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화
한 녀석의 아버지는 한 지역의 사도 문파 우두머리다.
그런데 씨가 없어서 자식을 낳지 못해 양자를 들였다.
또 한 녀석의 아버지는 황궁 환관이다.
심지어 금의위와 더불어 황제의 최측근으로 막대한 권력까지 거머쥔 동창 출신이란다.
그런데 아들을 낳았다.
하! 이건 뭐, 광마일기를 읽어 알고 있는 이야기였지만, 다시 들어도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다.
내가 이럴 진데, 의제는 어떻겠는가?
옆에 있는 의제 얼굴을 슬쩍 봤더니, 눈알이 튀어나오기 직전이었다.
의제가 결국 참지 못하고 처선을 향해 물었다.
"황궁 동창? 환관이라고? 환관이면 거세를 하지 않나? 어떻게 거세를 했는데…… 그게 없잖아! 그게! 그런데 어떻게 그걸 해서…… 그러니까 내 말은…… 아무튼! 그게 없는데, 그걸 어떻게…… 아이고! 돌겠네."
의제는 혼자 답답해 미칠 것 같은 얼굴을 했다.
처선은 그런 의제를 담담히 보며 말했다.
"혹시 환관의 역사와 거세 방식이 어떻게 변천됐는지 아십니까?"
"응? 그런 게 있어? 거세면 그냥 쓱싹 자르는 거 아냐?"
"수백 년 전, 그러니까 황궁에 환관이라는 제도를 처음 도입했을 때는 그랬답니다. 황제와 그 혈육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수많은 일을 하다 보니, 선을 넘는 일이 많이 발생했다고 하더군요. 물론 궁 밖으로 이러한 일들은 절대 전해지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그랬겠지. 전부 목을 베어 버렸을 테고, 입단속도 철통같이 시켰을 테니."
"네. 그때부터 환관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처음에는 음경과 고환(睾丸, 불알)을 모두 제거했다고 합니다."
"나도 여태까지 그렇게 알고 있는데? 지금은 아니야?"
"당시 거세를 한 소년의 생존율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고 합니다."
"뭐야? 거시기 잘린 것도 억울한데, 궁에 발도 들여 보지 못하고 죽은 거야? 그 어린 것들이?"
"네."
의제가 인상을 와락 구겼다.
더 못생겨졌지만, 녀석의 순수한 마음만은 알 것 같았다.
처선은 여전히 담담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수백 년 동안 환관에 대한 거세는 지속되었고, 그 과정에서 거세에 대한 방식도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발전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음경은 살려 두고, 고환만 제거하여도 생식 기능을 완전히 상실한다는 사실을요. 그래서 작금에 이르러서는 거세를 해도 음경은 자르지 않습니다."
"어? 그, 그래? 그러면…… 오줌…… 앉아서 싸는 거 아니었어? 난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수백 년 전에는 그랬지만, 지금은 서서 쌉니다."
"아…… 그래, 어. 응. 그렇군."
의제가 반신반의하는 얼굴이면서도 뭔가 꽤 미안한 얼굴로 말을 얼버무렸다.
다시 처선이 말을 이었다.
"저희 아버지께서도 고환을 제거하고 황궁에 입궁하셨습니다. 어린 소년이셨고, 그 재주가 남달라 약관이 되기도 전 동창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원정 태감께서 제 아버지의 스승과 같은 분이셨다고 합니다."
동창의 우두머리 환관 원정 태감.
무림에도 가끔 그 이름이 들려올 정도로 유명한 자다.
"거세를 하면 생식 기능을 완전히 상실한다고 말한 건 너야. 그런데 어떻게 네 아버지가 너를 낳았다는 것이지?"
이번엔 내가 물었다.
처선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답했다.
"환관은 대부분 궁 내에서 지내지만, 그 직위가 높을수록 궁 밖에 집도 사고, 가정도 꾸리며 살기도 합니다. 동창에 들어간 아버지는 궁 밖에 여인이 있었습니다. 제 어머니셨죠."
"잠깐."
의제다.
의제가 또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
"그게…… 그게 가능해? 나도 들어본 것 같긴 한데. 내시가 부인을 두고 그런 거 말야, 어험. 이거 부모님 이야기라니 좀 그렇긴 한데."
"괜찮습니다. 기탄없이 말씀하십시오."
"밤에 사랑하는 것도 가능해? 그거 말야. 그거."
"네. 가능합니다. 음경이 살아 있으니 당연한 일이지요. 자식을 낳을 수 없을 뿐, 다른 생활은 일반인들과 똑같습니다. 밤일 역시도요."
"아…… 그렇구나."
의제가 한껏 처선의 말에 빠져든 얼굴로 탄성까지 흘려댔다.
다시 처선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어느 날 어머니께서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크게 놀라셨다고 합니다. 곧장 믿을 수 있는 의원을 찾아가 어떻게 된 상황인지 물었다고 합니다."
"그, 그래서? 어떻게 된 건데?"
의제가 영혼까지 뽑아 처선의 이야기에 빠져들어 물었다.
"아버지는 대물이셨습니다."
"컥! 대, 대물? 지금 네가 말하는 대물이 그 대물 맞아? 남자들의 그 대물?"
"네, 맞습니다."
갈수록 태산이었다.
내시가, 자식을 낳은 것도 모자라 대물이었단다.
의제는 이제 뭘 더 물을 기력도 없는 얼굴을 해 댔다.
너무 놀란 탓이다.
"음경도 컸지만, 고환 역시 엄청나게 컸다고 합니다. 거세를 할 당시, 집도를 했던 황궁의 의관도 기형적이라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왜지?"
내가 물었다.
"고환이 상식 밖으로 큰 것도 큰 것이지만, 하나밖에 없었으니까요."
"하나?"
"네. 그래서 하나만을 제거하고 환관이 되었답니다. 나중에 어머니의 임신 소식을 듣고 찾아간 의원은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어떤 말?"
"내 평생 남자의 양물을 수천수만 번을 봤지만, 단언컨대 그대만큼 커다란 양물을 가진 자는 본 적이 없소. 환관이 되기 위해 거세를 했다고 하는데, 거세는 정확히 된 게 맞소. 다만, 당신은 양물뿐만 아니라 고환 역시 엄청나게 커, 당신의 몸이 그걸 받쳐 주지 못했소. 그래서 알 한쪽이 몸속으로 숨어 버린 것이오. 거세된 건 하나의 고환뿐이고 나머지 하나가 몸속에 멀쩡히 살아 있으니, 사랑을 나누면 자식이 생기는 게 당연한 이치요."
"그래서 임신이 가능했다?"
"네."
"솔직히 다 믿기는 힘들군. 이런 말 하기는 좀 그렇지만, 자네가 자네 아버지의 친아들이라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지 않은가?"
"있습니다."
"뭐? 얼굴을 쏙 빼닮았다느니 그런 건가?"
"아닙니다. 전 어머니 얼굴을 닮았습니다."
"그럼 뭔데? 발가락이 닮았나?"
"아닙니다."
"……?"
"증명해 보여 드리겠습니다."
"친자 확인은 확실히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 허걱! 허걱! 허걱!"
"커어어억!"
"허거거거걱!"
내가 처선을 향해 비꼬듯 말을 할 때,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이내, 자신의 바지춤을 훌러덩 내려 버렸다.
그리고 우리는 보았다.
또 동시에 숨 막힐 정도의 놀라 비명을 내지를 수밖에 없었다.
처선의 그것이, 그것이 말이다!
와아아아!
이거 사실 광마일기에 적혀 있어서 알고 있었는데, 글로 읽는 거랑 실제로 보는 거랑 너무 달랐다.
그냥 말 그대로 충격 그 자체였다.
대물!
그것도 엄청난 대물이었다.
아니,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녀석이 그걸 고스란히 드러내 우리에게 보여 준 것이다.
나와 의제, 그리고 을오까지.
우리는 정말 오랜 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처음에는 충격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흘렀을 때, 우리는 다른 느낌을 받고 있었다.
부러움.
위축.
자괴감.
스스로 한없이 작아지는 그런 느낌이었다.
넘지 못할 벽을 마주했을 때의 절망감마저 들었고.
"그만, 그만 옷 올려. 네가 한 말 모두 믿을 테니까, 휴우."
"감사합니다, 대협."
우리는 처선이 바지를 다시 올려 입은 후에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이미 눈에선 사라졌지만, 계속 그 잔상이 내 눈앞에서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았다.
"문제는 그다음이었습니다. 황궁에서 환관이 거세를 제대로 하지 않은 사실이 밝혀질 경우, 심할 경우 목숨을 잃게 되기도 합니다."
"음……."
"아버지께서는 그 즉시 병을 이유로 사직서를 제출하였습니다. 곧바로 원정 태감이 아버지를 소환했고, 아버지는 사실을 모두 말했다고 합니다. 다행히 아버지를 매우 아끼시던 원정 태감이 뒤를 봐줘, 아버지는 무사히 궁을 떠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어쩌다 이곳에 터를 잡게 된 것이지?"
"원정 태감께서 뒤를 봐주신다지만, 궁에는 보이지 않는 눈과 귀가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최대한 궁으로부터 멀리 떠나려 하셨고, 그러다 이곳 귀주까지 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적표채와 인연은 따로 없고? 동창이 무림과 은밀하게 교류한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잖아."
"황궁의 눈을 피하기 위해, 지인과의 접촉은 일절 피했다고 합니다. 우연히 적표산을 넘다가 적표채와 맞닥뜨리게 됐고, 당시 적표채의 채주와 일천 합이 넘는 싸움을 벌였다고 합니다."
"동창의 무공이 대단하다는 말은 들었지만, 적표채가 그냥 산채도 아니고 녹림삼십육채 중에서도 일 채인데, 그 정도로 아버지가 강하셨나? 젊은 나이셨을 텐데."
"지금 저와 비슷한 나이셨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원정 태감께 직접 무공을 사사받고, 그 외에도 원정 태감의 도움으로 대학사에게 문(文)을 배울 수 있었고, 재상에게 병법(兵法)을 익혔으며, 어의에게 의술까지 배울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 그건 그렇다고 치자."
"……."
이 새끼.
내가 뭔 말만 하면 한마디도 지려 들지 않는다.
심지어 눈까지 부릅뜬다.
한 대 칠까?
아직은 아니다.
내가 칠 놈이 둘 중 누구든, 아직은 아니다.
"알았어. 믿는다고. 뭐? 또 바지 내리게? 됐으니 그냥 다음 이야기 이어 가."
"일천 합의 싸움 끝, 적표채주와 아버지는 친구가 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 후, 적표채주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도주 중인 것을 알게 됐고, 적표산에서도 가장 은밀하면서도 풍경이 좋은 곳에 아버지와 어머니의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그 후 지금까지 저와 부모님은 그곳에 살았습니다. 그놈들이…… 쳐들어오기 전까지는요."
"하후세가?"
"네."
"아버지가 고수셨다며?"
"적 중에도 고수가 있었습니다."
"내가 며칠 전 싸웠던 그 노인? 장법의 고수?"
"네. 그자와 하후세가주, 또 일백 명이 넘는 이들을 상대로 홀로 싸우셨습니다. 저를 지켜 주기 위해서…… 그러다 그만…… 흑!"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던 놈이, 갑자기 울컥하며 눈물을 쏟아냈다.
바지 속에 엄청난 괴물을 지니고 있는 놈이, 저렇게 왈칵 눈물을 쏟아낸다고 생각하니, 느낌이 조금 이상했다.
내가 그런 엉뚱한 생각을 할 때, 을오가 처선의 설명을 이었다.
"너무 갑작스레 쳐들어왔습니다. 적표채에서 도와줄 시간 자체가 없었습니다. 결국 저와 처선은 큰 상처를 입었고, 처선의 아버지께서 강하게 저희에게 도망가라 하셨습니다. 처선이 끝까지 함께 싸우려 했지만, 처선의 아버지께서 처선의 마혈을 점혈했고, 저에게 처선을 데리고 도망가라고 하셔서…… 모두 저 때문에 그리됐습니다, 흑흑."
이 녀석도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린다.
"적표산에 그 많은 인원이 들어섰는데, 적표채에서 몰랐다? 좀 이해가 안 가는데?"
을오가 눈물을 소매로 훔치고 답했다.
"저희 흑풍방과 적표채가 같은 사파라 간간이 교류를 해서 압니다. 전대의 적표채주와 처선 아버님의 관계는 매우 좋았으나, 지금의 채주와는 그리 좋은 관계를 유지하지 못했던 것으로 압니다."
"왜지?"
"욕심입니다."
"욕심?"
"네. 처선의 아버님께서는 무공은 물론 병법과 의술까지 매우 뛰어난 분이셨습니다. 지금의 적표채주는 그런 처선의 아버님께서 적극적으로 적표채의 일을 돕길 원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러지 않으셨습니다. 산채 사람들의 질병을 봐주고, 어린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는 정도만 해 주셨습니다. 전대 채주 때부터 줄곧 그래 왔던 것처럼요."
"적표채가 하후세가의 적표산 진입을 알고도 모른 체했을 수 있다는 말이군."
"네."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네? 무얼 말씀이십니까?"
"처선의 아버지. 그 싸움에서 사망했냐고."
"그야 당연히……."
"직접 봤어? 눈으로?"
순간 을오가 크게 당황한 얼굴이 됐다.
하염없이 울기만 하던 처선의 울음도 뚝 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