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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두가 된 이유-134화 (134/245)

134화

의제가 죽었다.

축 늘어져 죽어 있는 의제를 보는데, 눈물이 나지 않았다.

그냥 멍했다.

현실로 느껴지지 않았다.

“형님! 놀랐수? 크하하하하!”

금방이라도 일어나 이렇게 소리치며 웃을 것 같았다.

난 기다렸다.

의제가 일어나길.

일어나야 한다.

제발. 제발 일어나!

이번 생은 내가 동생 할게!

그러니, 제발!

제발!

제발 부탁이야!

제발 좀 일어나란 말이야!

하지만 끝내, 의제는 일어나지 않았다.

죽인다.

의제를 이렇게 만든 놈.

닭이다.

계효보 이 새끼!

감히 내 동생에게 손을 대다니.

진짜 갈기갈기 찢어서 죽여 버릴 것이다.

그제야 막혔던 눈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번 흐르기 시작한 눈물은, 마치 막혔던 둑이 무너진 것처럼 걷잡을 수 없이 마구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땅을 팠다.

의제 부모님이 묻힌 봉분 옆에 의제의 무덤을 만들었다.

그렇게 의제를 땅에 묻기 전.

의제의 상태를 자세히 살폈다.

목을 관통당해 즉사했다.

얇고 기다란 무기다.

의제가 쓰러져 있던 자리, 의제의 머리 옆부분.

그 땅에 깊게 박혀 있던 쇠꼬챙이.

그것으로 의제를 죽인 것이다.

그런데 왜?

계효보는 검을 쓰는데, 왜 쇠꼬챙이를 쓴 거지?

그리고 그걸 왜 또 이곳에 남겨 두고 간 것…… 아!

이런 미친!

천무휘가 위험하다!

난 의제의 시신을 묻지도 못하고 곧바로 만리현 추하객잔을 향해 미친 듯 달려야 했다.

*

쾅!

객잔의 문을 거칠게 열었다.

순간 평온했던 객잔의 손님과 점소이 등의 시선이 모두 나에게로 쏠렸다.

“손, 손님? 한 분이십니까?”

점소이 아죽이 아닌 다른 점소이가, 불편한 감정을 가까스로 숨겨 가며 나를 향해 그리 물었다.

“수룡검 천무휘. 급하다. 빨리 안내하라.”

“약속……되어 있으신 건가요?”

“그렇다. 둘도 없는 친우다. 급하다고 했다. 어서!”

“아, 네. 네. 이리로 오시지요.”

내 격한 반응에 점소이도 놀랐는지, 잰걸음으로 빠르게 별채를 향했다.

“이곳, 이곳입니다. 천무휘 대협과 천예휘 여협께서 묵고 계십…… 엇! 공, 공자님! 그렇게 다짜고짜…….”

쾅!

다시 거칠게 그 문을 열었다.

인기척이 없다.

난 곧바로 별채의 방문을 열어 그 안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젠장!

천예휘…… 죽었다.

다시.

쾅!

옆방의 문을 열었는데.

천무휘가…… 천무휘마저…… 죽었다.

“천 형! 천 형!”

곧바로 축 늘어져 있는 천무휘를 안고 외쳤지만, 반응이 없었다.

이미 체온마저 차갑게 식어 가는 중이었다.

도대체 왜!

왜 이런 짓을 하냔 말이다, 계! 효! 보!

이 미친 닭대가리 새끼!

슬픔과 분노가 얽히고설켜 진짜 미칠 것만 같았다.

“흑흑흑, 으아아아아아아아! 닭대가리! 내가 죽여 버린다!”

미친놈처럼 울고 울며 또 괴성을 질러 댔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이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광기가 폭발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약간의 시간 미친놈처럼 울자 조금은 격했던 감정이 수그러드는 듯했다.

빠르게 주위를 살폈다.

쇠꼬챙이다.

천예휘의 시신 머리 옆에 하나.

천무휘의 머리 옆에도 하나.

살해 당시 썼던 쇠꼬챙이를 바닥에 꽂아 두고 갔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무슨 증표를 남기고 싶었던 걸까?

닭이 왜 이런 짓을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때.

“허걱! 저…… 저분은…… 수룡검…… 헉!”

검을 찬 무인 다섯.

그들이 급히 현장에 도착했다.

그리고 곧, 수룡검의 시체를 보고는 경악한 얼굴이 되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수장으로 보이는 중년의 사내.

“저놈을 포박하라!”

“예!”

칠검문이다.

내가 미친놈처럼 추하객잔에 들이닥치고, 또 다짜고짜 천무휘를 찾은 것이 화근이었나 보다.

추하객잔의 주인이 그사이 칠검문에 알렸고, 무인 다섯이 급히 달려온 모양새였다.

고작 이류와 삼류를 오가는 무인들이다.

하지만 지금의 내가 당해 낼 수 있는 자들이 아니다.

난 어떠한 반항도 해 보지 못하고, 놈들에게 포박당하고 말았다.

“음, 무공을 익히지 못한 놈인가?”

“그런 것 같은데요?”

“그런데 어떻게 수룡검 천 대협을…….”

“내가 아니오.”

“그건 본 문에 가서 차차 얘기하면 될 것이다.”

“현장을 보존하시오.”

“네놈 따위가 말하지 않아도 그리할 참이었다.”

그렇게 난 칠검문으로 잡혀 끌려가게 됐다.

*

“누구냐! 말해라!”

퍽퍽퍽!

“끄으으윽! 이미 모든 걸 말하지 않았냐!”

“네 이놈! 감히 여기가 어딘 줄 알고 거짓말을 하는 것이냐! 놈을 더 처랴!”

“넵!”

퍽퍽퍽!

몽둥이로 계속 나를 때렸다.

팔이 부러지고, 손등의 뼈도 몇 군데 부러졌다.

그럼에도 이들의 고문은 멈추지 않았다.

“말해라! 누가 수룡검 천무휘 대협을 살해했느냐! 우각당의 곽우적이 그리한 것이냐!”

“곽우적은…… 내 의제는 이미 죽었다고…… 말했다.”

“더 쳐라!”

“넵!”

퍽퍽!

“잘돼 가고 있으신가, 칠검문주?”

나에게 지독한 몽둥이질이 이어지고 있을 때, 이곳 고문실 안으로 음침한 분위기의 노인이 한 명 들어왔다.

칠검문에서 혹시 모를 사태를 위대 준비해 둔 적수노사 동탁방이다.

“앗! 동 대협께서도 오셨습니까? 굳이 오실 필요까지 없으셨는데요.”

“그냥, 심심해서. 간만에 고문하는 것도 구경하고. 이게 은근히 재미가 쏠쏠하거든. 하던 거 계속하시오, 칠검문주.”

“네, 동 대협.”

칠검문주가 몸을 돌려 다시 나를 향했다.

적수노사가 보지 못하게 인상을 잔뜩 구긴다.

칠검문주도 적수노사가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다.

하지만 강자존의 세계인 무림에서, 칠검문주는 감히 적수노사에게 뭐라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의 눈치를 살피고 분위기를 맞추어야 할 신세인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겠다.”

“…….”

“사문, 이름.”

“현화문, 마악치다.”

“수룡검 천무휘 대협은 누가 죽였나?”

“모른다.”

“쳐랏!”

“넵!”

퍽퍽퍽!

퍽퍽!

“우각당의 당주 곽우적이 시킨 것인지 아닌지 말해라. 실토하면 목숨은 살려 줄 것이다. 약속한다.”

“내 의제 곽우적은 이미 죽었다고 수십 번이나 말하지 않았나.”

“쳐라!”

“넵!”

퍽퍽퍽!

“다시 묻겠다. 누가 천무휘 대협을 죽였나?”

“쇠꼬챙이의 주인이라고…… 몇 번을…… 그냥 죽여라. 제발 그냥 죽여. 다시 시작하고 싶다.”

“미친놈. 쳐라!”

“넵!”

다시 몽둥이질이 이어지려 할 때였다.

“잠깐!”

적수노사다.

실실 웃으며 내가 고문당하는 광경을 즐기던 놈의 얼굴이 순간 크게 변했다.

놀라움과 긴장감이 흐르는 그런 얼굴이었다.

“왜…… 왜 그러십니까, 동 대협?”

적수노사는 자리에서까지 일어나, 여전히 놀란 얼굴로 나에게 다가왔다.

칠검문주를 완전히 무시하는 행동이었다.

칠검문주는 그런 적수노사의 무례한 행동에 인상을 구겼지만, 역시나 뭐라 따지지는 못했다.

곧이어 적수노사가 나를 향해 물었다.

목소리마저 긴장되어 보였다.

“방금…… 너 방금 뭐라고 했느냐?”

“무엇을 말이냐?”

“쇠꼬챙이라고 하지 않았냐?”

“그렇다.”

“네 이놈! 이분이 어느 분이라고 네 따위가 감히 반말을…….”

칠검문주의 호통은 끝을 맺지 못했다.

여전히 놀란 얼굴의 적수노사가 시선을 나에게 고정한 채 한 손을 들어 칠검문주의 말을 제지했기 때문이다.

“쇠꼬챙이가 분명하냐?”

“그렇다.”

“정확히 설명해 봐라.”

“의제, 우각당의 당주 곽우적의 시체 머리 옆 땅에 깊게 박혀 있었다.”

“또?”

“추하객잔 별채로 갔을 때, 그곳에도 천무휘와 천예휘의 시체 옆에 똑같은 모양의 쇠꼬챙이가 바닥에 꽂혀 있었다.”

“죽은 자들의 사인은?”

“셋 모두 목에 관통상이 있었다. 내가 비록 몸에 이상이 있어서 내공은 쌓지 못하지만, 무공에 관한 안목은 있다. 쇠꼬챙이에 관통당해 즉사했다. 천무휘와 의제 모두 이렇다 할 반항을 했던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흉수는…… 너희 따위가 감히 어쩌고 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는 뜻이다.”

“네놈이!”

다시 칠검문주가 호통치려 했으나, 역시 적수노사가 손을 들어 제지했다.

이번에는 몸까지 돌려 칠검문주를 향했다.

“이놈이 하는 말이 모두 사실인가?”

“그, 그게…… 아직 조사 중인지라.”

“현장 말이다. 천무휘가 죽은 현장. 쇠꼬챙이와 싸움의 흔적이 없는 게 맞는가?”

“그렇습니다.”

“우각당의 곽우적은?”

“한참 전에 본 문의 무사들을 보냈는데…….”

“문주님!”

“앗, 돌아온 것 같습니다.”

곧바로 고문실의 문이 열리며 중년의 무인이 들어와 칠검문주와 적수노사를 향해 예의를 갖추었다.

“서둘러 보고하라.”

“넵! 저자의 말은 모두 사실이었습니다. 우각당의 당주 곽우적은 목이 관통되어 이미 시체가 되어 있었고. 그 옆에 살해의 도구로 사용했던 쇠꼬챙이도 발견됐습니다. 싸움의 흔적 또한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상한 건 봉분이 두 개 있는데, 그 옆에 곽우적을 묻으려고 했는지, 땅이 깊이 파여 있었습니다. 곽우적은 땅 밖에 누워 있던 상태였습니다.”

“음…….”

보고를 받은 칠검문주가 나를 돌아봤다.

“의제를 묻으려던 중, 갑자기 천무휘가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급히 추하객잔으로 간 것이다.”

“아까부터 계속 이상했어. 너무 공교로워. 도대체 어떻게 알았지? 천무휘가 위험할 수 있다는 건?”

“그것도 말하지 않았나? 나와 의제, 그리고 천무휘는 가족이요 친우며 전우라고. 갑작스레 의제가 죽었으면, 천무휘도 위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천무휘는 곽우적을 모른다고 했다. 아니, 알 필요도 없는 존재지. 더군다나 너 따위가…… 말이 안 돼.”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닐 텐데? 당신!”

난 칠검문주가 아닌 적수노사를 향했다.

무언가 고심에 빠진 얼굴, 초조한 기색이 감도는 얼굴의 적수노사가 상념에서 빠져나와 나를 보았다.

“흉수. 누군지 알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인다.

“알려 줘.”

“내가 왜?”

“부탁이다. 의제와 천 형의 복수. 내가 할 것이다.”

“…….”

적수노사는 나를 잠시 뚫어지게 보는 듯하더니, 이내 고개를 돌려 무시했다.

그러자 칠검문주가 나섰다.

“동 대협, 정말…… 정말 흉수가 누군지 아십니까?”

“약속한 일은 이미 끝난 것 같으니, 난 이만 떠나겠네. 급히 가 볼 곳이 있어서.”

“네? 갑자기요?”

“이미 목적이었던 곽우적이 죽지 않았는가? 그러니 약속했던 잔금이나 어서 주시게.”

칠검문주는 즉답을 피하고 고심했다.

분명 그도 분위기를 감지한 것이다.

“말씀……해 주십시오, 동 대협. 약속한 돈은 즉시 드리겠습니다.”

“네가…… 감히 나에게…….”

순간 화를 내려던 적수노사.

하지만 이내 얼굴을 마구 구기며 심각하게 갈등하기 시작했다.

이에 칠검문주도 덩달아 초조한 얼굴이 되고 말았다.

나도 긴장되긴 마찬가지다.

흉수가 만만한 놈이 아닐 것이라는 점은 짐작하겠으나, 절정의 고수인 적수노사가 저렇게 초조해하는 모습에 나 역시 긴장이 되고 만 것이다.

그리고 이내.

적수노사가 굳게 닫혔던 입을 열었다.

“거의 이십 년 만에 다시 무림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 같군.”

“누구를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살왕.”

적수노사의 한마디.

그 한마디로 인해 고문실 안은 순간 엄청난 충격의 도가니에 빠지고 말았다.

“살…… 살왕이 왜? 갑자기 왜?”

칠검문주는 얼마나 놀라고 두려웠는지, 목소리마저 크게 떨리고 있었다.

“그건 나도 모르지. 하지만 살왕이 맞아. 살왕은 언제나 살행이 끝나면 그 시신의 머리 옆에 살행을 할 때 썼던 쇠꼬챙이를 꽂아 두어 자신이 그리했음을 표시해 두었어. 수룡검이 반항도 하지 못했다는 것이 첫 번째, 쇠꼬챙이가 두 번째 증거. 이건 살왕이 맞아.”

“…….”

“휴우, 살왕이 이 일에 끼어들 줄 알았으면, 돈이고 뭐고 아예 이곳에 오지 않는 것이었는데. 쯧쯧. 어서 약속한 돈 주고, 자네도 몸조심하시게. 이곳 만리현의 이권이고 뭐고, 당분간 칠검문의 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자숙하는 게 좋을 거야. 쥐도 새도 모르게 죽는 신세를 면하려면 말이야.”

얼마나 놀랐는지 칠검문주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대꾸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놀란 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살왕?

살왕이 도대체 왜?

전생에 날 죽인 것도 살왕인데?

연장선상인가?

그래서 의제와 천무휘를 죽인 것이야?

그럴 수는 없다.

회귀다!

기억을 갖고 회귀할 수 있는 건, 닭과 백미호 그리고 호요와 웅요뿐이다.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런데 왜?

갑자기 머리가 터질 것처럼 아팠다.

그런데 그때.

쾅!

고문실 문이 부서질 것처럼 열리며, 지금 고문실 내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놀란 얼굴의 무인 한 명이 들이닥쳤다.

칠검문의 무인은 분명한데, 얼굴이 하얗다 못해 새파랗게 질려 덜덜 떨고 식은땀마저 비 오듯 쏟아 내고 있었다.

무언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적수노사와 칠검문주 모두 입도 열지 못하고 그 무인을 쳐다보기만 했다.

그리고 곧.

그 칠검문의 무인에게서 너무나 충격적인 말이 흘러나왔다.

“소림사…… 소림사가…….”

이건 나에게도 너무나, 정말 너무나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소림사가…… 멸문했습니다. 천수신권 원욱 대사께서도 사망하셨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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