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마두가 된 이유-125화 (125/245)

125화

“빙신사파 빙신사파, 깨어나 이곳으로 와 주십시…….”

주문을 외운 지 일 각.

갑자기 뒷머리가 쭈뼛 섰다.

나만 그런 게 아니다.

천무휘도 동시에 놀란 눈을 떠 나를 보았다.

꿀꺽.

침부터 삼키고.

“빙신사파 빙신사파, 이곳에 와 계십니까? 맞으면 옳을 시(是) 자에 아니면 아닐 비(非)로 붓을 움직여 주십시오.”

긴장한 목소리로 이 말을 뱉었는데.

글쎄 붓이…… 붓이 저절로!

움직이기는 개뿔.

“천 형, 손에 힘 빼요.”

“앗! 네. 죄송합니다.”

천무휘가 나보다 더 귀신을 무서워하나 보다.

다시.

“빙신사파, 빙신사파. 이곳에 와 계시면 붓을 옳을 시 자로 움직여 주십…….”

-끌끌끌, 뭐 하냐 너희?

귀신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말을 할 줄 아느냐?”

-끌끌끌, 네놈들 장난치는 거 아까부터 계속 보고 있잖아.

천무휘가 다시금 화들짝 놀란 눈으로 날 쳐다봤다.

내가 눈빛으로 이상함을 느꼈는지 물었지만, 천무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 소리가 나에게만 들리나 보다.

다시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서둘러 요괴경을 꺼냈다.

그것으로 내 주변을 스윽 훑었는데, 헉!

있다.

영채심의 몸 밖으로 나온 귀신이, 나와 천무휘 사이에 서서 기괴한 웃음을 짓고 있다.

“궁금한 게 있다. 답하라.”

-끌끌끌, 내가 왜?

“넌 무엇 때문에 이곳에 머물러 있는 것이냐?”

-끌끌끌, 아름다운 여인은 다 내 것이다.

미친 귀신 놈.

대답 안 할 것처럼 하더니, 순순히 말을 해 준다.

영문을 모르는 천무휘는 여전히 나를 귀신 보듯 그리 보고 있고.

“양아치 때문에 이곳에 있는 게 아니냐?”

-끌끌끌, 내가 탐하는 여인의 남편? 난 그놈에겐 관심이 없다. 난 여자만 좋다.

“양아치에게 죽임을 당해 원한으로 이승에 머물고 있는 귀신이 아니었나?”

-끌끌끌, 난 여자에게 버림받아 죽었다. 여자. 여자. 여자.

미친 귀신 맞다.

그냥 잡귀였다.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영채심을 보았다.

한심하기 짝이 없다.

명색이 술사라는 놈이, 잡귀 따위에게 먹혀 버리고 말다니.

그나저나 못 봤다면 모를까, 봤으면 이 귀신을 없애야 할 텐데.

“야.”

-끌끌끌, 아무도 날 방해하지 못해. 너에게서 안 좋은 냄새가 나. 경고하려고 나왔다. 날 방해하면, 너 죽는다. 네 몸을 먹어 버릴 거야. 방해하지 마. 난 여자들에게 복수해야 해. 예쁜 여자는 모두 괴롭혀 줄 거야.

“알았어. 나도 귀신 없애는 그런 거 할 줄 몰라. 그러니 내 몸은 탐하지 말아 줘. 우리 서로 모르는 척하기다.”

-끌끌끌, 나쁜 냄새가 나는 어린 도사가, 귀신 말귀는 알아듣는군. 방해하지 마. 그러면 나도 널 건드리지 않을 거야. 저 여자는 내 거야.

“응, 너 가져. 난 관심 없으니까.”

-끌끌끌, 나쁜 냄새 나는 도사야. 잘 가라. 다신 내 눈앞에 띄지 마라. 안 그러면 먹는다.

“알았어. 나도 너 못 봤고, 너도 나 모르는 거야. 잘 가, 귀신아.”

-끌끌끌. 끌끌끌. 끌끌……

요괴경을 통해 본 귀신이 영채심의 몸속으로 들어갔다.

“천 형, 가요.”

“네? 네. 네. 네…….”

천무휘가 사색이 된 얼굴로 덜덜 떨며 내 팔짱까지 끼고는 방을 나섰다.

* * *

다음 날 아침.

“마, 마 형.”

천무휘가 퀭한 눈으로 날 불렀다.

“마 형, 아무래도 어제 마 형이 봤던 그 귀신이 저한테 씌운 것 같아요.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고, 피곤이 전신을 지배하고 있어요.”

와! 우리 천무휘.

수룡검 천무휘 말이다.

이 녀석 귀신 진짜 무서워하네.

어젯밤에도 우리 전각으로 돌아오자마자, 빙신사파 주술할 때 썼던 종이며 붓이며 죄다 불에 태워 버렸다.

빙신사파 귀신소환술 때문에 귀신이 나온 게 아니라고 몇 번이고 설명했지만, 천무휘는 전혀 듣지 않았다.

진짜 무서워하나 보다.

“잠, 잤어요?”

내 물음에 고개를 가로젓는다.

“밤새 귀신 생각했죠?”

이번엔 고개를 마구 끄덕인다.

“헛것이 보일락 말락, 창밖에 부는 바람 소리도 귀신의 울음소리 같고 그렇죠?”

더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천무휘다.

“운기조식 안 했죠?”

“이불 밖으로 손가락 하나 뺄 수 없었어요. 무서워서요.”

“쫄보라서 그래요.”

“네?”

“큭큭큭큭. 아나! 천 형! 어제 말했잖아요. 어제 본 그 귀신, 남자한테는 관심 없다고. 아무리 천 형이 잘생겼어도, 어제 나랑 대화하는 내내 그 귀신은 천 형한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어요.”

“그, 그래요?”

“네. 어제도 말했어요. 그냥, 천 형이 지금 너무 무서워서 그런 거예요. 어서 들어가서 짧게라도 운기조식하고 나와요. 오늘도 밖에 엄청난 인파가 몰린 것 같은데, 그 얼굴로 나갈 수는 없잖아요.”

“네. 네, 그러죠. 그런데…… 마 형.”

“네. 왜요?”

“저…… 운기조식할 동안, 옆에서 노래 좀…….”

아나!

수룡검, 그 별호 그냥 내다 버려라.

결국 난 천무휘가 운기조식을 할 동안, 그 옆에 서서 사부가 내게 불러 주던 그 노래를 한참이나 불렀다.

간단한 가사에, 여느 동네의 아이들이라도 흔히 부르는 음율이었기에, 과거의 기억이 없는 나도 쉬이 부를 수 있었다.

한 식경 만에 운기조식을 마친 천무휘는, 원래의 그 멋지고 잘생긴 수룡검이 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내가 노래에 소질이 좀 있는 것 같다.

* * *

“천무휘 대협 만세!”

“수룡검 만세! 만세! 만세!”

“와아아아아아!”

마두 사냥 이틀째.

첫날보다 더 많은 인파가 몰렸다.

그리고 그날 밤.

신창양가는 물론, 태원 사대무문의 성과도 첫날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했다.

첫날 좀도둑 세 명을 잡는 초라한 성과를 거두었던 태연세가는 작정이라도 한 듯, 세가의 무인 전원을 이끌고 호맥산을 올랐다.

세가의 무인 스물한 명이 죽고, 여든 명 이상이 크게 다치는 희생을 치렀다.

하지만 그들은 호맥채라는 녹림의 산채를 송두리째 쓸어버렸다.

실로 어마어마한 성과가 아닐 수 없었다.

산검문의 문주는 자신의 딸을 미끼로까지 써 가며 색마를 잡았다.

무림맹 마두 명부에 정식으로 이름을 올린 진짜 마두는 아니었지만, 태원에서는 삼 년 동안 잡히지 않았던 유명한 색마라 하였다.

목문은 십산마적단을 잡았고, 차렵방은 첫날의 두 배인 흑도 왈패 여든 명을 생포하였다.

신창양가는 극독을 암거래하던 암상을 습격하여, 스물아홉 명을 죽이고 오십여 명을 생포하였다.

이들이 돌아오자, 어마어마한 성과에 수만 명에 달하는 군중들은 땅이 흔들릴 정도로 환호하며 치하하였다.

그리고 그때.

피칠갑을 한 사내 한 명이, 오른손에는 단창을 들고 왼손으로는 시체 한 구를 질질 끌고 왔다.

끔찍한 몰골과 또 보기만 해도 모골이 송연해지는 모습에, 지축을 흔들 것 같던 함성마저 순간 거짓말처럼 가라앉았다.

어마어마한 인파가 몰린 상황 속 찾아온 고요.

사내는 무표정한 얼굴로, 죽은 자와 자신의 피를 뚝뚝 흘리면서 그렇게 인파의 중심을 천천히 걸어갔다.

자신들의 성과에 만족하며, 사람들의 환호와 치하를 마음껏 누리고 있던 신창양가와 태원 사대무문의 수장들 역시 놀란 눈을 뜨고는 그 사내에게 집중하였다.

그리고 그 사내가, 신창양가의 가주 양북달 앞에 도착했다.

툭.

땅바닥에 축 늘어진 시체를 던져 버린 사내.

그가 곧 양북달을 향해 입을 열었다.

“다녀왔습니다, 가주님.”

양아치다.

“저…… 저 시체는 분명…….”

“맞다. 무림맹에서 무림공적으로 선포한 혈철마관(血鐵魔觀) 육시경이다!”

빼곡히 몰린 군중들 사이 누군가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

그 말 한마디는 수만 명에 달하는 모두를 충격에 몰아넣고 말았다.

혈철마관 육시경.

전국구의 유명한 마두다.

일부에서는 그를 대마두라 분류하기도 하다.

민간인 삼백 명을 죽이고, 무림맹 추격대 마흔 명을 죽였다고 알려진 육십팔 세의 무지막지한 노마두가 바로 혈철마관 육시경이다.

그걸, 양아치가 죽여 잡아 온 것이다.

“아, 아들아…… 괜찮느냐?”

툭.

양아치는 대답하지 못하고 쓰러졌다.

혼절해 버린 것이다.

“의관! 의관! 어서 셋째의 상태를 살펴라!”

신창양가 소속의 의원이 셋이나 황망하게 달려와 양아치의 상태를 빠르게 살폈다.

모두가 숨죽여 그 상황을 지켜보았고.

이내, 가장 노회한 의원이 양북달에게 말했다.

“내공이 고갈되어 잠시 혼절한 상태입니다. 자상이 몇 군데 있지만, 생명에 지장을 줄만큼의 치명상은 아닙니다. 제가 책임지고 내일까지 움직일 수 있게 치료하겠습니다. 삼공자께서는…… 살아 당당하게 모두의 찬사를 듣게 될 것입니다.”

의원의 말이 끝나자.

신창양가 측 무인들 사이의 누군가가 먼저 함성을 질렀다.

“와아아아아아!”

또 다른 이도 외쳤다.

“삼공자 만세!”

외침은 곧 전염병같이 빠르게 모두에게 번지고 말았다.

“와아아아아!”

“신창양가 삼공자 만세!”

“산서의 영웅이다!”

“신창양가에서 용이 태어났다!”

수만 명에 달하는 군중들이 일제히 우레와 같은 함성을 지르며 양아치를 찬양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양아치, 이 새끼.

-형님! 감사합니다. 이 은혜, 정말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응, 그렇다.

내가 시켜서 저리한 것이다.

극적인 효과를 보게 해 주겠다고 하니, 아주 기가 막힌 연기를 저리했다.

허락하지도 않은 형님 소리까지 하며 말이다.

* * *

다음 날 아침.

“형님, 천 대협! 저 왔습니다. 이것 좀 드셔 보십시오. 아버지께서 특별히 제게 주신 영약인데, 어찌 이 귀한 걸 저 혼자 꿀꺽하겠습니까? 하하하. 형님과 천 대협께서 드시죠, 하하!”

삼천 년은 족히 되어 보이는 하오수 한 뿌리.

녀석이 그것을 신줏단지 모시듯 조심스레 들고 와 아침나절부터 저리 웃고 있다.

아주 좋아 죽는다.

녀석에게 지금 삼천년하오수 따위가 문제겠는가?

이대로 며칠만 지나도, 개망나니 삼공자가 신창양가의 소가주가 될 판인데 말이다.

그걸 넘어 산서의 영웅이고, 또 중원의 대협객이라 불릴 테다.

삼천년하오수가 아니라, 영혼이라도 내게 바칠 기세다.

“난 됐고. 넌?”

“저는 의원이 처방한 약을 먹었더니 힘이 철철 넘칩니다. 그러지 마시고, 헤헤헤. 형님 몸보신 좀 하시죠, 하하.”

이젠 아주 자연스레 나를 형님이라 부른다.

더 웃긴 건, 이젠 내가 아니라 천무휘가 투명 인간이 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거 정말 내가 가져도 돼?”

“물론입니다, 형님. 헤헤헤.”

어제, 혈철마관 육시경을 상대할 때.

양아치는 정확히 마흔네 번 죽을 뻔했다.

그때마다 내가 구했고, 육시경에게 죽지 않을 만큼의 상처를 계속 남겼다.

양아치에게 놈을 양보한 것이다.

양아치도 이를 정확히 알고 있다.

아니, 어쩌면 자신이 운이 좋아서 그랬다고 착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다 잡은 육시경을, 자신의 운이 좋아 마지막 숨통을 끊게 되었고, 그래서 그 영광을 모두 자신이 독차지하게 됐다고 말이다.

상관없다.

운이건 아니건, 놈은 지금 나를 거의 일생일대의 기연이며 은인으로 받들고 있으니 말이다.

“그럼 이거 내 마음대로 처분한다.”

“물론입니다.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 형님.”

“그래. 삼등분해서 천 형이랑, 한 형이랑, 의제 나눠줘야지.”

“넵, 헤헤헤.”

아주 입이 찢어져서 다물어질 줄 모르는 양아치다.

오늘은 또 어떤 마두를 잡게 될지.

그래서 또 얼마나 큰 영광을 누리게 될지.

그 기대가 얼마나 큰지, 양아치의 눈에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하지만 아니다.

너만 그리해서는 안 된다.

신창양가의 모두가, 날 믿게 만들어야 한다.

“양 공자.”

“네, 형님!”

“오늘 태원 사대무문은 먼저 마두 사냥에 나서라 하고, 신창양가의 가주님을 비롯한 가주님의 최측근 그리고 직계 혈통들을 모두 모시도록 해.”

“네? 오늘은 마두 안 잡습니까?”

“잡아. 잡는데, 그 전에 할 일이 있어.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고, 집 내부의 적부터 잡아야 바깥의 일도 잘할 수 있는 법이거든.”

양아치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한다.

“일단 시키는 대로 해. 그리고 술사 영채심, 그자도 꼭 불러. 알았지?”

“네. 넵! 명에 따르겠습니다, 형님!”

* * *

신창전에 내가 말했던 이들이 모두 모였다.

일 각도 안 되어 한 명도 빠짐없이 모인 것이다.

가주가 불렀어도, 이렇게 빠르게 모두가 모이기는 힘들 터.

다른 이도 아닌, 지금 산서의 영웅으로 떠오르는 양아치의 말이었기에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모두가 이렇게 빠르게 모이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곧, 나와 천무휘가 모습을 드러냈다.

멍한 얼굴을 한 천무휘를 뒤로 하고 내가 앞으로 나서자, 몇몇 인사들은 얼굴을 슬쩍 찌푸리며 못마땅하다는 기색을 내비치기도 했다.

자신들을 부른 게 양아치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 것을 알았고.

그래도 천무휘가 모이라 했으면 어느 정도 이해하려고 했는데, 그도 아닌 내가 나선 것에 기분이 안 좋았던 것이다.

괜찮다.

곧 그 찌푸린 얼굴은 놀람으로 바뀌게 될 테니 말이다.

“영채심 술사.”

“네? 저, 저요?”

스무여 명의 모인 사람 중 가장 말석에서 눈치를 보며 서 있던 영채심.

내 부름에 화들짝 놀란 얼굴을 했다.

“이리 중앙으로 나오시오.”

쭈뼛쭈뼛.

자리에 있는 이들은 모두 신창양가의 직계 혈육이거나 그 부인, 그리고 핵심 인사들이다.

영채심이 잔뜩 얼어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 나와 영채심을 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점점 안 좋게 변하고 있었다.

됐다.

이제 시작이다.

“가만히 계시기만 하면 됩니다, 영 술사.”

“무, 무엇을 하시려고……?”

“그냥 가만히 계시오. 잠시면 됩니다.”

“네, 네.”

영채심은 사람들의 눈치를 사정없이 살피며 그렇게 뻘쭘하게 서 있고, 사람들이 점점 더 인상을 구기고 있을 때.

그때 내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살짝 춤사위까지 더해 부르는 노래다.

“당. 당. 당.”

당이라는 소리에, 몇몇 인사들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려고 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을 가주 양북달이 손을 들어 제지했다.

내 노래와 춤사위는 계속 이어졌다.

“당. 당. 당다라당당 당당당. 사람은 사람 속에 살고, 당당당. 신선들은 선계에 살고, 당당당. 나쁜 귀신은 지옥으로 떨어져라, 당당당. 당. 당. 당다라당당 당당당. 사람은 사람 속에 살고, 당당당. 신선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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