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화
우리가 방 안에 들어갔을 때, 그곳에는 양아치 부인 외에도 외간 남자가 한 명 더 있었다.
아침에 보았던 그 술사다.
“반갑습니다, 천 대협. 저는 요괴를 잡고 귀신을 쫓는 술사 영채심이라고 합니다, 하하.”
이 녀석도 내가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그나저나, 내가 보기에는 너무 멀쩡한데?
저 간사해 보이는 술사가 정말 귀신을 쫓아서 그런가?
양아치의 부인은 젊고 제법 미인이라 불릴 만했으며, 또 건강해 보였다.
부끄러움을 많이 타고 예의범절에 밝은, 그냥 딱 양갓집의 규수였다.
“영 술사님, 제 부인의 상태를 볼 분은 천 대협이 아니라 여기 마 도사님이십니다. 일백 년 전 천하제일인이셨던 현화검존의 후예이십니다.”
“아이쿠! 마 도사님. 저는 작은 술법을 조금 다룰 줄 아는 영채심이라고 합니다. 굳이 마 도사님까지 오지 않으셔도, 빙의된 혼령을 거의 다 쫓아내려는 상태였는데, 괜한 걸음을 하신 것 같습니다, 하하.”
사기꾼인가?
의복만 술사의 복장을 하고 있지, 그냥 누가 봐도 간신배고 사기꾼처럼 보였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직 혼령이 양 소협 부인의 몸에 들어 있다는 말인가요?”
“네. 아직 머물고 있지만, 제가 제대로 술법을 부린 덕분에 이제는 힘을 거의 쓰지 못하고 있습니다. 보십시오. 부인께서 매우 건강해 보이지 않습니까?”
“제가 확인을 좀 해 봐도 되겠습니까?”
영채심이라는 술사가 아닌, 양아치의 부인에게 물었다.
대답은 부인이 아닌 양아치에게서 나왔다.
“얼마든지 확인하십시오. 저희는 물러나 있겠습니다. 자, 다들 나가시죠.”
내가 뭐라 말을 하기도 전, 양아치가 천무휘와 영채심을 데리고 방 밖으로 나가버렸다.
뭐 이런 황당한 경우가 있나 싶었다.
아니, 이렇게 야심한 밤, 자기 부인만 있는 방에 외간 남자인 나만 남겨 두고 나가다니?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니, 너무 당황해 순간 뭘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그런데…… 허걱!
갈수록 태산이라더니!
“잠, 잠깐! 뭐 하시는 겁니까!”
내가 양아치의 부인을 향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니, 이 여자가 갑자기 옷을 벗는 게 아니겠는가?
나는 비지땀까지 쏟아 가며 놀랐고, 양아치 부인은 그런 내 반응에 어리둥절한 얼굴만 했다.
내가 울먹이기까지 하며 말을 이었다.
“아니, 왜…… 왜 멀쩡한 옷을 벗으세요?”
그러자 양아치의 부인은, 더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이리 답했다.
“원래 이렇게 하는 거 아니에요?”
“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외간 남자인 제 앞에서 옷을 벗는 게 원래 그렇다니요?”
그러자 양아치 부인도 뭔가 아차 싶었나 보다.
슬쩍 내렸던 옷을 다시 빠르게 입고는 답을 했다.
“영 술사님께서, 몸에 빙의된 귀신을 확인하거나 쫓는 술법을 할 때는 옷을 모두 벗어야 한다고 해서…….”
이런 미친!
사기꾼 맞네.
색마 사기꾼이다.
아나! 간도 크다.
신창양가에서, 그것도 가주의 셋째 아들 침실에서, 그 부인을 일 년간 농락해 왔던 거다.
개새끼.
휴우, 진정하자.
놈은 이따가 따로 처리하면 된다.
내가 온 목적부터 확인하자.
“그건…… 그럴 필요 없습니다. 그냥 가만히 계시기만 하면 됩니다, 부인. 옷, 바로 입으시고요.”
“아, 네. 죄송합니다, 도사님.”
“아닙니다. 휴우, 그럼…… 부인 몸에 다른 혼령이 들어 있는지 확인하겠습니다. 잠시면 됩니다.”
“네.”
나나 양아치 부인이나, 서로 살짝 놀랐지만 조금 진정되었다.
나는 내 품에 있던 요괴경을 꺼냈다.
그리고 그 요괴경을 통해, 양차치 부인의 모습을 확인…… 휴우, 진짜 떨리네.
“사부님, 거기 있지?”
“그래, 여기 있다. 허허허.”
“노래 계속 불러 줘. 무섭단 말야.”
“알았다, 알았어. 허허허. 당. 당. 당다라당당 당당당. 사람은 사람 속에 살고, 당당당. 신선들은 선계에 살고, 당당당. 나쁜 귀신은 지옥으로 떨어져라, 당당당. 당. 당. 당다라당당 당당당. 사람은 사람 속에 살고, 당당당. 신선들은…….”
어렸을 적 왜 그렇게 귀신이 무서웠는지 모르겠다.
사실 광천마제가 된 지금도 귀신은 무섭다.
갑자기 사부님이 보고 싶다.
밤에 응가를 싸러 측간에 가면, 항상 측간 앞에서 노래를 불러 주곤 했던 우리 사부님이었는데.
-광마일기 中
정말로 귀신이 보이면 어쩌지?
나, 귀신 무서워하는데.
두근두근.
그렇게 떨리는 심정으로 요괴경에 그녀의 몸을 비추었다.
허걱!
허거거거거거걱!
없다.
젠장!
귀신 따위가 있을 리가 없지.
영채심 술사라는 놈, 그냥 색마 사기꾼 맞네.
괜히 심력만 낭비했다.
그나저나 이 요괴경이 진짜는 맞을까?
아니다.
요괴경은 진짜가 맞다.
왜냐하면 사부가 그리 말했으니 틀림없다.
저 여자에게 귀신이 빙의되지 않은 것뿐이다.
빌어먹을 색마 사기꾼 새끼.
죗값을 톡톡히 치르게 해 주마.
* * *
잠시 후.
방 안으로 양아치와 천무휘, 그리고 영채심 술사가 들어왔다.
천무휘는 멍한 얼굴이었고, 양아치는 뭔가 들뜬 얼굴이었으며, 영채심은 여전히 간사한 빛을 띠고 있었다.
내가 귀신이 없다고 해도, 받아칠 대사를 충분히 준비하고 있기에 그 얼굴에 두려운 기색이 없는 것이리라.
이것도 문제네.
귀신의 존재를 어떻게 증명할 수도 없고.
일단, 사실부터 말을 해 줘야겠다.
“어떻습니까, 마 도사님?”
양아치가 먼저 물었다.
“저는 빙의된 혼령을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아! 그렇군요.”
아쉬움이 가득 묻어나는 양아치.
반면 영채심 술사란 놈의 얼굴에는 그 간사한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이었다.
“마 도사님을 무시하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다만, 귀신을 본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도력이 깊은 도사님이라 하여도, 전문적으로 귀신을 찾고 쫓는 술사와는 그 영역이 다르기에 쉬운 일이 아니니, 실망하지 마십시오.”
이 새끼.
빌어먹을 색마 사기꾼이 나를 위로한다.
난 품에 집어넣었던 요괴경을 꺼냈다.
그리고 그것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이것이 무엇인지 아시오? 바로 요괴경이라는 것이오. 이것으로 보면, 인간으로 둔갑을 한 요괴의 실체도 볼 수 있을뿐더러, 귀신에 빙의된 자를 비추면, 그 속에 있는 귀신의 모습까지 확인할 수 있…… 헙!”
순간, 내 숨이 넘어가는 줄 알았다.
요괴경을 들고, 이리저리 움직이며 요괴경이 어떤 것인지 설명을 이어 가던 중.
보고 말았다.
요괴경이 이리저리 흔들리다, 천무휘와 양아치 그리고 양아치 부인과 영채심 술사를 모두 비추었는데!
그때!
허거거거거걱!
요괴경으로 보인 영채심 술사 말이다.
분명, 다른 얼굴이었다.
간사한 중년의 사내가 아니라, 음흉하고 음침하기 그지없는 또 다른 사내의 얼굴이 요괴경을 통해 보였다.
진짜다!
“마 도사님? 괜찮으십니까?”
“아! 그, 그게…….”
와!
귀신을 실제로 처음 봤다.
사 갑자 내공이고 초절정의 고수고 나발이고.
귀신을 보면 보통 사람들하고 똑같이 놀라는가 보다.
내가 그랬으니 말이다.
진짜 놀랐다.
닭살이 온몸에서 돋아나고, 뒷머리가 쭈뼛 섰다.
차분하자.
진정하자.
나는 현화문의 이십사 대 제자다.
“하하, 그러니까 이게 말입니다. 요괴경이요. 비싸게 구한 건데, 하하. 사기를 당한 모양입니다. 부끄럽군요.”
영채심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다.
“하여간 요즘 세상은 사기꾼 천지라니까요. 양 공자님의 부인 몸에 붙은 혼령은 제가 잘 처리할 테니, 염려 마십시오. 천 대협과 마 도사님께서는 마두를 잡는 데 최선을 다해 주십시오. 그게 또 천하를 위하는 길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네, 알겠습니다. 저희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부인께 실례를 범한 것 같아 사죄드립니다.”
그렇게 나와 천무휘는 양아치의 전각을 벗어났다.
* * *
“천 형! 봤어요?”
우리 전각으로 돌아왔고, 전각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내가 다급히 천무휘를 잡으며 말했다.
멍한 얼굴을 하고 있던 천무휘도 그런 내 격한 모습에 당황한 얼굴을 했다.
“네? 무얼 보았단 말이에요?”
“귀, 귀신. 귀신을 봤다고요.”
“아까 보지 못했다고 하지 않았나요?”
“봤어요, 천 형. 그러니까. 양아치의 부인이 아니라, 그 술사. 가짜 술사 놈한테 귀신이 붙어 있어요. 이 요괴경을 통해 똑똑히 봤다니까요.”
“정말요? 귀신이란 게 진짜 있어요?”
“네. 제가 똑똑히 봤어요. 진짜예요.”
“그럼 어쩌죠? 마 형, 귀신 쫓는 방법도 알아요?”
모른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 현화문은 도만 닦는 도문이다.
사부와 역대 사조들은 요괴도 잡고 귀신도 쫓았다지만, 어떻게 그렇게 하는지에 대한 방법은 전해지지 않는다.
그냥, 그냥 사부처럼 지고한 경지에 오르면 절로 되는 거다.
그러니 수양이 얕은 나는 귀신을 쫓고 그런 거 할 줄 모른다.
사실 이번에 항주에 갔을 때, 백미호가 요괴였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고, 또 사부의 근심과 위로 때문에, 천무휘나 의제 그리고 한해북이 무공 수련할 때 나는 마음의 수양만 쌓았다.
진짜 도사답게 도만 닦은 거다.
계속 그래 왔다.
사실 나야 무공 수련할 필요도 없지 않은가?
그래서 우리 녀석들이 틈틈이 수련할 때, 나도 열심히 도를 닦았는데.
하지만 귀신을 쫓는 방법은 당연히 모른다.
“마 형?”
“아, 천 형. 몰라요. 귀신 쫓는 방법 같은 거요.”
“음, 그러면 어쩌죠? 양아치의 죄가 중하다 해도, 술사 몸에 붙은 귀신이 양아치의 부인이나 다른 사람한테 해코지 할 수도 있잖아요.”
“양아치 부인은 이미 술사 놈에게…….”
난 아까 방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해 주었다.
천무휘의 인상이 마구 구겨지는 순간이었다.
그런 후, 우리는 꽤 오랜 시간 머리를 맞대고 귀신 쫓는 방법을 논의했다.
답이 나올 리 없었다.
“그런데, 마 형. 그 귀신은 뭐 하는 귀신인가요? 보통 귀신 어쩌고 하면 한을 품었다든가 사연이 있다든가 하지 않나요?”
모른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아나?
“저도 잘 모르겠어요.”
“혹시 양아치가 죽인 사람의 혼령이 그 영채심이란 자의 몸에 빙의된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일부러 양아치와 그 가족을 괴롭히기 위해서요.”
“음, 그럴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하겠네요. 어쩌면 귀신을 통해 혈겁의 진상을 듣게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혹시 마 형이 귀신이랑 대화…… 아닙니다.”
귀신이랑 어떻게 대화를 하겠는가?
천무휘도 내게 그리 말을 하다가, 아니다 싶었는지 곧바로 입을 닫았다.
그런데, 어?
어쩌면,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천 형.”
“네, 마 형.”
“당장 가요.”
“어디로요?”
“영채심이란 놈이 묵고 있는 방으로요.”
방법이 떠올랐다.
귀신과 대화할 수 있는 방법.
* * *
초절정 두 명이 은형술을 극대로 펼쳤다.
신창양가, 그것도 내원도 아닌 외원의 식객들 전각에 잠입하는 일은 누워서 떡을 먹는 것보다 쉬웠다.
쉬이이익.
타타탓.
이미 잠든 영채심의 수혈까지 지풍으로 점해 더 깊은 잠에 빠뜨렸다.
벽력탄이 터져도 일어나지 못할 테다.
“저도…… 저도 봐도 돼요?”
난 대꾸 대신 요괴경을 천무휘에게 건넸다.
천하의 수룡검 천무휘도 귀신은 무섭나 보다.
손을 덜덜 떨면서 조심스럽게 요괴경으로 깊은 잠에 빠진 영채심의 얼굴을 확인하였다.
“허거거거거거걱! 마, 마 형! 저…… 저놈이…… 깨어 있어요. 눈을 부릅뜨고 기괴한 미소를 지었어요!”
천하의 천무휘가 기겁을 하며 덜덜 떠는 순간이었다.
“영채심은 잠들고, 귀신이 깨어 있나 봅니다.”
“어쩌죠?”
“계획대로 귀신과 대화를 해 봅시다.”
“될까요?”
“모르죠. 그래도 방법이 없으니, 해 봐야죠. 준비한 것 꺼내세요, 천 형.”
천무휘가 나를 향해 힘까지 꽉 주어 고개를 끄덕인 후, 준비해 놓은 물건들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영채심의 몸에 빙의된 귀신과 소통하기 위함이다.
모든 준비를 맞췄다.
나와 천무휘는 그렇게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다시, 탁자 위에 올려놓은 붓을 잡아들었다.
나와 천무휘 둘이서, 각자 오른손으로 맞잡은 붓의 끄트머리 호(毫)를 하얀 종이 위의 중심에 조심스레 가져다 댔다.
하얀 종이 위에는 커다랗게 두 자의 글자가 적혀 있다.
옳을 시(是) 자와 아닐 비(非) 자다.
나와 천무휘는 결연한 눈빛으로 서로 마주 보며 고개까지 끄덕인 후, 주문을 외기 시작했다.
귀신을 소환해 대화를 하기 위한 주문이다.
“빙신사파 빙신사파, 와 주십시오. 빙신사파 빙신사파, 와 주십시오. 빙신사파 빙신사파, 이곳으로 와 주십시오. 빙신사파 빙신사파…….”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빙신사파(憑身死把) 귀신 소환주문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