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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두가 된 이유-132화 (132/245)

132화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나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나는 귀신 소리를 못 들었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나무아미타불…….”

얼마나 이러고 있었을까?

알몸으로,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엎드려 덜덜 떨며 오랜 시간 이러고 있었다.

진짜 놀랐다.

정말 정말 무서웠다.

귀신이라니?

귀신이 나에게 말을 했다.

하아! 이거 꿈 아니겠지?

잘못 들은 건가?

그렇게 한참이나 지나고 나니, 이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슬쩍 고개를 들었다.

허걱!

진짜 있다.

석탁과 그 위에 책자 한 권과 붓 한 필이 놓여 있다.

뭐야!

진짜 귀신이었어?

하! 돌겠네.

그런데…… 난 누구지?

여긴 또 어디고?

아주 조심스럽게, 사방을 경계하며 그렇게 돌바닥을 기어 석탁 위에 놓여 있는 책자를 손으로 잡았다.

광마일기라 적혀 있다.

그리고 곧, 나는 그것의 첫 장을 넘겼다.

*

광마일기를 읽는 데 꼬박 하루가 걸렸다.

혹시 몰라 내 몸 곳곳도 살폈다.

광마일기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 문신 두 글자가 새겨 있다.

‘살왕’.

날 죽인 게 살왕이란 놈인가?

광마일기에는 전혀 언급이 없던 인간이다.

광천마제 시절부터 바로 지난번 회귀까지 단 한 번도.

그런데 왜?

광천마제 시절에도 한 번 등장하지 않았던 놈이 왜 갑자기 튀어나와 날 죽였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다.

차차 알아보면 될 테고.

문제는.

닭이다.

광마야, 난 너에게 조금의 원한도 없다.

오히려 넌 내게 은인이나 다름없어.

이번 회귀에 벌어질 일들, 네가 죽고 다시 회귀하면 모두 원래로 되돌려져 있을 거야.

그러니 무슨 일이 벌어져도, 절대로 나서지 마.

모두 다시 살아날 거라고.

그러니 제발, 내 말 들어.

절대로 내가 하는 일에 끼어드……

-광마일기 마지막 글귀

내 글씨체가 아니다.

계효보다.

마지막 문장을 끝까지 적지 못했다.

심지어 마지막 글자는 제대로 적지 못하고, 한 일(一) 자처럼 먹이 길게 휘갈겨져 있다.

닭이 나에게 전하려 이 글을 적던 중, 예상치 못했던 갑작스러운 상황에 직면했다는 뜻일 테다.

그리고 그 갑작스러운 상황이란 건.

사실일까?

오십 갑자가 넘는 응요와 낭요가 닭에게 죽었다는 게?

말이 안 된다.

불가능하다.

닭의 내공은 요공까지 다 합쳐도 아직 십사 갑자 반 정도에 불과하다.

그런데 어떻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다.

광천동에 홀로 앉아 오랜 시간 고심했지만, 아무런 답도 얻을 수 없었다.

백미호에게 연락해야겠다.

“아, 아. 야! 백미호, 들려? 야! 예쁜 얼굴 믿고 깝치는 사랑스러운 계집아! 이 오라버니 말 들리냐고! 다음에 만나면 볼기짝을 한 대 후려쳐 줄 거야! 큭큭큭.”

들릴 리가 있겠나?

없다.

만리연통석?

심장에 내기를 주입해야 발동된다.

콩알도 아닌 좁쌀만큼의 내기만 주입해도 된다.

하지만 난, 그 좁쌀만 한 내공도 가지고 있지 않다.

거의 하루 동안 광마일기만 읽고, 또 한나절 넘게 심각하게 고민했더니 우울했다.

그래서 혼자 실없는 짓 좀 해 봤다.

세상이 무너진다고 계속 우울해만 하고 있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이렇게 혼자 실없는 짓거리를 하고 나니, 조금은 힘이 나는 것 같았다.

나는 머리를 세차게 한 번 흔들고, 알몸인 상태로 터벅터벅 걸어 광천동 밖으로 나갔다.

내가 바로 마악치다.

*

혹시 몰라 집으로 가는 대신, 잠시 광천동 근처의 그 큰 바위 위에 앉아 약간의 시간을 보냈다.

가부좌를 틀고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도대체 이해할 수 없었다.

광마일기 마지막 부분에 계효보가 적은 글귀의 의미를.

그렇게 꽤 시간이 흘렀을 때, 엄청난 덩치의 사내가 나를 향해 다가왔다.

웅요(熊妖)다.

기억에 그의 외모는 없으나, 그냥 딱 봐도 곰이고 옆으로 봐도 곰이며, 뒤로 봐도 위로 앞으로 봐도 그냥 곰처럼 생긴 사내다.

난 그가 큰 바위까지 오는 것을 빤히 쳐다봤고, 그는 내 바로 앞에 도착하자마자 손에 들린 것을 건넸다.

옷이다.

“입으시오. 공주님께 예의를 갖춰주시오.”

백미호가 요계의 공주가 맞기는 맞구나.

난 웅요에게 고개를 살짝 끄덕여 감사함을 표한 후, 바위 위에 서서 당당하게 옷을 입었다.

내가 옷을 다 입자마자, 백미호가 호요(虎妖)와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난 다시 큰 바위 위에 앉았고, 수심이 깊은 얼굴의 백미호가 내 곁에 다가와 나란히 앉았다.

웅요와 호요는 살짝 떨어져, 경계할 것도 없는 주변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괜찮아?”

내가 물었다.

그러자 백미호가 순간 나를 향해 쌍심지를 세웠다가, 이내 다시 앞쪽을 바라봤다.

“마음이 좋을 리 없지. 응요와 낭요는 요계에서 내가 직접 차출해 데려온 무요였는데.”

“내가 많이 생각해 봤거든. 그런데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어. 어떻게 오십 갑자가 넘는 무요를, 그것도 둘이나 죽일 수 있지? 계효보가 했다기에는 그 능력치를 한참이나 벗어난 일이야. 말이 안 된다고.”

“휴우, 나도 처음엔 아닐 수 있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현장에 도착해 보니 계요의 기운이 진하게 남아 있었어. 또, 호요가 계효보의 뒷모습을 봤다고 하더군.”

“정말, 정말 계효보가 한 짓이 맞아?”

“맞아.”

“하아…….”

또 혼란스럽다.

이걸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인가?

“자세히 설명 좀 해 줘 봐.”

“그러니까 네 죽음을 감지하고…….”

“내 죽음을 감지해? 어떻게?”

“만리연통석. 그게 끊겼어. 그래서 네가 죽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

“이건 뭐, 내 몸에 추적 장치를 달아놓은 거네.”

“그나저나 광마일기에서 읽긴 했지만, 진짜 좁쌀만큼의 내공도 없는 거야?”

“응.”

“휴우. 그러면 네가 천무휘를 만나기 전까지는 만리연통석으로 연락이 어렵겠네.”

“그렇지.”

백미호가 다시 쌍심지를 치켜세우며 나를 돌아봤다.

“왜? 왜 그렇게 보는데?”

“너 아까부터 자연스럽게 말이 짧다?”

“너도 반말하잖아.”

“야!”

“왜!”

백미호가 부들부들 떤다.

솔직히 나도 떨린다.

한 대 치면 죽을 테니까 두려워서 떨렸고, 또 너무 예뻐서 떨린다.

광마일기에 그 아름다움에 대해 한가득 기록이 되어 있어서, 읽으면서 내내 혼자 ‘나도 참 한심한 놈이다. 여자가 예뻐 봐야 얼마나 예쁘다고.’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본 백미호는 광마일기에 내가 적은 아름다움에 대한 묘사가 한참이나 부족할 정도로 아름답고 또 아름다웠다.

그래서 그랬다.

예쁜 여자에게 동생 취급 받고 싶지 않아, 떨려 죽겠음에도 똥꼬에 힘을 꽉 주고 용기를 내는 중이다.

“미호야.”

“미호야?”

“사실, 나이로 따지면 내가 네 할아버지뻘이잖아.”

“뭔 개소리야!”

“예쁜 입으로 그렇게 거친 소리 하는 거 아니다.”

“그러니까 뭔 소리냐고! 너 지금 열여덟 살이잖아.”

“이거 왜 이래? 다 알면서. 나 지금 스물세 번째 회귀야. 내 나이를 계산해 봐. 네 곱절은 훨씬 넘지.”

“광마 시절 삼십팔 년. 그런 후 거의 열 번의 회귀는 일 년도 안 돼서 죽었고, 나머지 회귀도 고작 이삼 년 살다가 죽었잖아. 직전 회귀에서야 간신히 오 년 정도 살았고. 그러니 스물세 번의 회귀를 다 합쳐봐도 일백 살이 될까 말까야. 내가 내 나이 말해 줬지? 광마일기에 안 적었어? 이백십 세라고!”

“하아! 돌겠네.”

“뭐? 너 지금 뭐라고 했어?”

“아니, 우리 속담에 입술은 예뻐도 말은 바로 하라고 했어.”

“뭔 소리야?”

“네 계산법이 틀렸다는 거지.”

“……?”

“잘 생각해 봐. 광천마제 시절 나는 서른여덟 살까지 살다가 죽었어.”

“…….”

“그리고 그다음에도 거의 열여덟 살에서 스물세 살의 나이로 죽었다고. 평균으로 따져도 스물두 살의 나이로 죽은 거야. 스물두 번이나. 그리고 지금 다시 열여덟 살. 그 나이를 다 합쳐 봐. 사백 살 넘어. 거의 오백 살에 육박한다고.”

“궤변! 산 날을 계산해야지. 무슨 나이를 계산해!”

“응. 요계에서는 어떻게 계산하는지 모르지만, 우리 인간계에서는 이렇게 계산해. 만약 내가 요계에 가면 누나라고 불러 줄게. 그런데 미호야, 여긴 인간계고, 인간계에서는 아무리 요괴라도 인간계의 법도를 따라야 해. 그러니 이제부터 너는 나를 오빠…… 쿨럭. 쿨럭.”

순간!

진짜 죽일 것 같았다.

백미호의 눈빛이 그랬다.

“오빠라고 부를 필요까지는 없고. 그냥 서로 편히 부르고 말하자고. 지금 호칭이나 존대가 중요한 게 아니잖아. 닭부터 잡아야지.”

백미호가 나를 죽일 듯 노려보며 부들부들 떤다.

내 심장도 떨린다.

진짜 죽을까 봐.

하지만 백미호는, 날 죽이지 못한다.

닭을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내가 이겼다.

백미호가 거친 숨을 몰아쉬는가 싶더니, 이내 시선을 다시 돌려 정면을 향했다.

“어험, 일 이야기나 하자고. 그래서 응요와 낭요 두 분이 어떻게 사망했는데?”

“네 죽음을 감지하고, 사대무요에게 무림인들이 하는 전음 비슷한 것을 보냈어. 이미 계효보의 흔적을 발견해 추적 중이었던 응요와 낭요가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고, 현장으로 제일 먼저 도착했지.”

“음, 계효보가 내 광마일기에 장난을 치고 있을 때 그들이 덮친 게 맞군.”

“장난?”

“이따가 보여 줄게. 그래서?”

“둘이 한꺼번에 도착한 것은 아니야. 응요가 하늘을 날 수 있기 때문에 먼저 도착했지. 아마 곧바로 계효보를 죽이려 했을 거야.”

“그런데 오히려 당했다?”

“응.”

“오십 갑자가 넘는 요공을 가진 응요가? 오십 갑자의 요공을 무력으로도 사용할 수 있다며?”

“맞아. 하지만 죽었어. 꽤 치열했던 싸움의 흔적이 있었지만, 결론은 응요가 계효보에게 당했다는 거야.”

“응요와 낭요가 함께 싸웠던 게 아니군?”

“맞아. 낭요가 죽은 지점은 응요의 시체가 발견된 곳에서부터 한참이나 떨어진 곳이었어. 그곳에서도 치열한 싸움의 흔적이 있었고, 닭의 피도 엄청나게 뿌려져 있었지. 하지만 역시나 죽은 건 낭요였어.”

“닭이 매와 늑대를 잡다니……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아니 받아들이고 말고 이건 정말 말이 안 되잖아! 계효보의 내공은 고작해야 십사 갑자 반이라고! 다른 흔적은? 누군가 계효보를 도왔다든가, 아니면 암기를 썼다든가? 독은?”

“없어. 그리고 계효보 내공…….”

“……?”

“어쩌면 십사 갑자 반이 아닐 수도 있어.”

“그, 그건…… 그건 또 무슨 말이야?”

갑자기 불안했다.

뭔가, 예감이 그랬다.

그리고 백미호는 어느 때보다 심각한 얼굴로 날 보며 그리 말했다.

“네 광기.”

“내 광기? 갑자기 그건 왜?”

“광마일기에 적혀 있는 네 몸속 깊은 곳에 존재하는 그 광기 말이야.”

“그러니까 갑자기 내 광기는 왜?”

“아무래도 계효보가 그걸 복제해 자기의 힘으로 만든 것 같아.”

벼락을 맞은 느낌이었다.

갑자기 머리가 멍했다.

웅웅웅, 뭔가 내 머릿속을 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

갑자기 미칠 것 같았다.

마구 달려가 닭을 찢어발기고 싶었다.

광기라니!

내 광기를 도대체 어떻게?

억겁의 굴레가, 내 기억과 무공만 흡수할 수 있었던 게 아니었나?

착오다!

이건 내 착오고 결정적 패착이다.

설마…… 광기마저 흡수할 수 있을 줄이야.

그건 정말 생각지도 못했다.

이제는 놈에 대해 모두 안다고 생각했는데, 방심이었나?

확실히!

나는 나만 계효보를 속이고 있는 줄 알았다.

그건 확신이었다.

그래서 계효보를 상대할 여러 준비를 해 놓고 흥겹게 콧노래를 불렀다.

닭을 잡을 수 있는 완벽한 계책을 세 가지나 준비해 놨는데,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그래서 콧노래도 흥겹게 부르고, 광마일기도 적는 족족 찢어서 씹어먹었다.

무미한 그 종잇장이 맛있다고 생각이 될 정도로, 즐겁게 광마일기를 찢어서 먹고 또 먹었다.

왜?

닭을 속이고 있으니까.

닭을 잡을 수 있으니까.

그래서 그 종잇장마저 맛있게 먹은 건데.

분명 그렇게 확신하고 있었는데.

그런데!

나만 속이고 있었던 게 아니었어.

나만 닭 잡을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게 아니었다.

젠장!

빌어먹을!

닭대가리 역시 나를 계속 속이고 있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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