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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두가 된 이유-83화 (83/245)

83화

"끄아아아아아아아악!"

야심한 밤.

운남의 어느 산속에서 지독한 고통에 사무친 비명이 울려 퍼졌다.

"됐어! 끝났으니까, 을오 녀석 데리고 와."

"네, 형님!"

수풀 너머로 의제의 목소리가 들렸다.

곧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을오가 두려움 가득한 얼굴로 내 앞에 나타났다.

조심조심, 걸음마저 극도로 조심하는 녀석이었다.

곧 녀석이 내 앞까지 다가왔다.

"처, 처선은…… 어떻게 됐습니까?"

떨리는 음성.

두려움이 극에 달했다.

"들었잖아. 뭘 물어? 부디 너는 내가 듣고 싶은 답을 하길 바란다. 같은 꼴 나기 싫다면 말이지."

털썩.

이 녀석,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갑자기 웃는다.

"형님."

"형님?"

"네, 형님."

"이게 네 답인가?"

"크큭, 네. 이게 제 답입니다, 형님."

"음…… 미친 건 아니지?"

"어느 때보다 멀쩡한 정신입니다. 아니, 그 어느 때보다 더 흥분하고 기쁜 상태입니다, 형님."

"쉽게 말해."

"큭큭큭, 저도…… 같은 부류입니다."

놈의 얼굴에서 두려움 따위는 찾아볼 수 없다.

아니, 놈의 말마따나 지금 극도로 흥분하고 즐거운 상태다.

"같은 부류?"

"형님, 안순 연쇄 간살 사건…… 크크크크. 제가 그런 겁니다. 그리고 열다섯 살이 아니라, 정확히 열세 살 때부터 그래왔습니다. 멍청한 하후세가 놈들이 그전에 있었던 사건과 연관을 짓지 못하더라고요, 큭큭큭큭."

"정말이냐? 지금 살고 싶어서 거짓말하는 거 아니야?"

"딱 보면 모르시겠습니까? 큭큭, 제가…… 제가 바로 훗날 최고의 색마로 불릴 인재입니다, 크하하하."

"부모님 복수는?"

"부모요? 그 늙은이들도 결국 한패에요. 그 늙은이도 간살의 흉수가 저인 걸 나중에 알았는데, 오히려 절 숨겨 줬습니다. 증거들을 없애 버리고, 수사에 혼선까지 줬지 뭡니까. 덕분에 뒈지기 직전까지 두들겨 맞긴 했지만, 어차피 공범 아니겠습니까?"

"부모님이 널 많이도 아끼셨나 보구나."

"그건 그렇죠. 하지만 어차피 언젠간 제 손으로 목을 칠 생각이었습니다. 흑풍방이랑 재산까지 다 물려받으면, 제 마음껏 계집들을 유린하고 즐길 수 있었을 테니 말이죠. 그걸 하후세가 놈들이 대신해 주긴 했는데, 젠장할! 멸문은 왜 시키고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새옹지마라는 말이 맞긴 맞는 것 같습니다. 흑풍방보다 훨씬 대단한 형님을 만나게 됐으니까요, 하하하하!"

"못 믿겠어."

"무엇을 말입니까, 형님?"

"하후세가의 여식. 어떻게 죽였어?"

"그년요? 아! 그럼 제가 당시의 상황을 아주 구체적으로…… 큭큭. 작은 형님도 부르시겠습니까? 계집의 반항이 아주 거칠어서, 함께 들으면 더 재미난 이야기거든요."

"그냥 해. 의제한테는 내가 이야기해 줄게."

"그러니까 말입니다, 형님. 그날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이었습니다. 비 때문에 짜증이 치솟았는데, 동시에 음심도 폭발을 해서 바깥으로 나갔는데, 마침 그 연놈들이……."

* * *

<<광마일기>>

(상략)

우리 사패천 일대에서 계속하여 젊은 여인들의 시체가 나온다는 보고가 이어졌다.

사패천이 개파했을 때부터 계속 이어져 오던 보고다.

근자에는 그 수가 몇 배나 치솟았다고 했다.

누가 사파 놈들 아니랄까 봐 지랄들이라며, 난 짜증을 부렸다.

"그래서? 어떤 놈이 그런 건데? 똑같은 형태의 시체라며? 그러면 한 놈이 그랬을 거 아니야?"

"그렇게 확인했습니다, 천주님."

사패천의 정보를 담당하고 있는 천안천이(千眼千耳) 공손병이란 노인이다.

"당장 잡아다가 광장으로 끌고 가서, 먼저 눈부터 불로 지지고, 몽둥이로 구천구백구십구 대 두들겨 패. 그런 다음, 그렇지. 거시기도 잘라서 성곽 높은 곳에 매달아 놔. 됐지? 끝. 나가 봐."

내 명령이 내려졌음에도 공손병은 나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조심스러운 태도로 입을 열었다.

"그게…… 천주님."

"뭐? 왜? 귀찮으니까, 빨리 꺼져 버리라고."

하지만 그는 좌불안석인 얼굴만 하며 끝내 천주전을 나가지 않았다.

결국.

"하아! 도대체 어떤 새낀데, 공손병 당신이 이렇게 조심스러워? 천하에 당신이 죽이지 못할 놈이 본좌랑 의제, 그리고 몇 명이나 더 있다고?"

"천주님……."

"됐어! 그냥 말해! 본좌가 다 책임질 테니, 말하라고! 뒷일 걱정하지 말고 말해. 어서! 이거 명령이야."

결국 공손병이 입을 열었다.

"천권만세(千權萬勢, 천 개의 권력과 만 개의 권세를 가졌다)가 그랬습니다."

"천권만세? 을오 그 녀석이?"

이인지하 만인지상(二人之下 萬人之上).

사패천 서열 삼 위는 곧 천하 서열 삼 위를 의미한다.

그 별호마저 천권만세 아니겠는가?

을오였다.

사패천 서열 십 위 내에 간신히 턱걸이를 하고 있는 공손병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진짜 그 녀석이 그런 거 맞아?"

공손병은 치밀한 자다.

자신에게조차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을오를 조사하고, 또 그걸 내게 보고하며 얼마나 많이 검증하고 또 했겠는가.

자칫, 자신의 목이 날아갈 수도 있는데 말이다.

그냥 믿고 싶지 않아서 물어본 거다.

흉수가 을오인 걸 알았으면서도.

"네, 천주님. 천권만세 을오 전주님이 확실합니다."

"하아, 이 새끼. 오냐오냐했더니, 아주 그냥 지랄발광을 다 하고 다녔네."

"……."

"불러와."

"천주님, 늙은 저 하나 죽는 건 두렵지 않습니다. 다만, 을오 전주의 말 한마디에 현안전(炫眼殿, 사패천 정보조직) 수많은 젊은 무인의 목숨이 결정될 수 있습니다. 부디, 세심히 살펴 처리해 주시길 간청드립니다."

"알았어. 뭔 소린지 알아. 그러니 어서 그 새끼나 불러와."

"존명."

공손명이 허리를 깊이 숙여 답한 후 천주전을 벗어났다.

잠시 후, 녀석이 왔다.

을오다.

녀석은 한껏 미안한 얼굴을 했다.

그리고 곧, 쾅!

천주전 바닥에 대가리를 찍었다.

비싼 대리석 바닥이 놈의 피로 바다가 되었다.

"천주님! 아니, 형님! 살려 주십시오. 잘못했습니다."

"네가 한 짓이 맞긴 맞나 보구나."

쾅! 쾅! 쾅!

"야! 그만해. 바닥 더러워지잖아."

"형님!"

"새꺄, 됐어. 그리고……."

"네, 형님! 지옥이라도 뛰어들라 하면 뛰어들겠습니다."

"미친 새끼. 앞으로 단 한 번. 단 한 번만 더 이런 소리 내 귀에 들어오면, 그때는 나도 어쩔 수 없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

쾅!

피가 또 튀었다.

"네, 형님! 다시는!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제 목을 걸고 약속드리겠습니다!"

"됐어. 나가 봐. 공손병 노인이랑 그 밑에 애들 건드리지 말고.그리고 저녁 연회에 술 마시러 올 땐, 머리 좀 꿰매고 와. 피도 좀 닦고."

"네! 감사합니다, 형님!"

그날 이후 다시는 젊은 여인들이 죽는다는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사실 난 알고 있었다.

을오가 간살을 멈춘 게 아니라, 공손병의 입을 틀어막았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냥, 그냥 모른 척했다.

그렇게 사는 게 광천마제, 나란 놈이었으니까.

(하략)

* * *

"그래서 그 계집을 강간하고, 옆에 혼절해 있는 오라비를 죽이려고 했더니, 그 하후 계집이 엉엉 울면서 사정을 하더라 말입니다. 크하하하! 자긴 어떻게 돼도 좋으니, 오라비만큼은 살려 달라고…… 미친년 아닙니까? 어째 다들 똑같은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습니…… 어? 처선? 처선, 괜찮아?"

을오가 한참 신이 나 자신의 과거 악행을 모두 실토할 때.

처선이 나타났다.

당연히 아무것도 잘리지 않은 멀쩡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벌레를 쳐다보는 듯한 경멸의 눈으로.

살의와 분노 그리고 증오를 가득 담은 눈으로.

그렇게 터벅터벅 걸어 나와 을오를 향해 일갈했다.

"네가…… 네가 우리 부모님을 죽였다."

을오는 간사한 놈이다.

상황 파악도 무지하게 빠르다.

광천마제 시절 연쇄 간살 사건이 걸렸음에도, 변명이 아닌 자백을 했다.

그것만 보아도 이 녀석의 상황 판단과 결단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정신을 차리기 힘든 모습이었다.

튀어나올 것 같은 눈알로 나와 처선을 연달아 보며.

"형님…… 형님…… 이게 어떻게 된…… 처선은 분명……."

말조차 제대로 잇지 못했다.

난 녀석이 아닌 처선을 향해 말했다.

"넌 어제부터 왜 멀쩡히 살아 계신 부모님을 계속 돌아가시게 만드는 것이냐?"

"네? 그게…… 그게 무슨……?"

그리고 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처선의 아버지.

그리고 하후세가주를 포함한 하후세가의 고수들.

나에게 장강을 쏘아 댔던 그 화양문의 고수까지.

모두가 숨어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가, 모든 진실이 밝혀지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하후세가주는, 서글피 울고 있었다.

처선과 그 아버지도 울었다.

"아버지!"

"아들아!"

두 사람은 한걸음에 서로에게 달려가 끌어안고 엉엉 울었다.

나와 의제 그리고 하후세가주 등과 함께 나타난 천무휘와 한해북은, 그런 두 부자의 상봉을 보며 더없이 기쁜 미소를 지어야 했다.

* * *

<<광마일기>>

(상략)

그날 귀궁문(鬼弓門)에서 사람들이 왔다.

귀궁문의 신물이라며, 나에게 멋들어진 신궁(神弓)을 뇌물로 바쳤다.

(중략)

세상만사가 다 귀찮았다.

민초들이 죽어 나가는 게 왜 내 탓이란 말인가.

그래서 죽였다.

듣기 싫은 소리를 하는 수하들은 다 죽였다.

사패천의 천주가 되고, 내 명령으로 인해 죽은 충신들의 숫자가 기백을 넘겼다.

(중략)

수백 명의 수하, 수백 명의 기녀.

한참 연회를 즐기고 있을 때, 처선이 찾아왔다.

이미 오래전 현직에서 물러나 어디 시골에서 은거한다는 놈이 왔다는 말에, 나는 인상부터 구겨졌다.

"꼭! 꼭 드릴 말이 있어서 이렇게 다시 찾아왔습니다, 천주님."

"마셔."

난 군병의 군졸들이 쓰는 투구에 독한 술을 가득 담아 그에게 건넸다.

처선은 숨도 쉬지 않고 그것을 깨끗이 비웠다.

"천주님! 꼭! 들으셔야 합니다."

녀석은 언제나 직언을 했다.

언제나 충언을 했다.

듣기 싫은 소리였고, 쓴소리였다.

앞서 죽은 충신들, 모두 놈 때문에 죽였다.

나에게 쓴소리를 하면, 이렇게 된다고 놈에게 보여 준 것이다.

그래서 처선이 사패천을 떠났다.

그런데 오늘 다시 돌아와 또 듣기 싫은 소리를 하려 한다.

"마셔."

그는 다시 술을 마셔야 했다.

또 말을 하려 해서, 다시 술을 내렸다.

그렇게 사람 머리에 쓰는 투구에 가득 담긴 술을 연달아 석 잔을 마셨다.

그런 후 그의 표정이 바뀌었다.

처음의 그 진지함과 간절함은 사라졌고, 무언가 내려놓은 얼굴이 되었다.

심지어, 그는 웃고 있었다.

비웃음이었다.

"부족한 신이 무림사를 세심히 연구한바, 고금을 돌이켜도 이토록 문란한 천하의 주인도 없었습니다."

손에 그것이 잡혔다.

며칠 전, 귀궁문에서 나에게 뇌물로 바친 신궁.

그걸 들어 처선에게 겨누었다.

처선은 두려워하지 않았다.

여전히 날 비웃고 있었다.

그래서 쐈다.

녀석은 곧바로 쓰러지고 말았다.

난 그에게 다가갔다.

쓰러진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또, 지껄여 봐."

그는 굴하지 않았다.

"사패천의 용맹한 충신들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데, 병약한 저따위가 어찌 죽음을 아끼겠습니까? 죽이십시오. 다만, 주군께서 오래도록 천하의 주인 노릇을 하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울 뿐입니다."

듣기 싫었다.

쓴소리가 정말 싫었다.

그래서 광천검을 뽑아 그의 다리를 잘랐다.

"일어나 걸으라. 사패천주의 명이다."

"천주께서는! 다리가 잘려도 걸으실 수 있겠소이까?"

비아냥이 분명했다.

자신을 핍박하고, 지금까지 내가 죽인 충신들을 잘린 다리에 빗대어 나를 비웃는 것이었다.

나의 분노는 극에 달하고 말았다.

그래서 처선의 혀를 자르고, 배를 갈라 창자를 모두 끄집어내어 죽였다.

그래도 내 분노는 사그라지지 않았다.

"주제도 모르고 천주인 본좌를 꾸짖다니. 그 죄가 죽음으로도 상쇄할 수 없다. 놈의 가산을 모두 빼앗고, 집을 불살라라. 또한 그 가족은 모두 노예로 팔아 버려라."

(중략)

다음 날, 현안전의 전주 공손병이 천주전으로 찾아왔다.

"어제 명하신 내용에 대한 보고드리겠습니다."

"어? 어……."

난 이미 후회하고 있었다.

울고 싶었지만, 울지 못했다.

공손병은 평소와 다르게 아무런 감정도 느낄 수 없는 말투로 보고를 시작했다.

"첫째. 가산을 빼앗으려고 했지만, 한 달에 철전 사십 닢을 주고 얻어 살던 낡은 초가집이 재산의 전부였기에 빼앗을 것이 없었습니다. 처선의 집이 아니었지만, 천주님의 명이었기에 불태워 버렸습니다."

슬펐다.

정말 슬펐다.

그래도 울지 않았다.

아니, 울 수 없었다.

난, 그럴 자격조차 없는 놈이었다.

"둘째. 처선의 처와 자식들은……."

"공손 전주."

"네, 천주님."

"본좌가 어제 술이 좀 과했다. 그냥 없던 일로……."

"모두 죽었습니다. 처선의 소식을 들은 그 처와 자식들 모두! 우리가 초가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목을 매달아 자결을 했습니다. 그래서 초가를 태울 때 같이 태워 버렸습니다. 이제 속이…… 시원하십니까?"

씨팔.

난…… 나는……

지옥에 가야 한다.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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