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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두가 된 이유-82화 (82/245)

82화

"그게…… 당시 상황이…… 도저히 빠져나가기 힘들어서……."

을오가 말까지 더듬으며 설명하려 했다.

무슨 말인지 알겠다.

"결국 처선의 아버지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는 모른다는 말이네?"

"보지는 못했지만, 휴우…… 살아만 계셨으면 좋겠습니다."

처선의 아버지는 죽었다.

광천마제 시절에는 분명 그러했다.

잠시 울음을 멈추었던 처선이 다시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그래서 너는? 네 이야기 아까 하다 말았잖아."

"아, 네. 저는 양자로 흑풍방의 소방주가 됐습니다. 저희가 사파이긴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제가 어렸을 적부터 항시 사(邪) 중 협(俠)을 말씀하셨습니다. 뒤에서 간악한 짓을 하는 정파보다, 정정당당한 삶을 사는 우리가 진정한 협이라고 하셨습니다. 비록 저희 흑풍방이 사파기는 하지만, 제가 머리털이 난 후 아버지께서 부끄러운 일을 한 걸 본 적이 없습니다."

"하후세가는? 어쩌다 하후세가가 자네들을 쫓게 된 거지? 화양문은 또 왜 하후세가를 돕고? 사파라고 따로 푸대접하고 그러지 않는다며?"

"휴우, 그게…… 정말 억울합니다, 대협."

을오의 얼굴이 처참할 정도로 일그러졌다.

억울해도 정말 많이 억울한 모양이었다.

"지금으로부터 육 년 전의 일입니다. 하후세가주의 아들과 딸, 남매가 화양문을 다녀오던 길에 사고를 당했습니다."

"사고?"

"네. 아들은 죽고, 딸은…… 간살(姦殺)을 당했습니다. 모두 독에 중독된 상태였다고 합니다."

"너희들 나이가 어떻게 되지?"

"저와 처선 모두 스물하나입니다. 당시는 열다섯 살이었습니다."

"계속해."

"하후세가주는 극도로 분노해서 그 일을 조사했습니다. 흉수를 찾아 자식들의 복수를 할 생각이었지요. 화양문이 하후세가를 돕는 건, 하후세가주의 아들과 딸이 화양문에서 하후세가로 돌아가는 길에 그 일이 벌어졌기에, 그들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여 돕는 것입니다. 육 년 전부터 적지 않은 도움을 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흉수를 찾았나?"

"찾지 못했습니다. 더 큰 문제는 그다음부터였습니다. 저희 흑풍방과 하후세가가 양분하고 있는 안순 지역을 중심으로, 간살 사건이 계속 일어났던 것이지요. 최근에도 열일곱 된 어린 여인이 끔찍한 일을 당했습니다. 흉수의 수법이 갈수록 잔인해지고, 치밀해지고 있었습니다."

"색마로군."

"네, 그렇습니다."

"안순 사람이겠군."

"저희 흑풍방에서도 그 일에 대해 많은 조사를 했고, 하후세가와 협력하여 계속 사건을 파헤치고 있었습니다. 십중팔구 안순 사람이라고 추론했습니다."

"그래서 흉수는? 하후세가에서 흉수를 흑풍방 사람이라 여기고 공격한 것인가? 도대체 누굴 흉수로 지목했기에, 그런 것인가?"

"그게…… 그게 바로 접니다, 대협."

을오는 당당했다.

어깨를 활짝 펴고, 고개를 뻣뻣이 들었다.

그런 후 내 눈을 직시했다.

자신의 결백함을 증명하기 위함이었다.

녀석의 눈동자는 떨리지 않았다.

그 눈빛으로 진심을 밝히려 애썼다.

"흑풍방에 산 사람은 있나?"

"멸문, 전멸했습니다. 처선의 아버지께서 그러하셨듯, 저희 아버지께서 적들을 온몸으로 막아 저 하나를 살리셨습니다."

말을 하는 녀석의 두 눈에서 다시금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그때 도망간 곳이 저 녀석의 집이고?"

"네.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고, 적표채는 이미 놈들이 예상하고 있을 테고, 그래서…… 그래서 적표산 깊은 곳에 있는 처선의 집으로 간 것인데, 그만…… 딱 하루만 그곳에 숨었다가 생각을 정리하고 떠나려 한 것인데, 새벽에 그들이 들이닥친 겁니다."

"처선의 아버지가 자넬 순순히 받아 줬나?"

"그게……."

을오가 흐느끼고 있는 처선의 눈치를 살짝 살핀 후 다시 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받아 주시지 않으려 하셨는데, 제가 딱 하루만 묵게 해 달라고…… 휴우. 다 제 탓입니다. 제가…… 제가 처선의 아버지를 돌아가시게 했습니다."

을오는 말을 하다 말고,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더니 두 발자국, 한쪽에서 홀로 흐느끼고 있는 처선을 향해 다가가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머리까지 땅에 박고 조아렸다.

"미안하네, 흑흑. 정말 미안하네, 처선. 내가…… 내가 죽일 놈이네. 나만 아니었어도…… 흑흑. 자네 아버지와 어머니께서는…… 흑흑흑. 미안하네, 처선."

을오의 사죄와 오열은 듣는 이의 심금을 다 울릴 정도였다.

둘은 서로를 얼싸안고 또 토닥이며 한참을 울고 또 울었다.

나와 의제는 그런 둘을 버려두고 잠자리에 들어야 했다.

남은 이야기는 내일 들어야겠다.

녀석들 상태가 많이 좋지 않았다.

* * *

"너…… 너 뭐 하냐?"

의제가 꿩을 두 마리 잡아 왔다.

의제가 꿩을 잡는 사이, 을오가 아랫마을로 내려가 약간의 쌀과 작은 솥이며 그릇 등을 훔쳐 왔다.

돈은 넉넉히 두고 훔쳐 온 거다.

아무튼 그것으로 물을 끓이고 꿩탕을 끓였다.

그렇게 아침 식사를 하며 어젯밤 못다 한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는데, 처선 녀석이 한구석으로 가더니 바지춤으로 양손을 집어넣고 한참이나 뭔 짓거리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내가 뭐 하냐 물은 것이다.

"잠시만요. 아, 다 됐습니다."

이내 바지춤을 제대로 고치고 자리로 온 녀석이었다.

"아침 식사도 전에 뭘 했냐고?"

"앗, 오해하지 마십시오, 대협. 묶었습니다."

"묶…… 묶어? 뭘?"

"그거요."

"그, 그거?"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떨렸다.

제발 아니길 바랐다.

"네, 그거요. 어제 보여 드렸던 그거요. 저희 아버지와 꼭 빼닮은 그거요."

"그거."

"네, 그거요."

"그걸 묶어?"

"네. 매일 묶어요."

"그럼 쌀 때는?"

"잠깐 풀은 다음 싸고, 다시 묶어요."

"자랑……하는 거야? 아니면, 우리와 너는 격이 다른 존재라는 걸 과시하는 거야?"

"아닙니다, 대협. 어렸을 때부터 줄곧 해 오던 일입니다."

"어젠…… 어젠 분명 안 묶었었잖아."

"그게…… 새벽에 놈들이 기습을 해 왔고, 쉴새 없이 계속 도주하느라 묶을 경황이 없었습니다."

"정말 매일 묶고 다녀?"

"네."

"왜?"

"보셨으니 아시잖아요."

"봤지."

"그래서 묶는 거예요."

"흔들려서?"

"네. 안 묶으면 덜렁거려서 엄청 거추장스럽잖아요."

"그게?"

"네. 다들 그렇지 않아요?"

"……."

개새끼!

순간, 진짜 때릴 뻔했다.

* * *

어제의 충격이 채 가시지도 않았는데, 아침에 또 엄청난 충격을 받고 말았다.

아니, 이건 충격이 아닌 패배감이다.

의문의 패배.

젠장할!

그걸 묶고 다니는 인간이 있을 줄이야.

그래서 아침 식사 때 나누려던 대화를 미뤘다.

대화고 뭐고, 그럴 기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짙은 패배감.

결국, 늦은 오후까지 우린 산속을 헤치고 이동했고, 늦은 점심을 하게 됐다.

의제가 냇가에서 잡은 팔뚝만 한 물고기 네 마리다.

그것을 처선과 을오가 나뭇가지에 끼워 구웠다.

한 사람당 한 마리.

맛있다.

그렇게 식사를 모두 마치고, 내가 어제 했던 이야기를 다시 꺼내려 할 때.

처선과 을오가 먼저 나섰다.

어제와는 다르게, 이제는 혈색도 제법 괜찮아진 둘이다.

그런 둘이 사뭇 진지한 얼굴로, 또 매우 공손한 자세로 손까지 모아가며 나와 의제 앞에 나란히 섰다.

"대협, 저희를 수하로 받아 주십시오."

털썩.

다짜고짜 저 말을 하더니, 두 녀석이 동시에 내게 무릎을 꿇었다.

광천마제 시절과 같은 전개다.

그때도 이 녀석들이 이리 행동했다고 광마일기에 적혀 있다.

당시 난 당연히 나와 의제의 사연을 녀석들과 공감했다.

억울한 누명, 화산과 제갈 그리고 무당에 쫓기는 신세.

이 모든 것을 말해 주었고, 녀석들은 나를 신뢰하고 끝까지 함께 하겠다고 맹세했다.

하지만 이번엔 아니다.

"너희 둘."

"넵!"

녀석들이 우렁찬 목소리로 동시에 대답했다.

"내가 누군지 알고 내 수하가 되겠다는 거야?"

을오가 먼저 답했다.

"생명의 은인이십니다."

처선이 말을 이었다.

"제 식견이 부족하다지만, 귀주에서 이곳까지 오며 대협을…… 주군을 봐오며, 이분이라면 내 인생을 걸만하다는 각오를 다질 수 있었습니다. 주군! 견마지로를 다하고, 목숨을 바쳐 충성하겠습니다. 거두어 주십시오."

"받아 주십시오, 주군! 저와 처선 모두 주군께 죽는 그날까지 충성하겠습니다."

"하! 이것들 봐라. 너네, 내 이름도 모르잖아. 우리가 누군지 알려 줘? 그러면 생각이 바뀔 텐데?"

"그렇지 않습니다, 주군!"

"네, 저희는 주군을 믿습니다!"

각오를 단단히 다진 모양이다.

광마일기에 적혀 있는 모습 그대로다.

"일단, 너희 뜻은 알겠다."

"그러면 저희를 받아 주시는 겁니까?"

"아니. 우선 내 이야기를 다 듣고, 그런 후 다시 한나절의 시간을 주겠다. 오늘 밤까지 결정해라. 정말 나와 의제를 따를지, 말지를."

"저희는 어떠한 상황이 되어도 주군을……."

"쉿! 일단 내 말 들어."

"넵!"

"난…… 사도색마(邪道色魔)다."

광천마제 시절 얻었던 사도신마(邪道新魔)란 별호에서 신(新) 자만 색(色) 자로 바꿨다.

두 녀석의 얼굴에 놀람과 당황함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내 의제는, 우각색마(牛角色魔)라 불린다."

의제의 별호 역시 광천마제 시절의 우각도마(牛角刀魔)에서 도(刀) 자만 색(色)자로 바꿨다.

더더욱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는 녀석들이었다.

동시에 벙어리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왜? 우리가 색마라서 놀랐어? 의제가 말한 거 이미 들었을 텐데? 우린 무림맹에 쫓기고 있는 몸이라고. 너희들을 쫓고 있는 하후세가 따위와는 격이 달라. 죽을 수도 있어. 무엇보다…… 우리와 함께 다니게 되면, 결국 너희들도 같은 일을 해야 할 거야. 그래야 진짜 내 수하가 되는 거고, 내 동생이 되는 거라고. 안 그래, 의제?"

"맞습니다, 형님, 크하하하. 사실 어제 저 녀석들이 안순에서 연쇄 간살 사건 어쩌고 할 때, 전 두 녀석 중 한 녀석이 흉수였으면 하고 바랐습니다. 완전 우리와 같은 부류 아니겠습니까? 당장 의형제를 맺으려고 했죠, 크하하하하!"

을오와 처선의 얼굴이 순간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살길을 찾으려다 지옥에 떨어졌을 때의 얼굴과 같았다.

"어때? 이래도 내 수하가 되고 어쩌고 할 생각인가? 아, 물론. 답은 지금이 아니라 밤에 해. 그때까지 잘 고민해 보라고. 그리고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어디 딴 데로 샐 생각하지 마. 내 의제는 남자고 여자고 안 가리거든, 큭큭큭."

"아이고, 형님도. 애들이 뭘 안다고, 큭큭큭. 도망가도 돼. 대신 나한테 잡히지만 마. 뭐, 난 너희가 도망가 주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지만 말이야, 하하하하!"

똥 씹은 표정.

나와 의제는 그런 두 녀석을 데리고 다시 한참을 움직여 이동했다.

약속된 장소, 밤까지 그곳으로 가야 한다.

* * *

"한 사람씩 보내, 의제."

"네, 형님."

보름달이 환하게 비추는 야심한 밤.

운남의 어느 산자락에 자리를 잡았다.

의제가 곧 사라졌고, 그 자리로 처선이 모습을 드러냈다.

녀석은…… 내게 무릎을 꿇지 않았다.

"결정했어?"

"네."

"말해."

"저는…… 저는……."

"처선."

"네, 대협."

"아버지와 어머니의 복수를 해야지?"

"……."

대답 대신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리는 처선이었다.

"내 수하가 돼서, 내 힘을 이용해 부모님 복수하려던 생각 아니었어?"

"그건! 그건 아닙니다. 그건 절대 아닙니다."

"그럼 왜 내 수하가 되겠다고 한 거지?"

"부모님의 복수와 전혀 상관없는 건 아닙니다. 다만, 대협을 이용하려던 것은 절대 아닙니다. 대협을 도와 힘을 키울 생각이었습니다. 대협이라면, 하후세가와 화양문의 고수를 상대로 엄청난 신위를 선보였던 대협이라면, 또 지난날 보여 주셨던 대협의 성품이라면, 훌륭한 군주가 되실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날 군주로 만들고, 세력을 모으겠다. 그 힘을 이용해 복수하겠다는 건 마찬가지 아닌가?"

"그게…… 그렇습니다. 다만, 그것 때문에 대협의 수하가 되겠다고 한 건 정말 아닙니다. 낮에도 말씀드렸다시피, 대협께 제 인생을 걸어 볼 생각이었습니다."

"흥!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털썩.

처선이 무릎을 꿇었다.

곧 머리까지 깊게 숙였다.

"목숨을 구해주신 은혜는, 꼭 갚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다만…… 대협의 수하는 될 수 없습니다."

"네게 은혜를 갚을 능력은 있고?"

"……."

"무엇보다, 살아야 은혜고 뭐고 갚지. 여기서 살아 나갈 수 있을 것 같아? 의제가 너를 훔쳐보며 침을 질질 흘리던데 말이야, 큭큭큭."

"……."

"다시 묻겠다. 내 수하가 되지 않겠다는 결심. 정말 변함없나?"

"죄송합니다. 그렇습니다, 대협."

"세상에 공짜는 없어. 대가는 치러야 해."

"어떤 대가든…… 치르겠습니다. 떠나게만 해 주십시오."

"잘라."

"네?"

"자르라고, 그거. 처음 봤을 때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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