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화
“오빠, 나 무서워.”
항주를 떠나 본격적으로 마두와 대마두 사냥을 나선 지 한 달.
지금까지 마두 세 명과 대마두 한 명 그리고 마적단 한 무리를 제거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오늘은 하남, 그것도 내 고향, 우리 집.
십간산의 갑돌산이다.
내 집, 내 앞마당, 눈을 감고도 어디에 뭐가 있는지 다 아는 곳.
야심한 밤, 우리는 갑돌산을 오르고 있다.
“아잉, 너무 깜깜해. 정말 무서워잉.”
백미호는 대범하고 대담하다.
무공은 익히지 않았지만, 마두나 대마두를 보고 또 눈앞에서 수많은 살육이 펼쳐져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런 어둠 따위를 무서워할 리가 없다.
“팔짱은 빼지. 안 무서운 거 다 아니까.”
“아잉, 진짜 무서워서 그렇단 말이야.”
내 팔을 더욱 강하게 끌어안는 백미호다.
됐다.
이 정도쯤이야.
“백 소저, 하하. 제 팔뚝이 조금 더 든든합니다.”
“제 팔은 길어서 잡기 편해요, 하하.”
의제와 한해북이 연이어 그런 백미호에게 한마디씩을 건넨다.
“전, 저는…… 잘합니다. 경험이 많거든요. 앗! 그러니까 팔짱요. 팔짱 끼는 거 잘해요, 하하.”
천무휘까지.
“전 마 오라버니 팔이 더 편해요. 아니, 든든해요, 호호호.”
우리 녀석들은 시무룩해졌고, 백미호는 내게 더 바싹 붙었다.
그렇게 한 식경을 조금 넘게 갑돌산을 올랐고, 드디어 도착했다.
우리 집, 현화문이다.
“와아아! 여기가 오라버니 집이야? 멋지다. 고풍스러우면서도 뭔가 현묘한 기운이 느껴지는 것 같아.”
백미호가 진짜 감탄이라도 한 것처럼 우리 집을 둘러보며 말했다.
다른 녀석들 역시 마찬가지다.
내가 자란 집, 일백 년 전의 천하제일인이었던 나의 태사조 현화검존이 살던 곳은 이곳이 아니지만, 녀석들이 그것까지 상세히 알 리는 없고.
감동한 얼굴로 그렇게 볼품없는 우리 초가와 마당을 연신 둘러보고 있다.
난 능숙하게 부싯돌로 불씨를 만들고, 곳곳에 불을 밝혔다.
짙었던 어둠이 물러나 고작 집과 마당뿐이라지만, 밝게 빛나는 순간이었다.
“형님, 감동입니다. 형님 집에서 이렇게 묵을 수 있다니요.”
“응, 감동은 조금만 해. 곧 놀라운 일이 벌어질 테니.”
의제 녀석.
아니, 곽우적.
이 녀석!
큭큭큭.
“마 형, 여기가 마 형이 쓰던 방입니까? 저는 어느 방에서 자면 됩니까?”
“방이 딱 두 개예요. 편한 대로 써요.”
한해북.
복건의 아들, 복건의 영웅.
너!
큭큭큭.
“이런 곳에서 살면, 수양을 쌓지 않아도 절로 도사가 되고 우화등선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원하시면 얼마든지 이곳에서 수련해요, 천 형.”
천무휘!
무휘야, 무휘야, 천무휘야!
크하하하하하!
“오빠, 나는 어디서 자? 방 두 개라며? 혼자 자면 무섭긴 한데, 헤헤헤.”
“너도 자게?”
“응? 뭔 소리야? 그럼 나만 밤을 꼴딱 새? 하여간 가끔 저렇게 뜬금없는 소리를 잘한다니까.”
그래, 그렇지.
백미호야!
큭큭큭큭큭큭!
백미호까지 다들 그렇게 방도 구경하고 마당도 구경하고, 어둠 때문에 보이지도 않는 십간산의 풍경을 둘러보는 중이다.
난 그런 네 사람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풉. 큭큭. 흑흑흑. 아하하하하! 아하하하하하하!”
웃음이 나왔다.
정말 웃음이 마구 나와 자제할 수 없었다.
미친 듯 웃고 또 웃고, 나중에는 배꼽까지 잡아가며.
“아하하하! 아하하하하하! 아아하하하하하!”
그렇게 미친놈처럼 계속 웃었다.
내 광소가 계속 이어지자, 우리 집 마당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의제도, 천무휘도, 한해북도, 그리고 백미호도.
하던 행동을 모두 멈추고 시선을 나에게 고정시켰다.
걱정, 의문, 의심, 경계, 두려움이 한데 섞인 묘한 분위기가 그렇게 흐르기 시작했다.
* * *
한 달 전 절강 항주 바닷가.
“그런데 사부님. 그 요괴요. 내 친구 중 누가 그 대요괴에요?”
의제?
의제다.
내가 만약 계효보라면, 분명 의제로 변신해 내 곁에 접근했을 것이다.
왜?
의제에 대한 나의 기억은 오로지 광마일기에 의존한다.
계효보는 그 광마일기를 모두 읽어 알고 있다.
심지어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광천마제 시절, 계효보는 당시 사패천의 간부로 있었다.
의제를 실제로 봤고, 직접 겪어보았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계효보가 나보다 의제에 대해 더 잘 알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계효보가 작정하고 의제로 변신해 내 곁에 머물러 있는 것이라면, 내가 속을 수밖에 없다.
한해북?
한해북이다.
그에 대한 기록은 광마일기에 없다.
느닷없이 나타나 우리와 얼렁뚱땅 함께하기 시작했다.
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상태로 친구가 됐고 동료가 됐다.
의제, 천무휘 모두 광마일기에 그 기록이 한가득이라 할 만큼 넘치지만, 한해북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의제와 천무휘는 내 인연이고 업보다.
하지만 한해북은 광천마제 시절의 나와 그 어떤 인연과 업보도 없다.
그럼에도 현재, 그 인연과 업보를 함께하고 있다.
우연?
아니다.
세상에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이는 필시 무언가에 의해 그가 내 인생에 끼어들게 됐다는 뜻이다.
매우 중요한 문제다.
그리고 그 무언가라는 것이, 계효보일 가능성이 너무나 높다.
내 인생, 인연, 업보의 근원에 가장 가까운 놈이 계효보이기 때문에, 한해북이 계효보라 생각하는 것이다.
천무휘?
천무휘는 아니다.
그런데 만약.
정말 만약!
만약에 천무휘가 계효보라면 말이다.
내 충격은 어마어마할 것 같다.
어쩌면, 그때는 진짜로 내가 마음으로 계효보에게 승복하고 말지 모르겠다.
진짜다.
너무하지 않은가?
이건, 반전도 대반전이다.
그럴 리 없다고 몇 번이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런데 정말!
사부의 입에서 천무휘의 이름이 나오게 된다면.
난, 패배를 인정할 것이다.
그래서 두렵다.
천무휘가 계효보일까봐.
마지막으로 백미호.
백미호일까?
객관적으로 생각했을 때 가장 그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아닌데.
분명 닭과는 다른데.
백미호는 여자가 확실하다.
또 은연중 묻어나는 그녀의 고아한 자태와 품격은 도저히 일이십 년 노력한다고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난, 이제 그녀가 어쩌면 황족이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한다.
그래도 역시나 가능성으로 따졌을 때는 그녀가 계효보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
헷갈린다.
머리가 아프다.
이 미친 닭대가리 새끼.
만에 하나, 정말 내가 반해 버려서 뽀뽀라도 하려 했다면.
또 만에 하나, 내가 술에 취하기라도 해서 밤에 그녀의 방으로……
우웩!
토 나온다.
아니어야 하는데.
합류 시점이나, 억지까지 부려 우리와 함께하려 했던 행동이며, 또 수많은 의문이 그녀를 계효보의 변신체가 아닐지 의심하게 한다.
아!
누구냐?
도대체 누가 닭인 것이야?
“사부님, 이제 말씀해 주세요. 누가, 도대체 누가 대요괴입니까?”
내 간절함을 또 절박함을 담은 질문에 사부가 진지한 얼굴로 답했다.
“네 친구 중…….”
빌어먹을 닭대가리 새끼.
“대요괴는…….”
곱게 죽이지 않을 테다.
“그 아이는…….”
반드시 끔찍하고 비참한 최후를 맞게 해 줄 것이다!
“백 소저란다.”
* * *
“아하하하하! 아하하하하하하!”
내 미친 웃음은 계속 이어졌고.
우리 현화문 마당의 분위기는 더더욱 냉랭해졌다.
결국.
“오빠, 왜 그래? 무서워.”
백미호의 한마디.
아니, 닭대가리다.
놈의 말에 내가 거짓말처럼 웃음을 뚝 그쳤다.
그러자 더더욱 두려운 얼굴을 하는 백미호.
아니, 계효보다.
놈, 연기 많이 늘었다.
사부 아니었으면, 진짜 감쪽같이 속았을 테다.
요괴경까지 속일 줄이야.
하!
대단하다.
그래, 인정이다.
그래도 오늘 죽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야!”
“오, 오빠…… 나 진짜 무서워지려고 해. 그만해.”
“큭큭. 하하하. 미친 새끼. 그 오빠 소리가 잘도 나온다.”
“형님! 갑자기 왜 이러세요?”
“쉿! 의제. 그냥! 그냥 말이야. 지켜보고 있어.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고.”
“형, 형님…….”
팔을 뻗고 손바닥을 펼쳤다.
단호한 동작으로 의제의 말을 제지했다.
의제와 천무휘, 한해북까지.
입을 꼭 닫았다.
대신 눈동자는 크게 떨리고 있다.
지켜봐라, 형제들아.
닭대가리의 정체를 보고 놀라 심장마비나 걸리지 말라고.
“큭큭큭, 야!”
“오빠…….”
“어쭈? 연기 많이 늘었네, 닭대가리. 울어! 울어 보라고.”
“정말 왜 이래. 나, 나 지금 진짜로 무서워.”
“왜? 눈물까진 안 나오나 보지? 쯧쯧. 그래도 뭐. 대단하긴 하다. 지금까지 감쪽같이 날 속인 건 인정한다. 대단해.”
“오빠!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닭이 백미호의 얼굴과 백미호의 목소리로 나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실로 마음까지 탄복하지 않을 수 없는 변신이며 연기다.
와! 무섭네.
하지만 웃음이 난다.
“큭큭큭. 야, 닭대가리. 하나만 묻자. 너 말야. 만약에, 정말 만약에. 푸하하하하하! 아나, 생각만 해도 미치겠네.”
“……?”
“야! 그러니까…… 아! 돌겠네. 그러니까 말야. 너, 만약에 내가 너한테 진짜 반해서. 아니, 속아서. 너한테 뽀뽀하려고 했으면, 너 나랑 뽀뽀했을 거야? 오우! 생각만 해도 토 나온다. 설마 잠자리까지…… 우웩! 와! 이건 입 밖으로 꺼내지도 못하겠다. 너 정말 그것까지 각오하고 나한테 접근한 거야?”
“오빠!”
“야!”
닭이 소리를 질러 내가 더 크게 질렀다.
“그놈의 오빠 소리 좀 그만해! 네 정체 다 탄로 났다고! 이 찢어 죽일 닭대가리 새끼야!”
닭이 부들부들 떤다.
정체를 밝히려는 것일까?
아니다.
부들부들 떨면서 눈물이 또 그렁그렁하다.
미치겠네.
얘가 끝까지 연기다.
그래, 너 대단하다.
그 집념, 그거 하나는 진짜 인정이다.
만약에 네 정체를 다른 사람이 말해 줬다면, 어쩌면 나도 지금 이 순간 헷갈렸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정말, 네가 아닐 수 있다고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닭아, 닭아, 닭대가리야.
네 정체를 말해 준 사람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우리 사부다.
현화문의 이십삼 대 문주 유현.
바로 우리 사부님이라고!
어디서 닭 주제에 오리발이야!
“닭아, 죽을 시간이다.”
“오빠…… 정말…… 정말로 왜 이러는 거야? 내가 무슨 잘못했어? 이러지 마. 내가 사과할게. 응?”
“휴우, 끝까지…… 정체를 숨기겠다? 그런데 어쩌냐? 오늘 닭 잡으려고 손님을 많이 불렀거든. 무를 수 없는 판이 되어 버린 거야.”
“무슨…… 무슨 말이야?”
“무슨 말? 봐. 이게 무슨 말인지. 큭큭큭.”
“…….”
백미호의 아름다운 얼굴을 한 계효보의 얼굴이 굳었다.
우리 녀석들까지 모두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이다.
난 그런 그들에게 미소를 지어 보인 후, 큰 목소리로 외쳤다.
“사부님! 작은 사부님! 우 여협! 송암 도장님! 아미삼검 여협! 이제 나오시죠!”
쉬이이이이이이이이이익!
타타타타타타타타탓!
나타났다.
마치 어둠 속에서 갑자기 만들어진 것처럼, 그렇게 이 시대 최고의 고수들이 등장했다.
그 거짓말 같은 신법과 등장에 우리 녀석들도 크게 놀란 얼굴을 했다.
하지만 어디 계효보만 하겠는가?
자기 죽을 날이 오늘인 것을 직감이라도 한 모양이다.
눈동자에는 대지진이 일어났고, 온몸은 두려움에 사시나무 떨듯 격하게 떨어대기 시작했다.
“큭큭큭. 아하하하하하! 닭아! 닭아! 곱게 목을 내놓아라. 네 닭고기는 먹지 않고 좋게 화장해 주겠다. 아하하하하! 아하하하하!”
나의 조롱과 놀림.
하지만 계효보는 엄청난 두려움 때문인지 대꾸조차 하지 못했다.
연신 크게 떨리는 눈으로 사부와 작은 사부, 무적 할매 등을 번갈아 볼 뿐이었다.
일곱의 노고수들은 이미 일곱의 방위를 점하여, 닭이 어떠한 수를 쓰더라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방진의 효과를 담은 위치에 자리하고 있었다.
또, 계효보가 어떠한 수로 공격해 오더라도, 그 즉시 목을 따버릴 만반의 태세를 갖추었다.
어찌 아니겠는가?
사부의 말마따나, 요괴의 왕인 대요괴급인데 말이다.
이미 작은 사부나 무적 할매, 송암 도장, 아미삼검 모두 이 사실을 알고 있다.
절대, 계효보를 만만히 보고 있지 않다.
전력을 다할, 움직이는 순간 자신이 끌어낼 수 있는 모든 힘을 끌어내어 닭의 목을 베어버릴 것이다.
“계효보, 마지막 유언. 말해라.”
계효보는 답이 없었다.
자신의 죽음을 직감했는지, 얼굴이 창백하게 변해 덜덜 떨며 사부와 작은 사부 등을 볼 뿐이었다.
“유언, 없구나. 그럼…… 이제 끝이다. 사부님!”
내가 큰 목소리로 사부를 불렀다.
사부 역시 계효보를 강하게 경계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곧, 사부에게 닭의 마지막을 부탁했다.
“닭! 잡아 주세요.”
계효보에 대한 사형 선고다.
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사부가 움직였다.
안녕, 계효보.
잘 가라.
내가 그렇게 속으로 계효보에게 작별 인사를 하는 사이, 우리 사부가 곧바로 움직여…… 어?
사부가 계효보에게 가는 게 아니라 나에게 온다.
왜지?
그것도 민첩한 움직임이 아니라, 엉거주춤 어디 몸이라도 불편한 노인인 양 그렇게 슬금슬금 옆으로 걸어서 나에게 온다.
여전히 시선은 계효보를 향하고 있는데, 왜 나한테 오는 것일까?
그렇게 사부가 이상한 걸음으로 내 곁에 바싹 붙었다.
얼굴까지 내 귀에 바싹 데는 게 아니겠는가?
왜?
도대체 왜?
뭐가 문젠데?
나도 뭔가 기분이 쎄했다.
그때 사부의 음성이 들렸다.
“악치야, 근데 너 왜 아까부터 호요(狐妖, 여우 요괴)를 닭이라고 부르는 것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