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화
"저기…… 어르신들, 실례지만 조금 전 나누었던 이야기에 대해 좀 더 들을 수 있겠습니까?"
세 명의 할아버지 상인들.
내가 말을 건네자 일제히 시선을 나에게 돌렸다.
"도사님이십니까?"
"산골의 작은 도문에서 도를 닦다 내려왔습니다."
"어이쿠, 도사님 맞으셨군요. 어르신이라뇨. 저는 장가고 이놈은 왕가고, 저놈은 목가입니다, 하하."
"아, 네. 반갑습니다. 그런데 방금 하셨던 말씀이……?"
"젊은 도사님이신데, 우리 아미삼검 여협들에 대해서도 아십니까? 도사님께서 태어나기도 전에 은거에 들어가셨던 분들인데요."
"그렇지. 그분들께서 은거에 들어간 지 이십 년이 훌쩍 넘었지?"
"맞아, 맞아. 이십육 년인가 그래. 아! 우리 아미삼검 여협들께서 젊은 시절 정말 대단하셨지. 세 분 다 선녀같이 아름다우셨고, 또 그 고운 모습으로 사악한 마두와 대마두들을 가차 없이 처단하셨지, 하하하."
"아니요, 어르신들. 아미삼검 말고, 방금 말씀하신 계두교요."
"엥? 아직 모르셨습니까, 도사님? 정말 산에서 내려온 지 얼마 안 되셨나 봅니다."
"네. 그렇습니다. 그런데 계두교는 뭐죠? 무슨 계 자와 무슨 두 자를 쓰나요?"
"저희도 처음 들었을 때는 뭔 놈의 종교가 그런 이름을 쓰나 싶었습니다. 닭 계(鷄) 자에 머리 두(頭) 자를 씁니다."
계두교(鷄頭敎)!
미친 닭대가리 새끼.
돌은 거 아냐?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침착하자, 침착해.
우선 정보를 얻어야 한다.
"혹시 닭을 숭배하는 그런 종교인가요?"
"네, 맞습니다. 뭐라더라……."
"예끼, 내가 설명하겠네. 그게 말입니다, 도사님. 십이지신(十二支神)이 있지 않습니까? 자축인묘진사…… 어…… 그러니까, 허허허허."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요?"
"아이쿠! 맞습니다. 저도 원래 알고 있는데…… 헤헤. 그 뭐라더라? 그 십이지신이 세상에는 무슨 기운이 있고, 그 기운은 주기적으로 바뀐다고 하더군요. 쥐, 소, 호랑이…… 음…… 그러니까……."
"쥐, 소, 호랑이, 토끼, 용, 뱀, 말, 양, 원숭이, 닭, 개, 돼지요?"
"어이쿠, 맞습니다. 그것도 제가 아는 건데…… 헤헤. 아무튼 세상은 주기적으로 십이지신의 기운이 왕성할 때가 있고, 쇠할 때가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금부터 일백 년 동안은 계신(鷄神)의 기운이 가장 왕성하다고 하더군요."
"왕가 이놈 말이 맞습니다. 계두교에서 그리 말했습니다. 그래서 닭을 신성시하고 숭배하면, 가족이 모두 건강하고 큰 행운과 많은 돈을 벌 수 있다고 합니다. 자식들은 모두 탄탄대로를 걷게 되고요. 아무리 그래도 닭을 신으로 모신다는 걸 믿다니. 좀 한심합니다."
"말조심하게, 목춘 이 친구야. 계두교 사람들이 들으면 경을 친다네."
"듣거나 말거나."
"도사님, 그게 의외로 통한 모양입니다. 벌써 엄청난 사람들이 계두교의 교도가 됐습니다. 그 첫 번째 계명이 닭고기와 달걀을 먹지 않는 것인데, 보십시오. 중원 전체의 닭값이 반의반으로 떨어졌지 뭡니까."
세 할아버지 상인의 설명은 한동안 이어졌다.
정말 들을수록 이해가 안 갔다.
계두교?
이름부터 닭대가리교가 뭐냐고.
그래, 닭의 대가리에서 나온 작명 실력이니 그러려니 하자.
도대체 그딴 걸 왜 만든 거야?
천마신교라도 따라 하려는 건가?
하! 닭대가리 이 새끼, 진짜 안 되겠다.
난 곧바로 광마일기를 펼쳐 각혼필을 휘갈겼다.
<<광마일기>>
장난하냐?
지금 뭐 하자는 수작이야?
힘만 얻으면 요계로 떠날 거라며?
대놓고 날 속이겠다는 거냐?
이젠 숨길 필요도 없다?
그래서 계두교…… 아! 네 닭대가리에서 나온 작명 실력 한번 끝내준다.
계두교로 뭘 어쩔 건데?
천마신교 따라 하는 거냐?
뭐?
무림이라도 정복하게?
아니면 황제라도 되게?
너, 닭대가리!
나 죽을 때마다 광마일기 읽고 있는 거 다 안다.
내가 충분히 납득할 만한 답장 써 놔라.
안 그러면, 나도 다 생각이 있다.
지금 네 내공 십 갑자 정도 돼지?
정확히 십 갑자 삼십 년 치나?
막, 힘이 넘치고 천하를 다 얻은 것 같고 그렇지?
그런데 닭대가리야.
인간계가 그리 호락호락한 게 아니란다.
너, 제대로 된 답장 여기에 써 놓지 않으면, 나도 내 일 다 제쳐 두고 제대로 움직인다.
다 때려치우고 닭 잡으러 간다고!
기름에 튀겨 버린다.
제대로 된 답 적어.
그리고 허튼수작 부리지 마.
절대!
절대로 딴마음 품지 말라고.
안 그러면 내 인생, 업보고 뭐고 다 포기하고 너랑 끝을 볼 테니까.
* * *
우리는 귀주로 왔다.
중원의 남쪽.
점창파가 있는 운남과 맞닿은 곳이다.
그리고 이곳으로 계속 남하를 하면 남월(南越)의 밀림으로 들어가게 된다.
광천마제 시절 화산, 제갈, 무당에 쫓기던 나와 의제가, 사막으로의 도주를 포기하고 밀림으로 도주하려다가 들른 곳이다.
물론, 지금은 그때와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나와 의제는 마두도 아니고, 쫓기지도 않는다.
돈도 많고, 옆에는 천무휘와 한해북도 있다.
아! 천무휘와 한해북은 지금 잠깐 어디로 보냈다.
둘에게 따로 임무를 맡겼다.
그냥 그렇고 그런 임무가 아니다.
지난 스무 번째 회귀 때, 무당 장문인에게서 받은 글 있지 않은가?
무당태극패(武當太極牌) 대신 받은 무당대임서(武當代任書) 말이다.
광마일기의 그것을 반듯하게 찢어서 천무휘에게 건넸다.
중차대한 임무기에, 무당대임서까지 건네 임무를 맡겼다.
광마일기는 내가 죽고 다시 회귀하면 복원되니 걱정할 필요 없고.
아무튼 그렇게 천무휘와 한해북에게 다른 임무를 맡겨 보내고, 나와 의제 단둘이 움직이고 있다.
도사복도 벗었다.
광천마제 시절처럼, 평범한 옷.
심지어 더럽고 꾀죄죄하게 변용까지 했다.
마치 무언가에 쫓겨 도주하는 사람의 몰골처럼 말이다.
말도 타지 않고 걸어서 한참이나 이동 중이다.
그렇게 어느 산기슭의 작은 마을, 마을 규모에 비해 제법 커다란 객잔에 도착했다.
이곳이다.
나와 의제가 그들을 만나게 된 곳.
이제 곧 그들이 올 것이다.
한 가지 불안한 점은.
미래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나와 의제는 마두가 되지 않았다.
무당파와 제갈세가는 반목했다.
제갈세진과 제갈취무도 죽었다.
무림오대고수는 무림육대고수가 됐다.
아미삼검은 은거를 깨고 현역으로 돌아왔다.
아미삼검까지야 모르지만, 광천마제 시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송암 도장의 무림 등장은 그야말로 무림의 커다란 지각 변동을 일으켰다.
녹주마적단도 광천마제 시절에는 계속 활동했지만, 지금은 없다.
원곡이 암중에서 계속 활동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나는 끝까지 그 존재를 몰랐지만, 극마의 고수가 암중에서 활약한다는 의미는 실로 대단한 일이다.
그 또한 지금은 변했다.
계두교는……. 아오, 이건 생각만 해도 열받네.
어쨌거나 정말 많은 미래가 바뀌었다.
그래서 어쩌면 내가 오늘 만나려는 녀석들이 이곳에 오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지금까지는 내가 모두 알고 있는 미래였다면, 이제부터는 조금씩 어쩌면 많이 바뀐 미래를 대면해야 할지도 모른다.
저기객잔이 있던 사천에서 이곳 귀주까지 의제와 단둘이 걸어오며, 이런 고심을 포함하여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확실히 걷는 게 두뇌 활동에 큰 도움을 준다.
그러다 문득 미래가 바뀌었다는 것 말고도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됐다.
어쩌면, 어쩌면 말이다.
광천마제 시절 겪었던 내 모든 슬픔과 좌절, 절망, 배신…… 이러한 것들의 배후에 그들이 있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말이다.
"형님?"
"어, 어?"
"음식, 시키셔야죠."
"난 만두하고 소면. 화주도 한 병."
"만두 한 근, 소면 두 그릇. 화주 한 병."
"예이, 금방 내오겠습니다."
-형님, 만두 두 근 시킬까요?
-배, 많이 고파?
-형님이 쫓기는 사람처럼 해야 한다고 해서, 사흘 동안 물만 딱 석 잔 마셨잖아요. 뱃가죽이 등에 달라붙었습니다.
-좀만 참자. 다 생각이 있어서 그래.
-에이, 참는 건 참죠. 그냥 만두 한 근만 더 시킬까 해서…… 헤헤. 아닙니다, 하하. 형님도 배고프실 텐데. 투정 부려 죄송합니다.
-아니야. 무슨 일인지 묻지도 않고, 이렇게 사흘이나 함께 굶어 줘서 고마워, 의제.
-형님도 참. 별말을 다하십니다. 하하.
-웃지 말고. 우린 지금 몇 달 동안 엄청나게 쫓기다가 이곳에 들러 허겁지겁 끼니만 때우다 바로 떠날 사람이야.
-아, 넵, 넵. 알겠습니다.
그렇게 의제와 나는 음식이 나오자마자 허겁지겁 먹어 치웠다.
아니, 막 그릇과 접시를 비울 때쯤이었다.
-형님, 혈향(血香)입니다. 방금 객잔 안으로 들어온 두 녀석에게서 납니다. 안색도 좋지 않아 보이는데요? 한 녀석은 좀 심각해 보입니다. 그냥 두면 죽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 녀석들…… 누군가에게 쫓기는 중인가 봅니다.
왔다.
두 녀석.
내가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녀석들이다.
* * *
<<광마일기>>
(상략)
아! 빌어먹을 화산검후.
그 계집에게 맞은 칼빵이 또 도졌다.
계속 칼로 난도질당하고 있는 것 같은 고통이 밀려온다.
그것도 정확히 아흔여덟 곳 전부에서.
그보다 내상이 점점 심각해진다.
위급한 상황이 아니면, 내공을 운용할 수조차 없다.
내상만 더 악화시킬 뿐이다.
아니, 내공을 운용하게 되면 그게 내 삶의 마지막 순간이 될지도 모르겠다.
처참하군.
난 어쩌다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된 걸까?
의제는 살아 있을까?
우리 초향…… 아! 우리 부인 생각을 하니 또 눈물만 나온다.
내 처지가, 작금의 상황이…… 너무 비참하다.
(중략)
갑자기 그 녀석들 생각이 난다.
나에게 달콤한 말만 했던 녀석과 언제나 쓴소리만 했던 녀석.
달콤한 혀를 가진 녀석은 끝까지 나와 함께 했다.
사패천에서의 마지막 날, 그 녀석이 내 음식에 독을 타고 내 등에 칼을 꽂았다.
그리고 그 녀석.
끝까지 내게 쓴소리를 했던 녀석.
녀석은 그 전에 내 손에 죽었다.
내가 직접 죽였다.
왜 그랬을까?
난 도대체 왜 그 녀석을 그토록 모질게 대했던 것으로도 부족해, 처참하게 죽이기까지 한 걸까?
만약, 이미 지나가 버린 시간이라지만.
정말 만약.
만약 그 녀석을 내치고, 그 녀석을 내 곁에 두었다면.
지금 내 상황이 달라졌을까?
달라졌겠지.
그 녀석을 곁에 두기만 했더라면, 애초에 놈들이 역모를 꾸밀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테다.
그렇게 똑똑하고 유능하고 우직했던 녀석인데.
아! 그러고 보니 그것 역시 그 녀석 덕분이다.
화산파와 제갈세가 그리고 무당파.
그 기나긴 도주를 끝낼 수 있게 해 준 결정적 역할을 한 게 그 녀석이었다.
아니, 그걸 다 떠나.
그 녀석의 마지막 날.
내가 녀석을 죽이던 그날 밤.
그 녀석의 마지막 직언을 조금이라도 귀에 담았다면, 그랬다면 말이다.
지금 내가 이곳에서 홀로 쓸쓸하고도 비참한 죽음을 눈앞에 두지 않았을 테다.
녀석이 너무 보고 싶다.
아니, 너무 보고 싶지만, 미안해서 볼 면목도 없다.
말도 안 되는 상상이지만, 진짜로 만약에 내가 과거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난, 녀석에게 무릎을 꿇고 사죄할 테다.
(하략)
모든 사람이 그를 좋아하더라도 반드시 살피고,
모든 사람이 그를 미워하더라도 반드시 살펴야 한다.
-공자