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화
“당, 당, 당…….”
어린 시절의 내가 밤마다 측간에서 응가를 볼 때면 사부가 불러 주던 그 노래.
“뭐 하는 겁니까?”
영채심이 인상을 찌푸린다.
자신이 무슨 구경거리라도 되어 버렸다는 듯, 기분 나쁨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영채심만이 아니다.
신창양가의 몇몇 핵심 인사들이 대놓고 혀까지 차며 내 노래와 춤사위에 불만을 표했다.
하지만.
“당, 당, 당다다다당당당…….”
내 노래와 춤은 계속 이어졌다.
영채심을 중심에 두고, 계속 그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노래와 춤을 췄다.
‘사부님, 이게 맞는 건가요?’
나도 모른다.
그래서 마음으로 사부를 떠올렸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만…… 끄으으으윽. 그만!”
영채심의 얼굴이 붉게 변하는가 싶더니, 이내 고통에 괴로워하기 시작했다.
“그만하라고 나쁜 냄새가 나는 어린 도사야. 약속을 어기면…… 끄으으으윽. 다 죽인다, 끄으으으윽.”
영채심의 목소리가 아니다.
어느새 악귀에서나 볼법한 사이한 기운을 풍기며, 그가 소름 돋는 쇳소리로 그리 말했다.
“어멋!”
“헉! 뭐, 뭐야? 저 인간 왜 저래?”
갑작스레 변해 버린 영채심의 분위기와 목소리에, 조금 전까지 나를 못마땅해하던 자들이 모두 크게 놀라 버리고 말았다.
“당다다당 당당당당당…….”
내 노래와 춤은 계속, 또 계속 이어졌고.
더 강하게, 더 빠르게!
모두는 그렇게 숨죽여 나와 영채심을 지켜보았다.
“끄아아아아악! 그만! 그만하라고! 난! 이 땅 위의 모든 여자를 차지하고 말 거야! 난! 그래야 해! 끄아아아아아악! 죽인다! 죽인다, 기분 나쁜 냄새의 어린 도사! 끄으으으으으윽.”
영채심의 상태는 점점 더 심각해졌고, 그 목소리는 더더욱 괴이해졌다.
신창양가의 몇몇 고수가 그런 영채심의 목을 베려 했으나, 역시나 가주 양북달이 손을 들어 이를 제지했다.
“당당당. 당다다다당 당당당당. 다다다다다다다다다당! 가라, 지옥으로!”
“끄아아아아악!”
마지막 괴성, 비명, 절규.
영채심을 중심으로 한기를 머금은 바람이 소용돌이쳤고.
이내 툭!
그가 혼절하여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요괴경으로 확인까지 했다.
귀신은 사라졌다.
“끝났습니다. 귀신은 지옥으로 보냈습니다.”
한바탕의 난리.
이어진 정적.
아무도 입을 뻥끗하지 못했다.
그저 놀람만이 가득한 눈으로 쓰러져 혼절한 영채심과 나를 볼 뿐이었다.
“형, 형님! 역시 형님이십니다! 하하하! 아버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우리 형님이 일백 년 전 천하제일인이셨던 현화검존의 직계 태사손이라고요! 하하하하!”
어린 시절 내가 밤에 응가를 보기 위해 측간을 가면 불러 주던 그 노래에는 멸귀(滅鬼)의 힘이 담겨 있었다.
아주 우연히, 술사의 몸에 빙의한 귀신을 어찌 쫓을까 계속된 고민을 하던 중, 나도 모르게 그 어린 시절의 노래를 흥얼거렸었다.
그때 우연히 느끼게 된 것이다.
멸귀의 힘을.
아! 나도 이제 진짜 도사가 된 기분이다.
한낱 잡귀에 불과하지만 귀신은 귀신 아니겠는가?
귀신을 제대로 지옥에 보내 버렸다.
대마두가 되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지에 덕지인데, 제법 영웅으로 이름이 알려지는 것으로도 모자라, 이젠 진짜 귀신까지 쫓는 도사가 되다니.
그야말로 감개무량이 따로 없다.
앞으로 도 닦는 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겠다.
무공은 수련해도 늘지 않지만, 확실히 도력(道力)은 느는 게 맞나 보다.
사부님, 고맙습니다.
그날 이후 많은 것이 변했다.
어디 천무휘만큼이야 되겠냐마는, 지금껏 나를 천무휘 똘마니 정도로 생각하던 신창양가 이들의 눈빛과 말투, 행동, 모든 것이 바뀌었다.
나를 대할 때면 언제나 극진한 존중과 예가 그들의 몸에 가득 배어 있었다.
* * *
신창양가 오 일째.
대부분 수확이 별로 좋지 못하다.
주변 악적들의 씨가 말라 버렸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신창양가와 태원 사대무문은 고수들을 따로 편성해 원정까지 보낸 상태였다.
하지만 양아치는 달랐다.
매일 유명한 마두를 꼭 한 놈 이상씩 잡아 많은 이들의 찬사를 받고 있었다.
우리 의제랑 한해북이 이것 때문에 정말 고생 많았다.
양아치한테 받은 삼천년하오수는 두 녀석에게 나눠 줘야겠다.
-마 형.
엇?
천무휘가 내게 전음을 보냈다.
막 삼천년하오수를 의제와 한해북에게 주겠다는 생각을 했을 때, 공교롭게 천무휘 녀석이 나를 부른 것이다.
뭐지?
이 녀석, 내 생각까지 읽는 거야?
자기도 삼천년하오수 먹고 싶단 건가?
-오늘 밤 대명장에 함께 가셔야겠습니다.
-대명장요? 왜요? 설마……?
-네. 지금 생각하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젊은 부부와 삼남매 아이들이 입을 열었습니다.
드디어 그날의 진상을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 * *
대명장의 내원 깊은 곳, 야심한 밤.
그날 나와 천무휘 그리고 대명장의 장주 방백은, 목격자인 젊은 부부와 어린 삼남매의 입을 통해 두 번째와 세 번째 마을 학살에 관한 이야기를 생생히 들을 수 있었다.
무림이란 세계에서 살고 있는 우리에게조차 너무나 끔찍한 이야기였다.
그 죄가 너무 무겁다.
그리고, 죄를 지었으면 죗값을 받아야 한다.
그 죄인에게, 하늘을 대신해 벌을 내려야 할 시간이다.
* * *
“양아치! 그쪽으로 간다! 잡아!”
“넵!”
타타타타타탓.
쉬이이이이이익.
퍼퍼퍼퍼퍼퍼퍽!
“끄아아악!”
나에게 치명상을 입고 도주하던 마두.
숨어 있던 양아치가 갑작스레 튀어나와 양가창법의 절초 중 하나인 오연벽창을 시전하자, 곧바로 몸통에 다섯 군데의 구멍이 뚫려 즉사하고 말았다.
“헉헉헉, 형님……. 헉헉, 또 잡았어요, 하하하. 오늘만 세 놈째예요.”
그렇다.
마두 사냥 육 일째.
오늘 양아치가 목을 벤 마두는 무려 세 명이나 된다.
강도살인마, 인신매매범, 그리고 유아 납치 살해를 저지른 나쁜 놈들이다.
“다시 움직인다.”
“오늘은 이만해도 되지 않을까요, 형님?”
“천 형이 유명한 마두 무리의 흔적을 찾았다. 스무 명이 넘는다고 한다. 우리는 빠르게 움직여 천 형을 도와 놈들을 주살한다.”
“넵!”
상당히 지친 양아치였지만, 마두를 잡는다는 말에.
아니, 누군가를 죽일 수 있다는 말에 양아치가 입꼬리를 귀에 걸고 내 뒤를 바싹 쫓았다.
* * *
천무휘, 의제, 한해북과 약속한 장소.
그곳에 도착했다.
양아치는 현장을 보자마자 화들짝 놀란 얼굴을 해 댔다.
어찌 아니겠는가?
스물여섯 명의 악적 중 이미 열한 명은 온몸이 갈기갈기 찢겨 끔찍한 몰골로 죽어 있었고, 나머지 스물다섯의 악적들은 모두 무릎을 꿇고 손목이 묶인 상태로 하얗게 질려 덜덜 떨고 있었다.
그리고 천무휘와 의제, 한해북.
세 녀석은 무슨 광기에라도 씌운 것처럼 희번덕거리는 웃음을 짓고 있었다.
온몸에는 피 칠갑을 한 상태로, 무언가 미친 사람들처럼 그렇게 웃으며 즐기고 있는 것이다.
“형님, 오셨소? 형님 몫도 남겨 놨으니, 큭큭큭. 마음껏 즐기시오.”
의제가 광기 어린 얼굴로 내게 그리 말했고.
나는 슬쩍 뒤에 있는 양아치를 살피는 척하며 의제를 눈빛으로 꾸짖었다.
“저 녀석이 신창양가의 삼공자라는 놈이오?”
“어험. 의제, 말을 가려 해라.”
내가 짐짓 의제의 무례함을 꾸짖자, 양아치가 서둘러 나섰다.
“아닙니다, 형님. 형님의 의제이신데, 형님으로 모시고 싶습니다. 반갑습니다, 우각도협 곽 형님! 구절협 한 형님! 인사드립니다. 신창양가의 양아치라고 합니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래, 그래, 하하. 녀석 인사성 한번 밝군.”
의제가 호탕하게 인사를 받아 줬고.
한해북은 날카로운 눈빛과 함께 고개를 살짝 끄덕일 뿐이었다.
두 녀석의 소문이 원래 그렇게 났다.
의제는 호탕한 사나이, 한해북은 철두철미하며 다재다능한 인재라고.
들었던 소문과 같은 그런 두 사람의 모습에, 양아치의 얼굴이 더욱 밝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쉬이이익.
“끄아아아악! 제발 살려…… 끄으으윽. 제발 그냥 죽여 주십시오, 천무휘 대협.”
슈우우우욱.
악적의 잘린 팔에서 피 분수가 뿜어져 나왔다.
천무휘는 이를 피할 생각조차 하지 않고, 그 피를 온몸으로 맞으며 제대로 느끼고 있었다.
“제발…… 끄으윽. 죽여라. 모든 죄를 실토했으니. 어서…… 지옥으로 가 죗값을 받을 수 있게…… 해 주세요, 제발. 엉엉엉.”
악적의 몰골은 끔찍했다.
이미 양쪽 발목이 잘린 상태였고, 거기에 팔 하나가 더 잘린 악적이다.
하지만 천무휘는 웃었다.
웃으며 그리 말했다.
“네 죗값 따위는 상관없어. 그냥 날 즐겁게 해 줘, 큭큭큭.”
쉬이이익.
샤악!
툭.
남은 팔 하나가 또 잘렸고.
“끄아아아아악!”
악적은 다시 비명을 질러 댔다.
“헤헤, 천 형 혼자 즐기게 할 순 없지. 나도, 나도. 하하하!”
의제가 희번덕거리는 눈으로 다른 악적에게 다가갔고, 한해북 역시 살기가 가득 담긴 미소를 지으며 또 다른 악적에게 다가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양아치.
어느새 내 곁에 바싹 다가와, 경악한 얼굴로 속삭이듯 말했다.
“형님, 너무…… 너무 잔인한 거 아닌가요? 아무리 마두들이라고 해도…….”
“이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의 살심을 다 풀 수가…… 어험. 어험! 그게 아니라, 저 마두들에게 당해 억울하게 죽은 피해자들을 위해 대신 복수하는 것이다.”
“그래도, 저렇게까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양아치는 세 녀석의 잔혹한 고문, 살육 행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심지어, 이놈의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가 실제 내 귀에까지 전해지고 있었다.
흥분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꽤 오랜 시간 이를 지켜보던 양아치가, 여전히 시선을 살육 현장에서 떼지 않은 채 다시 입을 열었다.
무언가 확신을 하고, 각오를 다진 얼굴이었다.
“누가 보면, 살인을 즐기고 있다고 착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새끼.
지금 나를 시험하고 있다.
우리 세 녀석이 살인을 즐기고 있음을 확신하여 내게 저리 말하는 것이다.
“야, 양아치.”
“넵! 형님. 죄송합니다. 제가 엉뚱한 소리를…….”
“아니야. 됐어. 네 눈에 진정성이 보여. 솔직히 말해 주지.”
“……?”
“겸사겸사야. 아니, 큭큭큭. 우리는…… 즐기는 거 맞아. 사람이 태어날 때 갖고 태어나는 욕구와 본능이란 건, 사람마다 다른 거거든.”
“살…… 살인을 말씀이십니까?”
난 대꾸 대신 방긋 웃어 보였다.
그러자 놈은 화등잔만 해진 눈을 뜨더니, 다시 침까지 크게 꼴깍 삼키고 말을 이었다.
“그래도…… 마두들만으로는 다 채워지지 않을 텐데요?”
엄청나게 조심스럽게, 나에게 은밀히 말하는 양아치.
사실 이때 내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정확히 무얼 말하는 것인지 몰랐는데, 그냥 본능적으로 심장이 내려앉을 정도로 놀라고 두려운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태연하게,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그렇게 놈을 향해 말했다.
“너무 깊이 알면 다친다. 그냥 적당히 그런 줄만 알고 있어.”
“형님.”
놈의 눈에도 광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그 광기와 이글거리는 눈빛이 놈의 눈에서 보였다.
“궁금합니다, 형님. 알려 주십시오. 저 마두들로는 도저히 채워지지 않는 욕구는 어떻게 해소하십니까? 어린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듣고 싶은 건, 여인들의 비명을 듣고 싶을 때, 살려달라는 사람들의 울부짖음이 보고 싶은 욕구. 이거는…… 이런 욕구는 어떻게 해결하십니까?”
혹시나 했는데.
실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 이러한 인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나는 너무 놀라 그 자리에 주저앉을 뻔했다.
이 새끼.
양아치 이 새끼는, 진짜다.
진짜 살인을 즐기기 위해 태어난 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