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화
닭을 잡는 방법에 관한 이야기.
나와 사부, 작은 사부, 무적 할매, 송암도장, 아미삼검.
닭을 함정에 빠뜨린 후, 희대의 고수들이 난도질해서 죽인다.
이것이 닭을 잡는 첫 번째 방법이다.
두 번째 방법.
닭을 유인한다.
백두산으로 간다.
백두신령이 활을 쏘고 호랑이가 목을 물어 버린다.
그냥 호랑이가 아니다.
하늘로 승천하던 용과 백일 밤낮을 싸울 법한 호랑이들의 왕, 산군이다.
어흥!
원래 닭을 잡는 방법이 이 두 가지뿐이었다.
그런데 하나가 더 늘었다.
확실한 방법이며, 심지어 나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된다.
닭을 잡는 세 번째 방법.
여우, 매, 늑대, 호랑이, 곰을 푼다.
응, 이미 풀었다.
천 리 밖에서 냄새만 맡고 그 물이 어떤 종류의 물인지 알아낼 수 있는 후각과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늑대다.
천 장 하늘 위에서, 땅에 흩뿌려진 모래의 생김새를 정확히 구분할 수 있는 시력과 살벌한 발톱을 가진 매다.
호랑이와 곰은 각기 칠십 갑자와 팔십 갑자가 넘는 힘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가장 무서운 여우.
여우인 줄 알면서도, 내 심장을 달라면 홀라당 내줄 만큼 절대적 아름다움을 지닌 여우다.
닭대가리는 절대 이들을 이길 수 없다.
닭 모가지가 비틀어지는 건 시간문제다.
콧노래가 절로 나오는 나날들이다.
* * *
천수신권의 동생 원곡.
지금 귀정사에 작은 사부가 잡아 두고 있는 놈 말이다.
돌이 되었다고 한다.
돌?
설마 사람이 진짜 돌이 될 리는 없고, 눈도 닫고, 귀도 닫고, 입도 닫았단다.
작은 사부가 다른 건 몰라도 고문엔 소질이 없지 않은가.
아니, 있지만 억누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지.
어쨌거나 음식조차 거부하며, 가부좌를 튼 상태로 숨을 쉬는 것조차 자세히 살펴야 확인될 정도로 꼼짝도 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작은 사부가 어린 시절을 언급하며 슬쩍 겁도 줘 봤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고.
증언을 듣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빨리 고문 전문가를 찾아봐야 할 것 같긴 하다.
무당과 아미의 상황도 전해 들었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로는, 천수신권이나 창궁검제와 긴밀히 교류하는 자는 없는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이 일은 신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시간이 촉박한 것도 아니고, 최대한 신중에 신중을 기해 살피고 더 살피라 부탁하였다.
귀정사와 무당, 아미 그리고 우리까지 이어지는 연락망이나 체계의 구축은 처호, 처선 부자가 맡기로 했다.
작은 사부가 그들의 뛰어난 능력을 알아보고 그리 제안하였고, 송암 도장과 아미삼검 역시 이견 없이 모두 찬성했다고.
마지막으로 내 동의를 구하기 위해 기다렸다고 한다.
뭐, 그 정도는 알아서들 하셔도 되는데.
참, 우리 노인네들이 귀엽다.
고맙기도 하고.
닭대가리에 대한 근심과 걱정이 사라지자, 이제 내 일에 전념할 수 있다는 생각에 또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무림의 거대한 음모를 막는다.
캬! 멋지지 않은가?
이러다 진짜 내가 무림 영웅전의 주인공이라도 되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콧노래, 아니다.
그냥 오늘은 시원하게 노래 한가락 불러야겠다.
* * *
하남의 이름도 모를 어느 산의 기슭.
외진 그 산기슭에 드문드문 지나는 사람들을 위해 지어진 하나의 객잔이 있다.
이름도 없고, 묻지 않으면 그곳이 객잔인지 알기도 힘든, 그냥 노파 한 명이 밥이나 해 주고, 잠도 잘 수 있게 방 한두 칸 내주는 그런 초가다.
우리가 그곳을 통으로 빌렸다.
응, 조금 큰 방 하나랑 아주 작은 방 하나가 전부다.
노파는 우리를 위해 야식을 준비 중이다.
하루 머무는데 은자 한 냥 줬더니, 마당에서 키우던 닭을 다섯 마리나 잡았다.
점심도 닭, 저녁도 닭, 야식도 닭이다.
닭값이 미친 듯 뛰어 너도나도 닭을 키운 덕분에, 닭값이 안정을 찾은 지는 꽤 됐다.
아무튼.
백미호가 떠나고 우리끼리 움직인 지 두 달.
그동안 고작 마두 두 명을 잡는 초라한 성과를 거두었다.
약간의 문제가 있어서 그리됐다.
지금 늦은 밤.
우리는 조금 큰 방에 모여 다음에 어떤 마두를 잡으러 갈지, 개방과 하오문에서 보내온 수천 장에 달하는 서류를 검토하며 논의 중이다.
“형님! 이 새끼 보세요. 이거요. 화화마(火火魔)란 놈인데, 벌써 불태운 부락만 열세 개나 돼요. 그것도 찢어지게 가난한 부락만 골라서 불태웠더라고요. 불에 타 죽은 사람보다, 추위에 죽고 굶어 죽은 사람이 이백 명이 넘어요. 당장 이 새끼부터 잡으러 가죠!”
의제다.
벌써 한 시진째, 저렇게 당장 잡으러 가자고 말하는 마두만 오십 명이 넘는다.
대꾸하지 않았다.
“와! 와! 형님! 이 새끼는 진짜예요! 세상은 넓고 미친놈은 많다고 하더니, 이 새끼는 완전 개미친놈인데요? 도둑질하러 가서, 오히려 은자 한 냥을 그 집에 놔두고 온대요. 대신 그 집 가장의 숨통을 끊고 온다네요. 월하마(月下魔)란 놈인데, 이놈 때문에 고아가 되고 과부가 된 사람의 수만 백 명이 넘어요. 당장 잡으러 가요!”
대꾸하지 않았다.
“형님! 형님! 미친! 무림맹 출신의 마두들도 있어요. 이놈들은 떼거진데요? 마을 세 개를 몰살시켰어요. 그 숫자가 삼백 명이 넘어요. 와! 이 새끼들 초상화…… 생긴 거 봐라. 그냥 딱 마두라고 얼굴에 쓰여 있네요. 이놈들부터 잡으러 가죠!”
대꾸하지 않았다.
아니, 한해북이 대꾸했다.
“당분간 무림맹과 얽히는 건 좋지 않아요, 곽 형.”
“아, 그렇지. 뭐, 그러면 다음 놈을 좀…….”
의제의 침묵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런 썅! 어린아이를 납치해서 돈을 요구하고, 돈을 주면 죽은 아이의 시체를 남겨 둔다고 하네요. 죽은 아이만 벌써 스물여섯 명이에요. 이 새끼는 진짜 찢어 죽일 놈이네요. 당장 가요!”
대꾸하지 않……. 한해북이 했다.
“곽 형, 거기 아래 적힌 글도 봐요. 화산파와 종남파에서 이미 고수들을 파견했다고 하잖아요. 우리가 가면 이미 잡혔을 거예요.”
“아, 그렇군요. 하하하. 글씨가 너무 작아서, 하하하!”
천하에 잡아야 할 마두가 너무 많은 것도 문제다.
어느 놈부터 잡아야 할지, 그것을 고르는 것도 이렇게 큰일이 되어 버렸으니 말이다.
그나저나 천무휘.
한 시진째 서류 한 장만 보고 있다.
거기에 적힌 마두에게 골수에 사무친 원한이 있어서?
아니다.
동공이 풀렸다.
멍한 눈으로 그냥 아무런 의미도 없이 서류를 보는 중이다.
생각은 완전 다른 곳에 가 있다.
“천 형?”
“엇? 네. 아! 네. 아이고, 죄송합니다. 제가 또 깜빡 정신을 놓고 있었네요, 하하.”
미안함을 가득 담아 그리 어색하게 웃는 천무휘다.
얘가 요즘 계속 이런다.
두 달 동안 고작 마두를 두 명밖에 잡지 못한 이유도 사실 천무휘 때문이다.
길을 가다가도 갑자기 걸음을 멈추어 멍한 얼굴을 하고 있고, 밥을 먹다가도, 이렇게 뭔가 토론을 하다가도 계속 저런다.
심지어 마두와 치열한 싸움을 벌이는 와중에도 저런 적이 있다.
녀석의 상태가 하도 이상해서 우리의 이동이 늦어져 고작 두 명의 마두밖에 잡지 못했던 것이다.
내가 무슨 생각을 그리하냐고 몇 번이고 물었는데, 천무휘도 매번 자신이 무슨 생각을 그리하고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이 녀석 상태가 날이 갈수록 심각해진다.
아니길, 지금 내가 생각하는 그게 아니길 간절히 바랐다.
혹시 몰라 천무휘의 상태를 자세히 적어 작은 사부와 무적 할매한테 서신으로 보냈다.
두 사람의 답신이 도착하게 된다면, 지금 천무휘가 어떤 상태인지 정확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엇? 누가 오는데요?”
의제가 말했다.
하지만 우리 모두 이미 알고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어둠을 뚫고 쉰 명 이상의 사내들이 거친 숨소리와 함께 좁은 산길을 헤치며 빠르게 우리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녀석들 뭐지?
처호와 처선이 보낸 놈들인가?
그렇게 생각하기엔 꼬락서니가 영 아닌데.
꽤 오랜 시간 누군가에게 쫓긴 것 같은 몰골의 사내들이었다.
곧, 그들이 할매의 초가 마당에 모두 들어섰다.
가까이서 보니 그 꼴이 더더욱 한심해 보였다.
더러운 몰골에 찢어진 옷, 얼마나 먹지 못했는지 피골이 상접했다.
선두에 선 사내가 우리 넷을 번갈아 보는가 싶더니, 이내 시선을 나에게 고정했다.
“현화문의 마악치 도사님 되십니까?”
“그렇소. 내가 마악치입니다만…….”
이 녀석.
딱 그 말만을 묻더니.
척!
나를 향해 무릎을 꿇었다.
곧이어.
처처처처처처척!
마치 군영의 잘 훈련된 병졸이라도 되는 것처럼, 뒤에 있던 쉰 명가량의 사내들 역시 선두의 사내에 맞춰 나를 향해 절도 있는 동작으로 무릎을 꿇었다.
거의 동시에 의제가 내 곁으로 다가왔다.
의제는 다 들리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형님, 이 새끼들…… 그놈들인데요? 방금 제가 말했던 무림맹 출신의 마두들이요. 똑같이 생겼어요.”
의제가 내민 서류.
그곳에는 인물의 특징을 자세히 묘사한 초상화가 여러 장 그려져 있었다.
맞다.
이놈들이 마을 세 개를 몰살시킨 무림맹 출신의 마두들이다.
“무림맹의 십합단 단주 언묵과 단원들이 목숨을 구걸하러 왔습니다!”
하!
도움 좀 받겠다는 말도 아니고, 구걸하러 왔단다.
별 미친놈이 다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때.
단주 언묵이 두 손을 뻗어 서신 한 통을 내게 바쳤다.
처호에게서 온 서신이었다.
(상략)
그렇게 저와 아들은 천하를 돌며 주군의 힘이 되어드릴 인재를 찾아 헤매는 중입니다.
현재는 산동에 은거하고 있는 천안천이(千眼千耳) 공손병이란 저의 오랜 지인의 집에 머물고 있습니다.
제가 귀주 적표산에 머물기 시작한 후, 처음으로 서신을 주고받았던 친구이기도 합니다.
천안천이 공손병은, 그 별호가 말해주듯 천하에 모르는 것이 없다 할 정도로 뛰어난 인재입니다.
황궁에서도 황제가 신하를 다섯 번이나 보내어 그를 맞아들이려 노력하였습니다.
또 무림맹에서도 여덟 번이나 사람을 보내 그를 영입하려 하였습니다.
이 친구를 얻게 된다면, 훗날 주군께 큰 힘이 될 것이 분명하여 지금 보름째 이 친구의 집에 머물며 설득하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 그에게서 가르침을 받았다는 사내의 소식을 듣게 됐습니다.
(중략)
공손병은 그 심성마저 인자해 일백 명이 넘는 고아들을 직접 데려다 먹이고 가르쳤으며, 또 수많은 문파와 세가 그리고 관에 연을 잇게 해 주었습니다.
언묵, 언갈 형제도 그렇게 공손병이 거두어 가르친 아이였습니다.
무공에 재능과 자질까지 있어서 공손병은 아이들에게 무공을 가르친 후 각기 무림맹과 산서 신창양가와 인연을 맺게 해 주었습니다.
이미 이들을 만나셨겠지만, 현재는 마두라 불리며 쫓기는 몸입니다.
(중략)
공손병은 공과 사를 철저히 구분할 줄 아는 자입니다.
두 형제를 애틋이 여기기는 하나, 주군의 신하가 되는 일과 이 형제들의 일은 완전 별개입니다.
공손병을 영입하는 데에는 조금의 영향도 미치지 않을 것이니, 이들을 돕고 말지에 대해서는 오롯이 주군께서 결정하시면 될 것입니다.
(중략)
혹시라도 이들을 돕겠다고 결정하신다면, 부족하지만 제가 한 가지 계책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희생을 최소화할 수 있는 계책으로, 천무휘 대협의 힘을 빌려야 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하략)
-처호, 처선 올림
천안천이 공손병이라.
하!
벌써 그 노인네한테 가 있는 건가?
아니지.
지금은 노인이라고 부르기 좀 그렇지?
아직 쉰 살도 안 됐을 테니까.
공손병은 나의 광천마제 시절, 사패천의 정보조직인 현안전(炫眼殿)의 전주였다.
을오가 젊은 여인들을 간살하고 있음을 나에게 직접 고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내가 처선을 죽인 다음 날, 그의 가족이 모두 자결하였음을 내게 보고한 인물 역시 공손병이다.
처선과 함께 사패천의 역모를 막으려고 끝까지 노력했던 노인네 역시 공손병이다.
내가 처선을 죽이고 사흘째 되던 날, 달랑 서신 한 장만을 남기고 떠났던 인물 역시 그였다.
그가 떠나자 사패천의 고수 수천 명이 그의 뒤를 따라 사패천을 떠났다.
광천마제 시절의 내 일생을 통틀어, 의제가 나에게 유일하게 화를 냈던 이유 역시 그 노인네 때문이다.
녀석이 내 방의 집기를 모두 부수기까지 하며, 처선의 제사를 성대하게 치르고 공손병을 다시 데려오라 하였다.
어찌 모르겠는가?
공손병이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지.
광천마제 시절의 내가 그 능력을 제대로 살려 주지 못했을 뿐이다.
그랬음에도 그는 처선과 더불어 내가 천하제일인이 되어 군림천하 할 수 있게 하는 데 절대적인 공을 세운 인물이다.
광천마제 시절이라면 훨씬 몇 년 뒤에나 인연을 맺게 되는데, 확실히 광천마제 시절과 달리 처호가 죽지 않고 살게 되자 많은 것이 바뀌었다.
그리고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이 녀석들.
공손병의 제자는 아니다.
공손병에게 제자는 없다.
그 관계가 그렇다.
고아를 데려다 먹이고 재우고 입히고, 가르쳤다.
글에 재능이 있는 아이들에겐 글을 가르치고, 무공에 재능이 있는 아이들에겐 무공을 가르쳤다.
거기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중원 전역으로 이어지는 자신의 인맥을 통해 그 아이들이 잘 성장할 수 있는 곳으로 보내 준다고 하였다.
그것이 황궁이건 군부건 아니면 무림맹이나 문파, 세가건.
그래서 이 아이들은 공손병의 제자가 아니고 양자도 아니며, 그저 키우고 가르친 아이라 하였다.
처호의 서신에 그리 적혀 있다.
그렇게 키우고 가르친 아이가 일백 명이 넘는다.
그런데 지금 내 앞에 있는 녀석들.
그 일백 명이 넘는 아이 중에서도 나와 질긴 인연이 있는 놈들인가 보다.
이 녀석들 말이다.
언묵, 언갈 형제.
그리고 십합단.
내가 원래 아는 녀석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