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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두가 된 이유-128화 (128/245)

128화

사실 신창양가에서 이렇게까지 무모하게 나올 줄은 몰랐다.

내가 천무휘의 명성을 이용하고자 했던 것.

아니, 처호의 조언으로 천무휘의 명성을 이용하고자 했던 것에는, 피를 최소한 적게 흘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수만 명에 달하는 군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제대로 된 명분이나 증거도 없이 우리에게 무력을 사용하리라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얘네.

신창양가.

가주 양북달.

답이 없는 놈이다.

역시 양아치가 아비를 닮은 모양이다.

어쩌면, 산서가 중원의 변방에 속해 이렇게 무모한 짓을 서슴지 않고 벌일 수 있는 것일 수도 있고.

그래도 괜찮다.

딱 시간에 맞춰 와 주었다.

이번 일을 시작하기 전.

산서로 출발하기 전, 이미 천무휘가 무림맹으로 서신을 보내 도움을 요청했다.

수령자는 화산파에서 무림맹으로 파견한 청운도인(靑雲道人) 이석계다.

무림맹에서의 직위는 화산장로(華山長老).

무림맹은 일반의 문파나 세가와 달리 일장로, 이장로, 삼장로 등 장로들에게 서열을 부여하지 않는다.

그 특수성 때문이다.

그래서 무당파에서 보낸 대표는 무당장로라 칭하며, 소림사는 소림장로, 아미파는 아미장로 등으로 칭한다.

아무튼 무림맹 화산장로 청운도인 이석계는, 천무휘의 말에 따르면 화산파 내에서 무력 서열은 구 순위로 엄청난 고수라 할 수는 없지만, 그 심성이 올곧고 심계가 뛰어난 인물이라 하였다.

그리고 그가 이끌고 온 두 개의 무력대인 자하검무대, 매화복무대.

무림맹 화산장로원의 직속 무력대로, 무림맹 내에서도 그 위치가 상당한 고수들이다.

이들만이 아니었다.

오백여 기의 말을 탄 자들 중 이백 명 이상은 무림맹 산서 지부의 무인들이었다.

세 마을 학살의 흉수로 누명을 쓴 언갈을 추살하러 떠났던 이들까지 모두 데리고 온 화산장로 이석계였다.

그들이 지축이 울리는 말발굽 소리를 내며 무지막지한 속도로 달려오자, 신창양가 무인들의 움직임도 멈추었다.

양북달은 얼굴까지 마구 일그러뜨리며 곤혹스러워했다.

이내, 그들이 도착하였다.

“모두 동작을 멈추어라! 무림맹 본맹에서 왔느니라!”

이석계는 목소리에 내공을 실어 외침과 동시에 오른손을 번쩍 들어 하나의 신패를 모두가 볼 수 있게 했다.

‘제천집법패(諸天執法牌)’

“무림맹 집법전주에게 집법권을 이양받은 증패다. 전 무림을 적으로 삼고 싶지 않다면, 모두 즉각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라!”

이천에 달하는 신창양가의 무인들도, 또 슬금슬금 자리를 피하려던 군중들도.

모두가 순간 얼음이라도 된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화산장로 이석계는 여전히 제천집법패를 번쩍 치켜든 채 양북달을 무섭게 노려보았고.

양북달은 식은땀을 비 오듯 쏟으면서도 쉬이 입을 떼지 못했다.

“신창양가주는 들어라! 네게는 두 가지 선택권이 있다. 무림맹과 맞서 싸워 멸문을 하는 길이 첫 번째고. 순순히 무기를 버리고 투항해 지은 죗값을 치러 가문의 명맥을 유지하는 길이 두 번째다. 그 답을 내놓아라. 내 인내심은 길지 않다.”

이석계의 엄포.

수많은 이들이 살얼음판 위를 걷는 마음으로 상황을 주시했다.

그리고 곧.

툭.

양북달이 자신의 단창을 바닥에 던져 버리고 말았다.

곧이어.

투투투투투투투투투툭.

이천에 달하는 신창양가의 무인들.

그들이 모두 손에 쥐고 있던 단창과 장창을 버려 투항의 의지를 표했다.

“모두 포박하여 광장에 무릎을 꿇려라! 곧 무림맹의 이름으로 심판을 시작하겠다!”

“넵!”

삼백에 달하는 무림맹 무사들이 빠르게 움직였다.

포승줄이 없기에 무기를 빼앗고 간단한 점혈을 한 후, 줄을 맞춰 무릎을 꿇게 했다.

역시나 무림맹 장로원 직속의 무력대라 그런지, 그 손놀림이 상당히 빨랐다.

양북달과 양아치를 선두에 무릎 꿇리고, 신창양가 사람들 모두가 그렇게 정렬이 되었다.

그다음에는 무림맹 산서 지부 소속 무인들이 알아서 그들 옆에 줄을 맞춰 무릎을 꿇고 심판을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다.

“장로님, 감사합니다.”

상황이 정리되어 가는 것을 지켜보던 이석계 곁으로 천무휘가 다가가며 인사를 했다.

그러자 조금 전까지 더없이 근엄하기만 했던 이석계가 방긋 웃었다.

“이 녀석, 아직도 나를 장로라 부르는구나. 내가 너 갓난아이였을 때, 너를 업고 그 높은 화산을 열 번도 더 오르고 내렸다. 한번은 업힌 채로 내 등에다 오줌까지 갈겼던 걸 내가 끝까지 등에 업고 본산까지 올랐는데, 여전히 나를 장로라고 부르다니. 섭섭해. 아주 섭섭해.”

이석계가 농담 같은 어조로 질타를 하자, 천무휘도 조금은 난감하면서도 어색하게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죄송합니다, 이 숙부님. 아직 호칭이 영 어색해서.”

“됐다, 인석아. 엎드려 절받는 것도 영 체면이 안 서는구나, 하하.”

“그나저나 정말 감사합니다. 이 숙부님께서 때마침 와 주신 덕분에, 많은 사상자가 나올 수 있었던 상황을 면하게 됐습니다.”

“너 때문이 아니다.”

“……?”

“나는 무림맹의 장로 신분이다. 네가 보낸 것이 아니라, 다른 누가 같은 내용의 서신을 보내어 도움을 요청했어도 똑같이 행동했을 것이다. 정의와 협의를 바로 세우는 일이 아니겠느냐. 그것을 지키는 일이 바로, 무림이란 세계를 살아가는 우리의 의무이니라.”

“아! 네. 가르침 깊이 새기겠습니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천무휘를 바라보는 이석계의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좋아 환장할 것 같다고 얼굴에 고스란히 쓰여 있었다.

만약 천무휘가 아니라, 정말 다른 사람이 같은 내용의 서신을 보냈다면, 최소한 이렇게 빠르게 또 대단한 고수들을 이끌고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무튼 천무휘의 잘생긴 얼굴과 명성 그리고 그 배경 덕분에, 이번 일은 정말 쉽게 잘 처리하게 되었다.

그리고 곧.

무림맹 집법전의 전권을 이양받은 화산장로 이석계가 양아치와 신창양가, 그리고 무림맹 산서 지부에 대한 심판을 시작했다.

세 개 마을 삼백여 명이 억울하게 죽은 사건인 만큼, 그 심판은 매우 끔찍하게 진행되었다.

열흘에 걸쳐 이어진 심판 기간 동안, 신창양가에서만 오백 명 이상이 처형을 당했다.

또 무림맹 산서 지부에서도 오십 명 이상이 죽임을 당했다.

그리고 심판이 이어지는 열흘이 넘는 동안.

양아치는 산 채로 껍질이 벗겨진 채, 신창양가 앞 대광장 중심의 높은 장대에 매달려 서서히 또 끔찍한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

* * *

“양가에서 관리하던 지역의 이권 배분은 어떻게 진행되어가고 있소?”

신창양가의 신창전 대청에 있는 높은 태사의에 화산장로 이석계가 앉아 말했다.

신창양가를 일부러 낮춰 양가라 부르고 있었다.

“네. 양가에서 매우 협조적으로 나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저희 사대무문은 물론, 태원과 산서에 산재하는 무림 문파 모두에 골고루 배분될 것입니다.”

태원 사대무문 중 한 곳인 태연세가의 가주가 공손히 답했다.

“양가주의 두 아들은요?”

“네. 첫째 아들은 저희 목문의 지하뇌옥에 철통같은 감시를 붙여 가두었습니다.”

“둘째 양아돈은 저희 차렵방 동옥(洞獄, 동굴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절대로 도주할 수 없을 것입니다.”

목문의 문주와 차렵방의 방주가 연이어 답했다.

역시나 심하다 싶을 정도로 공손한 자세였다.

“나머지 그 죄가 입증된 무인들은 어찌 되었소?”

“네, 그자들은 저희 산검문에서 일제히 관으로 넘겼습니다. 만리장성을 쌓는 곳으로 노역을 보낼 것이라 관에서 답을 받았습니다.”

“때로는 악이라 할지라도 그 중심을 잡아줄 기둥이 필요한 법이요. 하지만 지금 산서는 그 중심 기둥 역할을 하던 양가가 무너져, 민초들이 매우 혼란스러울 것이오. 여러분들의 큰 역할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믿고 맡겨 주십시오! 무림의 정의와 평화, 민초들의 안정을 위해 분골쇄신하겠습니다.”

태원 사대무문의 수장들이 일제히 큰 목소리로 답했다.

“지켜보겠소.”

“넵!”

신창양가는 봉문(封門) 사십 년이 결정됐다.

당분간 산서는 유령신검의 황룡회가 나서지 않는 이상, 이들 사대무문 중심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또, 신창양가에 미움을 받아 숨죽이고 있던 무문에서 그 숨겨 두었던 힘을 드러내기도 할 것이고.

다행히 화산장로 이석계가 산서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는 섬서의 화산파 도움까지 받아 산서 무림을 감시하고 돕기로 했다.

이 일은 오롯이 화산에 맡기면 될 것이다.

“따로 하실 말씀은 없으십니까, 마 도사님?”

대청의 상석에 화산장로 이석계가 앉았고, 그 우편으로 사대무문 수장들이 일렬로 앉았다.

바로 맞은편, 이석계의 좌편으로 나와 천무휘, 의제, 한해북이 앉은 상태였다.

그런데 이 양반이 천무휘가 아닌 나에게 저리 묻는 것이었다.

뭐, 사실 이제 거의 보름이 되어가고 있는 상황인지라, 이석계도 우리의 대표가 나인 것을 알고 있다.

또 천무휘의 상태가 좋지 않음 역시 제대로 파악한 상태였다.

천무휘의 멍한 상태는 이제 그 정도를 지나치고 있었다.

제대로 된 정신이 있을 때보다, 멍한 상태로 있는 시간이 더 많을 정도였다.

“마 도사님?”

“아, 네. 화산장로님과 사대무문의 대협들께서 나서 주신 덕분에, 제가 따로 드릴 말씀은 없습니다.”

이석계가 답을 하는 내 얼굴을 보며 싱끗 웃는다.

그러더니 이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석계가 일어서자 맞은 편 사대무문의 수장들은 엉겁결에 일어났고, 나와 우리 녀석들도 함께 일어나야 했다.

천무휘는 여전히 혼자 앉아 있고.

“무림맹을 대신해 마 도사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억울하게 고인이 된 피해자들 역시 하늘에서 크게 감사하고 있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마 도사님.”

이석계가 인자한 미소와 함께 허리를 깊이 숙여 내게 감사의 인사를 했다.

곧바로 사대무문의 수장들 역시 같은 행동으로 나에게 인사를 했고, 나와 우리 녀석들 역시 함께 맞절을 해야 했다.

아! 내가 말이다.

다른 곳은 몰라도, 최소한 화산파에게 만큼은 악의를 계속 품고 있어야 하는데.

이게 쪼금 그렇다.

이석계란 사람 말이다. 아주 조금이지만 마음에 들려고 한다.

* * *

양아치 사건의 수습은 신창양가의 쇠락과 더불어 사십 년 봉문으로 끝을 맺었다.

산서에서 신창양가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보름이 지났음에도 그 관련자들을 처벌하고도 수습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뭐, 그건 무림맹하고 산서 무문에서 하면 될 테니 맡기고.

나와 우리는 대명장으로 돌아왔다.

목격자였던 젊은 부부와 어린 삼남매의 신분은 끝까지 노출하지 않았다.

우리가 산서를 떠난 후, 혹시 모를 보복을 대비하기 위함이다.

이들은 대명장에서 품어 주기로 대명장주 방백이 약속하였다.

천무휘는 여전히 온종일 멍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고, 의제와 한해북은 다시 수련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양아치에게서 받았던 삼천년하오수를 줬더니, 사이 좋게 나눠 먹고 헤벌쭉 좋아서 열심히 들이다.

그리고 나는 기다리고 있다.

작은 사부와 무적 할매의 답신.

그런데 그때.

같은 날 오전과 오후로 각각 개방과 하오문에서 사람이 찾아왔다.

돈의 힘이 대단하긴 하다.

묻지도 않은 정보까지 물어다 주니 말이다.

심지어 개방에서는 산서 분타의 총분타주 오올개가 직접 나를 찾아왔다.

“복건의 해수장위사 노덕대 대장군 말입니다.”

“그 양반이 왜요? 또 무슨 사고 쳤대요?”

“네. 사고도 엄청난 사고를 치고 말았습니다.”

“쯧쯧, 정신을 좀 차린 줄 알았더니. 얼마나 대단한 사고를 쳤기에 오올개 총분타주님께서 직접 오신 건가요?”

“놀라지 마십시오, 마 도사님. 노덕대 대장군이 지난달 황제의 부름을 받아 황궁에 입궁했습니다.”

“황궁에까지 가서 사고를 친 거요?”

“네. 황제께서 그에게 해수총독부의 총수대장군 자리를 임명하셨습니다.”

“그, 그게…… 설마 내가 아는 그거 맞아요?”

“하하, 맞습니다. 중원의 모든 해군을 통솔하는 총수대장군. 이제 그의 명령 한마디면 일만여 척의 함대와 삼십만 명에 달하는 수군이 움직일 것입니다.”

“허허, 그 양반 출세했네.”

“암요. 출세도 어마어마한 출세죠, 하하.”

아이씨!

이럴 줄 알았으면, 금자 일천 냥 정도는 더 받았어도 됐을 텐데.

아깝다.

* * *

개방의 오올개가 다녀간 다음 날.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렸던 서신이 도착했다.

우연의 일치였을까?

아니면 천무휘의 운명 때문이었을까?

작은 사부와 무적 할매의 답신은 같은 날 이곳 대명장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하! 역시나 내가 생각했던 게 맞았다.

아니, 이미 알고 있었다.

그냥 믿고 싶지 않았을 뿐이지.

이제.

이제 말이다.

천무휘를 보내 줄 때가 되었다.

잘 가라, 수룡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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