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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두가 된 이유-88화 (88/245)

88화

"폭, 폭력? 천하제일미녀를 때렸다고?"

의제가 너무 흥분한 나머지 엉덩이까지 들썩이며 소리를 높였다.

"안타깝지만, 본 방에서 여러모로 조사한 결과 모두 사실로 판명 났습니다."

녹두개가 이 말을 마치고는 입을 꾹 닫아 버렸다.

심지어 시선까지 우리에게서 다른 곳으로 돌려 버렸다.

"왜요? 무슨 문제라도 있소?"

내가 물었다.

"어험, 그게…… 말을 너무 많이 했더니, 목이 좀 말서…… 허, 이것 참."

이쯤하고 내놓으라는 소리다.

이미 냄새를 맡은 모양이다.

내가 의제에게 눈짓을 했고, 의제가 품속에서 오리구이 반 마리와 화주 한 병을 꺼냈다.

"이건 맛보기요. 어서, 하던 말 계속하시오, 녹두개 분타주."

의제가 궁금했는지 녹두개를 재촉했다.

오리구이 반 마리와 화주 한 병에 아주 입꼬리가 귀에 걸린 녹두개였다.

그는 허겁지겁 다리 한쪽을 뜯고, 화주까지 거하게 한잔한 후에야 말을 이었다.

"우리도 나중에야 그 사연을 듣고 심히 안타까워했습니다. 아니, 글쎄 성인군자로 알려졌던 석가장주가 심각한 의처증에 변태였다고 하더군요. 설민민을 혼인 첫날부터 감금하고 폭행한 후로, 거의 매일 그렇게 때리고 변태 짓거리를 했답니다. 그들은 부부가 아닌 주인과 노예 정도의 관계였다고 합니다."

"뭐 그런 때려죽일 놈이 있나!"

의제가 분기탱천해 혼잣말을 했다.

그 사이 녹두개는 오리구이 다리 한쪽을 말끔히 해치운 후, 이제는 그냥 반 마리를 통으로 들어 뜯으며 말을 이었다.

"설민민은 어려서부터 미모 때문에 정상적으로 친구도 사귈 수 없었고, 가족 외 외인은 거의 만나 본 적도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원래 그냥 그렇게 사는 것인 줄 알고, 매일 맞으면서도 참고 살았다고 하더군요."

"아! 정말 살아 있다면, 내가 당장 달려가 찢어 죽였을 텐데."

의제가 가슴까지 쾅쾅 치며 화를 냈고, 내가 녹두개를 향해 물었다.

"그것이 그녀가 무공 수련에 매진하게 된 것과 무슨 연관이 있다는 말이오?"

"석가장주는 그녀를 때린 후에는 항상 엉엉 울며 무릎을 꿇고 사죄를 했다고 합니다."

"미친놈이 따로 없군. 나 원 참."

역시 의제다.

"그렇게 사죄하며 온갖 금은보화와 선물을 설민민에게 주었는데, 그중에는 천하가 깜짝 놀랄 신공절학도 굉장히 많았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결국 그것이 그녀의 손에 들어가게 된 것이지요."

"그게 무엇이오?"

내가 물었다.

"북명수혼검(北溟搜魂劍)입니다. 중원에는 그리 알려 있지 않으나, 북명수혼검은 북해빙궁의 빙신검법(氷神劍法), 한백신장(寒白神掌)과 더불어 북해빙궁의 삼대신공 중 하나입니다."

"엄청난 것을 얻었군요."

"그렇습니다. 북명수혼검 덕분에, 열여덟 시집갈 당시 고작 이류 수준이었던 그녀가, 서른여덟 살이 되던 해 절정의 벽을 깰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그렇게 절정의 고수가 되어 아버지의 생일을 맞아 북해문으로 향하게 됩니다. 공교롭게도 당시 석가장주는 황제의 부름으로 황궁에 입궁했을 때였기에 홀로 북해문을 방문하게 되죠."

"의처증이 심각하다고 했지 않습니까?"

"심했죠. 석가장에서 부리는 하인과 눈만 마주쳐도 의심하며 삼 일 밤낮을 때렸다고 하니까요. 그래서 석가장주는 석가장의 정예 수백 명과 더불어, 자신이 가장 신뢰하는 고수를 그녀에게 붙여 호위하게 했습니다. 그러다……."

"그러다 뭐요?"

의제다.

"호위무사만이 그녀에게 접근할 수 있었고, 그녀는 시집을 간 후 십사 년 만에 처음으로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와 말을 할 수 있게 됐죠."

"설…… 설마?"

"맞습니다. 석가장에서 북해문이 있는 장가구까지 가는 기일은 칠 일. 그 칠 일 동안 두 사람은 뜨거운 사랑을 불태우게 됐습니다. 천하제일미녀인 설민민을 처음 본 남자라면, 그것이 열반을 앞둔 고승이라고 해도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고, 십사 년 동안 괴물 같은 남편에게 폭행만 당했던 설민민으로서는, 자신에게 친절하고 상냥하게 대해주는 젊고 잘생긴 호위무사에게 마음을 빼앗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겠죠."

내가 광천마제 시절, 그녀를 처음 보자마자 미친 짓거리를 했던 이유가 다 있었던 거다.

내가 진짜 미쳤던 게 아니고, 내가 바보라서가 아니다.

녹두개가 말하지 않았나?

그것이 열반을 앞둔 고승이라 하여도,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미모라고.

하하하하!

자기합리화가 아니다.

녹두개가 그리 말한 거다, 하하하!

"그렇게 북해문에 도착했고, 남편 없이 처음으로 홀로 북해문에 오게 된 딸과 북해문주는 많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러다, 딸의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알게 된 것이죠. 그날, 그녀는 아버지에게 그때까지 남편에게 당했던 모든 일을 털어놓았습니다."

"북해문주가 극도로 분노했겠군요. 하지만 석가장을 상대로 어떠한 일을 벌이기는 쉽지 않았을 텐데요."

내 물음에 녹두개가 고개를 두 번 끄덕인 후 답했다.

"맞습니다. 하지만 그때, 설민민이 호위무사를 소개했고, 이미 설민민에게 영혼이라도 바칠 만큼 사랑에 빠졌던 호위무사는, 어떻게 해서든 석가장주를 죽이고 그녀를 자신의 여인으로 만들 생각이었습니다. 그렇게 석가장 혈사의 서막이 오르게 된 것이죠."

말을 마친 녹두개가 이제는 뼈밖에 남지 않은 오리구이를 사정없이 핥은 후 말을 이었다.

"석가장주가 황궁에서 돌아오기 전, 설민민과 북해문주 그리고 북해문과 장가구의 고수들이 이미 석가장에 들어와 있었습니다. 또 호위무사는 평소 석가장주에게 반심을 품고 있던 자들을 빠르게 섭외했습니다. 그렇게 석가장주가 돌아오던 그날. 석가장에서는 커다란 연회가 벌어졌고, 석가장주는 물론 설민민이 일부러 초빙해 불렀던 그의 형제와 가까운 친척들까지 모두 독에 중독된 후 죽게 됩니다. 그날 밤 죽은 사람의 수만 이천 명이 넘었습니다."

"석가장주나 석가장의 다른 고수가 속수무책으로 당한 것이오? 그래도 그만한 규모의 세력을 이끌 정도면, 고수가 꽤 즐비했을 텐데 말이오."

내가 물었다.

녹두개가 다시 내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서너 번 끄덕인 후 답했다.

"황궁에 여러 고관을 배출했고, 하북 상계의 오 할을 차지하고 있지요. 실로 석가장은 대단한 가문이 맞습니다. 하지만 무림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 그들은 그저 그렇고 그런 중소방파일 뿐입니다. 그들이 아무리 나대도 하북팽가에서 콧방귀도 뀌지 않는 게, 그들이 무서워서가 아닙니다. 격이 맞지 않기에 상대하지 않는 것이지요."

"석가장에 신공절학이 많다고 하지 않았소?"

"많지요. 북명수혼검만 해도, 북해빙궁의 삼대신공 중 하나라 하지 않았습니까? 그 정도면 무당파의 태극혜검이나 화산파의 자하신검, 점창파의 사일검법, 남궁세가의 천뢰제왕신검 등에 비교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내 말이 그것이오."

"하지만 그것도 누가 익히느냐에 따라 다르겠지요. 석가장의 혈통은 대대로 무공에 재능이 없었습니다. 또한 보통의 무림 문파와 다르게, 그들은 오직 무공에만 전념하지 않습니다. 첫 번째가 학문이고, 두 번째는 상술이며, 세 번째가 되어야 무공에 시선을 주는 형편이었지요. 어려서부터 벌모세수며 갖은 영약은 다 복용한 석가장주지만, 그 경지는 고작 절정 초입이었습니다. 그의 수하들 역시 무림에 이름 석 자 당당히 내밀 고수가 없었고요."

"음, 결국 그렇게 하룻밤 사이 석가장이 멸문하게 된 것이군요."

"그렇습니다."

"그런데 어쩌다 북해문까지 멸문하게 된 것이오? 석가장 혈사는 알려진 바에 의하면, 석가장과 북해문 그리고 수많은 문파의 공멸이 아니오? 설민민의 아버지와 아들까지 모두 죽었다고 들었소."

난 이 이야기를 다 알고 있다.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전, 우리 녀석들에게 우리가 지금 어떠한 일을 하려는지 알려주기 위해 이러는 중이다.

"맞습니다. 그것이 진짜 석가장의 저력이지요. 설민민의 호위무사는 사랑에 빠져 판단력을 잃었고, 북해문주는 북해문의 힘과 세력을 빠르게 키웠지만, 이렇게 큰 판을 읽을 눈은 없었지요. 설민민은 두말할 나위가 없고요. 그것이 그들의 패착이었습니다."

"……."

"석가장이 멸문했다는 소문은, 해가 뜨기도 전에 하북 전역으로 퍼졌습니다. 그리고 평소 석가장과 우호적 관계에 있던 수십 개의 문파가 들고 일어나 한꺼번에 석가장으로 몰려와 석가장에 머물고 있던 북해문을 공격했습니다."

"많이 죽었겠군요."

"석가장 혈사는 다들 아시겠지만, 백 일 동안 이어졌습니다. 따로 백일전쟁이라 부르기도 하지요. 그 시체가 얼마나 많이 쌓였는지, 백 일째 되던 날에는 그 시체가 산이 되어 석가장의 높은 담벼락마저 넘어섰다고 합니다. 또 반경 수십 리의 땅이 석가장에서 흘러나온 피로 인해 붉게 물들었다고 하지요. 그렇게 모두가 죽고 딱 한 사람, 설민민만이 그 시체의 산 위에 홀로 살아남았다고 합니다. 그것이 그녀의 마지막 모습이었지요."

"그게 사 년 전 일이고, 최근 그녀가 다시 나타났다고 들었소."

"그렇습니다. 그녀가 다시 나타난 지 반년도 안 됐는데, 벌써 그녀의 손에 죽은 이의 숫자가 육십을 넘었습니다."

"석가장을 도우려 했던 그 문파들이 다시 그녀를 공격하는 겁니까?"

의제가 궁금한 얼굴로 물었다.

하지만 녹두개는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그들은 오히려 설민민이 나타났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자신들 문파의 문을 꼭 닫아 버리고, 오히려 그녀를 피하고 있습니다."

의제가 이해가 안 가는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러자 녹두개가 설명을 이었다.

"애초에 백일전쟁이 일어난 이유는, 순수한 의도가 아니었습니다. 설민민이 갑작스레 사라진 이후에도 석가장을 중심으로 하북 전역에서 다시 수백 일 동안 크고 작은 전투가 벌어져, 백일전쟁 때보다 더 많은 희생이 있었으니까요."

"그건 왜 그렇소?"

의제가 여전히 이해가 안 간다는 얼굴로 물었다.

"석가장의 재산과 이권은 실로 어마어마한 것입니다. 아까 말하지 않았습니까? 하북 상계의 오 할을 그들이 차지하고 있었다고. 거기에 석가장 내에 숨겨져 있을 금은보화며 영약, 무엇보다 신공절학을 노리는 이들이 오죽 많았겠습니까? 탐욕에서 비롯한 전쟁이었고, 약탈을 위한 살인이었으며, 인간의 더러운 본능만을 보여 준 결말이었습니다."

"하아! 진짜 더러운 놈들 천지네."

"곽 대협 말씀이 맞습니다. 애들 싸움에 어른이 끼지 않는다고, 하북팽가는 조용히 지켜보기만 했고, 하북팽가가 나서지 않는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욕심만 가득한 꼬맹이 놈들이 서로 죽이는 싸움을 계속 이어갔습니다. 현재 하북팽가를 제외하고, 하북의 주요 이권을 쥐고 있는 문파와 가문들 모두 그때 싸움에서 이긴 곳들이죠."

이번엔 내가 나서 물었다.

"설민민은 어디로 사라졌던 것이오? 또 왜 돌아왔으며, 사람들은 왜 죽이는 것이오? 별로 좋지 않은 별호까지 붙었다고 하던데."

"한때는 천하제일미녀였지만, 지금은…… 휴우. 안타깝군요. 마 도사께서 말씀하신 대로, 지금 그녀는 천하제일불운녀, 천하제일광녀, 천하제일미망인, 식부여인(食夫女人, 남편을 잡아먹는 여자), 살인마녀 등등 안 좋은 수식어는 다 따라붙고 있지요."

"그래서 어디로 사라졌던 것이란 말이오?"

"사실 알고 보면, 그게 그녀 탓만이 아니랍니다. 잘못 전파된 소문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그렇게 됐지요."

"이보시오, 녹두개 분타주. 지금 왜 딴소리를 하시오? 난 분명 그녀가 사 년 동안 어디로 사라졌다가 나타났냐고 물었소."

"무식한 놈들이 제 명줄이 어떻게 될 줄도 모르고, 그저 설민민의 미모에 눈이 멀어 허튼 짓거리를 하다가 죽게 된 것이랍니다. 희롱은 기본이요, 추행을 하질 않나. 어떤 놈은 그녀의 음식에 미약(媚藥)을 탔다가 뒈진 놈도 있고, 미혼산(迷魂散)을 탔다가 걸려서 뒈진 놈도 있다고 합디다."

"이보시오, 녹두개 분타주!"

내가 언성을 높였다.

아니, 이 거지 새끼가 자꾸 딴소리만 하고 있지 않은가?

날 완전히 무시하는 것 같아 소릴 높인 것이다.

하지만 녹두개는 여전히 평온한 얼굴로 자신의 말을 이었다.

"사 년 만에 돌아온 그녀의 무공은 이미 초절정의 경지에 달해 있었습니다. 그 미모는 사 년 전, 아니지. 그녀가 한창 천하제일미녀라 불릴 때에 비해 전혀 손색이 없다고 합니다. 그녀를 본 사람들이 하나같이 이런 말을 하더군요. ‘여전히 천하제일미녀는 설민민이다’ 라고요. 그런데 그녀가 누군지 잘 알지도 못하고, 이 멍청한 것들이 미모에 눈이 멀어 그녀를 어떻게 한번 해 보려고 나쁜 짓을 하려다 뎅가당 목이 날아가 버린 것이랍니다."

잠깐!

이 새끼…… 이 거지 새끼…… 지금 내 얘기하는 거 맞지?

이 새끼, 내가 광천마제 시절 그녀에게 헛짓거리하다가 목 뎅가당 한 거, 그거 본 거 아냐?

"쯧쯧쯧, 하여간 예쁜 여자만 보면 어떻게든 해 보려고 발정 난 개처럼 달려드는 놈들을 보면, 같은 남자지만 창피해서 고개를 들 수가 없다니까요. 맞다. 제일 한심한 녀석이 한 명 있었는데, 글쎄 초절정 고수인 설민민을 상대로 금나수를 자랑하다가 그만 그녀의 젖가슴을…… 에잇! 찢어 죽일 새끼 같으니라고,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이 새끼, 지금 내 욕하는 거 맞다.

"야이, 거지새끼야! 너 지금 내 욕하는 거지! 놔! 의제! 한 형! 놓으란 말야! 천 형! 말리지 마! 내 오늘 저 거지 새끼 죽이고 지옥 간다! 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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