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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두가 된 이유-110화 (110/245)

110화

감찰사의 감찰 연기 명령이 떨어졌다.

해수장위사가 다시 해군의 지휘권을 얻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우리들의 작전은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속전속결로 진행되었다.

관군과 의병 그리고 우리를 포함한 무림인들까지 연합한 대대적인 공격의 준비가 완료되었다.

이미 대두장과 해수군위부의 정찰대가 왜국 해적들이 근거지로 삼고 있는 장소는 파악해 두었다.

고산도(高山島), 달리 고산국(高山國, 대만)이라고도 불리는 복건 앞바다의 커다란 섬이다.

왜국의 해적들은 총 네 개로 나뉘어 고산도 이곳저곳에 나뉘어 근거지를 삼고 있다.

우리는 만반의 준비를 모두 마쳤다.

야심한 밤이 올 때까지 기다린 후, 나와 천무휘는 해수군위부에서도 노를 가장 잘 젓는 병사 스무 병이 모는 괘속정을 타고 고산도로 향했다.

고산도와 대략적으로 삼백여 장 정도를 남기고, 나와 천무휘는 바다로 몸을 날렸다.

등평도수를 펼쳐 고산도로 달렸다.

바다 위를 달리며 기감을 펼쳐 빠르게 적들의 전력을 파악했다.

우리가 향한 곳은, 네 개로 나누어진 해적들 중에서도 그 수가 가장 많은 본진이다.

해적선 오십여 척.

사천오백 명가량의 해적들이 기감에 잡혔다.

그 중, 그 기운이 강력하고 또렷한 이들도 감지할 수 있었다.

무공을 익히고 단전에 내공을 쌓은 중원 무림의 무인들이다.

오십여 명이다.

이는 고산도로 가까워질수록 더욱 또렷하게 내 기감에 감지되었다.

-천 형.

-네, 마형. 지시한 대로 저는 붙잡힌 여인들과 해수장위사의 오대독자, 그리고 대두장 장주의 외아들 탁허항을 찾겠습니다.

-부탁합니다, 천 형.

-네. 그러면 이따가 다시 만나요.

-네, 천 형.

고산도 해변에 도착한 나와 천무휘는 그렇게 곧바로 헤어졌다.

난 소증승을 찾아야 한다.

그가 이곳의 최고수고, 그만 제거하면 오늘의 승리는 더더욱 수월하고 확실해진다.

왜국의 해적들에게 일부러 자신의 강함을 자랑하려 하는 것일까?

내가 그를 찾는 것은 조금도 어렵지 않았다.

또렷하게, 아주 강렬한 기운이 일백 장 밖에서까지 느껴졌기 때문이다.

난 은형술을 극대로 펼쳐, 빠르면서도 조용히 그가 있는 곳으로 접근했다.

* * *

야심한 밤의 화려한 막사.

그 안에 겁을 잔뜩 먹은 반라의 여인 다섯 명과 늙은이가 있었다.

소증승이다.

슬금슬금 살기까지 제대로 피워가며 여인들을 정신적으로 제압한 후 술을 마시며 쾌락을 즐기는 중이다.

광마일기에도 나쁜 놈이라고 나오더니, 실제 봐도 나쁜 놈 맞다.

그냥 딱 얼굴에 나쁜 놈이라고 쓰여 있다.

무림에서는 대마두로 분류되는 놈이기도 하다.

당장 때려 죽여야 하겠으나, 놈에게서 얻어야 할 게 있다.

생포해야 한다.

쉬이이이익.

출검과 동시에 막사의 가죽 천을 찢고 안으로 돌입했다.

곧바로 소증승이 품에 끼고 있던 반라의 두 여인을 밀치고 내게 맨손을 뻗었다.

검객인 소증승이지만, 너무 갑작스러운 나의 기습에 차마 검을 잡을 여유조차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다.

피윳!

그의 소매 안쪽.

그곳에서 작은 파공성이 들리는가 싶더니, 이내 눈으로 보기조차 힘들 정도로 가느다란 은침이 나를 향해 날아들었다.

챙!

당연히 나의 광천검으로 튕겨 냈다.

그리고.

찢어 죽일 대마두 늙은이.

그 모습을 보고 놀라기는커녕, 웃는다.

왜?

놈이 쏜 은침은 칠연절명침(七連絶命針)이니까.

수십 년 전 사천당가에서 만들어져, 사천당가에서조차 그 위력에 놀라 쉬쉬했다던 암기가 바로 칠연절명침이다.

그게 어떻게 놈의 손에 들어갔는지는 몰라도, 확실히 광마일기에 칠연절명침에 대한 설명이 없었다면 나도 당했으리라.

은침 하나를 완전히 쳐 내어 마음을 놓은 사이.

그보다 더 빠르고 더 강맹한 은침 여섯 개가 곧바로 내 몸 구석구석을 향해 쏘아져 들어왔으니 말이다.

채채채채채챙!

당연히 나는 이를 알아 대비하고 있었고, 연이어 날아든 여섯 개의 은침 모두를 광천검으로 튕겨내 버렸다.

곧바로 놀란 눈을 뜬 소증승의 목을 검으로 찔렀다.

정확히 검 끝의 한 치가 그의 목을 꿰뚫었다.

치명상은 아니다.

죽기 바로 직전의 상태.

설명은 길었지만, 정말 눈을 한 번 깜짝일 시간보다 훨씬 더 짧은 시간 안에 이 모든 상황이 이어졌다.

목이 한 치나 찔린 소증승은 겁에 질려 꿈쩍도 하지 못했다.

쉬유우우욱!

타타타타타타탓!

반라의 다섯 여인에게 지풍을 날려 수혈을 점했다.

여인들은 곧,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며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오랜만이다, 소증승."

"나, 나를…… 아는…… 컥!"

마혈을 제압했다.

"묻는 말에 답하면 죽이지 않겠다. 약속한다."

아혈을 제압하지 않아 대답할 수 있음에도, 그는 눈을 커다랗게 뜨고는 고개를 마구 끄덕이기만 했다.

언제나 그렇듯, 나쁜 놈들이 제 목숨을 더 아끼는 법이다.

"네가 납치한 해수장위사의 아들. 어딨지?"

"해적들 본영 뒤쪽 산기슭. 통나무로 대충 만든 스무여 채의 오두막 맨 왼쪽. 잡아 온 여인들을 가두어둔 그곳입니다, 대협. 살려 주십시오."

"대두장 장주의 아들 탁허항. 그는?"

"모릅니다."

"죽는다."

"정말, 정말입니다! 이름조차 처음 들었습니다."

놈은 거짓말을 하지 않고 있다.

사실이다.

왜지?

왜 탁허항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이지?

일단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난 놈의 아혈까지 제압한 후, 목덜미를 잡아 해적의 본영을 빠져나갔다.

* * *

고산도의 외딴 바닷가.

해변에서 일백여 장 떨어진 거친 파도 위.

짙게 깔린 어둠 속으로 작은 배 한 척이 위태위태하게 떠 있다.

아무리 시력이 좋은 사람이라도, 이 어둠과 거리라면 내공으로 시력을 극대화하지 않고는 절대 발각할 수 없을 것이다.

-형님, 여깁니다.

의제다.

내가 의제에게 내린 비밀 임무가 이것이다.

대두장주가 추천한 뱃사람 다섯 명이 그런 의제를 돕고 있다.

난 배 위로 혈도를 제압당한 소증승을 짐짝 던지듯 휙 하고 던졌다.

무려 일백여 장을 그렇게 날아간 소증승.

척!

의제가 정확히 받았다.

-곧 돌아오겠다.

-넵!

난 다시 어둠을 가르며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 * *

소증승이 말한 스무여 채의 오두막.

그곳은 해적들이 임시로 지은 감옥이었다.

그리고 이미 그곳에는 천무휘가 몸을 숨긴 채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다.

-마 형, 야귀금강은요?

-잡아서 의제에게 넘기고 왔습니다. 이곳 상황은 어떤가요?

-살아남은 여인들은 이백여 명이 고작입니다. 일천 명의 여인들이 잡혀 왔다는데, 나머지 팔백 명은……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천무휘가 심란했는지 전음을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이었다.

-맨 왼쪽에 있는 통나무 감옥이 이상합니다. 다른 곳과 다르게 딱 한 사람, 그것도 젊은 남성 한 명만 갇혀 있습니다.

-해수장위사의 오대독자라고 하더군요.

-야귀금강이 그리 말했습니까?

-네.

-그러면 대두장주의 아들 탁허항은요?

-모른다고 합니다. 이름도 들어 보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거짓말하는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직접 찾아봐야겠군요. 살아 있어야 한 형이 슬퍼하지 않을 텐데요.

-그러게요. 일단 계획대로 움직여야 할 것 같습니다.

-네. 고수들의 위치도 어느 정도 파악해 두었습니다.

나와 천무휘는 빠르게 작전을 논의한 후, 곧바로 몸을 날렸다.

인질들을 구하지 않았다.

둘이서 인질들을 데리고 적들과 싸우는 것은 무리다.

오히려 적들을 은밀히, 또 빠르게 공격하여 혼란에 빠뜨리는 게 인질들을 더 안전하게 할 수 있다.

나와 천무휘는 각기 동쪽과 서쪽으로 갈라진 후, 다시 해적들 본진을 향해 움직였다.

* * *

야귀금강 소증승, 초절정.

그 외 초절정급 고수는 없다.

그나마 이곳에서 나나 천무휘의 칼을 몇 번이라도 막을 수 있는 절정급 고수가 셋 있었다.

내가 한 명, 천무휘가 둘을 눈 깜짝할 사이 기습으로 제거했다.

하지만.

"적이다! 침입자다!"

댕댕댕댕!

대대대대대대대대댕!

침입을 알리는 북소리가 울려 퍼졌고, 곧바로 사방에 횃불이 켜지며 주위를 환하게 비추었다.

나와 천무휘는 주저하지 않았다.

적들이 막사에서 튀어나와 소리를 지르며 병장기를 챙기는 그 순간까지도, 고수들과 수장들을 찾아가 죽이고 또 죽였다.

-지금입니다, 천 형!

내 전음에 천무휘가 적들을 죽이던 동작을 잠시 멈추고 품속에서 폭죽을 꺼내 쏘아 올렸다.

해수군위부에서 받은 제대로 된 폭죽으로, 그 위력이 실로 무림의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했다.

무려 반 각 정도나 하늘에 떠, 마치 대낮처럼 사방을 환하게 비추었으니 말이다.

한해북이 이끄는 선봉대와 해수장위사가 이끄는 본진이 곧바로 움직일 테다.

그때까지 나와 천무휘는 최대한 죽일 수 있는 고수는 다 죽여야 했다.

-마 형! 무림인들이 사방으로 도주했습니다.

-천 형은 그들을 쫓아가 제거하세요. 한 놈도 살려 두어선 안 됩니다.

-넵!

중원 무림을 배신하고 해적들에게 붙어 백성들의 피를 빨아 먹는 놈들이다.

애초에 그놈들에게 의리 따위가 있을 리 없다.

나와 천무휘가 무림 고수와 해적의 수장들만 골라 죽이는 걸 눈치채고, 곧바로 도주하는 놈들이었다.

그놈들을 천무휘가 곧바로 뒤쫓았다.

난 여전히 남아서 적들과…… 하아!

젠장.

포위됐다.

확실히 그냥 그렇고 그런 해적이 아니다.

제대로 된 군병이며, 수많은 전투를 치른 군졸들이다.

이제 절반 정도밖에 남지 않은 지휘관들의 명령에 나를 포위하고 도검과 화포를 겨누었다.

화포에 맞을 일은 없다.

내 움직임을 따라올 수 없을 테니.

다만, 이 미친놈들이 겹겹으로 날 포위했는데, 이건 쪼금 곤혹스럽다.

지휘관들의 명령에, 자신이 죽을 걸 알면서도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뭐, 그래봐야 왜구들이다.

쉬이이이이이익.

파파파파파팟!

적들의 머리 위를 날아 다시 장수 급 세 놈의 목을 베었다.

그사이 나를 향해 창을 찔러 오던 왜구 해적 열셋의 목까지 베었다.

또 몸을 날렸다.

내가 향하는 방향을 미리 짐작하고, 장창과 단창을 마구 던지는 왜구들이다.

모두 광천검으로 부숴 버리고 튕겨냈다.

다시 다섯 명의 장수들을 죽였다.

나의 움직임은 멈추지 않고 이어졌다.

한해북이 선봉대를 이끌고 도착하기 전, 그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지금 내가 더 싸워야 한다.

다시 두 놈의 장수 목을 베고 졸병 스물셋의 숨통을 끊고 움직이려 할 때였다.

쉬이이이이이익!

채채채채채채채채챙!

퍼퍼퍼퍼퍼퍼퍼퍼퍼펑!

최대한 내공을 아끼려고 강기는 쓰지 않았는데.

암기, 표창이다.

하나도 보이지 않던 그것이 갑작스레 삼백여 개가 나를 향해 날아 들었다.

그 위력도 실로 대단했다.

광천검으로 다 막을 수 없다는 판단에 막대한 내공까지 끌어 호신강기를 펼친 이유다.

적들이 던진 표창의 위력이 대단하다 하나, 그건 보통 사람들을 기준으로 말한 것이고.

당연히 내 호신강기를 뚫을 수는 없다.

호신강기에 닿자마자 힘을 잃고 땅으로 이백여 개의 표창이 땅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다.

일반 병졸들 사이에서, 또 땅속에서, 다시 나무 위에서, 사방에서 온몸을 검은 천으로 두른 자들이 기습을 해 왔다.

인자(忍者)다.

왜구들은 닌자라 부른다고 하였다.

대두장주와 해수장위사에게서 몇 번이고 들은 왜구의 살수들이다.

그 위력이 실로 대단해, 해군은 물론 대두장을 위시하여 뭉친 의병들과 무림인들까지 수없이 죽었다고 했다.

하지만.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사방으로 검강을 쏟았다.

"으아아아아아아악!"

"끄아아아아악!"

닌자들과 해적들을 향해 가리지 않고 마구 검강을 쏟아부었다.

아!

내가 좀 과했다.

사실, 사천오백 명 정도의 해적은 나 혼자서도 소탕할 수 있다.

그건 천무휘도 마찬가지고.

그렇지만 적당히 해야 했다.

왜?

우리 한해북 녀석, 복건에서 영웅 소리 좀 듣게 해 줘야 하지 않겠나?

녀석이 활약할 해적들은 남겨 둬야 했다.

상황을 빠르게 파악했다.

사천오백의 해적들 중, 다행이다.

삼천 정도는 아직 숨이 붙어 있다.

멀쩡히 싸울 수 있는 해적들도 이천오백 정도는 되고.

그중 닌자도 수십 명은 아직 살아 있다.

무공을 익혀 내공으로 힘을 쓰는 내가고수는 없다.

마두들은 모두 달아나 천무휘가 쫓고 있으니, 됐다.

이 정도면 딱이다.

"헉헉헉! 끄으으으윽."

일부러 거친 숨을 몰아쉬며 신음성을 흘렸다.

그러자 곧바로 해적들이 미끼를 물었다.

"놈이 지쳤다! 놈을 죽여라! 놈의 목을 베는 자에게 소장군의 자리와 여인 스무 명, 금 일백 냥을 하사하겠다!"

"와아아아아아!"

"죽여라!"

조금 전까지 지옥에서 튀어나온 악귀라도 본 얼굴을 하던 해적들이, 내 감쪽같은 연기에 속아서 일제히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난, 여전히 지친 얼굴로 도주했다.

잡힐 듯 말 듯, 그렇게 놈들과 아슬아슬한 거리를 유지하며 바닷가를 향해 달리고 또 달렸다.

어느새 날이 밝아 오기 시작했고, 내 눈에 고산국의 드넓은 바다가 들어왔다.

그냥 바다가 아니다.

한해북이 이끄는 사십여 척의 크고 작은 함선이 이곳 도산도의 바닷가에 닿아 있었고 또 다가오고 있었다.

선두의 장군선.

그 장군선의 뱃머리에 한 자루의 칼을 쥔 채 당당히 서 있는 사나이.

한해북이다.

그가 출검과 동시에 바닷가로 몸을 날리며 내공까지 실은 음성으로 외쳤다.

"적들을! 섬멸하라!"

"와아아아아아아아아!"

곧, 한해북과 일천이 넘는 중원 무림의 고수들 그리고 해군의 정예들이 칼과 창을 휘두르며 해적들과 격돌했다.

그리고 그 중심.

마치 한 마리 성난 호랑이가 양떼에 뛰어든 것과 같이 무지막지한 위용을 떨치는 자가 있다.

한해북이다.

오늘이 바로, 그가 복건의 영웅이 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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