 감싸였다.
칠검문주는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덜덜 떨기까지 하며 물었다.
옆에 있는 적수노사라고 다르지 않았다.
그냥 모두가, 소림사의 멸문이란 소식에 하늘이 무너진 것과 같은 충격과 혼란에 빠지고 만 것이다.
“설마…… 설마 마교라도 쳐들어온 것이냐?”
대꾸하지 못하는 무인을 향해 적수노사가 추가로 질문을 던졌다.
급하게 달려온 무인 역시 놀란 마음을 쉬이 가라앉히지 못하고, 숨을 몇 번이나 고른 후에야 답을 내놓았다.
“마교가 아닙니다. 계두교라고 합니다. 자칭 계두교의 교도라는 중원 곳곳에서 모인 무인들과 교도들이 소림사를 일제히 공격했는데, 그 수가 삼만 명에 달했다고 합니다. 숭산 전체가 그들로 인해 까맣게 덮어버렸다고 합니다.”
“천수신권은? 천수신권 원욱 대사는 그깟 잡놈들이 머릿수로 어쩔 수 있는 분이 아니다!”
“계신(鷄神)입니다. 숭산 정상에서 천수신권 원욱 대사와 자칭 계두교의 계신이라는 자가 일백여 합을 싸웠다고 합니다. 그리고 결국, 천수신권께서는 계신의 검에 심장이 관통당하고 목이 잘려 사망했다고 합니다.”
“말도…… 말도 안 돼…….”
충격의 도가니.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역시 계효보다.
계두교와 자신이 상관없어?
퉤!
개잡종만도 못한 닭대가리 새끼.
내가 이럴 줄 알았어.
그런데 다시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분명, 지금 시점은 아니다.
최소한, 닭이 아무리 내 광기를 자기 것으로 흡수하였다고 해도, 내가 화경의 경지에 오른 후 그것을 모두 흡수한 다음에 움직이는 게 상식적으로 맞다.
그런데 왜 하필 지금 시점에 이런 일을 벌이는 것이지?
또 생각하고 다시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무슨 꿍꿍이인 것이냐, 닭대가리야!
그런데 그때!
불길한 생각이 떠오르고 말았다.
설마…… 설마…… 절대 그런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된다.
“날! 지금 당장 나를 풀어 줘! 당장! 지금 나가야 한다고!”
내가 갑작스레 미친놈처럼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칠검문주가 나를 슬쩍 쳐다봤으나, 이내 고개를 돌려 버렸다.
아무래도 살인멸구를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그때, 적수노사가 곁눈질로 나를 보는가 싶더니, 속삭이듯 칠검문주를 향해 말을 건넸다.
“저자는 풀어 주는 게 좋을 것 같네.”
“네? 그게 무슨……?”
“자네 현화문이 어디인 줄 모르나?”
“그런 이름의 문파는 널리고 널리지 않았습니까?”
“쯧쯧, 자네가 이렇게 조심성이 없으니 이번 일에 살왕까지 끼어들게 된 것이지.”
“무슨 말씀이신지요?”
“저 녀석…… 어험. 저 젊은이가 아까 하는 소리 못 들었나? 비록 내가 흉수의 정체를 밝히기 전이라지만, 수룡검이 반항 한번 제대로 해 보지 못하고 죽인 흉수에게 복수한다고 하였네. 반 푼의 무공조차 익히지 못한 자가 말이야.”
“……?”
“믿는 구석이 있다는 뜻이네.”
“믿는 구석이요? 혹시 저놈이 말한 현화문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그야 나도 모르지. 현화문일지 아니면 다른 배경이 더 있는 놈일지. 최소한 현화문은 자네가 생각하는 흔하디흔한 그런 문파가 아니야. 일백 년 전 천하제일인이셨던 현화검존의 그 현화문이라고. 자네, 뒷감당할 자신 있겠나?”
“그, 그게…….”
칠검문주 오늘 많이도 놀란다.
눈알이 튀어나올 것 같은 얼굴로 나를 보는 그였다.
“치료도 잘해 주고, 고문에 대한 보상도 넉넉히 해서 보내 주게. 어차피 천무휘와 곽우적의 흉수는 우리가 아닌 살왕이니까. 우린 죄가 없네. 자네가 저 친구를 고문한 것 외에는.”
적수노사는 늙은 여우다.
일부러 마지막 말은 큰 목소리로 말하며, 내게 저지른 죄에 대한 책임을 모두 칠검문주에게 떠넘겼다.
당황한 칠검문주는 다급했다.
“어서 마 소협, 아니 마 도사님을 풀어 드려라!”
“넵!”
“마 도사님, 오해가…… 오해가 있었습니다.”
“됐습니다. 아무런 죄도 묻지 않겠습니다. 대신 급하게 전서구 좀 띄워 주십시오.”
“물론입니다. 당장 준비하겠습니다. 일단 자리를 옮겨 치료부터…….”
“급합니다.”
“어디로 보내는 전서구가 필요하십니까?”
“두 곳입니다. 하나는 절강 항주, 하나는 산서 진중입니다.”
“혹시 그곳의 어느 분께 보내시려는 것인지 제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적수노사가 말했던 배경, 그 배경이란 것이 내게 진짜로 있는지 떠보려는 수작이다.
칠검문주의 잔머리 굴리는 소리가 보인다.
하지만 지금 그런 걸 따질 상황이 아니다.
위급하다.
“절강 항주에 사부님께서 머물고 계십니다. 또 산서 진중에 작은 사부께서 계십니다. 천수신권이 당해내지 못한 계신이란 자라면, 필시 사부님들께서 나서야지만 막을 수 있습니다.”
오늘 칠검문주 진짜 여러 번 놀란다.
내 말의 뜻을 곧바로 알아차렸다.
나의 두 사부가, 천수신권을 능가하는 무지막지한 고수임을 곧바로 깨달은 것이다.
“지필묵…… 당장 준비해라! 그리고…… 전서구…… 아니! 돈을 얼마나 줘도 상관없으니, 하오문에 연락해 전서응을 빌려! 긴급이다! 지체하는 놈은 목을 쳐 그 죗값을 묻겠다.”
“넵!”
칠검문 무인들이 발바닥에 불이라도 난 것처럼 급히 고문실 밖으로 뛰어나갔다.
“마, 마 도사님, 일단 치료부터 받으시지요. 수하 놈들이 아무리 빠르게 움직여도, 전서응을 구하는 데 적어도 반 시진은 걸릴 것입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동 대협.”
“나? 어험, 나 말인가?”
“잠시 따로 부탁할 게 있습니다.”
“어험, 어험. 알, 알겠네.”
*
부러진 팔과 손등의 응급처치가 끝났다.
방 안에는 나와 적수노사 단둘이 남게 되었다.
“정말…… 좁쌀만큼의 내기만 심장에 불어넣으면 된다는 말인가?”
“그렇소.”
“아무리 좁쌀만큼의 내기라고 하나, 내가 익힌 무공의 성질이 정종의 것과 달라 혈맥을 크게 손상시킬 수 있는데.”
“불가능한 일이오. 설사 그렇다고 하여도 지금은 그 방법밖에 없소. 그러니, 내 몸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어서 내기를 불어넣어 주시오. 정확히 심장이오.”
“뭐, 꼭 그래야 한다면. 알겠네.”
적수노사가 익힌 무공이 마공은 아니다.
하지만 그가 말한 대로 정종의 무공, 그러니까 불가나 도가 계열의 무공은 더더욱 아니다.
패도적이고 사이한 무공이다.
무공을 전혀 익히지 않은 사람의 몸이라면, 적수노사가 말한 대로 좁쌀만큼의 내기가 몸에 침투되는 것만으로도 치명적인 내상을 입게 될 테다.
하지만 난 아니다.
내 신체는 이미 현경의 반열에 올라 있다.
적수노사의 단전에 있는 내공 전체를 쏟아부어도, 내게는 그 어떤 충격도 줄 수 없다.
“시작하겠네.”
적수노사의 사이한 내공이 내 등으로 시작해 곧바로 심장으로 향했다.
느껴진다.
만리연통석이 발동됐다.
-미호! 미호야!
-마악치!
-소림사 소식 들었어?
-들었어. 우리도 많이 놀랐어. 너도 많이 놀랐지?
-응. 놀란 것도 놀란 것인데, 지금 많이 위험해. 이미 천무휘하고 의제가 당했어.
-계효보한테?
-아니. 흉수는 살왕이야. 하지만 아무래도 살왕이 그럴 이유가 없어. 계효보에 의해 움직인 거야.
-넌? 너는 괜찮아?
-나는 괜찮아. 지금 작은 사부님하고 사부님한테 급하게 서신을 보내려고 준비 중이야.
-도대체 계효보가 왜 이런 일을 꾸미는지 전혀 모르겠어. 짐작 가는 것 있어?
-아니. 나도 그 이유는 모르겠어. 하지만 계효보의 다음 행보는 조금 알 것 같아.
-뭔데?
-네 도움이 필요해.
-말해. 우리도 지금 어디로 가야 계효보를 잡을 수 있을지 몰라 헤매는 중이야.
-흩어져도 돼? 너랑, 호요랑, 웅요.
아주 잠깐, 연락이 끊겼다.
하지만 정말 찰나의 순간이었고, 곧바로 백미호에게서 다시 답이 왔다.
-상황이 상황이니 어쩔 수 없지. 어디로 가면 되는데?
-웅요와 호요를 각각 무당과 아미로 보내줘. 계효보가 그곳을 칠 거야. 그리고 너는…… 절강 항주 위화궁으로 가 줘.
-그곳은 네 사부님이 계시잖아. 네가 무적 할매라 부르는 대단한 고수도 있고.
-소림사를 친 계두교가 무려 삼만 명이 넘는데. 아무리 무적 할매라도 홀로 그 많은 수를 감당할 수 없어. 소림사의 스님들까지 다 꺾어 버린 고수들이 그들 사이에 있다고. 그러니 네가 지켜 줘.
-음, 알겠어. 너는?
-나도 일단 항주로 갈 거야. 거기서 만나 다시 이야기하자.
-알았어. 항주에서 다시 만나. 곧바로 갈게.
-응. 고마워.
“끝났소.”
“무얼…… 한 건지 물어도 되겠나?”
“피하시오. 그리고 숨으시오. 아무래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소. 하루라도 더 살고 싶으면 그리하시오. 궁금증 따위는 내다 버리고, 당장 이곳을 떠나 숨어 사시오. 착하게 말이오.”
“어험, 어험. 내가 예전에는 실수로 죄를 몇 번 저질렀으나, 지금은 착하게 살고 있는…… 어험. 마 도사의 말을 듣겠네. 고맙네, 마 도사.”
적수노사가 떠났다.
난 칠검문에서 준비해 준 문방사우로 빠르게 서신을 써 내려갔다.
반 시진 후, 내가 쓴 서신은 전서응의 다리에 묶여 각기 북쪽의 산서와 동쪽의 절강을 향해 훨훨 날아갔다.
*
의제와 천무휘를 죽인 건, 내 수족을 자른 것이다.
또한 계효보가 나에게 보내는 경고며, 내가 나설 것에 대한 사전 차단이다.
그리고 소림사.
이것이 본론이며 핵심이다.
닭이 궁극적으로 생각하는 게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꾸미고 있는 꿍꿍이의 시작을 알리는 증표와 같은 것이며, 세상을 향한 선전포고다.
칠검문에서 빌린 말을 타고 항주를 향해 미친 듯 달리며 많은 생각을 했고, 이러한 몇 가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닭이 왜 이 시점에서 이러한 일을 벌이는지에 대해서는 조금도 알 수 없었다.
부러진 팔과 손에 부목을 단단히 고정했으나, 너무 아프다.
말이 빠르게 달릴수록 통증은 더 심해졌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난 밥도 먹지 않고, 잠도 자지 않고, 중간에 말까지 팔아 새 말로 바꿔 타며 항주로 달렸다.
*
“방생계추(放生鷄雛)! 신계극락(信鷄極樂)! 닭과 병아리를 방생하라! 계신을 믿어야 극락에 갈 것이다!”
“방생계추! 신계극락!”
“방생계추! 신계극락!”
항주에 도착했다.
이미 먼 길을 오여 몇 번이고 봤던 광경이다.
수백에 달하는 계두교 교도들이 ‘방생계추 신계극락’이란 글이 써진 깃발을 휘날리고 또 구호를 외치며 거리를 장악하고 있었다.
갑자기 어디서 어떻게 이렇게 많은 계두교 교도들이 생겨났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내가 계속 죽고 회귀하기를 반복하며 실수를 만회하고 목표한 일을 이루어냈듯.
계효보도 반복된 실수를 계속 만회하며 비밀리에 계두교를 빠르고 강하게 키울 방법을 찾았나 보다.
사막에서 돌아와 처선과 을오를 만나러 가려다 들른 저기객잔(邸岐客棧).
그곳에서 세 명의 늙은 상인들이 나누던 대화.
스물한 번째 회귀 때는 닭값이 갑자기 내렸었고, 스물두 번째 회귀 때는 닭값이 갑자기 올랐었다.
그 작은 대화도 소홀히 하면 안 되었었다.
좀 더 깊게 고심하고 계효보를 의심했었어야 했는데.
역시나 내 불찰이다.
“저 객잔에서 아직도 닭고기를 판다! 모두 쳐라! 객잔을 모두 부수어 버려라!”
“와아아아아아!”
“객잔 주인과 점소이 모두 끌어내 몽둥이질을 하고, 객잔은 불살라 버리자!”
“와아아아아아!”
그냥 교도고 신도들이 아니다.
광신도들이다.
계효보와 계두교에 세뇌되었다.
“너무하는 거 아니야!”
“멈추어라!”
이내 상인들 또 몇몇 무림인들로 보이는 자들과 계두교 광신도들 사이 몸싸움이 벌어졌다.
나는 상관할 수 없다.
천하 곳곳에서 지금 이러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나 혼자 이 모든 것을 막을 수는 없다.
지금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
“마 도사님, 이쪽으로 오십시오.”
위화궁의 여고수를 따라 움직였다.
위화궁으로 향하는 것이다.
내가 작은 사부와 백미호를 위화궁으로 부른 이유다.
위화궁의 위치는 나도 모른다.
광마일기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다.
계효보 역시 모른다는 뜻이다.
안전한 곳이다.
모두를 부를 수는 없었다.
일단 금예지나 한해북, 송암 도장, 아미삼검, 처호와 처선 모두 나를 모른다.
의제와 천무휘가 죽었다면, 이미 한해북도 이 세상 사람이 아닐 테고.
아무튼 이들은 내가 부른다고 해서 오지도 않을 것이다.
지금으로선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가슴이 찢어질 것처럼 아프고 미칠 것같이 화가 나지만, 감정에만 치우쳐져 있을 수는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시간이 촉박하다.
그 일을 행해야 한다.
“악치야.”
사부다.
사부 뒤로 백미호와 무적 할매 그리고 초향까지 함께 있다.
아직 작은 사부는 도착 전인가 보다.
난 사람들과의 인사마저 생략한 후, 사부에게 다급하게 말했다.
“사부, 지금 당장 백두산으로 가야 합니다. 저를 그곳으로 데려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