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마두가 된 이유-119화 (119/245)

119화

<<광마일기>>

(상략)

당시 나는 빌어먹던 놈들을 수하로 거두게 됐다.

처음엔 그 꼬락서니가 영락없는 개방의 거지들이라 거들떠보지도 않으려 했다.

그런데 이 녀석들, 눈빛이 살아 있었다.

거지 꼬락서니를 하고, 당당하게 나와 의제를 향해 도와 달라고 했다.

뻔뻔하기 그지없는 놈들.

사실 상관없었다.

그 대상이 누구든, 나와 의제는 그저 피가 필요했을 뿐이다.

그래서 그들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신창양가에 원한 따위는 없다.

그냥 누구든 죽여 우리의 힘을 과시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시절이었으니까.

(중략)

시팔단인지, 시발단인지 뭔가 하는 놈들!

그 녀석들 말이다.

아!

지금 생각해 보니 그렇다.

그때 내쳤어야 했는데.

신창양가를 때려 부순 후, 녀석들은 나에게 충성 맹세를 했다.

약해빠진 녀석들을 데리고 다니면 짐짝밖에 되지 않아 처선에게 보냈다.

그날 이후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천하가 나를 향해 대마형(大魔兄)이라 부른다고 하였다.

대사형도 아니고 대마두도 아닌 대마형이란다.

마두들의 큰형이란 뜻이었다.

마두라 불리던 그 녀석들을 거둔 결과가 그렇게 돌아온 것이다.

마두도 모자라 대마형이라니.

그때는 진짜 미치는 줄 알았다.

그래서 그리 생각했다.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다고.

내가 원한 게 아니라고.

네놈들이, 천하의 모든 이들이 날 그렇게 만든 것이라고.

난!

그날 대마두가 되기로 결심했다.

무림사를 통틀어 가장 잔인하고 극악무도한 대마두가 되겠노라고.

네놈들이 그토록 원하니, 그리되어 줄 것이라 혼자 맹세했다.

(중략)

그러니까 사패천 배신의 날.

모두가 나를 죽이려 했던 것만은 아니다.

가장 먼저 의제가 있지 않겠는가?

그나저나 녀석, 진짜 살아 있긴 한 걸까?

갑자기 보고 싶네.

아무튼, 의제 말고도 또 있다.

심지어 의제보다 훨씬 먼저 나를 구하러 온 녀석들.

천주제검대(天主弟劍隊)다.

천주(天主)는 사패천의 천주인 나를 의미한다.

거기에 동생 제(弟) 자에 칼 검(劍) 자.

내 동생들을 의미하고, 내 칼을 의미한다.

가장 말석이긴 하지만 우리 사패천의 십대무력대 중 하나로 인정받던 녀석들이다.

처음 봤을 때는 진짜 형편없이 약한 놈들이었다.

뭐라고 했더라?

시팔단?

힙합단?

아! 맞다.

십합단(十合團)이라고 했다.

무림맹의 십합단.

무림맹 내에서도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가 아닌 것을 넘어, 중소방파에도 속하지 못했던 녀석들.

제대로 된 사문조차 없이 단신으로 무림맹에 입맹한 최하급 무사들만 모아놓아서 그 무력단의 이름마저 십합단이라 했다.

처음 봤을 때는 진짜 형편없이 약했던 놈들이었는데.

어느 날 내가 버리듯 던져 준 무공 비급 몇 권을 받더니, 고작 수년 만에 제법 고수라 불러도 될 정도의 경지에까지 올라온 녀석들이기도 하다.

우리 사패천의 무력대 중 인기도 가장 많았던 녀석들이다.

누가 무림맹 출신 아니랄까 봐, 시키지도 않은 착한 일을 열심히도 해댔었다.

나와 사패천의 악명이 천하를 진동하고 있음에도, 간혹 가뭄에 콩 나듯 우리 사패천이 좋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게 다 이 녀석들, 천주제검대에게 도움을 받은 사람들이 말하는 이야기였다.

녀석들이 워낙 열심히 하기도 하고, 아주 가끔이라지만 지독하리만치 더러웠던 내 명성에 금칠도 해 주고.

그래서 기특한 마음에 나름 눈여겨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이 왔다.

사패천 배신의 날.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녀석들이 가장 먼저 나를 구하기 위해 달려왔다.

하지만 이는 나만 예상하고 있었던 게 아니다.

배신자 놈들 역시, 천주제검대의 행동을 정확히 예상하고 있었다.

함정까지 파놓았고, 이 올곧고 우직하기만 한 녀석들은 배신자들이 파놓은 함정에 정확히 빠져 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그 녀석들은, 내가 보는 앞에서 칼 한 번 제대로 휘둘러 보지 못하고 개죽음을 당하고 말았다.

그렇게 처참하게 죽어 가면서도 그들은, 내 이름을 목 놓아 부르며 뜨거운 눈물을 흘려 주었다.

내가 녀석들에게 해 준 것이라고는 고작 버리려던 무공 비급 몇 개를 던져준 게 고작인데 말이다.

모두가 날 배신하던 그날.

자신들의 힘으로 나를 구하지 못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녀석들은 그렇게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칼을 빼 들고 가장 먼저 나에게 달려와 주었다.

(하략)

* * *

“이 녀석들아! 천천히 먹어. 안 뺏어 먹는다고!”

할매의 초가 마당.

땅바닥에 주저앉아 음식을 마구 쑤셔넣는 녀석들을 향해 의제가 고함을 쳤다.

하지만 기분 좋은 고함이다.

한 달이 넘게 도주한 녀석들의 상태는 말이 아니었다.

초가의 주인 할매에게 은자를 넉넉히 주자, 할매는 무적의 고수라도 된 양 뒷마당에 있던 닭들의 모가지를 눈 깜짝할 사이 모두 비틀어 솥으로 집어넣었다.

항아리에 담가 두었던 술까지 아낌없이 꺼내 주었다.

그렇게 음식과 술이 모두 차려지자, 이 십합단 녀석들이 미친 듯 입으로 쑤셔 넣고 있다.

나와 천무휘 그리고 언묵과 언갈만이 따로 자리를 잡았다.

이들의 사연을 들어야 할 때다.

“저희는 무림맹 무력단 중에서도 최하급에 속한 무력단입니다.”

광마일기에 적힌 이야기와 같은 내용이 이어졌다.

사문이나 배경이 없는 뜨내기 무인들만 골라 만든 십합단의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가 끝나고.

“저희는 정말 열심히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도적도 잡고, 소규모 전투의 지원도 나갔고. 사실 토목 공사나 보수, 청소 임무도 많이 수행했습니다.”

무인으로서 부끄러울 법한 이야기였으나, 언묵의 얼굴에는 조금도 그러한 것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열심히 하다 보니, 도움을 받은 백성들의 칭찬이 무림맹의 담을 넘어 들려왔습니다. 그렇게 진짜 임무. 마두를 추살하라는 이번 임무를 맡게 됐습니다. 아직 저희 실력이 많이 부족한 것을 알기에, 처음에는 두렵기도 했고 걱정도 들었습니다. 그래도 맹에서 내린 임무이기에, 목숨을 버려서라도 완수할 각오로 산서로 떠났습니다.”

형인 언묵이 계속 말을 이어 갔다.

“산서에 도착해 무림맹 산서 지부와 신창양가를 통해 마두의 악행에 대해 상세히 들을 수 있었습니다. 마을 세 개, 삼백여 명의 마을 사람들을 학살했다고 하더군요. 그 이전에도 이미 한 명에서 많게는 열 명이 넘는 사람들에 대한 이유 없는 연쇄 살인이 있었다고 합니다. 듣는 것조차 소름이 끼치는 극악무도한 마두였습니다.”

언묵은 잠시 동생인 언갈과 눈을 마주친 후 말을 이었다.

“신창양가와 무림맹 산서 지부, 그리고 저희 십합단. 이렇게 세 무리로 나뉘어 마두를 쫓았습니다. 천운인지 불운이었는지, 우리 십합단이 가장 먼저 마두를 발견할 수 있었고, 생각했던 것과 달리 너무나 쉽게 마두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제 동생이었죠.”

뭐야? 언갈이 흉수였어?

아닌데?

고작 일류 무사 초입 수준의 녀석이 어떻게 그런 일을 벌일 수 있어?

이해되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 설명은 언묵의 동생 언갈이 직접 해 주었다.

“공손병 선생님께 글과 무공을 익힌 후, 추천서까지 받아 신창양가의 무인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신창양가에서는 공 선생님의 추천서 때문인지 저에게 많은 투자를 해 주었습니다. 영약도 복용할 수 있었고, 훌륭한 창법까지 익힐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해서인지, 셋째 공자님의 호위무사가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언갈은 고작 일류 초입이다.

신창양가는 꽤 대단한 세가다.

그 유구한 역사도 역사지만, 현재 무림에서 오대세가 다음으로 인정받는 가문이 바로 산동악가, 백리세가, 신창양가 등이다.

그런데 그 세가주의 셋째 아들에게 호위무사로 일류 초입의 언갈을 임명했다?

상식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우선 더 들어 보자.

“유독 셋째 공자님의 호위무사가 자주 바뀌어 우려되는 부분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제가 열심히만 한다면 괜찮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누가 뭐래도 신창양가에서 인정받았다고 생각해 저는 기뻤고, 그래서 더더욱 열심히 했습니다. 그러다 그날이 왔습니다.”

언갈은 기억하기 싫은 것을 떠올리듯 살짝 괴로워하며 말을 이었다.

“호위무사가 된 후, 술은 한 잔도 입에 대지 않았습니다. 그날 셋째 공자는 술에 만취하였고, 저에게 강제로 술을 마시게 했습니다. 정확히 석 잔을 마신 후 기억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깨어났을 때…….”

언갈은 몸을 크게 부르르 떤 후 다시 입을 열었다.

“일백여 구의 시체. 그 한가운데 피를 뒤집어쓴 제가 있었습니다. 셋째 공자는 온데간데없었고, 저는 시체 더미 속에서 깨어났고. 정신을 차리기 힘든 그때, 신창양가와 무림맹 산서 지부의 고수들이 나타났습니다. 저에게…… 학살의 흉수라고 했습니다.”

갑갑하다.

악당들은 왜 항상 저렇게 뻔한 수를 쓸까?

뭐, 그게 계속 통하니 그러겠지만.

“아니라고, 제가 아니라고 말했지만, 사실 저도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주춤하자, 저를 혈겁의 흉수라 확신한 그들이 공격을 가해 왔고, 저는 목숨을 걸고 그들과 싸워 도주할 수 있었습니다.”

이 역시 말이 안 된다.

신창양가와 무림맹 지부 고수들의 공격을 피해 도주?

불가능하다. 언갈의 능력으론.

“한참이 지나 정신을 조금 차린 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때 제가 도주할 수 있었던 것, 그것마저 그들의 계책이었다는 것을요.”

음, 이건 좀 신선하군.

“제가 도주를 시작한 때부터, 대대적으로 소문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두 번의 혈겁과 이번 마을의 혈겁, 또 지난날에 있었던 모든 연쇄 살인의 흉수가 저였다는 소문이요.”

역시.

뭐, 이것도 조금 뻔하긴 하지만, 그래도 머리를 두 번 굴렸으니 인정해 준다.

“그렇게 계속 도주를 이어 가던 중 한 가지 소문을 더 들었습니다. 사태의 심각성이 매우 커, 무림맹 본맹에서 무력대를 파견해 저에 대한 추살을 지원한다는 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곧 그들을 만나게 되었고, 잡히게 되었습니다. 그게 바로…… 형이 이끄는 십합단이었습니다.”

다시 언묵이 설명하기 시작했다.

“제가 열여섯 살에 무림맹으로, 이 년 뒤 동생이 열다섯 살에 신창양가로 가게 된 후 첫 만남이었습니다. 동생과 서신을 자주는 아니었지만, 교환하고 있던 터라, 동생이 신창양가에 몸담고 있음은 당연히 알았습니다. 그런데…… 설마 흉수가 동생이었을 것이라곤 생각해 보지 못했습니다. 처음부터 이상하게 흉수에 대한 신상을 자세히 알려 주지 않는 게 의심쩍긴 했는데…….”

차분하던 언묵도 살짝 흥분된 얼굴이 되어가고 있었다.

억울함에 대한 분노일 테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다 계획된 일이었습니다. 제가 동생을 잡고, 자초지종을 듣는 그 짧은 시간. 완전히 다른 곳에 있어야 할 신창양가와 무림맹 산서 지부의 고수들이 우리를 포위했으니까요. 그들은 곧 흉수인 동생을 죽이라고 압박했고, 저는 동생의 억울함을 호소했습니다.”

“언묵 단주와 십합단을 언갈 무사와 한패라고 모략했겠군.”

“네. 나중에는 무림맹 산서 지부의 지부장이, 우리를 배신자라 단정 짓고는 총공격을 명령했습니다. 신창양가와 무림맹 산서 지부 고수들의 합동 공격을 받게 되었고, 그때 서른 명가량의 수하들을 잃었습니다. 다시 한 달간의 도주 도중 스무 명가량의 수하를 추가로 잃었고, 현재 남은 수하는 보시다시피 총 오십여 명이 전부입니다.”

“이 서신은 어떻게 된 것이지? 공손병 선생을 찾아갔나? 산동까지 가려면 그 길이 꽤 먼데?”

“한참 도주를 이어 가던 중, 굉장한 신법의 고수가 저희를 찾아왔습니다. 현재 공손병 선생님 댁에 기거하고 계신 처호 선생님이 보낸 전령이라 했습니다. 이름은 달호라고 하였습니다.”

달호다.

내가 백두산에 머물 때, 처호의 서신을 가지고 왔던 어리숙하지만 제법 빨랐던 녀석.

“공손병 선생님이 쓴 서신을 읽었더니, 처호 선생의 서신을 들고 마 도사님을 찾아가 목숨을 구걸하라 하였습니다. 그래서 마 도사님을 찾아오게 된 것입니다.”

“언 단주.”

“네, 마 도사님.”

“날 어찌 믿고 그리 결심한 것인가? 내가 누군 줄 알고?”

“저는 공손병 선생님을 믿습니다. 그리고…….”

언묵 이 녀석.

슬쩍 천무휘의 눈치를 살핀다.

뭐, 천무휘는 또 멍한 얼굴로 정신이 다른 곳에 팔려있다.

언묵이 다시 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처음엔 몰랐는데, 우리 단원 중 한 명이 마 도사님의 이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민 없이 바로 달려오게 됐습니다.”

“내 이름을 아는 단원이 있어? 어찌 알고 있었는데?”

“수룡검 천무휘 대협과 함께 다니시는…….”

저렇게 말할 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물어본 거다.

툭.

멍한 얼굴을 하고 있는 천무휘의 팔을 내가 툭 쳤다.

“엇? 아! 죄송합니다, 마 형. 제가 또 정신을 다른 곳에.”

“아니요. 지금 여기 언 단주가 천 형 이야기해서 쳐 본 거예요.”

“아! 그렇군요. 그런데 저에 대해 어떤 말씀을……?”

“이 사람들, 오십여 명. 모두 천 형을 믿고 달려왔다네요. 자신들의 목숨을 모두 천 형의 이름에 걸었다는군요.”

“아…… 그, 그렇군요. 그럼…… 그럼 제가 무얼 해야……?”

난 천무휘에게 방긋 미소 지으며 말했다.

“오십이 넘는 목숨이 걸렸으니, 이번엔 싫은 일 좀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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