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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두가 된 이유-95화 (95/245)

95화

"마, 마 형, 저…… 갑자기 열이 나고…… 내공도 운용이 안 되고…… 커억. 마 형…… 마 형은 괜찮습니까?"

탁!

타타타타탁!

점혈을 했다.

천무휘의 몸에 독이 퍼지는 것을 늦추기 위한 점혈이다.

"어, 어떻게…… 어떻게 마 형은 괜찮은 것입니까?"

"아, 천 형. 금예지 소저를 만났던 위산 기억합니까?"

천무휘가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금 소저를 만나기 직전, 적들이 우리 샘물에 독을 탔었잖아요."

끄덕.

"그때 제가 마시면서 안 마시는 척을 했던 게 아니라, 마셨지만 중독되지 않은 거예요."

"……?"

"아직 확실하진 않습니다. 저도 제 몸이 어떤지 정확히는 모르니까요. 그런데 어쩌면 만독불침까지는 아니어도, 구천구백구십구 독 정도는 불침이지 않을까 생각 중입니다."

"하아아……."

천무휘의 입에서 깊은숨이 새어 나왔다.

아파서 그러나?

아니면 부러워서 그러나?

이봐, 천 형.

너무 그렇게 부러워하지 말라고.

네 잘생긴 얼굴 부러워하며 숨어서 눈물 흘렸던 나, 아니지.

나와 의제, 그것도 아니지.

이 땅 위 모든 남자의 심정을 너도 조금은 겪어 봐야 하지 않겠어?

"천 형, 우선 힘들더라도 빠르게 중독된 증상을 알려 주시오. 그래야 나도 적들의 눈을 속일 수 있으니까요."

천무휘가 작은 목소리로 빠르게 그 증상을 내게 설명했다.

난 천무휘가 설명하는 그대로 내공을 운용하여 그 증상을 발현시켰다.

그리고 곧.

우리에게 함정을 판 장본인이 그 정체를 드러냈다.

빌어먹을 년.

옥만이다.

"꺄르르르르. 오빠! 그러게 내가 뭐랬어. 며칠만 더 여기서 묵고 가랬잖아. 아잉, 왜 자꾸 나를 나쁜 년으로 만드는 거야? 난 오라버니를 좋아한 죄밖에 없다고, 호호호호."

"옥…… 옥 소저, 도대체 왜 우리에게……."

"말 많이 하지 마, 오라버니. 그러다 진짜 죽어. 물론, 호호호. 내 말만 잘 들으면 해약도 줄 테니까, 말 잘 듣고. 알았지?"

"해약이 있었오? 옥…… 옥 소저. 제발…… 해약을…… 우릴 풀어 주시오."

"꺄아악! 왜! 왜 또 옥 소저라고 부르는 거야? 옥 매라고 불러!"

"옥…… 매, 우릴…… 풀어 주시오. 부탁이오."

"싫어. 내가 왜?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이럴 이유도…… 헉헉. 이럴 이유도 없지 않소?"

"있는데? 오라버니 그 얼굴이 그 이유야. 잘생긴 죄, 호호호호. 뭣들 해? 어서 우리 오라버니 내 처소로 옮겨. 저 더럽게 생긴 놈은 석옥동(石獄洞, 돌로 만들어진 동굴 감옥)에 처넣고."

"넵!"

뭐야? 씨팔, 왜 나는 동굴 감옥인데?

아! 진짜, 감옥까지 사람 차별이네.

눈물 난다, 눈물 나.

넌, 진짜 가만 안 둔다.

* * *

충격적인 사실을 접하고 말았다.

동굴 감옥.

그곳은 자연적으로 형성된 거대한 석동(石洞)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 일백오십여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이미 갇혀 있었다.

모두 홍화원 사람들이었다.

내가 들어오자, 그들은 나를 경계했다.

하지만 내가 청화독에 중독된 것이라 생각한 사람들은, 곧 경계심을 풀고 하나둘 내게 접근했다.

"외지인인 것 같은데, 어쩌다 이곳에 잡혀 온 것이오?"

"홍화원의 절경이 절색이라는 소리를 듣고 왔다가 그만……."

"휴우, 젊은 사람이 안타깝게 됐구먼, 쯧쯧."

"탈출……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까?"

"희망을 가져 봤자, 더 큰 절망만 있다오. 일찌감치 포기하시오."

"여러분은 누구십니까?"

"우리는 홍화원 사람들이오."

"그런데 어쩌다 이곳에……?"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었다.

이들은 홍화원주의 명을 거역한 자들이다.

또 홍화원을 탈출하려다 붙잡힌 자들이라 하였다.

사이비 종교.

홍화원주를 신으로 섬겨야 하는데, 이에 의심을 품은 자들이라 하였다.

절대적 믿음과 복종을 강요한다고 했다.

이를 거부하거나 의심하면, 이렇게 석옥동에 갇히고 매일 매질을 당하며 세뇌 교육을 받는다고 하였다.

나도 역시 내일부터 세뇌 교육과 매질을 당할 것이라 했다.

"제가 보았던 홍화원 사람들은 모두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습니다."

"일부러 그들을 자네 시선이 닿는 곳에 배치해 놨던 것이겠지. 홍화원주의 심복이라 할 수 있는 사람들일세. 완전히 세뇌당한 사람들이고, 홍화원주를 진짜 신이라 믿는 사람들일세."

"맞아. 내 딸도…… 휴우. 하지만 홍화원주와 옥민, 옥만 자매는 우리의 노동력을 착취할 뿐이라네. 굶어 죽지 않을 만큼의 식량만 배급하고, 중노동을 시키지. 그게 우리 아버지 대에 시작하여 내 자식들에게까지 이어지고 있어. 모두 내 탓이지. 나도 일이 년 전까지만 해도, 홍화원주가 진짜 신이라 믿었으니 말일세."

"그 계집들 입은 옷이며 착용한 장신구 보았소? 죄다 값비싼 것들만 몸에 두르고 있다오. 그게 다 우리의 피땀의 대가를 그들이 착취해 그런 부귀를 누리고 있는 것이오."

"그럼 혹시, 청화독을 암거래한다는 소문도 사실입니까?"

"그건 내가 말하겠소. 내가 직접 청화독을 만들고, 암기를 제작하였소. 보아하니 청화독망(靑花毒網, 청화독 그물)에 당한 것 같은데. 그 역시 내가 만드는 데 참여하였소. 암거래는 사실이오. 그로 인해 큰돈을 벌 수 있으니까."

"해독약도 있습니까?"

"물론 있소."

"옥민은 없다고 하던데요?"

"청화독으로 수백 명이나 죽었던 기록이 있소. 벌써 삼사십 년 전의 일로, 그때 이미 청화독의 해독약은 물론. 청화독의 독을 피할 수 있는 피독약까지 대량으로 생산되었소. 다만, 그 해독약과 피독약은 홍화원주만이 보관하고 그의 허락 없이는 복용할 수 없소."

"그 약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홍화원주의 장원 삼 층, 원주와 옥 자매 세 사람만 드나들 수 있는 장보실에 보관되어 있소. 하지만 그곳은 경계가 심해 아무나 드나들 수 없는 곳이. 발각되는 순간, 바로 사살되오."

"누군가 옵니다!"

"쉿! 이제 입 꼭 다물고 있으시오, 젊은이. 괜히 허튼소리를 했다간, 그냥 매질만 당할 테니까."

그냥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사이비 종교를 맹신한 대가를 치르는 중이다.

마음이 매우 아팠다.

석옥동을 지키며 이들에게 매질을 하는 간수(看守) 중에 자신의 아들이 있다고 말하는 노인도 있었다.

그 아들에게 맞아 얼굴 뼈가 함몰돼 곧 죽음을 앞둔 노인이었다.

이것들, 정체가 뭔지 알았다.

악마다.

석경간이 이러한 짓거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설민민 마음이 많이 아플 것 같다.

그래도 알아야 한다.

이미 벌어졌고, 벌어지고 있는 사실이니까.

* * *

깊은 밤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움직였다.

간수들의 눈을 피하는 일 따위는 걸으며 방귀를 뀌는 일보다 쉽다.

죄다 하수들이다.

모두가 잠든 시각, 난 그렇게 은형술을 펼쳐 석옥동을 빠져나왔다.

약간 헤매기는 했지만, 빠른 시간 안에 천무휘를 찾을 수 있었다.

우선 천무휘의 상태를 확인해야 했다.

그리고 보았다.

천무휘의 거룩한 희생, 헌신.

그는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들 정도의 극악무도한 고문을 당하고 잇었다.

"아잉, 오라버니. 부끄러워서 그래? 호호호."

불쌍한 우리 천무휘.

상의가 모두 벗겨진 채, 옥만의 침상에 누워 꼼작도 못 하고 있다.

그저 눈물만 하염없이 주르르 흘린다.

아! 진짜 너무 불쌍하다.

"오빠아앙, 우리 오빠아아아. 아니지, 이제 서방님이지. 서방니이임, 호호호."

옥만은 사정없이 천무휘를 고문(?), 탐하고 있었다.

진짜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참혹한 광경이었다.

‘천 형! 조금만, 조금만 더 참아 주시오. 곧 설 여협과 의제, 그리고 한 형을 데리고 그대를 구하러 올 것이오. 우리는 그대의 이 거룩한 희생과 헌신을 절대 잊지 않을 것이오. 견뎌 내시오, 천 형.’

난 그렇게 마음으로 천무휘를 응원한 후, 눈물을 머금고 걸음을 돌려야 했다.

* * *

홍화원주의 전각으로 갔다.

삼 층으로 침입했고, 석경간이나 옥민이 알아채지 못하게 해독약과 피독약까지 여러 병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전대의 원주였던 황칙우나 그의 부인 옥지경이 살아 있다면 이렇게까지 쉽지 않았을 수 있다.

하지만 석경간은 중병을 앓고 있고, 옥지경의 무공 경지는 고수 초입에 불과하다.

방심하고 있는 그들의 기감 따위로, 내 움직임을 감지할 수는 없다.

난 곧바로 홍화원을 벗어나지 않았다.

다시 석옥동으로 향했다.

내일 거사를 치를 생각이다.

홍화원주가 된 석경간의 처벌은 설민민에게 맡긴다고 하여도, 최소한 옥씨 자매는 우리 손으로 없애야 한다.

하지만 이미 세뇌된 홍화원 사람들이 반발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그들까지 희생시킬 수는 없다.

죄가 있건 없건, 그 죗값을 우리가 판단하고 결정하기에는 너무 모호한 상황 아니겠는가.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석옥동에 갇힌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우리가 옥씨 자매와 석경간을 제압하는 동안, 그들이 다른 홍화원의 광신도들을 막아 줘야 한다.

그래서 다시 석옥동으로 돌아왔다.

"왔군."

뭐지?

다시 돌아온 석옥동.

아직 깊은 새벽 시간이다.

그런데 모두가 잠에서 깨어 있었다.

심지어 각자의 손에 돌이며 몽둥이며, 무기가 될만한 것을 하나씩 들고는 나를 둘러쌌다.

왜?

어떻게 된 일인지 감조차 잡을 수 없이 당황하고 있을 때.

"역시 간자가 맞았어. 우리를 감시하기 위해 원주가 보낸 간자야."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억울했다.

하지만 저들은 이미 내가 간자라 확신하고 있었다.

"청화독에 중독된 것도 거짓이었고."

"그건…… 그건 저들을 속이기 위함이었습니다."

"퉤! 우리가 잠든 틈을 타, 원주에게 이곳 상황을 보고했겠지."

"아니에요. 정말 아닙니다! 저는 해독약과 피독약을 훔치고, 저들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 다녀온 거예요. 보세요. 여기 해독약과 피독약이 있잖아요."

"거짓말! 우리를 감시한 대가로 그걸 받았겠지. 간자! 죽어라! 모두 저놈을 죽여라!"

"죽여!"

"죽어라, 원주의 개!"

피골이 상접하고, 극도의 영양 부족인 사람들이다.

심지어 오늘내일하는 노인네들도 상당히 많았고, 어린아이들까지 있었다.

모두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상태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을 상대로, 내가 뭘 어쩌겠는가?

광천마제의 나였다면 모를까.

지금 나는 저들을 어쩔 수 없다.

대신, 너희를 구해 주겠다는 계획은 수정해야겠다.

너희들이 살길은, 스스로 찾아라.

난, 나를 향해 단체로 몰려드는 적들을 보법을 밟아 간단하게 피했다.

그렇게 석옥동을 벗어났다.

아니, 막 벗어나려고 할 때였다.

퍽.

뭐가 내 목을 타고 들어왔다.

칼은 아니다.

두툼하다.

손이다.

사람의 손.

그것이, 젠장.

내 목을 통으로 뚫어 터뜨렸다.

아아아아!

이거 도대체 뭐야?

왜 이래?

내 목이 내 몸에서 분리되어 땅으로 추락하며, 여전히 땅을 밟고 서 있는 목이 없는 몸을 보게 했다.

날 이렇게 만든 이는 보이지 않았다.

왜?

누가?

저들 사이에, 내가 알아채지 못했던 고수가 있었다.

젠장.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이것이 나의 스물한 번째 죽음이었다.

* * *

난 누구?

여긴 또 어디?

이상한 동굴에서 깨어났다.

작은 석탁 위에 광마일기라고 적힌 책 한 권과 각혼필이라는 붓이 놓여 있었다.

난 알몸 상태 그대로 마치 무엇에라도 홀린 듯 그렇게 석탁으로 다가갔다.

광마일기를 펼쳤다.

그곳에 광천마제에서 다시 현화문의 착한 도사가 되려는 나 자신의 처절한 몸부림이 모두 기록되어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장.

그곳에 답신이 있었다.

계효보, 이 닭대가리 새끼가 나에게 쓴 편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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