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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두가 된 이유-109화 (109/245)

109화

진짜.

진짜로!

황제가 임명한 늙은 대장군의 면상을 주먹으로 갈겨 버릴 뻔했다.

간신히, 정말 간신히 참았다.

"어험, 그렇게 노려보면 어쩔 건데? 무릇 진정한 고수는 그 눈빛부터…… 어험. 어험. 노려보지 말라니까. 나도 확실히 믿을 수 있는 고수가 필요해서 이러는 것이다."

아! 참자.

그래, 내가 이 한심한 노인네랑 내가 고수니 아니니를 다툴 필요 없지 않겠…… 아나!

썅!

욕이 절로 나온다.

얼굴이랑 고수랑 뭔 상관인데?

설민민에게 한 소리 들었던 의제의 심정이 조금은, 아니 아주 많이 이해된다.

"됐고. 무슨 도움이 필요한지 모르지만, 천무휘가 나서게 해 줄게. 그러니 해군을 움직여 줘. 물론, 당신은 빠져. 대두장에 지금 절강, 복건, 광동의 인재들이 다 몰려 있고, 당신과 같은 대장군은 아니지만, 해군에 평생 몸담아 수많은 공적을 세운 장군 출신도 여럿 있어. 그들이 당신의 해군을 지휘할 거야."

"그건 아니 될 말이다."

"도움…… 필요하지 않아?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며 목매달아 죽을 만큼 간절한 도움이 필요한 것 같았는데?"

"그래도…… 아닌 건 아니다."

"……?"

"황제의 군대는 황제께서 임명한 자만이 통솔할 수 있다. 만약…… 이를 어기면 반역이고. 그 순간, 복건은 물론 절강, 광동까지 해적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수많은 이들이 죽게 될 것이다."

"음……."

"그리고."

"……?"

이 노인네, 갑자기 분위기가 바뀌었다.

뭐가 이렇게 근엄하고 위엄이 있어?

없던 게 갑자기 생긴, 뭐 그런 느낌이었다.

"네가 지금 나를 얼마나 우습게 보는지 알지만, 이 땅 위에 나만큼 해군을 제대로 지휘할 수 있는 인물은 없다. 바다 위에서 나는…… 왕이다."

이 인간이 심각한 상황 속에서 장난치는 걸까 싶어서 욕을 한마디 해 주려고 했는데, 못 했다.

눈빛이.

그의 늙은 눈빛에서.

진심이 보였다.

또 그 위엄이 느껴졌다.

진짜 대장군이 맞긴 맞는 모양이다.

"좋아. 그럼 천무휘가 나서서 당신의 일을 도와주면, 해군을 움직여 주겠다는 건가?"

"그, 그게……."

빌어먹을 노인네!

또 불안해한다.

조금 전 보였던 위엄은 다시 온데간데없다.

미치겠네.

뭐야?

다중인격이야?

"휴우, 이보시오, 대장군 나으리. 일단 그 사연부터 들어봅시다."

"그게…… 그게 말이다. 이걸…… 에휴."

"말, 말이나 좀 해보라고.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 라는 말이 있잖아. 그러니 무슨 사연인지 들어나 보자고."

"그런데…… 너 왜 아까부터 자꾸 반말이냐? 내가 누군지 몰라?"

"알아. 아이처럼 엉엉 울며 아버지, 조상님들 죄송합니다. 이러면서 목매달려고 했던 한심한 노인네."

"어험. 어험!"

그래도 부끄러운 건 알았는지, 헛기침을 크게 두 번 한 후에야 내 시선을 피하며 입을 열었다.

"내가 사대독자고 내 아들이 오대독자다."

갑자기 뭔 소리를 하는 거지?

그냥 우선 들었다.

"내 아들은 나를 닮아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며 전장을 지휘했다."

"백전백패라 들었어. 거짓말은 하지 말고."

"우리와 왜구의 해적들이 싸움을 벌인 건 정확히 여덟 차례. 나머지 싸움은 우리 해군이 아닌 무림인들과 벌인 전투였다. 그리고 왜국의 해적들은 원래 이 지역에 있던 해적들과 완전히 다른 양상의 싸움을 벌였다. 유격전 형태로 유인, 기습, 교란 등을 벌이는 형태였지. 그제야 놈들을 어떻게 소탕할지 감을 잡았는데…… 휴우."

해수장위사는 당시를 생각하며 인상을 크게 구긴 후 다시 말을 이었다.

"정확히 석 달 전이었다. 나와 아들은 왜국의 해적들을 상대로 대대적인 반격을 계획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 밤. 그놈이 내 아들을 데리고 갔다. 어마어마한 고수였다. 모두가 잠들었지만, 우리의 경계는 철통같았다. 그런데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처럼 그렇게 감쪽같이 내 아들을 데리고 간 거야. 오대독자를. 오대독자라고."

"누군지 확인했어?"

"야귀금강 소증승이란 무림인이다. 무림과 연이 있는 부장군을 통해 알아봤더니, 무림에서는 대마두라 불린다고 하더군."

"아들을 구할 생각은?"

"여러 가지 생각을 하던 중이었다. 물론, 제정신이 아니었지. 지금도 그렇고. 그런데 그때, 그날 밤 그가 날 찾아왔다. 마치…… 오늘의 너처럼."

마치 내가 소증승이라도 된다는 것처럼, 아주 증오가 가득한 눈으로 나를 한번 째려본 후 말을 이었다.

"난 곧바로 칼을 뽑아 그놈을 죽이려 했다. 그런데…… 그놈이 웃더군. 황제께서 하사하신 보검을 마치 나뭇가지처럼 가볍게 부러뜨리더니, 다른 한 손을 펼쳐…… 강기라니. 허허! 세상에 손바닥 위로 야명주 크기의 무시무시한 기운을 내뿜는 강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만들어 나에게 보여 주……."

"이렇게 말이지?"

"허거거거거거거걱!"

내가 오른손을 펼쳐 그 위로 주먹만 한 크기의 강구(剛球, 둥근 공 모양 형태의 강기)를 만들었다.

그러자 의자에 앉은 채 뒤로 넘어갈 듯 놀라는 해수장위사였다.

"너…… 너도 고수였구나?"

"아까 말했잖아. 나도 고수라고."

"그, 그래. 그래. 이젠 믿는다. 고수구나."

"그렇다니…… 휴우. 그냥 하던 말 계속 이어."

"그래. 알았다. 그러니까…… 내가 어디까지 말을 했지? 맞다. 그놈이 나를 협박했다. 아들을 살리고 싶으면, 군함을 모두 이끌고 해적들이 파놓은 함정으로 데리고 오라고. 그 의미는 분명 우리 해군을 전멸시키겠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아무리 오대독자라 하지만, 내 어찌 대장군으로 내 병사들을 사지로 몰아넣을 수 있겠느냐?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놈이 가만있지 않았을 텐데?"

"뭐, 여차여차 합의를 봤다. 아들을 살려 두는 대신, 해군이 해적들에게 피해를 입히게 되면, 그 피해에 따라 아들의 손가락이며 팔다리를 자르겠다고."

"그래서 석 달 동안 두문불출하고, 아무도 안 만나 주고, 군사들을 병영 안에 꼭 가둬 두기만 한 거야?"

"오대독자다. 아들이 죽으면 우리 가문의 대가 끊긴다. 어찌 그 중함을 너는 모르느냐?"

"백성들은 죽어 나가도 되고? 지급 산 채로 잡혀 간 여인들만 일천여 명이야. 당신 덕분에."

"아들은…… 오대독자다."

진짜 한 대 치고 싶다.

하지만 저 노인네의 심정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먼 훗날 세상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겠지만, 이 시대에 대를 잇는 일은 그 무엇보다 중요한 일로 치부되는 게 현실이니 말이다.

물론,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에게 가문이랄 것도 없고.

뭐, 만에 하나 우리 현화문의 명맥이 끊긴다면, 그건 나도 또 목숨까지 걸어 어떻게든 이어 가려 하겠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은가?

노인네의 고집과 멍청함에 한숨도 나오고, 화도 치밀었다.

"가문의 대를 끊게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황제의 명을 거역할 수도 없고. 석 달 동안 정말 나는 지옥 속에서 살았다."

"그런데 왜 오늘 죽으려 한 것이지?"

"내일…… 자정이 지났으니 오늘이군. 내가 석 달 동안 출병을 하지 않자, 황제께서 감찰사를 이곳에 파견하셨다. 감찰사가 도착하는 날이 오늘이다. 아마…… 난 죽음을 면키 힘들 것이다."

"결국 이도 저도, 아무것도 해 보지 못하고 죽을 신세가 된 거네?"

"그, 그렇다."

"한심하다, 정말 한심해. 이런 인간을 대장군이라고 믿고 희망을 걸고 있는 백성들이 다 불쌍하다."

"나도…… 나도 정말 잘해 보고 싶었다. 아들이 오대독자만 아니었어도…… 아들을 죽게 하면 조상 뵐 면목이 없고. 출병을 하지 않아 고통받는 백성들의 울부짖음을 내 어찌 못 들었겠느냐!"

"퉤!"

침을 뱉었다.

얼굴에 정확히 뱉었다.

울먹울먹 그 감정이 격해지던 해수장위사가 놀란 눈을 떠 나를 보았다.

"돌을 던지고 몽둥이 찜질하지 않은 걸 다행으로 생각해.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당신 때문에 죽은 백성들을 대신해 최소한의 화풀이를 한 것이니까."

해수장위사는 고개를 떨구었다.

끄덕끄덕.

떨군 고개로 연신 끄덕이며 눈물을 툭툭 흘렸다.

그래도 자기가 잘못한 걸 다는 아니라도 조금은 아는 모양이다.

됐다.

지금은 잘잘못을 따질 시간이 아니다.

그래서 얻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하나의 생명이라도 더 살리려면, 미래를 계획해야 한다.

"약속한다. 아들이 살아 있다면, 반드시 구한다. 천무휘와 내가 힘을 합쳐, 어떻게든 당신 아들 오대독자를 구해 주겠다."

해수장위사가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힘을 잃은 눈이다.

내가 말을 이었다.

"당신은 해군만 출병시키면 돼. 이미 계획은 대두장에서 모두 수립했어. 당신과 황군은 본진이 되어 우리를 지원하기만 하면 된다고.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당연히 할 것이라 생각했다.

천무휘와 내가 아들까지 구해 준다고 했으니 당연히 그러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해수장위사는 힘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감찰사가 오면. 이제 몇 시진 남지도 않았군. 오전에 올 것이 확실하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감찰 조사를 받게 됨과 동시에 해군 지휘권을 잃게 된다."

"이봐."

"……?"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 아들도 구하고, 당신의 실추된 명예는 물론 황제로부터 큰 상까지 받게 해 줄 테니까."

난 날이 밝기 전까지 해수장위사와 많은 이야기를 나눈 후, 하나의 물건까지 받은 후에야 자리를 떠났다.

* * *

이른 아침.

나와 천무휘, 한해북, 의제가 대두장의 정문을 나섰다.

백미호는 대두장에 남겨 두고, 우리 넷만 움직였다.

오랜만에 그럴듯하게 꾸미기까지 하고, 대두장에서 멋진 말까지 네 마리를 빌려 그렇게 움직인 행차다.

반 시진 만에 우리 넷은 어제 내가 은밀히 들렀던 해수군위부 진영에 도착할 수 있었다.

경계가 어젯밤보다 훨씬 더 삼엄했다.

분위기까지 얼마나 살벌했는지, 그 앞을 지나는 백성이 한 명도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우리 넷은 더없이 당당한 모습으로 해수군위부의 정문까지 말을 몰아 다가갔다.

곧, 수십에 달하는 군병들이 경계를 시작했다.

하지만 곧바로 그들 사이로 꽤 직책이 높은 자가 빠르게 우리를 향해 다가왔다.

해수장위사 노인네가 일 처리는 제대로 한 모양이다.

"해수군위부의 부장 윤판일입니다. 혹시 네 분께서…… 수룡검 천무휘 대협과 그 일행분들이십니까?"

내가 미리 당부한 대로 천무휘가 앞으로 나섰다.

"그렇소."

"죄송하지만, 신분을 확인할 수 있겠습니까?"

세 성의 해군을 통솔하는 부장군이면 정말 높고 높은 장군이다.

하지만 그는 천무휘를 향해 말 그대로 한없이 공손한 얼굴로 그리 물었다.

천무휘는 역시나 아무렇지도 않게 품에서 하나의 신패를 꺼내 그에게 건넸다.

어제 새벽 내가 해수장위사에게서 받은 장위추대패다.

"어서! 어서 안으로 드십시오. 제가 모시겠습니다."

그다음부터는 일사천리였다.

우리는 해수군위부의 외영은 물론 내영까지 곧바로 진입하였다.

곧, 어제 내가 은밀히 잠입한 해수장위사의 커다란 전각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안에서 여러 사람이 마침 우리를 기다렸다는 듯 나와 모습을 드러냈다.

맨 앞선 두 사람.

한 명은 황제가 보낸 감찰사고, 한 명은 해수장위사 노인네다.

곧, 해수장위사는 더없이 커다란 목소리로 자신 있게 감찰사를 향해 말했다.

"하하하! 감찰사 대인!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말씀드렸다시피 적진에 괴물 같은 고수가 있어서 아군의 피해가 실로 막대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를 상대할 고수가 필요했기에 기다렸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적들이 모르게 최대한 은밀히, 조용히 일을 진행시켰습니다. 그리고 이제 제가 그렇게 학수고대하던 이들이 왔습니다. 하하. 감찰사 대인, 이 젊은 영웅들이 누군지 아십니까?"

감찰사는 시선을 우리에게 둔 상태로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에 해수장위사는 더 자신 있는 목소리로 우리를 소개했다.

"이 젊은 영웅들이 바로 무림에 그 명성을 진동시키는 수룡검 천무휘 대협과 친구분들입니다. 내 오늘 당장, 해수군위부의 전군을 이끌고 수룡검 대협과 함께 왜국의 해적들을 모두 말살시킬 것입니다. 두고 보십시오, 감찰사 대인! 크하하하하! 크하하하하하!"

황제가 보낸 감찰사를 향해 자신의 가슴까지 쾅쾅 쳐 가며 아주 신이 나 목소리를 높이는 해수장위사 대장군이었다.

이제 시작이다.

해수장위사는 오대독자를 구하며 명예까지 회복하고, 한해북은 복건의 영웅이 될 것이며, 나는…… 요괴경을 얻는다.

내가 그리 만들 것이다.

물론, 모든 게 다 내 계획대로 된다면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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