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마두가 된 이유-127화 (127/245)

127화

양아치에게 한 장의 서류를 건넸다.

일전에 의제가 나에게 건넨 것과 같이, 개방이나 하오문에서 보낸 마두의 신상 정보와 죄목을 적은 내용은 비슷하다.

하지만 글씨체가 확연히 달랐다.

비뚤비뚤, 의제의 글씨체였다.

마두 목록

(상략)

장과사.

빠르게 말을 몰고 시골길을 지나다가, 세 살 아이를 치어 죽임.

이를 본 한 살 터울 누이가 울부짖자, 그 누이를 칼로 베어 죽임.

다시 이 모습을 본 아이의 부모와 조부모 그리고 숙부가 달려오자, 모두 살해함.

(중략)

왕윤.

이십 세 미만의 여인 열세 명에게 좋은 일자리를 주겠다고 꾀어 유인, 인적이 없는 곳에서 간살함.

밝혀진 것은 이 한 건이나, 그 치밀함과 태연함을 보았을 때, 과거에 이미 여러 차례 비슷한 악행이 있었던 것으로 추론.

(중략)

황정구.

삼문당이라는 흑도당 왈패의 수장.

십수 년간 삼정 옥호현 일대의 뒷거리를 장악하며 저지른 살인의 횟수만 육십 건 이상.

그의 폭력과 협박 등을 이기지 못하고 재산을 빼앗긴 피해자 삼백 명 이상 추정.

(중략)

사인득.

유문 대덕촌 출신.

(중략)

각기 도주하던 이들이 뭉쳐 함께 활동하게 된 지 이 년이 넘음.

(하략)

정신을 바싹 차려야 했다.

놀란 마음을 빠르게 추스르고, 최대한 태연한 척 말했다.

“넌, 거기에 적힌 죄목이 모두 사실인 것 같냐?”

그러자.

“큭큭큭. 크크크큭.”

이 새끼.

웃는다.

더없이 기쁘게 웃는다.

엄청난 진리를 깨달아, 그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는 진짜 웃음이다.

“형님.”

“……?”

“그랬던 것이군요, 큭큭큭.”

“……?”

“제가 비밀 하나 말씀드릴까요?”

“뭔데?”

“근 삼 년 동안 우리 태원에 있었던 세 개 마을 학살 사건 말입니다.”

“그거 신창양가에 잠입해 있던 마두가 저질렀다고 하지 않았어? 무림맹 무슨 무력단하고 짜고 그랬다고 들었는데? 그래서 이곳 산서 무림맹 지부에서 추격 중이고.”

“큭큭큭. 실은 말입니다…… 큭큭.”

“뭔데?”

“제가 그랬습니다, 큭큭큭.”

놈의 말에 내가 정색을 했다.

“야.”

“네, 형님. 큭큭큭.”

“우리하고 친해지고 싶은 건 알겠지만, 나는 나에게 거짓말하는 건 용납 못 한다. 괜히 하지도 않은 일을 꾸며서 허세 부리지는 마라.”

“형님, 큭큭큭. 진짜입니다.”

“그럼 너네 신창양가에 잠입했었다던 그 마두는 뭔데?”

“뭐긴 뭡니까? 큭큭. 앞뒤가 꽉 막혀 어리석고 고지식한 놈에게 덮어씌운 거죠.”

“형님, 이 녀석이 뭐라는 거예요?”

의제가 막 마두 한 녀석의 숨통을 깨끗이 끊어 버린 후 우리에게 다가왔다.

곧바로 천무휘와 한해북까지 피 칠갑을 한 몰골로 역시나 우리 곁으로 왔다.

이에 양아치는 더더욱 자랑스러운 얼굴이 되어 말을 이었다.

“형님들, 덕분에 제가 오늘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큭큭큭.”

“그래서, 뭔데? 태원 세 개 마을 학살 사건은 우리도 들었어. 거참 크게 될 놈이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너였어?”

의제가 얼굴에 묻은 피를 소매로 쓰윽 닦으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물었다.

그러자 더더욱 입꼬리가 귀에 걸리는 양아치였다.

“잠깐. 난 믿기 힘든데? 신창양가와 무림맹 산서 지부에서 철저히 조사한 사건이라 들었어. 그걸 어떻게 그렇게 쉽게 그 무사에게 누명을 씌울 수 있었지?”

“하하하! 역시 구절협 한해북 형님이십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형님들. 제가 누구겠습니까? 신창양가의 삼공자 아닙니까? 아버지가 계시고, 또 아버지에게 매달 엄청난 뇌물을 처먹고 있는 무림맹 산서 지부장이 돕는데, 그깟 누명 좀 씌우는 일이 무슨 대수겠습니까? 크하하하하!”

우리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실제 그걸 양아치의 입을 통해 듣게 되자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우리 중 그 누구도 말을 하지 않자, 양아치가 신이 나 계속 말을 이었다.

“하! 그 세 번째 마을 사건 이후, 아버지한테 엄청나게 혼나서 손이 근질근질해 미칠 판이었는데! 그때 형님들께서 오셔서 마두 사냥을 시작하게 된 거예요, 하아! 얼마나 그리웠다고요, 이 피 냄새가, 하하하!”

“…….”

“그나저나 제가 마음과 영혼으로 형님들께 깊이 탄복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훌륭한 계책으로 욕구도 풀고, 또 영웅 대접까지 받고, 하하! 전 왜 진작 그 생각을 못 했을까요?”

“도운 건? 아버지와 무림맹 산서 지부장 두 사람뿐이야? 아무래도 사건이 큰 사건이다 보니, 여러 사람이 도와줬을 것 같은데? 네 형들이나 다른 신창양가 인사들은?”

내가 물었다.

웃지도, 연기도 하지 않았다.

그냥 사건에 대해 물은 것이다.

하지만 양아치는 여전히 흥분한 얼굴로 답했다.

“뭐, 저야 정확한 건 모릅니다. 형들도 알긴 아는데, 일부러 모른 척하는 거고. 우리 신창양가 노인네들과 산서 지부 핵심 인사들이, 제가 저지른 일 처리 하느라 저희 신창전 문턱이 닳도록 오간 것까진 압니다.”

“그렇군.”

“앗! 아! 그래서 그랬던 거였군요?”

양아치가 또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 손뼉까지 치며 말했다.

우리는 굳은 얼굴로 그저 놈을 볼 뿐이었다.

이 새끼, 분위기 파악 못 한다.

아니, 지금 너무 과하게 흥분한 상태인가 보다.

앞으로 마음껏 살인을 저지를 수 있다는 생각에.

“천 형님이 자주 사라지셨던 일. 또 곽 형님과 한 형님을 오늘에서야 만날 수 있었던 일. 모두…… 큭큭큭. 시원하게 욕구 해소하시느라 바쁘셨던 거군요. 그런 다음, 이 녀석들을 잡아 그 죄를 씌운 거고요. 캬! 다시 생각해도 정말 기가 막힌 계책입니다, 형님들! 하하하하!”

“야.”

잔뜩 흥분해, 그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웃어 대는 놈을 내가 굳은 얼굴로 불렀다.

그러자 웃음을 뚝 그치며, 또 고개까지 갸우뚱하며 나를 본다.

뭔가 분위기가 달라졌음을 이제야 깨달은 것 같다.

“너, 저 악적들이 가짜라고 생각하는 거야?”

“네? 그게 무슨……? 아까 보여 주신 서류에 적힌 죄상이 진짜가 아니라고…….”

슬금슬금 얼굴에 두려움이 들기 시작한 양아치.

난 정색을 하며 답했다.

“내가 언제 서류에 적힌 저들의 죄상이 진짜가 아니라고 했어? 그 죄목이 모두 사실인 것 같냐고 물었지.”

“그게…… 그거…….”

“아니야.”

“……?”

“부족해.”

“네?”

“저들은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죄를 저질렀어. 저들이 실제 저지른 끔찍한 죄에 비해 밝혀진 게 너무 적다는 말이었어. 그래서 그 죄목이 사실이 아니라고 말한 거야. 없는 죄를 우리가 만든 게 아니라.”

“지, 지금…… 지금 무슨 말씀을……?”

이 새끼.

이제 상황 파악 다 했다.

살인마 새끼.

“나오십시오!”

내 외침에 수풀 사이로 여러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대명장의 장주 방백.

그리고 방백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는 태원의 유력 인사 일곱 명.

또 있다.

개방 산서 분타와 태원 분타의 분타주.

산서분타주의 경우 오결제자로, 개방 내에서도 장로 다음으로 그 신분이 높은 자이다.

또 있다.

하오문 산서 지부와 태원 지부의 지부장 두 명.

또 있다.

언묵, 언갈 형제와 오십여 십합단 무사들이 눈까지 시뻘게져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이들과 함께 나타났다.

* * *

“와아아아아아아!”

“신창양가의 양아치 대협도 돌아왔다!”

“천무휘 대협이다!”

“어멋! 저기 저 대도를 어깨에 걸친 사람 그 사람 아니야?”

“누구?”

“왜, 천무휘 대협하고 함께 다닌다는 우각도협 곽우적 대협.”

“맞다! 그러면 저 사람은 구절협 한해북 대협이겠네?”

“어머! 웬일이니! 마 도사까지 해서 네 사람이 함께 있는 걸 다 보고.”

“와아아아아아!”

오늘도 여전히 수만 명에 달하는 인파가 몰려, 마두를 물리치고 돌아오는 우리를 엄청난 함성으로 환영해주었다.

의외였다.

한해북은 몰라도 의제까지 알아봐 주는 사람도 있었다.

나 역시 이곳 산서 태원 사람들은 이제 꽤 알아보는 편이다.

하지만 기분이 좋진 않다.

살짝 긴장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양아치를 데리고 왔다.

즉결 심판할 죄를 저질렀으나, 놈은 누가 뭐래도 신창양가의 삼공자다.

그래서 이렇게 철저하게 준비한 것이기도 하고.

끝까지 계획대로 움직여야 한다.

신창양가와 태원 사대무문은 이미 신창양가 앞 대광장에 도착해, 사람들의 치하를 마음껏 누리고 있던 중이었다.

우리가 돌아왔다는 소식에, 아니 양아치가 돌아왔다는 소식에 신창양가의 가주 양북달이 더없이 뿌듯한 눈으로 우리를 보고 있었다.

하지만 이내, 그 얼굴이 서서히 어둡게 변해 가기 시작했다.

양아치의 얼굴이.

양아치의 분위기가.

하늘이 무너진 것처럼 처참하고, 극도의 공포에 휩싸여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부들부들 떨고 있음을 보았기 때문이다.

-천 형.

-앗, 네.

땅이 흔들릴 것 같은 우레와 같은 함성 속에서도, 천무휘는 또 넋을 잃은 얼굴을 했다.

요즘 그 현상이 더 잦아지고 있다.

내가 전음을 보내자,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천무휘가 앞으로 나섰다.

이미 신창양가와 사대무문 측에서도, 무언가 잘못됐음을 느끼고 긴장감이 맴돌고 있었다.

“죄인은!”

천무휘가 목소리에 내공까지 실어 외치자, 엄청났던 군중들의 함성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꿇어라!”

천무휘의 말이 끝나자마자, 의제가 양아치의 무릎 뒤쪽을 발로 찼고, 곧 양아치는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무엇을 하는 짓이냐!”

곧바로 신창양가의 가주 양북달이 대노하여 고함을 쳤다.

천무휘는 그런 양북달을 상대하지 않았다.

뒤를 돌아 나를 보았고, 천무휘가 내 자리로, 내가 천무휘가 있던 자리로 나섰다.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쏠렸다.

“근 몇 년 사이 벌어졌던 수많은 연쇄살인과 세 개 마을의 학살 사건. 오늘 우리가 그 흉수를 잡아 왔소.”

“네 이놈! 그런데 어찌하여 내 아들을 무릎 꿇리는 것이더냐!”

신창양가의 무사들, 사대무문의 인사들, 또 수만 명에 달하는 군중들까지.

극도의 혼란함을 느끼고 있음이 고스란히 내 기감에 잡혔다.

하지만 나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양북달을 향해 말했다.

“그건 당신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 않소?”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것이냐! 세 개 마을을 학살한 흉수는 언갈이란 자로, 무림맹에서 현재 쫓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왜 아무런 죄도 없는 내 아들을…….”

“갈!”

사 갑자의 내공.

그 내공을 실어 사자후를 터뜨렸다.

공(攻)이나 파(破)의 기운이 아닌, 정신을 깨우치는 성(醒)의 기운을 담은 사자후였다.

내 엄청난 사자후에, 그 내공이 가까스로 일 갑자 언저리에 머물던 양북달이 놀라 순간 사색이 되고 말았다.

“이미 모든 죄를 양아치가 자백하였다. 그런데도 이를 숨기려 할 참이더냐! 정녕 하늘이 무섭지 않다는 말이냐!”

내 말이 끝남과 동시에 대명장의 장주 방백이 나섰다.

“대명장의 방백입니다. 삼공자가 모두 실토하였습니다. 자신이 죄를 저질렀고, 신창양가와 무림맹 산서 지부에서 음모를 꾸며 그 죄를 숨겨주었고, 언갈이란 자에게 누명을 씌웠다는 것까지 제 귀로 똑똑히 들었습니다.”

또 다른 자가 나섰다.

“개방 산서 분타주 오올개이올시다. 마 도사와 방 장주의 말은 모두 사실이오, 양 가주. 나 오올개 또한 이 사실을 모두 직접 들었소.”

“하오문에서 왔습니다. 저 또한 똑똑히 들었습니다.”

방백의 지인들까지 나서서 이를 모두 증언하였다.

그러자 양북달의 흰 수염이 부들부들 떨렸다.

분노와 당혹함에 어찌할 줄 모르고, 그저 부들부들 떨기만 하는 모습이었다.

수만 명에 달하는 군중들도, 침 넘기는 소리마저 죽여 가며 상황을 주시 중이었다.

상당한 사람들은 슬금슬금 자리를 피하기 시작했다.

일촉즉발의 상황.

큰 싸움, 엄청난 살육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기에 그리 움직이는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네 이놈들! 감히 천하의 신창양가 앞마당에서, 우리에게 죄를 덮어씌우려 하다니! 정년 네놈들이 살기를 포기한 모양이구나! 여봐라! 당장 저놈들을 포위하여라! 반항하는 놈들은 즉각 죽여라!”

“넵!”

신창양가의 무인들.

일천을 훌쩍 넘겨 거의 이천에 달하는 숫자다.

정식 무력대만 일곱 개요, 무력단과 자잘한 조직까지 합하면 수십이나 된다.

태원 사대무문은 상황을 주시하며 빠르게 뒤로 몸을 뺐다.

세 개 마을 학살과 무관하여 저리 움직이는 것일 테다.

곧, 신창양가의 무인들이 우리를 완전히 포위하고, 또 공격을 감행하려던 그때!

쿠르르르르르릉.

땅의 진동이 느껴졌다.

자리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 진동의 근원지로 시선을 돌렸다.

저 멀리, 오백여 기에 달하는 말들이 이곳을 향해 빠르게 달려오고 있었다.

선두에는 커다란 깃발 여러 개가 펄럭이고 있었는데, 그곳에는 이런 글들이 적혀 있었다.

‘무림맹 화산장로 청운도인 이석계’

‘무림맹 자하검무대’

‘무림맹 매화복마대’

화산파에서 무림맹으로 파견한 도사.

무림맹의 화산장로(華山長老) 청운도인(靑雲道人) 이석계가 무림맹의 자하검무대와 매화복마대를 이끌고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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