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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두가 된 이유-123화 (123/245)

123화

이튿날.

양아치가 어제 술주정한 게 미안했는지, 눈치를 사정없이 살피며 우리 전각에 들어왔다.

대수롭지 않게 괜찮다며 넘겨줬더니, 이 녀석 얼굴이 금세 또 밝아졌다.

한심한 놈이다.

“천 대협, 밖에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이 엄청나게 몰려 있습니다. 우리 신창양가와 태연세가, 목문, 차렵방, 산검문의 정예들은 물론, 이를 구경하고자 하는 촌놈들이 수만 명이나 와 있습니다, 하하. 어서 가시죠.”

“그럽시다, 양 소협.”

오늘도 나는 투명 인간이다.

진짜 내가 안 보이나?

거참, 이상하네.

본격적으로 산서의 마두 사냥에 나설 참이다.

응, 없다. 이 근방에 마두라 불릴 정도의 나쁜 놈들은 없다.

우리 옆에서 간사한 웃음을 짓고 있는 양아치를 빼면 말이다.

그래도 궁하면 통한다고 하지 않겠는가?

아니, 없으면 만들면 된다.

이미 준비해 놨다.

그렇게 막 모두가 지켜보는 성대한 마두 사냥의 첫 출정을 하려 전각을 나섰을 때였다.

내원과 외원을 나누는 담벼락에, 누가 봐도 ‘나 술사요’라는 복장을 한 사람이 우릴 구경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갑자기 웬 술사인가 싶어서 양아치에게 물었다.

“저 술사 복장을 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양아치는 슬쩍 곤란한 얼굴로 답했다.

“제 부인 때문에 머물고 있는 술사입니다.”

“혼인을 하셨소?”

“네. 제 나이 스물다섯입니다. 이미 칠 년 전에 했습니다.”

남들 하는 건 다 하는 양아치다.

“그런데 술사는 왜?”

“작년부터 부인의 몸이 좋지 않아 여러 고명한 의원을 불렀지만, 딱히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때, 저희 세가에 식객으로 머물고 있던 저 술사가 어쩌면 귀신이 붙어 그럴 수 있다며 자신이 좀 보겠다고 했습니다.”

“귀신요? 그런 게 진짜 있습니까?”

“마 도사님께서는 도사 신분이신데도 귀신을 믿지 않으신가 봅니다?”

“글쎄요. 아직 실제로 본 적이 없어서요.”

“아, 그렇군요. 그런데 진짜 있더라고요. 일 년간 저 술사가 퇴마술을 부리고 해서, 부인의 건강이 상당히 좋아졌습니다.”

“음, 그렇군요.”

좀 이상했다.

귀신이라니?

아니, 귀신이 있을 순 있다.

요괴도 있는데 귀신이라고 없으라는 법은 또 없지 않겠는가?

그러다 문득, 요괴경이 떠올랐다.

“양 소협.”

“네, 마 도사님.”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저도 부인의 병세를 한번 확인해 봐도 되겠습니까? 실제 귀신이 있는지 없는지 정확히 판단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뭐, 어려울 게 있습니까?”

말은 저렇게 하면서도 별로 달갑지 않은 얼굴이었다.

-천 형, 좀 도와줘요.

-네? 아, 무엇을……?

천무휘 이 녀석, 또 정신을 다른 곳에 팔고 있었다.

난 전음으로 빠르게 상황을 설명했고, 곧 천무휘가 양아치에게 말했다.

“일단 마두들부터 잡읍시다, 마 형. 그런 후 밤에 양 소협 부인의 상태를 확인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밤에 음기가 강하니, 진짜 귀신이 있다면 그때 더 활발히 활동할 테니까요. 전 양 소협과 합동 작전으로 마두를 잡을 생각에 벌써 피가 끓는 것 같습니다. 부인의 상태는 밤에 살펴 드려도 괜찮겠죠, 양 소협?”

천무휘의 말 한마디에, 양아치의 입이 찢어졌다.

아주 좋아 죽는다.

“물론이지 말입니다. 제 부인의 상태는 마두를 잡고 돌아와서 밤새도록 마음껏 살피십시오, 마 도사님. 하하하하!”

저런 미친놈을 보았나.

* * *

천무휘의 제안으로 신창양가에 도열해 있던 신창양가와 사대무문의 정예들을 모두 신창양가 밖으로 이동시켰다.

그곳에는 이미 마두 사냥 출정식을 구경하기 위한 수많은 인파가 몰려 있었다.

천무휘는 수만 명 산서 백성들과 수천에 달하는 무인들의 시선을 일제히 받으며, 진짜 무림의 영웅이 무엇인지 보여 주기라도 하듯, 그렇게 멋진 연설을 시작했다.

“……그런 이유에서! 여러분 모두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와아아아아아아!”

“수룡검 만세!”

천무휘의 말이 끝날 때마다 우레와 같은 함성과 박수가 계속 쏟아졌다.

그 자체로 장관이었다.

“수상한 자를 목격하거든, 그 즉시 신창양가로 연락을 해 주십시오! 또, 우리 산서의 영웅들께서는 마두를 잡는 동안, 절대로 민가에 피해가 가지 않게 최대한 조심해 주셔야 합니다. 이 천모가 이렇게 부탁드립니다.”

“와아아아아!”

“와아아아아아!”

“수룡검 만세! 만세! 만세!”

연설의 끝.

이들의 함성과 박수는 극에 달했다.

마치 지축이 흔들릴 것 같은 환호가 오래도록 이어졌다.

* * *

“마 도사님, 그런데 왜 우리는 따로 움직이는 건가요? 천 대협까지 다른 곳으로 가 버리고요.”

양아치가 급격히 실망한 얼굴로 나에게 물었다.

이 새끼, 이제는 내가 눈에 보이는가 보다.

천무휘의 지시 아래 각개 문파와 세가는 자신들의 정예만을 이끌고 마두 사냥에 나섰다.

한마디로 경쟁을 붙인 것이다.

다른 문파에 뒤처질세라, 신창양가를 비롯한 태원 사대무문의 수장과 고수들은 눈에 불을 밝히며 마두를 잡으러 떠났다.

나와 천무휘, 양아치도 셋만 따로 움직였다.

그러다 천무휘가 작전의 이유를 들며 어디론가 사라지자 양아치가 저리 실망한 것이다.

천무휘는 대명장으로 보냈다.

목격자들과 더 친해지고, 그들 마음의 문을 열게 하여 진술을 확보해야 한다.

양아치가 흉수일 가능성이 구 할 구 푼 구 리이나, 그래도 더 확실히 해야 하지 않겠는가?

당시의 상황도 제대로 알아야 한다.

적은 양아치 한 명이 아니다.

최악의 경우, 산서 땅에 군림하는 신창양가와 무림맹 산서 지부의 고수들까지 한꺼번에 상대해야 할 수 있다.

내가, 그리고 우리가 준비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준비해야 한다.

그래서 천무휘가 대명장으로 갔고, 마두 사냥은 나와 양아치 둘이서 하게 됐다.

“너무 실망마시오, 양 소협. 천 형이 그러는데, 양 소협에게서 굉장히 좋은 기운이 느껴진다고 하더라고요.”

“저, 저한테요? 저한테 그런 기운이 있대요?”

“네. 양 소협과 함께 다니다 보면, 분명 많은 사람을 죽일 수 있을 것이라고 했어요.”

“네?”

양아치가 화들짝 놀란 얼굴을 했다.

난 그런 양아치의 반응을 이해 못 하겠다는 얼굴로 보며 태연하게 말했다.

“천 형이 분명 그랬어요. 양 소협이 많은 마두와 악적들의 목을 벨 것이라고. 그러니 꼭 함께 다니며, 양 소협을 도우라고 했어요.”

“아…… 그런 뜻이었군요.”

이 미친놈. 또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그렇게 한참이나 혼자 실실거리다가.

“그런데 이렇게 계속 걷기만 한다고 마두가 갑자기 우리 눈앞에 툭 하고 튀어나올…….”

-쉿! 자세 숙여.

으슥한 산길.

나와 양아치가 이러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걷고 있을 때, 저 멀리 수풀을 헤치며 험악한 인상의 두 사내가 피가 뚝뚝 떨어지는 박도를 들고나왔다.

나는 말을 함과 동시에 양아치의 머리를 찍어누르듯 하여 자세를 낮추었다.

“누, 누굽니까?”

-조용하라고! 전음할 줄 몰라?

-앗! 넵. 할 줄 압니다.

-딱 봐도 방금 살인을 저지른 놈들이잖아. 네 눈엔 그렇게 안 보여?

-맞, 맞습니다. 그렇게 보입니다.

-내가 뒤로 돌아가 놈들의 퇴로를 차단할 테니, 네가 놈들의 앞을 막아.

-저, 저 혼자요?

-왜? 겁나?

-그, 그게…… 호위 무사도 없고, 제가 실전 경험이……

-야!

-넵.

-빠져. 마두 사냥은 나와 천무휘, 둘이서만 한다.

이 녀석, 눈동자에 지진이 일어났다.

마른침을 연신 삼키며, 그렇게 혼란스러운 눈으로 나를 보기만 한다.

그러더니 이내.

-대, 대협! 하겠습니다! 기회를 주십시오.

-진짜? 겁먹은 얼굴인데?

-할 수 있습니다. 기회를, 제발…… 주십시오.

-기회는 딱 한 번이다. 실수하면, 그땐 끝이야. 다음번엔 네 첫째나 둘째와 함께 움직일 거다.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좋아. 정면을 막고, 최대한 시간을 끌어. 여차하면 목을 베어 버려.

-아직 놈들이 살인을 저지른 것인지 확실하지 않지 않습니까?

-시키는 대로 해. 첫날부터 그냥 돌아갈 순 없잖아. 저렇게 험상궂게 생긴 놈들 목 두 개 정도는 가지고 가야 체면도 서고 그렇지. 안 그래?

-네. 넵!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좋아. 출발.

-넵!

양아치가 단창을 들고 뚜벅뚜벅 걸어 나간다.

잔뜩 긴장한 것인지 아니면 흥분한 것인지, 그의 손끝에서 미세한 떨림이 느껴졌다.

그리고 이내.

뭔가 말을 주고받는가 싶더니, 피 묻은 박도를 든 두 놈이 동시에 양아치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신창양가의 혈육이라 그런가?

처음에는 당황하는가 싶더니, 이내 험악한 두 사내를 상대로 우위를 점하기 시작했다.

곧이어.

퍼퍼퍼퍼퍼퍼펑!

양가창법의 절기라 할법한 창기(槍氣)가 양아치의 단창에서 쏟아져 나왔다.

사내 한 명은 정확히 목을, 다른 사내는 심장이 관통당해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형님, 저 녀석 그래도 창법 하나는 제법인데요?”

의제다.

양아치가 내 옆을 벗어났을 때 이미 와 있었다.

“저 좋은 창법으로 무고한 사람을 죽였으니 문제겠지. 한 형은?”

“아마 다른 마두 놈들 잡아서 이곳으로 오는 중일 겁니다. 내일이면 도착할 거예요. 저는 근처에 마두가 없어서 감숙과 요녕까지 가서 마두들을 잡아 왔어요.”

“근데 쟤네 마두가 맞긴 맞아? 너무 약해 보이는데?”

“헤헤, 형님. 아직 마두 명부에 이름을 올리진 못한 녀석들인데, 나쁜 놈들은 맞습니다. 무고한 사람을 열셋이나 죽였어요. 세 가족을요. 형님이 처음에는 좀 약한 놈들을 풀어놓으라고 했잖아요.”

“그래, 뭐 적당하다. 죄목은?”

“여기, 저놈들 신상과 죄목을 적은 서류입니다. 개방에서 받은 거예요.”

난 의제가 건넨 서류를 살폈다.

죽어 마땅한 놈들이 맞다.

“계속 수고해.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항상 조심하고.”

“여부가 있겠습니까? 매일 조금씩 더 강한 마두들로 풀어놓겠습니다.”

“그래. 수고했다.”

내가 의제와 한해북에게 내린 특별 임무가 이것이다.

주변 지역의 마두들을 잡아서, 우리가 마두 사냥에 나서면 우리 앞에 조금씩 풀어놓으라는 것.

바다에서 어부들이 커다란 물고기를 잡기 위해, 그 미끼로 쓸 작은 생선을 미리 잡는 것과 같은 이치다.

잠시 후, 의제가 수풀 속으로 사라졌다.

난 의제가 건넨 서류를 손에 쥐고, 신법을 이용해 빠르게 싸움 현장의 뒤로 자리를 옮긴 후에야 모습을 드러냈다.

한껏 상기한 얼굴의 양아치가 피 묻은 단창을 든 상태로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나는 꽤 놀란 얼굴로 그런 양아치에게 다가갔다.

“양 소협,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대단한데? 이 정도만 해 준다면, 그냥 우리와 계속 함께 다녀도 되겠어. 산서가 아닌 중원 전역에 양아치란 이름을 알리게 될 거라고.”

미친놈의 입꼬리가 다시 귀에 걸리는 순간이었다.

* * *

태연세가, 도둑 세 명.

목문, 강도 한 명.

차렵방, 흑도 왈패 마흔두 명.

산검문, 살인자 한 명.

신창양가, 색마 한 명에 강도살인마 한 명.

나와 천무휘 그리고 양아치, 섬서 유림촌 세 가족 열세 명의 학살범 두 명.

마두 사냥 첫날의 성과다.

신창양가에서는 그 성과를 축하하기 위한 연회까지 벌였다.

성과가 부족한 태연세가주와 목문의 문주는 똥 씹은 얼굴이었다.

대부분의 정예 무사들이 연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밤새도록 마두를 잡으라고 보낸 것이다.

그리고 이날 연회의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양아치였다.

섬서에서 제법 유명한, 세 가족 열세 명을 학살하고 도주하던 준마두에 해당하는 흉수 두 명을, 그것도 단신으로 처치했으니 그 공이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여기저기서 양아치에게 치하하는 말을 건넸고, 그 모습을 보는 양아치의 아버지 양북달은 더없이 흡족한 얼굴을 해 댔다.

반대로 양아치의 두 형들은 시기와 질투, 부러움이 가득한 얼굴만 할 뿐, 연회장의 구석을 벗어나지 못했다.

* * *

“이곳입니다. 여기가 제 처소입니다. 부인에게 이미 말을 해 놨으니 함께 들어가시죠.”

늦은 밤.

나와 천무휘는 술을 마시지 않았지만, 양아치는 오늘도 거하게 취했다.

그렇게 취한 상태로, 또 이렇게 늦은 밤임에도 불구하고, 나와 천무휘를 자신의 부인이 머물고 있는 방으로 안내하였다.

보일까?

요괴경으로 정말 귀신을 볼 수 있을까?

진짜로 귀신이란 게 있을까?

두근두근,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그렇게 양아치 부인의 처소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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