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마두가 된 이유-106화 (106/245)

106화

대두장에서도 외원.

그 외원에서도 가장 후미진 곳.

그곳에 일꾼들의 숙소가 있었다.

다행히 한해북의 부모님은 그 일꾼으로 일한 기간이 오래되고, 성실함과 능력 또한 인정받아 한 채의 작은 초가를 따로 배정받아 살 수 있었다.

우리는 그곳에 들어와 한해북의 어머니가 내온 차를 마시며 함께 자리하고 있는 중이다.

"아버지, 생신 축하드립니다. 고려에서 직접 구해 온 산삼이에요. 백두산 산삼이요. 어머니 것도 있어요. 하하."

"이 녀석, 네가 돈이 어디 있다고 이런 걸 사와?"

육백 년 근 산삼은 꺼내지 않았다.

대신 백 년 근 산삼 두 뿌리를 꺼내 부모님 앞에 놓았다.

한해북의 아버지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감격에 눈물까지 글썽이고 있었다.

어머니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도 손님을 모시고 왔으면, 소개 먼저 해야 하는 것이 예의니라, 해북아."

"앗! 제 정신 좀 봐요, 하하. 아버지와 어머니를 너무 오랜만에 봐서, 하하하. 깜빡했어요. 제 친구들이에요, 아버지."

"반갑습니다, 해북이 부모입니다. 우리 대두장에서 장기간 머무시는 식객분들을 모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부족한 아들이 신세를 많이 지고 있습니다. 감사하고 죄송할 따름입니다."

"신세라뇨? 아버님 말씀도, 하하하! 신세는 저희가 지고 있죠. 한 형이 얼마나 저희에게 큰 힘이 되어 주는 줄 모릅니다. 하하하! 정말이에요, 아버님. 하하하!"

의제다.

과장된 웃음과 동작으로 말한다.

많이 놀란 모양이다.

"그리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소협."

"앗! 인사드리겠습니다. 저는 강서 남창의 곽우적이라 합니다."

"반갑습니다, 곽 소협."

"인사드리겠습니다, 아버님, 어머님. 저는 천무휘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천 소협."

천무휘가 자신을 소개하자, 순간 한해북 아버지의 말이 잠깐 끊겼다.

고개까지 미세하지만 갸우뚱하는 모습이었다.

"저는 백미호라고 해요. 시골 작은 상단에서 일하고 있어요."

"네, 반가워요. 반갑습니다, 백 소저, 하하."

역시, 백미로를 보는 한해북 부모님의 얼굴에서는 더없이 환한 미소가 피어나고 있었다.

이미 복면은 벗은 상태.

아까 그 복면을 벗을 때 놀라 하마터면 자리에 주저앉을 뻔하기까지 했던 부모님들이다.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로 향했다.

"인사드립니다. 마악치라고 합니다. 한 형에게 매번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내 소개가 끝나자, 결국 한해북 부모님의 입이 굳게 닫히고 말았다.

심각한 얼굴이었다.

결국, 한해북의 아버지가 너무나 진지한 얼굴로 한해북에게 물었다.

"아니지?"

"네? 뭐가요, 아버지?"

"아닌 거 맞지?"

"하하, 아버지. 뭔지 말씀을 하시고 그렇다 아니다 하셔야죠."

"그러니까…… 음…… 요즘 중원을 시끄럽게 하는 그 소문들 말이다. 수룡검 천무휘 대협과 그 친구분들이 악적들을 물리친다는 소문 그거 말이다."

"그게 왜요?"

"내 우연히 그 소문을 듣다가, 너와 같은 이름을 쓰는 대협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아니지?"

"그 대협이…… 큭큭. 한해북 대협이 저냐고요?"

"그래, 근자에 듣기로는 문, 무, 서, 예, 기관, 진식 등 아홉 가지 절기를 가지고 있는 대단한 분이라고…… 휴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했군, 하하하. 죄송합니다, 해북이 친구분들. 그리고 마 소협도 반갑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한해북이 미미한 미소만을 남기고, 낮은 음성으로 부모님을 불렀다.

한해북이 그렇게 진지한 얼굴로 자신들을 부르자,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은 얼굴을 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거 저 맞아요. 여기 있는 천 형이 바로 수룡검 천무휘 대협이 맞고. 우각당의 곽우적, 현화문의 마악치. 다 맞아요."

한해북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대꾸하지 못했다.

놀람을 넘어 경악한 얼굴로, 그저 손끝만 덜덜 떨고 있었다.

"아버지, 진정하세요. 친구들이 불편해하잖아요."

"어, 그래. 아이쿠, 내 정신 좀 봐. 미안합니다."

상황이 많이 애매했다.

우리 활약에 관한 소문은 이미 중원에 어마어마하게 퍼지긴 했다.

뭐, 대부분 천무휘에 관한 소문이겠지만 말이다.

당연히 이곳 복건이라고 다르지 않았을 테고, 대두장에도 그 소문이 돌았으리라.

하지만 아무도 그 천무휘의 친구 중 한해북이라는 대협의 정체가, 대두장 식객들의 시중을 드는 일꾼의 아들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모양이다.

그의 부모님마저도 말이다.

"어이쿠, 내 정신 좀 봐. 여보, 어서 가서 우리 해북이 친구분들 드실 음식 좀 준비하자고. 고려에서부터 오셨다잖아. 먼 길 오시느라 제대로 된 음식도 못 드셨을 텐데. 잠시만 기다리세요. 부인하고 금세 맛난 음식을 가지고 오겠습니다."

음식보다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 싶었던 모양이다.

얼마나 놀랐는지 다리에 힘이 풀려 제대로 서지도 못하는 한해북 어머니의 팔목을 잡아끌다시피 하며, 한해북의 아버지가 서둘러 숙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남은 우리 다섯 사람.

얼굴에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은 한해북 한 명뿐이었다.

어색한 정적이 꽤 오랜 시간 이어졌다.

그리고 한해북이 그런 우리에게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놀랐어요?"

"네? 아, 아뇨? 놀랄 일이 뭐가 있다고요. 한 형도 참, 하하."

의제다.

완전 놀란 얼굴을 하며 저리 말한다.

이에 한해북이 더 짙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시골에서 공자니 맹자니 하는 글을 읽고 가르치던, 가난하지만 그래도 학사라 불렸던 집이었습니다."

우리는 한해북이 자신의 집안 이야기를 털어놓으려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곧 그에게 집중했다.

"어느 날 사악한 마적들이 와서 몇 안 되는 식구를 다 죽이고 얼마 있지도 않은 재물까지 모두 빼앗고 불태웠다고 합니다. 작은 산골 마을 사람들도 대부분 그때 죽었다고 해요.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았고, 먹고 살기 위해 산을 내려와 큰 도읍에서 일을 시작했다더군요. 그러다 사기를 당하고, 또 흑도 무리의 폭력과 협박 갈취까지 당하여 엄청난 빚까지 지게 됐답니다."

한해북은 아주 담담한 얼굴로, 마치 다른 사람 이야기를 하듯 그렇게 말을 이어 갔다.

"뭐, 열심히 일했지만, 결국 빚만 잔뜩 쌓여 노예로 팔려 가는 신세가 되었다는군요."

"황법으로 노예 매매는 금지 아닙니까? 무림에서도 이를 가만 보고 있지 않을 텐데요."

천무휘다.

한해북이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천천히 가로저은 후 답했다.

"황제의 권력도, 무림 대협객들의 힘도 미치지 못하는 곳은 언제나 존재합니다. 암시장, 암점, 그리 불리는 곳에서는 여전히 노예 매매가 이루어진다고 하더군요."

천무휘는 반박하지 못했다.

그저 굳은 얼굴만 했다.

한해북이 그런 천무휘를 향해, 괜찮다는 듯 미소 지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아버지께서 그때 노예로 막 팔려 가려 할 때, 수백의 사람이 그 노예 암시장을 덮쳤다고 합니다. 이곳 대두장의 장주께서 지역의 무림인, 관군, 의병들을 모아 그들을 소탕하신 것이죠."

우리는 숨죽여 한해북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중이다.

"그리고 그때 저희 아버지도 구함을 받으셨습니다. 노예로 팔려 갈 신세는 면했지만, 그렇다고 빚이 다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요. 대두장 장주께서 그 사연이 심히 딱한 이들 수십 명을 직접 이곳 대두장으로 데리고 와 빚을 모두 갚아 주고 일꾼으로 고용하셨습니다."

이곳 대두장의 장주가 꽤 대단한 사람인가 보다.

"사방 백 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이게 이곳 대두장에 대대로 내려오는 가훈이랍니다."

우리 얼굴에 대두장을 궁금해하는 게 보였는지, 한해북이 묻지도 않은 설명까지 해 주었다.

"아버지는 이곳에서 어머니를 만나셨고, 저를 낳으셨어요. 이곳 장주님의 성품과 베품, 그리고 그 덕이 꽤 대단하고 널리 알려져, 매일 수십 명이나 되는 손님들이 대두장을 찾고, 또 많은 이들이 이곳에 식객으로 머물곤 합니다. 진즉 아버지의 학문과 예법에 관한 능력을 알고 계셨던 장주님께서, 아버지께 식객원의 일을 맡기신 것이죠."

"혹시…… 한 형이 글이나 무공, 음예화, 기관진식 등을 익혔다는 게……?"

"네. 맞아요, 곽 형. 식객원 손님들께 배운 거예요.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받은 품삯과 또 남은 음식 재료로 요리를 해 대접하시고, 또 갖은 궂은 심부름까지 다 하시며 식객원에 머물고 있는 손님들께 제 가르침을 부탁하셨던 거죠."

여러 선생에게 많은 가르침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가 이것이었구나.

"부모님께서 제 공부를 위해 정말 많은 노력을 하셨습니다. 그러다 성품이 좋지 못한 식객들에게 나쁜 일도 많이 당하셨지요. 덕분에 훌륭한 스승님들께 돈으로도 살 수 없는 많은 가르침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에 관해선 장주님께서도 큰 도움을 주셨지요. 직접 식객들에게 저를 가르쳐 달라고 몇 번이나 부탁하셨으니까요."

말을 하던 한해북이, 갑자기 뭔가 엄청나게 웃긴 것이라도 생각났는지, 혼자서 소리까지 죽이며 크게 웃은 후 나를 보았다.

"마 형, 제가 일전에 그런 말을 했었죠? 제가 곱게 자랐다고요."

"아, 네. 사막에서 그리 말한 적이 있어요."

"어느 부모님께서 안 그러겠냐 하겠지만, 저희 부모님은 정말이지 저를 애지중지 키워 주셨어요. 그리고 장주님께서도 제가 아주 어렸을 적부터 큰 인물이 될 것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고 많은 지원을 해 주셨답니다. 일꾼의 자식으로 태어나 저만큼 훌륭한 스승님들께 가르침을 받고, 사시사철 좋은 옷을 입으며, 또 원하는 것을 마음껏 먹은 사람은 아마 천하에 저 말고는 없을 겁니다, 하하하."

한해북이 또 뭔가 생각난 듯, 눈을 크게 뜨고 말을 이었다.

"한 명 더 있군요. 대두장 사람들이 모두 저를 아껴 주었지만, 남몰래 저를 특별히 아껴 주던 형님이 한 분 계십니다."

"……."

"장주님의 아들. 저와는 한 살 터울의 형님입니다. 형님이 정말 저에게 하나도 아끼지 않고 다 주었습니다. 열다섯 살에 기루를 처음 데리고 간 것도 그 형님이었습니다. 하하. 뭐, 그 소리가 장주님 귀에 들어가, 기루에 앉자마자 곧바로 끌려 나와 호되게 혼나긴 했지만 말이에요, 하하하!"

한해북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우리의 표정이 그랬다.

좀 복잡한 심정을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낸 모양이다.

한해북은 여전히 기쁜 얼굴을 하고 있는데 말이다.

"그런 얼굴 할 필요 없어요. 저 정말 구김살 없이 잘 자랐으니까요. 마 형에게 말했던 것처럼, 아주 곱게 자랐다니까요. 정말이에요, 하하."

그는 진심을 말하고 있었다.

일꾼으로 일하고 있는 부모님까지 진심에서 매우 자랑스러워하는 한해북이다.

난 감동하고 말았다.

이 녀석, 진짜 멋진 사니이 중의 사나이다.

"한 형!"

내가 갑자기 제법 큰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한해북은 물론, 나머지도 살짝 놀란 얼굴을 했다.

"멋져요. 진짜로요. 나 마악치가, 이번엔 진심으로 깊이 탄복했습니다, 한 형."

"저도요, 한 형!"

"저도 마찬가집니다. 한 형이 이렇게 멋진 사람인 줄, 오늘에야 제대로 깨달은 게 부끄러울 지경입니다."

의제에 이어 천무휘까지 엄지척하며, 한해북에게 말했다.

지금껏 당당히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던 한해북이, 어울리지 않게 쑥스러운 얼굴을 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때.

숙방으로 간다던 한해북의 아버지가 다급한 얼굴로 돌아왔다.

"해북아, 해북이 친구분들. 미안하게 됐습니다. 식사는 잠시 미루어야겠습니다. 장주님께서…… 급히 찾으십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