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화
"갑자기 왜 이러십니까, 마 도사님!"
"놔! 의제, 놓으라고! 오늘 거지 한 마리 때려잡는다!"
"형님! 참으세요!"
"마 형! 그만 하세요!"
"놔! 놓으라고!"
분명 내 욕하는 거 맞다.
그렇지 않아도 광천마제 시절 내가 했던 행동에 대해 부끄러워, 잠을 자다가도 일어나 이불을 발로 차고 그러는데.
아!
이 새끼 근데 어떻게 알았지?
"대협! 아니, 마 도사님! 뭔가 오해를 하고 계십니다!"
"뭐? 너, 거지새끼 나한테 죽는다! 이리 와!"
"정말 저한테 왜 이러세요?"
내가 살기까지 마구 뿌려대며 주먹을 휘두르려고 하자, 겁에 잔뜩 질린 녹두개 분타주가 구석으로 피한 후 몸을 덜덜 떨어 댔다.
"너 이 새끼!"
"네, 마 도사님. 왜요? 제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갑자기 이러세요?"
"어떻게 알았어? 너도 회귀해?"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회귀라뇨? 그게 뭔 말이에요?"
아! 내가 너무 나갔나?
쓰지 말아야 할 단어를 입 밖으로 꺼내고 말았다.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좀 진정할 수 있었다.
"아니, 내 말은!"
"네, 마 대협, 아니 마 도사님."
"어험, 어떤 새끼가 초절정 고수랑 금나수 대결을 하다가 그녀의 젖가슴을 만졌냐고! 거짓말하는 거 아니야?"
"도사님, 제가 감히 어떻게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네 분 다 이미 유명하신 분이세요. 더군다나 수룡검 천 대협까지 있는 자리에서, 그래도 개방의 분타주인 제가 거짓을 말하다니요! 억울합니다."
"그, 그래……? 어험, 어험. 내가 좀 흥분했던 것 같소, 어험."
말도 안 된다.
이 거지가 나랑 같이 회귀를 하다니.
내가 순간 찔리는 것이 있어 흥분했던 모양이다.
다행히 빠르게 정신을 차릴 수 있었지만, 의제와 한해북 그리고 천무휘까지 날 미친놈 쳐다보듯 그렇게 보았다.
녹두개는 여전히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눈물만 훔치고 있고.
"미안, 어험. 미안하오, 녹두개 분타주. 다시 자리로 돌아와 앉으시오."
많이 쫄았나 보다.
꿈쩍도 안 한다.
"다신 흥분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겠소. 미안하오. 그러니 그만 마음 푸시고 와서 앉으시오."
결국 천무휘가 부축한 후에야 자리에서 일어서는 녹두개였다.
"다시 한번 사과하겠소, 녹두개 분타주. 그녀의 사연이 너무 기구하고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너무 흥분했었소."
"……."
"분타주 양반, 이해하십시오. 우리 형님이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이라 그렇소."
"네, 한 번만 이해해 주세요, 분타주님."
다시 천무휘가 나선 후에야 그나마 얼굴이 풀리는 녹두개였다.
"임형모라는 자였습니다. 원래는 하오문의 배수(扒手, 소매치기) 출신이었는데, 그놈이 어디서 대단한 상승의 금나수 비급을 훔쳤나 봅니다. 갑자기 사라졌다가 이십 년 만에 나타났을 때, 엄청난 고수가 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곧 천하에 그 이름을 알릴 것이라 저희 개방에서도 예측하고 있었는데, 다시 나타나고 한 달이 되기도 전에 그만 설민민에게 그 짓거리를 하다가 목이 잘려 죽었다고 합니다. 정확히 보름 전 대옥촌 뒷산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아! 등신 같은 놈이 나 말고도 또 있었군.
내가 다시 나섰다.
나를 보는 녹두개의 눈이 곱지 않았지만, 미친 척 그냥 물었다.
"그래서 그녀는 사 년 동안 어디에 갔다가 다시 나타난 것이고, 왜 나타난 것이오?"
"모릅니다."
이 거지 새끼가.
참자.
"내, 조금 전 실수한 것도 있고, 정보 값은 크게 내겠소. 누렁이 두 마리와 화주 한 수레를 내겠소."
내 제시에 순간 녹두개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하지만 이는 찰나에 불과했다.
"정말 몰라 모른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천하의 개방에서 모르는 것도 있소?"
"모릅니다."
"정말 모르오?"
"정말 모릅니다."
"누렁이 다섯 마리, 화주 두 수레. 거기에 은자 오십 냥."
"헉!"
녹두개 눈깔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그 음성마저 떨렸다.
"근데…… 진짜 몰라요, 마 도사님. 어떻게 누렁이 한 마리만이라도 안 될까요?"
개방 보정 분타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여기까지였다.
광마일기에 내가 기록한 내용에서 추가로 더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없었다.
내가 알고 있던 사실만 재확인했을 뿐이다.
개방에서는 내가 실수한 것도 있고 해서, 그 대가를 후하게 지불했다.
오리구이 다섯 마리, 화주 스무 병, 그리고 누렁이 한 마리를 덤으로 건넸다.
* * *
보정 취선루(醉仙樓), 하오문 보정 지부.
"하북의 대부분 문파에서는 어떻게든 그녀를 피하기에 급급합니다. 이미 초절정의 반열에 오른 그녀와 싸우게 될 경우, 문파 자체의 존망이 위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그녀와 싸워 이긴다 한들, 얻을 수 있는 이익은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모두 모른 척, 못 본 척, 그렇게 그녀를 피하고 있습니다."
"이미 그녀의 손에 육십여 명이나 죽었다고 들었습니다."
"죄다 변태에 색마, 아니면 주제 파악은 하지 못하고 욕정만 앞선 놈들입니다. 벌건 대낮에 음식에 미약을 타거나, 아니면 힘으로 제압해 그녀를 어떻게 해 보려던 놈들이었죠. 죽어 마땅한 놈들입니다. 찢어 죽일 놈들이죠."
"그런데 소문이 이상하게 났습니다. 그녀가 미쳤다든지, 최고의 불운녀라든지, 남편을 잡아먹었다든지 하는 소문이요."
"그녀를 두려워하는 문파에서 일부러 그런 소문을 내기도 하지만, 결국 그녀가 아무런 해명도 하지 않기에 소문이 계속 부풀려지는 듯합니다. 같은 여인으로서 심히 안타깝긴 하지만, 저희 하오문 입장에서는 아무런 인연도 없는 그녀를 위해 막대한 자금과 인력을 투입해 소문을 바꿀 수는 없답니다."
"이해합니다. 그럼 혹시…… 그녀가 사라졌던 사 년 동안, 어디로 갔다가 지금 왜 다시 나타났는지 알 수 있습니까? 정보료는 충분히 지불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저희도 조사한 적이 있으나, 끝내 알 수 없었습니다. 마치 하늘로 솟았거나 땅으로 꺼졌다가 갑작스레 다시 나타난 것처럼, 아무런 종적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그녀의 입을 통해 직접 듣는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하오문에서도 역시나 그녀의 사라졌던 사 년에 대한 행방은 알아낼 수 없었다.
이 짧은 대화를 나누기 위해 금자 한 냥을 건네야 했다.
누렁이 사십 마리를 사고도 남는 돈이다.
* * *
-천 형, 조심에 또 조심해야 합니다. 상대는 초절정의 광녀(狂女)입니다. 언제 어떻게 칼이 날아올지 모르니, 절대로 긴장을 풀어서는 안 됩니다.
-명심하겠습니다, 마 형.
천무휘가 나서게 됐다.
개방과 하오문을 통해 얻은 유일한 방법.
결국 설민민 본인의 입을 통해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와 의제, 천무휘, 한해북은 꽤 오랜 시간 진지하게 토론에 토론을 이어갔다.
어떻게 하면 그녀의 입을 열 수 있을까 방법을 모의한 것이다.
결국!
미남계(美男計)를 쓰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녀가 아무리 미쳤다 한들, 인정하긴 싫지만 저렇게 잘생긴 얼굴을 본다면 반하지 않고 배길 수 없으리라.
그렇게 그녀의 마음을 얻어 그녀의 못다 들은 사연을 들을 참이다.
광천마제 시절, 나를 보며 죽어가던 그녀의 눈빛 속에 숨겨진 간절한 사연 말이다.
나와 의제, 한해북이 아주 먼 자리에서 수풀 뒤로 몸을 숨기고 은형술까지 극대로 하여 상황을 주시 중이다.
그렇게 천무휘가 잘생긴 얼굴로 그녀를 향해 천천히 접근하였다.
그녀는 광천마제 시절에도 그러더니, 지금도 여전히 인적이 없는 곳에 홀로 깊은 사색에 빠져 있었다.
저 모습만 보면 절대 광녀라 할 수 없는데.
수십 장이나 되는 먼발치에서 보고 있지만, 정말 살이 다 떨릴 정도로 아름답긴 하다.
잠시 후 천무휘가 잘생긴 얼굴로 깊은 사색에 잠겨 있는 그녀 앞에 도착하였다.
천무휘는 이미 연습했던 대로, 시전에서 산 그럴듯한 부채를 활짝 펴고 다른 손은 뒷짐을 졌다.
그런 후 그녀에게 등을 돌린 후, 먼 하늘을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편편황조 자웅상의(翩翩黃鳥 雌雄相依) 펄펄 나는 저 꾀꼬리는 암수가 서로 노니는데, 염아지독 수기여귀(念我之獨 誰其與歸) 외로울 사 이내 몸은 뉘와 함께 돌아갈꼬."
저 시조는 한해북이 알려 준 거다.
중원 시조는 설민민이 알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해동에 위치한 고구려의 황조가라는 옛시조라며 알려줬다.
한해북 녀석, 이젠 하다 하다 사랑에 관련된 타국의 옛시조까지 꿰고 있었다.
아무튼 그렇게 천무휘가 연습한 대로 멋들어지게 시조를 읊은 후, 천천히 그녀를 향해 몸을 돌렸다.
아! 역시!
반응이 있다.
혼자 골똘히 무언가 생각하던 그녀가 고개를 들어 천무휘의 잘생긴 얼굴을 본다.
통했다!
곧, 그녀의 입이 열렸다.
"뭔 소리야?"
"네?"
"뭔 소린지 모를 말을 왜 여기서 하냐고요!"
"아, 그게…… 저는 그냥…… 길을 지나가다가…… 그러니까 제 말은……."
이쪽 쳐다보지 마!
천무휘 녀석이 저렇게 당황해 비지땀을 쏟아 내는 건 처음 본다.
그렇다고 이쪽을 쳐다보면 어떻게 해!
멍청한 자식.
"방해되니까 가던 길 그냥 가세요. 다른 마음을 품고 있는 게 아니라면."
"아, 네. 죄송합니다. 전 바빠서 이만……."
와!
천하의 천무휘가, 수룡검 천무휘가 말이다.
땀을 비 오듯 쏟고, 또 얼굴이 새빨개져서 아주 꽁지가 빠져라 뜀박질을 한다.
실패한 게 안타깝긴 한데, 정말 진귀한 장면을 보게 됐다.
괜찮다.
우린 이미 다음 계책까지 준비해 뒀다.
* * *
다음 날.
개방 보정 분타를 다시 찾았다.
"양민의 열다섯 살 어린 딸을 겁간한 아주 나쁜 놈들이 있긴 한데……."
"그놈들이 필요하오, 녹두개 분타주."
"어렵습니다."
"왜요?"
"이미 잡혀서 처형을 기다리고 있거든요."
"우리가 대신 처형하겠소. 그것도 아주 끔찍하게."
"그게 어디 제 뜻대로 되겠습니까? 오형문이라고, 이곳 보정에서는 꽤 힘깨나 쓰는 문파에서 잡아 두고 있습니다. 겁간을 당한 피해자의 부모가 오랫동안 그 오형문의 땅을 빌어 농사를 짓는 소작농이라 합니다. 오형문에서 소작농들 기도 살려 주고 자신들 명예도 좀 살려 보려고, 작심하고 어렵게 잡은 색마 놈들입니다."
"어떻게 안 되겠소? 누렁이 두 마리, 아니 다섯 마리에 화주 한 수레."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결국 다시 취선루를 찾아가야 했다.
"금자 다섯 냥이 필요합니다."
"너무…… 비싼 거 아니오?"
"오형문에 금자 두 냥, 피해자의 부모에게 금자 한 냥. 이 정도는 주셔야 저희도 일 처리를 도울 수 있습니다."
"하오문에서 금자 두 냥을 꿀꺽하겠다는 소리군요."
"급하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꼭 그놈들이 필요하다고도 하셨고요."
"그, 그렇소."
"금자 다섯 냥입니다."
빌어먹을 하오문.
더럽게 비싸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금자 다섯 냥을 지불해야 했다.
사흘 만에 우리는 열다섯 살 어린 여아를 겁간한 색마 세 놈을 오형문으로부터 넘겨받을 수 있었다.
우리는 그 색마 세 놈에게 그럴듯한 제안을 했다.
한 여인을 겁탈하기만 하면, 세 놈에게 자유를 주는 것은 물론 황금 열 냥까지 손에 쥐여 주겠다는 제안이었다.
* * *
"자! 아버님, 어머님, 그리고 옥 소저. 두 눈 크게 뜨고 똑똑히 지켜보십시오. 옥 소저에게 아픔을 준 저 극악무도한 색마 놈들을, 제 의제 녀석이 복수해 줄 테니까요."
현장에 피해자와 그 가족까지 데리고 왔다.
천무휘가 의견을 냈고, 우리 모두 동의했다.
피해자들에게는 악적들이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모습을 볼 권리가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옥 소저, 두렵더라도 용기 내어 지켜보십시오. 나 천무휘가, 언제나 뒤에서 그대를 지키고 있음을 잊지 마십시오."
"고, 고맙습니다."
언제나 그렇다.
나의 백 마디 말보다, 천무휘의 한마디 응원이 모든 여인에게 절대적 힘이 된다는 사실 말이다.
이곳까지 오며 마음의 상처를 크게 받았을 소녀를 위해 위로며 응원이며 입에 침이 마를 때까지 말을 했다.
하지만 결국 그녀의 얼굴에 화색이 돈 건, 지금 천무휘가 건넨 저 한마디 말이 있은 후였다.
아무튼 이 계책은 절대 실패할 리 없다.
왜냐면, 이미 수천 년 동안 그 성공을 입증해온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이미 남창 만리현에서 ‘왕따 아죽을 구해라’ 때, 이 계책을 써서 완벽하게 성공한 경험이 있지 않겠는가.
더러운 색마 놈들은 설민민이 누군지도 모르고 접근할 테고, 그녀가 칼을 뽑기 전, 영웅이 짠 하고 등장해 색마를 물리치고 그녀를 구할 것이다.
이번 작전은 의제가 나선다.
절대 실패할 수 없는 완벽한 계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