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화
아!
젠장!
빌어먹을!
망했다!
완벽한 줄 알았던 계책이 실패하고 말았다!
심지어 의제는 설민민의 칼에 맞아 죽을 뻔했다.
계책 자체는 완벽했다.
정말 한 치의 실패도 생각하지 못할 완벽한 계책이었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우리는 치명적인 실수를 하고 말았다.
영웅으로 짠 하고 등장해, 색마 놈들로부터 그녀를 구해야 할 우리의 의제 녀석 말이다.
그 녀석의 못생긴 얼굴을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의제의 못생긴 얼굴이, 우리들의 결정적 실수였다.
아!
정말 돌겠네.
그러니까 사연은 이러했다.
"큭큭큭, 어디 이렇게 인적도 없는 드문 곳에 이토록 아름다운 여인이 홀로 있단 말이냐? 크하하하하."
"그러게 말입니다, 형님. 마치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딱 하고 여기에 있네요, 하하하."
"거기 예쁜 소저. 꿀꺽, 살다 살다 이렇게 예쁜 소저는 또 처음이군. 혼자 뭐 하는가? 외롭다면 우리 오라버니들이 함께 그 외로움을 달래 줄 수 있는데 말이야."
색마 놈들.
연기가 아니다.
설민민을 본 순간, 그들의 눈에는 더러운 음심이 한가득 차 버리고 말았다.
"어이, 오라버니들이 말을 하면 대꾸를 좀 하라고. 우리가 누군지 알아?"
"동생, 그만해. 예쁜 소저 겁먹는다, 큭큭큭. 우리가 지금 살인과 강간을 수도 없이 해서 쫓기는 대마두라는 사실을 알면, 오줌을 지릴지도 모른다고. 크하하하하."
"어때? 예쁜 소저. 우리 오라버니들이 화나면 많이 무섭거든? 그냥 좋게 좋게 우리와 함께 놀자고. 응?"
"그래, 같이 놀자. 우리가 극락이 뭔지 보여 준다니까."
놈들은 보지 못했다.
설민민의 손이 어느새 그녀의 검에 닿아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그때.
"멈추어라!"
짜잔!
의제의 등장이다.
"뭣 하는 놈이냐! 험한 꼴 보기 싫으면 그냥 가던 길 가라."
"네 이놈들! 백주 대낮에 이 무슨 짓들이냐! 정녕 하늘이 무섭지 않다는 말이냐!"
이후에는 뻔한 대사가 오고 갔다.
그리고 잠시 후.
채채채채챙!
챙챙챙!
"끄아아아악!"
"약속이 다르잖…… 으악!"
"아아악!"
세 놈 다 끔찍한 최후를 맞고 말았다.
놈들의 피를 살짝 뒤집어쓴 의제.
그가 대도에 묻은 피를 툭툭 털어버리고, 얼굴까지 소매로 시원하게 닦은 후 설민민에게 다가갔다.
"소, 소저…… 괜, 괜찮……습니까?"
아나!
저 녀석은 왜 목소리가 떨리는 거야?
아무튼 이때까진 완벽하게 성공한 줄 알았다.
심지어 설민민이 미세하지만, 미소까지 짓는 게 아니던가.
구 할 구 푼 구 리, 성공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때.
"풋, 이런 수법…… 수십 번도 더 겪었어. 너도…… 한패지?"
갑자기 돌변하는 그녀.
이에 의제는 당황하고 말았다.
"아닌데요?"
"더러운 색마 놈들."
"저, 저는…… 정말 아니에요. 보셨잖아요, 제가 직접 저놈들 숨통을 끊어 놓는걸."
"색마."
"아니에요, 소저."
"한패가 맞아."
"억울해요. 도대체 왜 저를 저놈들과 한패라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얼굴이…… 색마잖아. 죽어라, 색마."
말이 끝나기도 전, 그녀의 검집에서 검이 뽑혔고.
이내.
콰콰콰쾅!
의제가 있던 자리에 무지막지한 검강이 내리꽂혔다.
쉬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익.
다행히 목숨은 건질 수 있었다.
계책이 시행되자마자 움직여 최대한 의제와 설민민 곁으로 다가간 천무휘가, 그녀가 검을 뽑자마자 신법을 발휘해 의제를 구한 것이다.
다시 만난 천무휘와 의제는 둘 다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심지어 두 녀석의 머리와 옷 곳곳에 서리가 내려앉기라도 한 것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아마도 그녀의 북명수혼검이 상당한 경지에 올랐기에 그런 듯하였다.
그런데 의제의 상태가 매우 심각해 보였다.
북명수혼검에서 발출된 한기로 인해 약간의 내상을 입은 듯했다.
아니다.
저건 그게 아니다.
정신적 충격을 받은 얼굴이다.
설민민의 그 말 때문이다.
‘얼굴이 색마잖아.’
하아!
나도 저 말을 들었다면, 진짜 눈물 났을 테다.
사실 오늘은 작전의 실패보다, 설민민이 의제에게 한 말 때문에 우리의 사기는 더 떨어지고 말았다.
의제는 그냥 온종일 혼이라도 나간 얼굴을 해대고 있었고.
우리는 그런 의제를 보며 어떤 위로를 해 줘야 할지 몰라 입을 꼭 닫고 있어야만 했다.
광녀가 잘생긴 놈 얼굴은 못 알아봐도, 못생긴 놈 얼굴은 척하니 알아보나 보다.
사실…… 나 말이다.
속으로 좀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원래 이번 작전 내가 나서려고 했다.
그런데 의제가 우겨서 의제가 나갔다가 저 말을 들은 거다.
나, 솔직히 저 소리 들었으면, 설민민이랑 또 한 번 칼부림 냈을지도 모르겠다.
진심 우리 의제가 보살이다.
됐다.
다음 작전 준비다.
* * *
"전 빠지겠습니다."
한해북이다.
우리가 준비했던 세 번째 계책이자 마지막 계책이 바로 한해북이 나서서 화려한 화술로 그녀의 마음을 얻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대뜸 한해북이 저렇게 안 하겠다고 나섰다.
"왜요?"
"실패할 게 불을 보듯 뻔하지 않습니까, 마 형."
"그래도……."
한해북이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제가 천 형에게 알려 준 시조는 설 소저에게 씨알도 먹히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그런 방면에 아예 관심이 없거나, 현재 그녀의 상태가 풍류 따위를 즐길 심정이 아니라는 뜻이지요. 제 화술로는 그녀의 마음에 작은 파동도 일으키지 못할 것입니다."
한해북에 이어 천무휘가 나섰다.
"지금 생각해 보니, 제가 첫날 본 설 소저의 상황이 한 형이 말한 것과 같습니다.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았어요. 확실히 정상적인 사람의 눈빛은 아니었습니다."
의제는 회의에 빠졌다.
완전 빠진 건 아니고, 몸만 참석했다.
동공이 풀려 있다.
어제 설민민에게 들었던 그 말의 충격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한 얼굴이다.
그런데 이 녀석들이 단체로 미쳤나?
왜 설민민한테 설 소저라고 부르는 거야?
"한 형, 천 형. 그런데 왜 설민민한테 설 소저라고 부르는 거예요?"
"네? 그게……?"
"……?"
"개방하고 하오문에서 듣지 못했어요? 열여덟 살에 혼인을 했고, 지금은 마흔두 살이라고요. 그 아들이 살아 있다면, 저나 천 형보다 한 살 더 많았다고요. 어머니뻘이에요."
"아……."
"그, 그렇죠."
둘 다 어색하고 민망한 얼굴만 할 뿐이었다.
사실, 뭐 그렇다.
나도 그녀에게 처음 봤을 때, 소저라고 호칭했다.
어딜 봐서 아줌마인가.
그냥 딱 봐도 내 또래의 신급 미녀인데 말이다.
"잠깐만요!"
한해북이다.
이 녀석이 조금 전 작전에서 빠진다고 할 때는 언제고, 갑자기 의욕이 넘치는 얼굴이 됐다.
"방금 마흔두 살…… 그러니까 그 아들이 살아 있다면 우리 연배가 된다고 했죠?"
"네, 한 형."
"그럼…… 아!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요? 바로 그거예요."
"뭐요?"
나와 천무휘과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한해북을 봤다.
한해북은 진지하면서도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우릴 향해 말했다.
"모성애. 그걸 이용하는 것입니다. 사 년 전 아들이 죽었으니, 그녀의 모성애는 아마 더욱 크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이번 작전은…… 마 형이 나서 주셔야겠습니다."
"한 형이 아니고 제가요?"
"네. 꼭 마 형이 나서야 합니다."
"왜요?"
"제가 겉늙어 보이잖아요."
"……."
그렇다.
한해북은 나나 의제보다 아주 살짝 조금 잘생긴 편이긴 하지만, 겉늙었다.
나이도 우리 중 제일 많은데, 그 나이보다 더 들어 보인다.
천무휘는 이미 얼굴이 팔렸고.
결국 내가 나서게 됐다.
* * *
"엄마! 엄마! 엄마 어디 있어?"
인적이 없는 야산.
그곳에서 내가 간절한 목소리로 외치며 길도 없는 거친 산을 헤매고 있다.
"엄마! 엄마! 제발…… 제발 좀 대답을 해 봐! 엄마!"
떨렸지만, 연기에 충실해야 했다.
일부러 넘어지기도 하고, 감정을 끌어올려 울먹이기까지 했다.
그러다 우연인 척, 그녀 앞에까지 다다르게 됐다.
"어? 어…… 실례합니다."
가까이서 본 그녀.
광마일기에 적힌 그녀의 묘사가 한참이나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름답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난 더더욱 연기에 집중했다.
확실히 요 며칠, 천무휘나 의제를 보던 눈과는 완전히 다른 눈으로 나를 보고 있다.
"혹시…… 근처에서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왼쪽 다리를 저는 중년 여인을 보지 못하셨나요?"
나를 빤히 쳐다본다.
하지만 광마일기에 적혔던 그런 시선이 아니다.
입술이 움찔움찔하는 게, 무언가 말하려고 하는데 쉬이 떼지 못하는 모습이다.
질척거려선 안 된다.
이건 심리전이다.
"앗, 죄송합니다.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를 하고 곧바로 걸음을 뗐다.
그렇게 몇 발자국 움직였을 때.
"잠깐만요."
그녀가 나를 불렀다.
심지어 존대다.
거기에 그 목소리에 담긴 감정이, 분명하게 애절한 감정을 담고 있었다.
"네? 저…… 저를 부르신 건가요?"
그녀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 눈빛이 매우 슬퍼 보인다.
"잠시…… 잠시 여기에 앉아 쉬었다 가실래요?"
아!
내가 아는 그녀가 지금 저 여인이 맞긴 하는 걸까?
천하에 저렇게 아름다운 여인이 둘이 있을 수 없으니, 당연히 저 여인이 설민민이 맞긴 한데.
어찌 이토록 사람이 달라질 수 있단 말인가.
"그래도 될까요? 사실 다리가 많이 아팠는데."
그녀가 앉았던 바위 옆, 땅바닥에 그냥 털썩 앉았다.
그런 내 모습마저 안타깝게 바라보는 그녀였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연신 몸을 움찔움찔하는 게, 나에게 무언가 말하고 싶어 갈등하는 모습이다.
난 그냥 모른 척했다.
그러다 시간이 조금 더 흘러 내가 자리를 털고 일어서려고 하자, 그녀가 결국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
"어머니를…… 찾고 있는 건가요?"
"아, 네. 몸도 성하지 않으신데, 산에 홀로 산나물을 캐러 올라가셨다가 그만…… 며칠째 돌아오지 않고 계십니다."
일부러 슬픈 얼굴을 했다.
쥐어짜 내려고 해도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설민민의 눈이 그렁그렁했다.
"이곳……."
"네?"
"여긴 안 계세요."
"아, 그래도 제가 좀 더 찾아봐야……."
"제가 며칠 동안 계속 여기에 있었어요. 청년이 찾는다는 중년의 여인은 보지 못했어요."
"아, 그렇군요. 고맙습니다. 그러면 옆에 있는 산을 가 봐야겠네요. 어머니께서 이 산하고 옆 산에서 자주 산나물을 캐곤 하셨거든요. 고맙습니다, 소저."
난 자리에서 일어나 감사 인사를 했다.
그런 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올라왔던 산길을 다시 내려가려 하는 척했다.
그러자 그때.
"저…… 소저 아니에요."
"네?"
내가 내려가던 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려 그녀를 보았다.
많이 슬퍼 보였다.
그녀의 슬픈 얼굴을 통해,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마음이 무엇인지 다는 아니지만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저에게도 청년만 한 아들이 있어요."
"아! 그렇게 보이시지는 않는데."
"올해로 딱 스물세 살입니다."
"아, 네. 그렇군요. 저보다 정확히 한 살 위네요."
그나저나 왜 설민민은 죽은 아들을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말할까?
마음이 더 애잔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그녀의 마음이 조금은 열리는 듯했다.
하지만 안타깝게 이후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슬픈 얼굴로 고개만 떨구었다.
어쩔 수 없었다.
다시 자리를 떠야 했다.
"그럼 전 이만 어머니를 찾으러 가 보겠습니다. 여름이라도 밤공기가 차가워 빨리 어머니를 찾아야 해서요."
그녀는 대꾸하지 않았다.
괜찮다.
내일 또 이 산을 오르면 된다.
옆 산에서 찾지 못했다는 핑계로 이곳을 다시 와 그녀와 좀 더 깊은 대화를 나눌 것이다.
그렇게 자리를 뜨려고 했는데.
내 뒤로 그녀의 슬프면서도 간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꼭, 꼭 어머니 찾으세요. 저도…… 저도 잃어버린 아들을 꼭 찾을 거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